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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시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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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ff 성시백
成始柏[1] | Sung Sibak[* 원래라면 'Sibaek'이 올바른 표기겠지만 공식적으로 'Si
bak'이라는 표기를 사용하였다.]


파일:/news/201102/02/mydaily/20110202185809081.jpg

출생
1987년 2월 18일 (37세)
서울특별시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display: none; display: 대한민국"
행정구
]]

신체
178cm, 65kg[2]
학력
반포중학교 (졸업)
경기고등학교 (졸업)
연세대학교 (사회체육학[3] / 학사)
연세대학교 (스포츠심리학 / 석사)
플로리다 주립대학교 (스포츠심리학 / 박사 과정 중)
종목
쇼트트랙 스피드 스케이팅
주종목: 500m, 1000m, 1500m
가족
부모님, 누나
국가대표
2004-05, 2006-07~2010-11(6시즌)[4]
은퇴
2012년
SNS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1. 개요
3. 평가
3.1. 불운
4. 수상 기록
4.1. 월드컵 성적
5. 기타



1. 개요[편집]


파일:external/foto.jp.dk/orig_7288.jpg
대한민국의 前 남자 쇼트트랙 선수로, 한국 쇼트트랙 역사상 500m 최강자 중 한 명이자 '최초의 정상급 올라운드 스케이터'로 평가받는 선수다. 고질적인 발목 부상과 불운으로 커리어가 빈약하지만 실력은 세계 최정상급으로 인정받았던 선수다.


2. 선수 경력[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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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성시백/선수 경력#s-"display: inline; display: 앵커=none@"
@앵커@@앵커_1@ 부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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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평가[편집]


한국 선수임에도 특이하게 500m가 주종목이며 세계신기록을 4번이나 갈아치우고 그동안 단거리에 취약했던 한국 쇼트트랙계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공했다. 500m에선 체구가 크고 좋은 순발력과 빠른 스피드를 가진 선수가 유리한데, 성시백이 이에 딱 알맞게 178cm의 장신에 속하고 그럼에도 순발력도 체구가 작은 선수들만큼 좋은 편이었다. 스타트와 반응 속도는 세계 어느 단거리 스프린터와 비교해도 밀리지 않았으며, 그 스피드에 관해서는 수많은 쇼트트랙 관계자들이 언급할 정도다. 당시 전재목 前 국가대표 코치가 "성시백이 트랙 한 바퀴를 도는 속도가 세계에서 가장 빠르다"고 자신 있게 말할 정도였다. 또한 전이경 해설위원은 그에 대해 '(성시백) 자신도 주체할 수 없는 엄청난 속도를 낼 수 있다'고 코멘트 하기도 했다. 가벼운 체중과 타고난 순발력 덕에, 큰 체구를 가지고도 최고속도뿐만 아니라 순간 가속에서도 장점이 있던 선수다. 성시백이 컨디션이 정상인 날 500m 경기에서는 앞에서 전력질주하는 캐나다세계정상급 500m 스페셜리스트가 걸리적거릴 정도니 절대속도에 관해서는 쇼트트랙 역대 최강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더군다나 다리가 길어서 가속능력이 뛰어난데, 다른 선수들 세네 번 피치 올릴때 성시백은 한두 번으로 폭발적으로 가속할 수 있다.[5] 경기를 읽는 눈과 순간 판단력도 탁월하여 쇼트트랙 종목중 가장 여유가 없는 500m에서도 (인코스) 추월을 자유자재로 시도할 수 있었다. 실제로 500m는 쇼트트랙 개인전 세 종목 중 가장 추월이 나오기 힘든 종목이다. 당연히 거리가 짧은 만큼 스타트부터 끝까지 선수들이 전력 질주를 하기 때문이다.

그의 속도와 스타트 능력에 가려졌을 뿐 추월과 코너링을 포함한 기술적인 면에서도 뛰어났다. 수많은 해외(주로 캐나다)의 단거리 스프린터들의 특징이자 가장 큰 단점으로 꼽히던 게 스타트에서 선두로 시작하지 못하면 추월 능력이 약하기 때문에 경기를 뒤집는 것을 어려워했다는 것인데, 성시백은 인코스 기술이 상당히 뛰어났기 때문에 굳이 첫 번째로 레이스를 시작하지 못하더라도 저들에게 없는 추월 능력이 있었기에 남다른 여유가 있었다. 코너에서 탄력을 받으며 직선 코스로 나오자마자 긴 다리를 뻗어나가며 폭발적으로 가속하면서 앞 선수를 제치는 것이 그가 주로 즐겨하는 인코스 추월 패턴이었으며[6], 앞서 언급한 순발력과 순간 가속도 덕에 체구가 작은 정상급 테크니션급의 레벨은 아니더라도 크로스 기술[7]도 깔끔하게 잘 구사했다. 워낙 500m에서 인코스를 자주 선보이다보니 아웃코스 추월은 잘 못 한다는 인식이 있는데 절대 그렇지 않으며, 스피드와 코너링에 능했기 때문에 중장거리 종목에서는 아웃코스로 잘만 추월했다.

