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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고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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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교토부 교토시 가미교구에 위치한 궁궐로, 천황과 황후의 옛 거처이다.
헤이안 시대 때부터 내려온 오래된 건물이기 때문에 헤이안 시대 양식을 간직한 정전 자신전(紫宸殿)과 일상생활을 하였던 어상어전(御常御殿) 등이 보존되어 있다.
역사적으로 금리(禁裏 ), 내리(内裏 )라고 불렸으나 천도 이후 교토 어소라고 부르게 되었다. 공식명은 초기 명칭 그대로 평안궁(平安宮 )이다. 그래서 이 궁궐이 황거였을 시절에도 일반적으로는 그냥 어소 혹은 내리라고만 불렀으나 공식 문서 등에서는 평안궁으로 표기하였다. 그러나 예나 지금이나 아무도 이 이름으로 부르지 않고 교토 어소(京都御所), 교토 황궁(京都皇宮) 아니면 그냥 어소(御所)[1] 라고 부른다. 또한 과거에는 황거라는 표현도 썼었고 사전적인 의미로 어소와 황거는 동일한 단어이지만, 황거는 현재 도쿄에 있는 황궁을 일컫는 명칭이 되면서 거의 쓰이지 않는다.
794년에 간무 덴노가 지금의 교토인 헤이안쿄(平安京)로 천도했을 때는 어소가 헤이안쿄 북쪽 가운데의 광활한 부지를 차지했다. 이 시기의 어소를 대내리(大内裏)라 한다. 하지만 도성을 가로지른 주작대로를 기점으로 도성 서쪽이 습지대라 거주하기 부적절해 도심이 점차 동쪽으로 옮겨갔고, 어소 또한 원래의 위치에서 동쪽으로 2km나 이동하면서 면적도 초기 궁전보다 협소해졌다.
지금의 교토 어소는 헤이안쿄 조성 초기 대내리와 완전히 다른 위치에 있고 생김새도 판이하다. 대내리는 일부 전각을 제외한 모든 전각이 정남향이었고 양식도 동양 전통 궁전 건축양식을 따른, 생김새로 따지면 현재 어소보다는 임진왜란 이전 경복궁과 더 유사한 형태였다. 오늘날의 교토 어소는 헤이안 시대에 천황의 임시 거처 이내리(里内裏)의 하나인 토어문 동동원전(土御門東洞院殿 )이었다. 가마쿠라 시대 중기 북조의 고곤 덴노가 이곳에 거주하면서 남북조시대 동안에 북조 천황의 거처로 사용되었고, 남북조 통일 이후 정식 황궁이 되었다. 위치와 형태가 모두 다르지만, 공식적으로 헤이안쿄 대내리와 현재 교토 어소는 동일한 궁전으로 여겨진다. 경복궁 역시 조선 초기와 흥선대원군 중건 당시의 형태가 완전히 다르지만, 공식적으로 동일한 궁전으로 취급하는 것과 비슷하다.
무로마치 막부의 제3대 쇼군인 아시카가 요시미츠가 어소 부지를 확장하기 시작했다. 오닌의 난 때에는 교토가 불바다가 되고 센고쿠 시대의 격변기에 접어들면서 덴노가 어소를 관리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해 몇몇 덴노들은 귀족들의 저택에서 지내기까지 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교토를 정비했으며, 에도 시대에도 8차례 중건했다. 1855년(안세이 2년)에 마지막으로 중건하여 지금 같은 모습이 되었으므로 안정내리(安政内裏 )라고도 불린다.
메이지 덴노는 1868년 에도로 행차하면서 에도 성에 머물렀고, 이듬해인 1869년에 천황이 앞으로 도쿄에서 체류할 것을 발표하면서 에도 성은 새로운 황성이 되었다. 이 시점까지 교토 어소는 일본 황궁으로서 약 550년의 역사를 기록하게 되었다. 교토 사람들 중 일부는 교토에서 도쿄로 공식적으로 천도령이 내려지지 않았다는 이유를 들어, 도쿄의 황거는 천황이 임시로 머무는 행궁이며 교토 어소가 정궁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제2차 세계 대전 말기에는 연합군의 폭격으로부터 보호하려는 목적으로 주요 전각을 해체해 부재를 보관한 적도 있었다.
수도가 도쿄(東京)로 옮겨간 이후에도 황실전범 제11조에 의해 쇼와 덴노까지는 이곳에서 즉위식을 거행하였으나, 황실전범 개정(1947년) 이후 즉위한 아키히토 덴노는 도쿄의 황거에서 즉위식을 거행하면서 자신전에 보관된 어좌대를 해체한 후 황거에서 조립해 사용했다가 다시 교토 어소로 갖다놓았다. 오늘날에도 천황, 황후, 황태자, 황태자비가 교토를 방문할 때 또는 국빈이 방문했을 때 영빈관처럼 사용하고 있다.
