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관광호 (문단 편집) === 객차 === 속도를 제외한 모든 면에서 신칸센에 견줄 수 있도록 최고급으로 만들어졌다. 이전까지 오로지 수송이라는 측면에만 집중해왔던 [[대한민국 철도청|한국 철도청]]이 처음으로 승객들의 쾌적한 여행이라는 개념을 실현한 패러다임의 변화를 가져온 열차였다. 당시에는 오로지 일반열차(통일호급)만 있던 시절이었다. 때문에 당시 저런 호화 열차가 등장한 것은 사람들에게 큰 충격이었다. "'''최상급'''"을 추구했기 때문에 전부 일본산([[히타치 제작소]], [[일본차량제조]])이었다. 구입할 때 들었던 돈은 정부가 보유한 외환이었다. 차축 발전기로 선풍기 돌리고 간신히 전등이나 켜던 시절에 전용 발전차를 달아놓고 [[에어컨]]까지 설치했다. 1970년대에 에어컨이라고 하면 부의 상징이라 일컬어질 정도로 굉장한 사치품이었고 대중화는 1990년대 초반에야 이루어졌다.[* 한국 최초 에어컨은 [[LG전자]](당시 금성사)에서 1969년에 출시했다.] 에어컨이란 물건 자체가 가정에 거의 보급되지 않던 1960 ~ 70년대 대한민국 경제수준을 감안하자면 말 그대로 [[금수저|상위 1%]]만을 위한 열차라고 부르기에 손색이 없다.[* 선풍기 있는 집안도 어느 정도 사는 집안 취급 받던 시절이었다.] 이 당시에 국내에 에어컨이 달린 곳이라면 온도에 민감한 몇몇 연구소, 대형병원 특실, 외국계 특급호텔, 극장, 경주 [[석굴암]][* 부실복원에 의한 이슬맺힘 방지에 대한 조치로 설치되었다.], 관광호, 여객기(정확히는 여압장치) 정도뿐이었고 '''청와대조차도 없었다.''' 에어컨 바람을 쐬었다는 것은 지금으로 따지면 금수저인 시절이었다. [[고속버스]]도 그 당시에 에어컨이 있다보니 '''[[부가가치세]] 과세 대상''', 즉 초호화 교통수단이었고 경쟁 대상이었다.[* 시내버스는 물론 시외버스도 당시 에어컨은 언감생심이었다. 시외버스는 [[무궁화호]]의 전신 우등열차가 도입될 즈음인 1970년대 후반, 좌석버스는 [[통일호]]가 에어컨이 장착된 이후인 1980년대 후반에 에어컨이 달리기 시작했고, 시내버스는 [[비둘기호]]를 대체하는 [[CDC 디젤동차]]가 도입되기 1년 전인 1995년에야 처음으로 에어컨이 달렸다.] 또한 유선/장대형 새마을호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던 전용 컴파트먼트[* 이후 KTX-산천에서 부활했으나 스낵바 철거로 인해 같이 없어졌다.] 좌석까지 있었는데 집안에 냉장고와 텔레비전이 있으면 잘사는 집안 취급받던 시절에 서민들에게 있어서 커다란 사치였다. 대차도 당대 최첨단이었던 NT-21 대차를 사용하면서 쾌적한 승차감은 물론 대차의 설계최고속도가 '''150km/h'''에 달했다.[* 단, 코일스프링 볼스터 대차인지라 현재 특급형 전동차에 주로 사용되는 에어스프링 링크암 볼스터리스 대차보단 승차감이 현저히 떨어진다지만 다른 열차들이 승차감이 매우 구리고 최고속도도 90~120km/h밖에 안 되는 프레스 대차('''1996년~1999년'''에 도입된 [[CDC 디젤동차|CDC]]까지 적용됨)를 사용하던 시절이었다. 당시 관광호의 승차감과 제일 가까웠던 객차가 같은 NT-21 대차가 적용된 [[무궁화호 나뭇결 객차|무궁화호 나뭇결 초기형 객차]]였다. 2023년 기준 초기형은 전부 퇴역 및 폐차되었고 후기형만 현역으로 운행 중이다.] 1969년 당시에는 선형의 한계로 90km/h까지밖에 내지 못했으나 이후 140~150km/h로 상향되었다. 그렇기에 이 열차를 타 봤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재벌이나 대기업 임원, 고위 공무원이나 국회의원 같은 [[금수저]] 반열에 오를 만한 사람들이었다 보면 될 정도로 고급 열차였다. 좀 더 자세한 내부모습과 당시 상황에 대해 잘 나온 [[선데이 서울]]의 기사가 있다. >2월 8일 하오 1시 20분 -「관광호」가 시험운행을 시작함으로써 24년 만에 우리나라에 1등 객차가 부활되었다. 