단거리 종목에서 강하면서도 원래는 다른 한국 선수들처럼 강한 지구력을 갖추어 1000m와 1500m에 집중하던 선수였기에[8] 모든 종목에 강한, 한국에서 보기 드문 '올라운더 스케이터'였다.[9][10] 대한민국 쇼트트랙 지도자들은 그를 완벽한 체구조건과[11] 정상급 실력을 모두 갖춘 선수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이런 타고난 신체능력과 재능을 가졌음에도 그는 완벽한 쇼트트랙 선수는 아니었다. 우선 중요한 경기에서 자주 넘어지는 것을 봐도 알 수 있듯 안정성에서 아쉬운 부분이 있었다. 이것은 그의 스케이팅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닌, 중학교 시절부터 겪으며 결국에는 그가 일찍 은퇴하게 되는 결정적인 원인이었던 고질적 발목 부상이라는 요소가 컸다. 또한 경기운영 능력에서도 아주 뛰어난 편은 아니라 세 종목 중 경기 운영이 가장 중요한 1000m에서는 좀 뒤쳐지는 편이었다.[12] 그리고 어쩌면 운동선수로서 가장 중요하다면 중요할 수도 있는 큰 대회에서의 운이 나빴다. 월드컵 때 펄펄 날아 다니다가 세계선수권에서 발목 부상이 재발한다든지 준결승도 진출도 못할 정도로 부진하거나 넘어지는 일이 잦았다.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마저도 큰 대회 징크스가 따랐다. 성시백 본인도 멘탈을 약점으로 꼽을 정도로 중요한 경기에서 실력 발휘를 못 하는 새가슴 기질이 있는 선수였다.[13][14]

요약하자면 성시백은 흔히 말하는 대한민국 쇼트트랙 에이스 계보에 이름을 올릴 수 있을 정도의 최상급 실력을 가지고 있었으나, 불운과 부상에 시달려 자신의 실력에 걸맞는 업적을 쌓지는 못한 선수라고 할 수 있다.[15]


3.1. 불운[편집]


단 한 가지 단점이자 항상 중요한 순간에 발목을 잡는 것은 바로 '자주 넘어진다'는 것이다. 불행에 의한 것도 있지만, 이것은 안정감이 부족하다는 뜻으로도 해석 가능하다. 실력에 비해 커리어가 약할 수밖에 없는 이유도 바로 이것 때문이었다. "쇼트트랙 선수의 이상적 신장인 168-175cm 이상이라 체구가 커서 잘 넘어진다"는 주장도 있지만, 캐나다올리비에 쟝이나 미국의 트래비스 제이너처럼 체구가 180cm 이상인 선수들도 있다. 참고로 마크 가뇽도 신장이 184cm로 큰 편이었다. 그가 자주 넘어지는 정확한 이유는 바로 고질적인 발목 인대 문제였다.
파일:external/img.seoul.co.kr/SSI_20110228005356.jpg
중학교 1학년 때부터 '만성 족관절 불완정성'이라는 병을 안고 있다. 반복되는 스케이팅 훈련과 충돌 때문에 인대가 늘어나면서 손상을 입었고, 성시백이 운동을 꾸준히 해왔기 때문에 제대로 회복이 되질 않았다. 더군다나 스파르타식인 한국 쇼트트랙 훈련 방식도 크게 한몫한 것으로 보인다. 결국 약해진 인대는 발목뼈와 관절을 잘 잡아주지 못하고, 뼈와 뼈 사이의 공간이 벌어졌다. 그렇기에 성시백에겐 안정적인 스케이트가 상당히 힘든 것이다. 문제는 발목뼈 문제만이 아니고, 통증과 염증을 달고 살기 때문에 근육 운동을 제대로 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인대와 발목 근육이 약해지자 발목이 이상 체중을 못 버티는 상황이 자주 발생했다. 발목 근육은 쇼트트랙 선수에겐 허벅지 근육 다음으로 중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이유는 바로 다른 선수와의 충돌이나 빙질이 안 좋은 곳으로 스케이트가 빠졌을 때 발목 힘으로 버텨내며 뚫고 나가야 하는데, 성시백의 발목 상태로는 이게 불가능했던 것이다. 완벽한 해결책은 늘어난 인대를 잘라 이어 붙이는 수술이라고 하는데, 이건 선수 생명을 끝내라는 얘기와 다름없다.

