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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네무라 사토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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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일본프로야구에서 활동했던 선수로, 본명은 카네무라 히데오(金村秀雄). 현재 한신 타이거스 투수코치.
이름만 보면 한국계 일본인이란 설이 있으나 실제로 확인되진 않았다.
주요 타이틀: 1998년 평균자책점 1위. 올스타전 3회(1998, 2004, 2005년)
등번호 : 16번(니혼햄) - 13번(한신)
2. 선수 생활[편집]
1995년 닛폰햄 파이터즈에 입단. 첫해에는 부진했지만 이후 꾸준하게 승수를 쌓았다[1] . 최전성기는 2002년부터 2005년까지. 다르빗슈 유 등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그야말로 눈물겨운 투수진을 자랑했던 닛폰햄의 에이스 역할을 했다.
그러다가 2006년부터 하락세가 시작되었다. 시즌 막판까지 겨우겨우 9승(6패)을 채우고, 5년 연속 두 자리수 승리와 6년 연속 규정이닝이 걸린 9월 24일 치바롯데전에서 3점차로 리드하던 5회 2아웃 만루상황에서 당시 트레이 힐만[2] 감독이 강판을 시키자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 외국인 감독이니까 선수 기록 따위 상관 없지. 꼴도 보기 싫다."[3] 라고 디스를 했다가 '출장등록 말소', '다음달 25일 훈련 참가금지', '벌금 200만엔', '플레이오프까지 출장정지의 징계를 먹었다.[4][5] 10월 25일 일본시리즈 4차전에서야 복귀하여 팬들에게 박수를 받았고 5회까지 무실점하면서 승리투수가 되었다. 결국 구단 및 힐만 감독에게 나중에 공개사과를 했지만, 이 사건으로 인해 구단에 단단히 찍혔는지 2007년에는 1군에서 얼마 기용되지 못했고, 마침 기량 하락의 조짐이 보였기 때문에 2007 시즌 후 한신 타이거즈로 트레이드된다. 하지만 한신에서도 재기하지 못하며 전성기 시절 모습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3년 간 1승 6패에 그친 뒤 2010 시즌 후 방출되었다.
투수로서는 사이토 가즈미처럼 유리몸이지만 컨디션만 좋으면 완봉, 완투도 곧 잘해내는 스타일로 실력은 확실하다는 평가가 언제나 많았던 만큼[6] 그 귀추가 주목되었다. 한국프로야구 진출을 희망했고 삼성 라이온즈와 계약사진까지 찍었다가 카도쿠라 켄이 입단하면서 물먹었고, 카도쿠라와 결별한 SK 와이번스의 입단테스트에 참가했으나 불합격 판정. 한국으로 진출하려다 영 좋지 않은 기억만 가지고 돌아갔다. 일본으로 돌아간 후에는 독립리그 팀 신나노에 입단했다고 전해진다. 여기서 컨디션을 끌어올린 다음에 여름쯤 용병농사를 망친 한국 팀의 오퍼를 받을 가능성도 있어보인다. 하지만 결국 오른쪽 어깨에 이상이 생기면서 은퇴하였다.
3. 은퇴 후[편집]
은퇴한 뒤 해설가로 활동하였고 2012년 한일 프로야구 레전드 매치에 참여하기 위해 방한하였다.
2016년 시즌을 앞두고 현역 마지막 팀인 한신 타이거즈의 코치로 영입되면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보직은 1군 투수코치.
여담으로 2006년에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의 파나마 출신 타자 훌리오 술레타[7] 에게 사구를 던졌다가 겨우 죽음을 모면할 정도로 얻어터졌었던 적이 있다.[8] 이 때문에 두달간 결장했을 정도로 부상이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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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특히 99년에는 4월에만 3경기 연속 완투승(2완봉 포함)을 기록했다[2] 2017년부터 KBO 리그 SK 와이번스 감독으로 선임된 그 분이다.[3] 絶対に許さない。顔も見たくない。(절대로 용서할수 없어. 꼴도 보기 싫어.). 인터넷 상에서 주로 천인공노할 짓에 대한 반응이나 개드립 등에 사용되며 이 아래에는 보통 もう許してやれよ(이제 용서 좀 해줘)란 드립이 주로 달린다.[4] 실제로 이 당시 힐만 감독은 카네무라 사토루의 항명에 단단히 화가 났는지, 1군 말소 및 팀 훈련 참가 금지라는 징계를 내린 것도 모자라 그의 라커룸까지 싹 치워버리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5] 당시 닛폰햄은 세이부, 소프트뱅크와 정규시즌 우승을 놓고 치열한 3파전을 전개하고 있었다. 게다가 닛폰햄은 1981년 이후 25년만의 리그 우승 도전이었다. 이 도전은 결국 성공한다. 일본시리즈에서는 44년만에 우승(팀 역사상 두 번째 일본시리즈 우승)하였다.[6] 부진하던 시기에도 구위나 컨트롤은 별 얘기가 없었다. 애초에 구위로 찍어누르는 스타일이 아니었다.[7] 시카고 컵스 산하 마이너리그팀에서 뛸 시절에 라이벌은 최희섭이었다.[8] 술레타는 치바 롯데 마린스의 투수 댄 세라피니와도 마운드에서 붙은 적이 있다. 테이크다운 및 파운딩으로 술레타의 승리로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