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포시(선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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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대 국회의원 선거까지는 시흥시(당시는 시흥군)와 한 선거구였다가 제15대 국회의원 선거부터 제19대 국회의원까지 군포시 단독 선거구로 분구되었다.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분구됐던 군포시 갑과 군포시 을이 다시 통합되었다. 19대 총선 때까지만 해도 군포시 단일 선거구였으니 4년만에 다시 돌아온 셈이다. 20대 총선 때 수성구 갑에서 국회의원을 한 김부겸 총리가 이곳에서 3선(16~18대)[1] 을 했던 곳이다. 현역 의원은 더불어민주당 이학영 의원이다.
산본신도시 전체를 관할하는 지역구인데, 군포시 인구가 선거구 획정의 상한선 근처에서 아슬아슬하게 왔다갔다하는 중이라 다음 선거에서 또 분구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한편, 인근의 안양시 동안구 을의 인구는 반대로 하한선 근처에 있는데, 군포를 온전히 분구하는 대신 동안구 을에 금정동 / 산본동을 꿔주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다. (특례 조항 필요)
탄핵 역풍이 거셌던 17대 총선과 미래통합당의 패색이 짙었던 21대 총선을 제외하면, 보수정당과 진보정당의 득표율 차이가 5~10% 미만으로 보수 성향도 꽤 짙은 편이다. 다만 잦은 분열과 보수 정당의 실책으로 인해 16대 총선을 제외하고는 보수 정당이 당선된 적은 없다. [2]
지난 국회까지 이 곳이 지역구였던 김부겸은 지역주의 타파를 선언하며 민주당계 정당의 사지 중 상사지인 대구광역시 수성구 갑에 출마할 것을 선언하며 지역구를 옮겼고[4] , 그래서 민주당은 새 인물을 공천해야 했는데, 공천자는 노동운동가 출신의 이학영이 되었고, 새누리당에서는 지지난 총선과 지난 총선에 이어 이번에도 유영하가 나왔다. 결과는 이학영의 승리. 반면 유영하는 한 지역구에서만 3연속 낙선하는 수모를 당했고, 이후로는 총선이고 지선이고 어떠한 선거에도 출마하지 않고 있다.
군포시 갑, 군포시 을 문서 참조
미래통합당에서는 두 선거구 각자 공천신청을 받았었다. 우선 심규철 전 의원이 출마를 선언하였으며, 최진학 후보를 이기고 공천을 받았다.
민중당에서는 김도현 후보를 군포시 을 지역구에 공천했지만 선거구 획정으로 인해 자동적으로 군포시 선거구에 후보를 냈다.
호남 출신의 인구비율이 높고 경기도의 도심지 특성상 전통적으로 민주당 강세인 도시답게 이학영이 57.41%, 2만 7천표 가까운 득표차로 가볍게 압승해서 3선 의원이 되었다. 세부적으로 보면 모든 투표단위에서 이겼다. 심지어 대부분 민주당이 불리한 거소투표, 선상투표에서도 이겼다.
여담으로, 국가혁명배당금당 후보가 출마하지 않았다.
군포시의 인구 정체로 인해 군포시 갑, 군포시 을로 쪼개지지 않고 군포시 단일 선거구로 유지될게 유력하다.
더불어민주당은 현역 이학영 의원이 취업 청탁 논란으로 수사를 받고 있는 만큼 다른 인물이 나올 가능성도 있다.
1. 개요[편집]
제14대 국회의원 선거까지는 시흥시(당시는 시흥군)와 한 선거구였다가 제15대 국회의원 선거부터 제19대 국회의원까지 군포시 단독 선거구로 분구되었다.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분구됐던 군포시 갑과 군포시 을이 다시 통합되었다. 19대 총선 때까지만 해도 군포시 단일 선거구였으니 4년만에 다시 돌아온 셈이다. 20대 총선 때 수성구 갑에서 국회의원을 한 김부겸 총리가 이곳에서 3선(16~18대)[1] 을 했던 곳이다. 현역 의원은 더불어민주당 이학영 의원이다.