「살롱·카」 「비즈니스·룸」 등 「딜럭스」 시설을 갖춘 이 「달리는 응접실」은 오는 4월부터 경부(京釜)간을 4시간 45분에 달려 「꿈의 초특급」 구실을 할 예정. >엷은 「오린지」빛 바탕에 하늘색 띠를 두른 이 「딜럭스」 열차는 특1등 1량, 1등 8량,「살롱·카」1량, 발전차 1량 모두 11량으로 편성된 호화판 객차로 우선 그 내부시설을 살펴보면 - > >◇ 특1등 = 푸른 「카페트」가 깔려 있고 전기「히터」32개와「쿨러」(냉방시설) 6개가 달려 있어 자동온도조절. 좌석마다 안내원을 불러낼 수 있는 초인종이 달려있고 베개[* [[https://gall.dcinside.com/board/view/?id=train&no=1100010|링크 참조]]], 휴지통, 간이탁자 등이 있다. 뒤에 마련된 3석의 「비즈니스·룸」에선 사무를 볼 수 있는 탁자와 칸막이 시설이 되어 있으며 변소는 [[양변기|양식(洋式)]]. >◇ 1등 = 종래 1량에 72좌석이던 2등에 비해 좌석 56개로 좌석 간격이 넓어서 좋다. 모든 시설이 특1등과 같으나 초인종, 「비즈니스·룸」, 베개가 없으며 변소는 [[화변기|재래식]].[* 당연하지만 당시 관광호의 위상을 생각하면 진짜 재래식인 [[비산식]]은 아니었을 것이다(...)] >◇ 발전차 = 종래의 객차발전은 객차마다 직류전원이 달려 있었으나 「관광호」엔 따로 발전차량을 달아 4백kW의 발전량으로 전력 공급. 이 전력은 2천 세대가 충분히 쓸 수 있는 것.[* 참고로 현재 가구당 수전용량은 3kW 정도이다. 즉 오늘날 4백kW로는 130세대 정도가 사용할 수 있는 전력을 공급할 수 있음에 그친다. 소위 [[핵가족]]화가 진행되어 가족구성원의 수는 줄어들었음에도, 가구당 전력 사용량은 그 시절에 비해 약 15배 정도 많아졌음을 알 수 있는 대목. 2021년 현재 시점에서는 3kW 수전용량도 구식 아파트나 다세대주택에서나 쓰는 용량으로 적은 편에 속한다. 신축 아파트나 주상복합, 오피스텔은 세대당 5kW가 기본. 2018년 폭염 이후 국민소득 증가, 누진요금 완화로 인해 기존에는 세대당 1~2대 설치하던 것을 넘어 현재는 방마다 에어컨을 설치하는 정도까지 이르렀다. 신축 아파트를 중심으로 [[VRF|시스템 에어컨]]이 보급되는 것도 한몫했다. 3kW 용량인 집은 모든 방의 에어컨을 풀가동 시 가끔 차단기가 떨어지거나 아파트의 경우 심하면 지하실의 변압기가 폭파되는 일이 종종 있다. 이 경우 용량증설공사를 하는데 돈이 좀 드며, 구축 아파트에 시스템 에어컨을 설치할 경우 필수이다. 주택의 경우 1~2백만원, 아파트 한 동당 2~3천만원 정도. 두꺼비집을 열어 보면 3kW의 경우 220V 20A나 25A [[누전차단기|주차단기]]가 달리며(일부 30A) 5kW의 경우 220V 50A 주차단기가 달린다. '''결론적으로 2019년 이후 개정된 건축표준인 세대당 5kW 기준이라면 고작 80가구밖에 못 쓴다.''' 비단 에어컨 뿐만 아니라, [[TV]], [[냉장고]], [[세탁기]], [[청소기]], [[전자레인지]] 등 전력을 많이 소비하는 가전제품들이 대중화된 것은 물론, [[전기레인지]], [[식기세척기]], [[의류관리기]] 등 새로운 가전제품들까지 등장한 현실을 감안해야 한다.] > >이 「관광호」의 모든 객차, 발전차는 새로 일본에서 도입된 것으로(총 236량)「관광호」의 도입값을 따져보면, 특1등 1량 2,250만원, 1등 8량(1량 2천만원) 1억 6천만원, 발전차 1량 3,598만원,「살롱·카」1량 2,520만원으로 총 2억 4,368만원이 된다. 가위 시설뿐만 아니라 가격면에서도「수퍼·딜럭스」열차. >철도청은 관광「시즌」에 대비, 외국인 국내관광객이 단체로 이용할 때에는 전세 운행도 할 방침. 한편 이「관광호」의 운행에 앞서 철도청은 12만 7천 입방m의 도상(道床)자갈을 보강하고 경부간만 약 12만개의 PC침목을 바꾸어 끼어 침목의 84%를 PC화 했다. 또 앞으로 1등 객차엔 그 시끄럽던 이동판매원을 타지 못하게 할 방침이라고. >8일, 서울과 부산에서 동시에 떠난 「관광호」의 행운의 첫 시승(試乘)기관사는, 서울은 경력 15년에 32만여km를 무사고로 달린 김교원씨(서울기관차사무소소속), 부산에선 경력 16년에 70만km를 무사고로 달린 이동진씨(부산기관차사무소소속)[* 이동진 기관사는 나중에 국내 최초로 100만km 무사고를 갱신하는 대기록을 세우게 된다.]