교토의 3대 마츠리 중 하나인 지다이마츠리의 행렬이 이곳에서부터 시작되는데, 당시 천황의 행차하는 모습을 볼 수 있어서 내 외국인 모두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는 행사이다.
관람객휴게실 안에는 과거 어소의 도면을 전시해 놓고 있는데, 해당 도면들을 보면 알겠지만 과거에는 현재보다 전각의 수가 훨씬 많았으나 상당수 사라진 것을 알 수 있다. 대표적으로 어소 내부 연조와 치조 사이 공터에는 수라간과 궁녀처소 그리고 능악대(能楽台)가 위치해 있었으며, 어상어전과 황후어상어전 사이 공터에는 후궁의 거주공간이었던 대옥(対屋)이, 제대부의 간 남쪽 신미쿠루마요세(新御車寄) 부근에는 종묘였던 신가전(神嘉殿)이 존재했었다.
교토 시영 지하철의 이마데가와역, 마루타마치역에서 내리면 바로 앞에 위치해 있다. 조금 떨어져 있지만 케이한 전철 종점 데마치야나기역에서 내려 15분 정도 걸으면 갈 수 있다. 또한 도시샤대학 이마데가와 캠퍼스가 왕복 2차선 도로 바로 맞은편에 위치해 있다.
과거에는 그냥 몸만 가서 관람할 수는 없었고 1년에 봄과 가을 2번만 닷새 동안 일반 공개가 있으며, 해당 기간 이외에 관람을 원하는 경우 궁내청 참관 사전 예약이 필요하다. 참고로 영어 안내 코스는 예약하기가 엄청나게 힘들다. 2달 전에 들어가도 만원인 경우가 다반사일 정도. 영어안내 코스가 만원이면, 일본어 한마디 못해도 일본어 표준코스로 가야만 한다. 외국인이 일본어 표준코스를 예약하려면 홈페이지를 일본어버전에서 영어버전으로 바꿔야 한다. 어느 시점엔가부터 중국어 코스도 하루 2번 추가 되었음을 2023년 5월 26일 확인하였다.
그러다 2016년 7월 26일부로 연중공개로 변경되었다. 입장료는 무료지만 입장 전 입구에서 황궁경찰이 소지품 검사를 한다. 또한 계절별 개관 시간이 다르며 휴관일도 그때그때 다르므로 위 링크에서 미리 확인하고 가는 것이 좋다. 기본적으로는 월요일 휴무 (월요일이 기념일이면 화요일 휴무) 다.
주변 지역은 주택가이며, 흔한 일본의 주택가답게 해가 지면 돌아다니는 사람도 없어서 스산한 느낌도 든다. 새벽에는 어소 안을 걷거나 외곽을 달리며 운동하는 사람들이 있다.
1. 개요[편집]
일본 교토부 교토시 가미교구에 위치한 궁궐로, 천황과 황후의 옛 거처이다.
헤이안 시대 때부터 내려온 오래된 건물이기 때문에 헤이안 시대 양식을 간직한 정전 자신전(紫宸殿)과 일상생활을 하였던 어상어전(御常御殿) 등이 보존되어 있다.
2. 명칭[편집]
역사적으로 금리(
3. 역사[편집]
794년에 간무 덴노가 지금의 교토인 헤이안쿄(平安京)로 천도했을 때는 어소가 헤이안쿄 북쪽 가운데의 광활한 부지를 차지했다. 이 시기의 어소를 대내리(大内裏)라 한다. 하지만 도성을 가로지른 주작대로를 기점으로 도성 서쪽이 습지대라 거주하기 부적절해 도심이 점차 동쪽으로 옮겨갔고, 어소 또한 원래의 위치에서 동쪽으로 2km나 이동하면서 면적도 초기 궁전보다 협소해졌다.
지금의 교토 어소는 헤이안쿄 조성 초기 대내리와 완전히 다른 위치에 있고 생김새도 판이하다. 대내리는 일부 전각을 제외한 모든 전각이 정남향이었고 양식도 동양 전통 궁전 건축양식을 따른, 생김새로 따지면 현재 어소보다는 임진왜란 이전 경복궁과 더 유사한 형태였다. 오늘날의 교토 어소는 헤이안 시대에 천황의 임시 거처 이내리(里内裏)의 하나인 토어문 동동원전(
무로마치 막부의 제3대 쇼군인 아시카가 요시미츠가 어소 부지를 확장하기 시작했다. 오닌의 난 때에는 교토가 불바다가 되고 센고쿠 시대의 격변기에 접어들면서 덴노가 어소를 관리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해 몇몇 덴노들은 귀족들의 저택에서 지내기까지 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교토를 정비했으며, 에도 시대에도 8차례 중건했다. 1855년(안세이 2년)에 마지막으로 중건하여 지금 같은 모습이 되었으므로 안정내리(
메이지 덴노는 1868년 에도로 행차하면서 에도 성에 머물렀고, 이듬해인 1869년에 천황이 앞으로 도쿄에서 체류할 것을 발표하면서 에도 성은 새로운 황성이 되었다. 이 시점까지 교토 어소는 일본 황궁으로서 약 550년의 역사를 기록하게 되었다. 교토 사람들 중 일부는 교토에서 도쿄로 공식적으로 천도령이 내려지지 않았다는 이유를 들어, 도쿄의 황거는 천황이 임시로 머무는 행궁이며 교토 어소가 정궁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제2차 세계 대전 말기에는 연합군의 폭격으로부터 보호하려는 목적으로 주요 전각을 해체해 부재를 보관한 적도 있었다.
