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촨시
덤프버전 : (♥ 0)
||청대에 건설된 하이바오 탑
1. 개요[편집]
중국 서부 닝샤 후이족 자치구의 지급시. 인구는 200만명으로, 자치구의 수부이다. 굽이쳐 흐르는 황하가 시내에서 동쪽으로 7km 가면 나오고, 서쪽에는 헐란 산맥이 있다. 중세 서하 왕국의 수도인 흥경(興慶)이었고, 서하 왕릉의 유적과 서하 박물관이 있다. 후이족 자치구의 중심이지만 주민 다수는 한족이고, 후이족은 25%에 불과하다. 심지어 베이징의 천안문 광장을 그대로 축소해 만든 구조물도 있을 정도. 구도심에는 이슬람 모스크와 불교 사찰이 공존한다. 2010년 중국-아랍 국가 협력 포럼이 열렸고, 최근 들어 안면인식을 통한 대중교통 요금을 징수하는 등 스마트 도시로 거듭나고 있다.
2. 역사[편집]
시가지 서부 시샤 (서하)구의 외곽에 위치한 서하 황릉의 봉분.
인촨은 중세 탕구트, 즉 서하의 수도로 당시의 이름은 흥경(興慶)이었다. 1227년 도시를 포위 공격하던 칭기즈칸이 사망하자 몽골군은 인촨을 완전히 파괴하였다. 원, 명대를 거치며 도시는 재건되어 닝샤 지역의 중심지가 되었다. 위구르인과 튀르크인, 페르시아인들이 정착하여 한족과 통혼하여 살았는데, 1862년 회민 반란 당시 회족과 한족이 서로 상호간의 무차별 학살을 벌여 인구가 10만이나 감소하는 피해를 입었다. 본래 간쑤성에 속하였으나 중화민국 통치기인 1929년에 내몽골 서부(현재의 아라산맹 일대)를 관할하는 닝샤성이 설치되면서 당시 인촨이 속하였던 닝샤현과 주변 현들이 닝샤성에 편입되어 그 성도가 되었다. 1941년년 닝샤현이 허란현으로 개칭되었으며, 1947년에 허란현에서 인촨시가 정식으로 분리 승격되었다.[1] 중화인민공화국 치하로 들어선 현재 닝샤 후이족 자치구의 몽골족 지역이 대거 내몽골로 빠지면서 크기가 줄었으나 인촨시 자체는 크게 쇠퇴하지 않았다. 경제적으로는 20세기에 주변 광물의 집산지로 다시 발전하여 현재에 이른다.
3. 민족[편집]
오랜 기간동안 중국의 지배를 받아서 그런지, 소수민족 자치구임에도 한족이 76%다. 그러나 회족들의 숫자도 23%나 되는 등, 무시못할 수준을 보인다. 닝샤 후이족 자치구 전체로 보면 몽골족이 많이 살지만 인촨시 자체로만 보면 몽골족 비중은 0.9%로 거의 없다고 봐도 된다. 이따금씩 불교와 이슬람 사이의 충돌이 벌어지면 중국 경찰은 후자의 손을 들어줄 정도로 후이족의 입김이 짙게 남아있다.
4. 교통[편집]
관내에 인촨 허둥 국제공항(银川河东国际机场)이 존재한다. 다만 한국행 노선은 존재하지 않는다.
철도역의 경우 인촨역(银川站)이 존재하며, 바오란철도(包兰铁路), 타이중인철도(太中银铁路), 인란고속철도(银兰高速铁路)가 지나간다. 또한 현재 인촨 도시철도인 인촨궤도교통(银川轨道交通)이 건설중에 있다.
5. 갤러리[편집]
시내 중심부
중심 모스크인 낭위안 사원
하이바오 탑과 시가지
6. 출신 인물[편집]
- 뤄이죠우
- 마몽유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2-14 23:23:01에 나무위키 인촨시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1] 당시 중화민국은 1995년 도농복합시 도입 이전의 한국처럼, 성할시를 설치할 때 현 전체를 승격하는 것이 아니라 승격 요건(인구 20만 이상)을 만족하는 현의 일부 지역만 분리하여 승격시켰다. 이후 지급시 제도가 실시되면서 허란현은 인촨시 산하의 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