가 몰았다. >시승 당일 철도청은 국내외 귀빈들을 초청, 시승케 하고 여행용 「백」, 기념「메달」, [[맥주]], [[토스트|「토스트」]], [[커피|「코피」]][* 지금은 생소하지만 이 당시만 하더라도 일제강점기의 영향이 남아있고 일본어 책을 중역하는 일도 허다했기에 일본식 어투가 많이 남아있었다. 실제로도 [[검정 고무신]]에 '냉장고와 코오피'라는 에피소드가 있기도 하고. 해당 에피소드에서 커피는 미국에서 온 기영이 엄마 후배가 사 온 귀한 물건으로 묘사된다. 비록 1950년대 이후로 다방이 각 지방에 널리 퍼지기 시작했기는 했지만 애시당초에 전량 수입품이었기 때문에 커피값이 결코 싸지 않았고, 1960년대에 커피 수입을 일시 금지시키면서 콩가루를 볶아만든 콩피같은 정체불명 음료수가 나오는 웃지못할 일도 벌어졌다. 서민 이미지 취급받게 된 것은 [[1988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커피 자판기를 대거 설치하면서부터였다.], [[캐러멜|「카라멜」]], [[신탄진]] [[담배]][* [[대전광역시]]의 신탄진이 맞다. 당시 신탄진에 국내 최대 담배공장 준공 기념으로 [[KT&G|전매청]](현 KT&G)에서 출시한 담배로, [[1965년]] 출시 당시 가격이 무려 60원이었다. [[https://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41018015001|관련 기사]]에서 인용한 서울시정개발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1968년 서울 기준 시내버스 요금은 10원, 짜장면은 50원, 극장 요금은 130원이었는데, 해당 품목들이 정부의 물가 통제로 함부로 값을 올릴 수 없었다는 것을 감안해도 매우 비싼 담배였음은 부정할 수 없다. 비교 대상이 된 품목들의 편집일 현재 물가와 비교해 보면 담배 한 갑에 붙는 세금들을 과거 수준으로 공제하더라도 약 6,000원 정도의 가격.], 과자 등 푸짐한 선물. 여기에 든 비용만 6백만원이란 얘기다.[* 모두 당시엔 부의 상징이나 마찬가지였다. 앞의 주석대로 물가를 계산해 보더라도 편집일 현재의 물가로 최소 6억원을 경품값으로 낭비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운행 도중 시승권 추첨놀이를 하여 가수 [[김세레나|김「세레나」]]양이 추첨결과 1등 1377번의 이한용씨가 당첨, 3개월간 전선(全線)무임승차권[* 모든 노선의 열차를 돈 안내고 탄다는 뜻인 듯하다.]을 받고 2등은 1258번, 3등엔 1053번 등이 각각 당첨. >최연소 시승객은 L국회의원 아드님인 6살짜리 꼬마.[* 1962 ~ 63년생, 세는 나이 기준이라면 1964년생이다.] 이 꼬마귀빈은 수원역을 지나자 그만 잠에 골아 떨어져 「카라멜」을 손에 쥔 채 특1등객차 2좌석을 점령하고 단잠에 녹아 떨어졌다. >한편 철도병원에서 나온 의무반(의사 1명, 간호원 2명)에 첫 신세를 진 사람은 17세인 소하물(小荷物)운반원 서(徐)모군.[* 마찬가지로 기사가 쓰여진 1969년 기준 나이이므로 1951 ~ 1952년생, 세는 나이라면 1953년생이다.] 서군은 물건을 나르다 왼손 식지 끝을 다쳐 응급처치를 받았다. >[[김기형(1925)|김기형]] 과기처장관, 이훈섭(李勳燮) 철도청장, 김「세레나」양이 한편에서 한담을 나누는가 하면 가수 [[최희준]],「디자이너」「조세핀」조(趙), 김비함씨 등이 모여 앉아 폭소를 터뜨리기도. >하지만 경부간 특1등 4,700원, 1등 4,200원으로 보리쌀 한 가마 값이 넘는 이 엄청난 운행요금은 서민(庶民)들에겐 아직 그림의 떡. > -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050927550006|선데이서울 69년 2/16 제2권 7호 통권 제21호]] [[경향신문]]이 이 호화열차를 비판한 바 있다. 1969년 5월 1일 철길을 횡단하던 농부와 충돌하는 것을 막으려고 급정차하다가 탈선한 사고를 예를 들며 선로개량 등 조치없이 운행속도를 높이는 것은 모험이며,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3등석이나 2등석을 폐지한 것은 서민들에게 철도 이용을 어렵게 하며 소외감을 준다고 지적했고 초특급 열차 운행중지와 3등석을 늘리라고 요구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