4. 행사[편집]
수도가 도쿄(東京)로 옮겨간 이후에도 황실전범 제11조에 의해 쇼와 덴노까지는 이곳에서 즉위식을 거행하였으나, 황실전범 개정(1947년) 이후 즉위한 아키히토 덴노는 도쿄의 황거에서 즉위식을 거행하면서 자신전에 보관된 어좌대를 해체한 후 황거에서 조립해 사용했다가 다시 교토 어소로 갖다놓았다. 오늘날에도 천황, 황후, 황태자, 황태자비가 교토를 방문할 때 또는 국빈이 방문했을 때 영빈관처럼 사용하고 있다.
교토의 3대 마츠리 중 하나인 지다이마츠리의 행렬이 이곳에서부터 시작되는데, 당시 천황의 행차하는 모습을 볼 수 있어서 내 외국인 모두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는 행사이다.
5. 건축물[편집]
관람객휴게실 안에는 과거 어소의 도면을 전시해 놓고 있는데, 해당 도면들을 보면 알겠지만 과거에는 현재보다 전각의 수가 훨씬 많았으나 상당수 사라진 것을 알 수 있다. 대표적으로 어소 내부 연조와 치조 사이 공터에는 수라간과 궁녀처소 그리고 능악대(能楽台)가 위치해 있었으며, 어상어전과 황후어상어전 사이 공터에는 후궁의 거주공간이었던 대옥(対屋)이, 제대부의 간 남쪽 신미쿠루마요세(新御車寄) 부근에는 종묘였던 신가전(神嘉殿)이 존재했었다.
5.1. 궁문[편집]
5.2. 외조 권역[편집]
5.3. 정전 권역[편집]
5.4. 편전 권역[편집]
5.5. 침전 권역[편집]
6. 관람[편집]
교토 시영 지하철의 이마데가와역, 마루타마치역에서 내리면 바로 앞에 위치해 있다. 조금 떨어져 있지만 케이한 전철 종점 데마치야나기역에서 내려 15분 정도 걸으면 갈 수 있다. 또한 도시샤대학 이마데가와 캠퍼스가 왕복 2차선 도로 바로 맞은편에 위치해 있다.
과거에는 그냥 몸만 가서 관람할 수는 없었고 1년에 봄과 가을 2번만 닷새 동안 일반 공개가 있으며, 해당 기간 이외에 관람을 원하는 경우 궁내청 참관 사전 예약이 필요하다. 참고로 영어 안내 코스는 예약하기가 엄청나게 힘들다. 2달 전에 들어가도 만원인 경우가 다반사일 정도. 영어안내 코스가 만원이면, 일본어 한마디 못해도 일본어 표준코스로 가야만 한다. 외국인이 일본어 표준코스를 예약하려면 홈페이지를 일본어버전에서 영어버전으로 바꿔야 한다. 어느 시점엔가부터 중국어 코스도 하루 2번 추가 되었음을 2023년 5월 26일 확인하였다.
그러다 2016년 7월 26일부로 연중공개로 변경되었다. 입장료는 무료지만 입장 전 입구에서 황궁경찰이 소지품 검사를 한다. 또한 계절별 개관 시간이 다르며 휴관일도 그때그때 다르므로 위 링크에서 미리 확인하고 가는 것이 좋다. 기본적으로는 월요일 휴무 (월요일이 기념일이면 화요일 휴무) 다.
주변 지역은 주택가이며, 흔한 일본의 주택가답게 해가 지면 돌아다니는 사람도 없어서 스산한 느낌도 든다. 새벽에는 어소 안을 걷거나 외곽을 달리며 운동하는 사람들이 있다.
[1] 다만 일본에 어소는 교토 선동어소와 교토 대궁어소를 비롯해 교토에만 3개가 존재하며, 현재 역할이 바뀐 것들까지 포함하면 교토에는 6개의 어소가 존재한다.[2] 중국에서 유래한 유교적인 원칙이다. 북극성이 하늘의 북극점에 있으므로 다른 별들은 북극성에 비하면 전부 남쪽에 있다. 북극성을 군주에 비겼으므로, 군주도 북쪽에 앉아 남쪽을 바라보도록 궁궐을 설계하였다. 똑같은 이유로 우리나라의 경복궁이나 중국의 자금성도 남향으로 건물을 배치하였다.[3] 비향사(飛香舎), 응화사(凝花舎), 소양사(昭陽舎), 숙경사(淑景舎), 습방사(襲芳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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