산본신도시 전체를 관할하는 지역구인데, 군포시 인구가 선거구 획정의 상한선 근처에서 아슬아슬하게 왔다갔다하는 중이라 다음 선거에서 또 분구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한편, 인근의 안양시 동안구 을의 인구는 반대로 하한선 근처에 있는데, 군포를 온전히 분구하는 대신 동안구 을에 금정동 / 산본동을 꿔주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다. (특례 조항 필요)
탄핵 역풍이 거셌던 17대 총선과 미래통합당의 패색이 짙었던 21대 총선을 제외하면, 보수정당과 진보정당의 득표율 차이가 5~10% 미만으로 보수 성향도 꽤 짙은 편이다. 다만 잦은 분열과 보수 정당의 실책으로 인해 16대 총선을 제외하고는 보수 정당이 당선된 적은 없다. [2]
2. 역대 국회의원 목록과 역대 선거 결과[편집]
2.1. 제14대 국회의원 선거[편집]
2.2. 제15대 국회의원 선거[편집]
2.3. 제16대 국회의원 선거[편집]
2.4. 제17대 국회의원 선거[편집]
2.5. 제18대 국회의원 선거[편집]
2.6. 제19대 국회의원 선거[편집]
지난 국회까지 이 곳이 지역구였던 김부겸은 지역주의 타파를 선언하며 민주당계 정당의 사지 중 상사지인 대구광역시 수성구 갑에 출마할 것을 선언하며 지역구를 옮겼고[4] , 그래서 민주당은 새 인물을 공천해야 했는데, 공천자는 노동운동가 출신의 이학영이 되었고, 새누리당에서는 지지난 총선과 지난 총선에 이어 이번에도 유영하가 나왔다. 결과는 이학영의 승리. 반면 유영하는 한 지역구에서만 3연속 낙선하는 수모를 당했고, 이후로는 총선이고 지선이고 어떠한 선거에도 출마하지 않고 있다.
2.7. 제20대 국회의원 선거[편집]
군포시 갑, 군포시 을 문서 참조
2.8. 제21대 국회의원 선거[편집]
군포시가 두 선거구일 때는 더불어민주당에서 흔치 않은 젊은 경제관료 출신의 김정우, 운동권 원로 인사인 이학영이라는 독특한(?) 조합으로 이뤄졌었다. 그러나 선거구가 합구되어서 한 명만 총선에 나갈 수 있게 되자, 많은 민주당 지지자들이 아쉬워했다. 일각에서는 나이도 있고 아들을 잃는 고통을 겪었던 이학영이 양보하지 않을까라는 관측도 있었지만, 둘 다 출마의지를 굳히면서 경선[5] 으로 후보자를 결정하기로 했다. 같은 관내의 의원들이라 사이가 매우 좋아서인지 경선은 하는지도 모르게 신사적으로 진행되었는데[6] , 그리고 이학영이 승리해서 본선에 나가게 되었다. 이학영이 이미 군포시가 단일 선거구일 때 국회의원을 했었으니 더 유리했을테고, 3선 중진의원을 바라는 지역구민[7] 정서도 있었을테고, 김정우가 불미스러운 사고에 연관되었다는게[8] 영향을 끼쳤을 수도 있다.
미래통합당에서는 두 선거구 각자 공천신청을 받았었다. 우선 심규철 전 의원이 출마를 선언하였으며, 최진학 후보를 이기고 공천을 받았다.
민중당에서는 김도현 후보를 군포시 을 지역구에 공천했지만 선거구 획정으로 인해 자동적으로 군포시 선거구에 후보를 냈다.
호남 출신의 인구비율이 높고 경기도의 도심지 특성상 전통적으로 민주당 강세인 도시답게 이학영이 57.41%, 2만 7천표 가까운 득표차로 가볍게 압승해서 3선 의원이 되었다. 세부적으로 보면 모든 투표단위에서 이겼다. 심지어 대부분 민주당이 불리한 거소투표, 선상투표에서도 이겼다.
여담으로, 국가혁명배당금당 후보가 출마하지 않았다.
2.9. 제22대 국회의원 선거[편집]
군포시의 인구 정체로 인해 군포시 갑, 군포시 을로 쪼개지지 않고 군포시 단일 선거구로 유지될게 유력하다.
더불어민주당은 현역 이학영 의원이 취업 청탁 논란으로 수사를 받고 있는 만큼 다른 인물이 나올 가능성도 있다.
[1] 16대는 한나라당, 17대와 18대는 열린우리당과 통합민주당 당적이었다.[2] 게다가 그 16대 총선에서 당선된 김부겸 의원도 2003년에 민주당계 정당인 열린우리당 창당에 참여하였다. 물론, 김부겸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원래 민주당에서 정치를 시작했고, 합당의 소용돌이로 인해 잠시 한나라당에 몸 담은 것이다.[3] 2003년 한나라당 탈당 열린우리당 합류[군포] A B C D E F G 군포1동, 군포2동, 군포3동, 산본1동, 산본2동, 금정동, 대야동, 재궁동, 오금동, 수리동, 궁내동, 광정동.[4] 결과는 낙선. 하지만 40.4%라는 고무적인 득표율을 올리면서 제법 선전했고, 이는 다음 총선에서 김부겸이 당선에 성공하면서 지역주의 타파의 아이콘으로 우뚝 서는 원동력이 된다.[5] 권리당원 50%, 일반당원 50%[6] 물론 김정우가 "김부겸, 이학영을 잇는 군포의 큰 정치인이 되겠다."고 이학영을 지우는 듯한 홍보를 한 적이 있었다고 하지만, 당시 전국 어디든 치열했던 당내 경선을 보면 그 정도쯤은 양반이었다(...)[7] 근데, 김부겸이 이미 군포시 선거구에서 3선을 지낸바 있다(...)[8] 무혐의 처리되긴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