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케이 페가 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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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일본의 경주마. 마명의 유래는 관명 메이케이(名競) + 페가수스보다 인기가 높아지도록 바라는 단어라고 설명된다. 그러나 마주가 주쿄 경마장을 관리하는 나고야 경마 주식회사(名古屋競馬株式会社)이므로, 주쿄 경마장의 마스코트 캐릭터 '페가스타'에서 가져왔을 확률이 높다.
2. 혈통[편집]
3. 커리어[편집]
데뷔전에서 11두 중 11번째로 달리다가 최종 직선에 들어서자 추입, 라스트 3f 33.0의 속도로 출주마 전부를 추월하며 우승했다. 인상적인 승리로 데일리배 2세 스테이크스에서 1번 인기로 지지받지만 11착으로 대패한다.
해가 바뀌어 와카코마 스테이크스(OP)에 출주하였고, 기성에 상당한 문제를 보였지만 4번 인기로 3착을 거뒀다. 이어지는 교도통신배에선 드물게 침착한 상태로 선행하여 1 1/2 마신을 벌리고 우승, 1:46.0을 기록해 레이스 레코드를 크게 갱신했다.[1] 다시 압도적인 모습을 보이자 차주 와카바 스테이크스(OP)에서도 1번 인기를 받았다. 그러나 2세의 재현처럼 8착으로 패배. 사츠키상에 출주해 라스트 3f 35.1의, 가장 빠른 스퍼트를 보였음에도 18두 중 18번째로 달린지라 9착으로 들어온다.
기수를 후지타 신지로 변경한 뒤 6번 인기로 임한 제 80회 일본 더비. "사츠키상마 크리스티안 데무로", "더비 첫 기승 로고타입", "딥 산구 타케 유타카", "고저차 200m의 언덕", "한가운데에 개가" 등의 혼란스러운 해설 가운데 13번째로 달리던 메이케이 페가 스타는 1코너 후 직선에서 갑자기 폭주해, 3코너가 되자 선두까지 올라간다. 그 후 당연하게도 체력 부족으로 제대로 스퍼트하지 못하고 11착 입선.[2] 일각에서는 키즈나 우승의 숨은 공신이라 표현하기도 했다. 해당 경기는 후지타 신지의 마지막 더비 기승이었다. 반 년간의 휴양 후 캐피탈 스테이크스(OP)에 출주, 3착을 거두며 클래식을 마무리했다.
다음 해, 교토 금배에 2번 인기로 출주하지만 15착으로 대패한다. 이것을 시작으로 조건전으로도, 더트로도 이동해보지만 기성이 완전히 악화된 탓에 약 2년 3개월 가량을 부진한 상태로 보낸다. 9전 동안 거둔 입착 성적은 2014년 케이오배 스프링 컵(4착), 같은 해 1600만 이하 조건전(2착)이 전부. 그렇게 인기 순위도, 성적도 널을 뛰던 어느 날 하마나카 스구루 기수와 함께 BS일레븐상(1600만, 더트 1600m)을 우승한다. 승리할 때는 언제나 압승이었던 말답게 이번에도 2마신의 착차였다. 조건전 패배 이후 주쿄 기념에 출주해 16두 중 16착을 기록하고 9개월 동안 장기 휴양, 6세의 복귀 초전에서도 10착을 기록하자 은퇴를 결정했다.
4. 이후[편집]
은퇴 후 주쿄 경마장의 유도마가 되기 위해 거세 수술을 진행했다. 그러나 다음날 검사를 위해 이동하던 중 크게 넘어져 골절, 예후 불량 진단을 받고 안락사되며 특별한 보도 없는 조용한 죽음을 맞았다. 메이케이 페가 스타가 죽은 날인 5월 29일은 제83회 일본 더비의 개최일이었다.
5. 여담[편집]
- 현역 당시 조교 조수로서 메이케이 페가 스타의 조교에 자주 기승했던 것이 타케 히데노리 현 조교사였다. 이 말을 통해 나고야 경마와 연을 맺은 타케 히데노리는 메이케이 페가 스타가 은퇴하고 3년 뒤 나고야 경마에게 어떤 말을 추천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메이케이 옐. 이런 연결고리들로 인해 메이케이 페가 스타를 알던 사람들 가운데에선 메이케이 옐을 보고 이 말을 떠올리게 되었다는 반응이 많았다.
6. 경주 성적[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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