브뢰스트롬 수술법이라고 하는 수술법을 이용해야 하는데, 이는 인대를 잘라 붙이고 주변 구조물로 덮어주는 수술법이다. 이 수술을 할 경우 이전보다 더 강한 발목을 가질 수도 있지만 유연성이 떨어질 가능성이 있긴 하다. 하지만 이 수술은 이미 매우 발달해서, 이 수술을 한다고 운동을 포기하게 될 가능성은 낮다. 아마 수술을 제때 받지 않아 충돌증후군이 심한 상태이거나, 관절염이 진행됐을 가능성, 또는 브뢰스토롬 수술법이 아닌 힘줄을 이용한 인대 재건법이 추천됐을 가능성 등이 있다. 즉, 인대를 정상으로 되돌리기엔 발목이 지금까지 너무 고생을 했다. 차선책이라면 발목 주변 근육을 강화해 흔들림을 잡는 것이다. 발목 근육이 발목을 눌러 뼈와 뼈 사이의 공간을 메울 수 있다면 그나마 나아질 수 있다. 하지만 언급했다시피 이 족관절 불완정성이라는 게 통증이 상당히 심하며 발목 근육을 집중적으로 키우기엔 상당한 노력이 필요했고, 한국의 열악한 재활 환경과 비과학적인 훈련 방식은 그가 빨리 은퇴하는 원인이 되었다.


4. 수상 기록[편집]


대회



올림픽
0
2
0
세계선수권
2
1
0
세계 팀선수권
1
1
1
아시안 게임
1
0
1
유니버시아드
7
0
0
주니어 세계선수권
1
1
2
합계
12
5
3

파일:국제빙상경기연맹 로고.svg월드컵 시리즈 수상성적
월드컵 랭킹
3
1
3
7
월드컵 메달
25
11
3
39
합계
28
12
6
46
공인 국제대회 + 월드컵 합계
총 합계
40
17
9
66

파일:오륜기(여백X).svg 올림픽
은메달
2010 밴쿠버
5000m 계주
은메달
2010 밴쿠버
500m
파일:국제빙상경기연맹 로고.svg 세계선수권
금메달
2007 밀라노
5000m 계주
금메달
2008 강릉
5000m 계주
은메달
2010 소피아
1500m
파일:국제빙상경기연맹 로고.svg 세계 팀선수권
금메달
2009 헤이렌베인
단체전
은메달
2007 부다페스트
단체전
동메달
2008 하얼빈
단체전
파일:아시안 게임 로고.svg 아시안 게임
금메달
2011 아스타나·알마티
5000m 계주
동메달
2011 아스타나·알마티
1000m
파일:FISU 로고.svg 유니버시아드
금메달
2005 인스브루크
5000m 계주
금메달
2005 인스브루크
1000m
금메달
2007 토리노
5000m 계주
금메달
2007 토리노
500m
금메달
2007 토리노
1000m
금메달
2007 토리노
1500m
금메달
2007 토리노
3000m
파일:국제빙상경기연맹 로고.svg 주니어 세계선수권
금메달
2003 부다페스트
2000m 계주
은메달
2003 부다페스트
1000m
2위
2003 부다페스트
1500m S.F.
동메달
2003 부다페스트
종합
동메달
2003 부다페스트
500m


4.1. 월드컵 성적[편집]


파일:국제빙상경기연맹 로고.svg 월드컵 우승 기록
종합 우승
2008-09 시즌
500 m 1위
2007-08 시즌
1500 m 1위
2008-09 시즌

파일:국제빙상경기연맹 로고.svg 월드컵 수상 기록
월드컵 랭킹
우승
2위
3위
포디움
종합
1
0
1
2
500 m 랭킹
1
1
1
3
1500 m 랭킹
1
0
1
2
합계
3
1
3
7

월드컵 메달



포디움
개인전 합계
15
9
1
25
계주
10
2
2
14
메달합계
25
11
3
39

랭킹 + 메달 합계
28
12
6
46

5. 기타[편집]


  • 은퇴 직후 2012년 10월 인터뷰를 했다.

  • 훈훈한 외모와 근육질의 몸매로 여성들에게 인기가 많으며, 이들에 의해 섹시백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비슷한 시기 나온 휴대폰의 펫네임과 같은 이 별명은 1500m 결승전에서 넘어진 뒤 쓸쓸하게 들어가는 뒷모습에서 유래된 별명이라고 한다. 국내 스포츠 잡지의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기념 표지 모델을 했다. 그의 영문표기는 Sung Si-Bak인데 백의 표기가 Baek에서 e가 빠졌다.

  • 한국 선수들 중엔 드물게 고글을 착용하지 않는 걸로도 유명하다. 국대 초창기에는 몇번 착용했으나 본인이 불편했는지 그 이후로는 착용하고 경기를 한 적이 없다. 또한 아폴로 안톤 오노처럼 종종 장갑을 짝짝이로 착용한다.[16]

  • 얼굴은 유상무서인국을 합쳐놓은 외모라 카더라. 실제로 보면 얼굴이 매우 작고 다리가 긴편이라 키가 원래보다도 더 큰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그런지 단독샷을 찍으면 180cm는 족히 넘는 걸로 오해받는다.

  • 2010년 불거진 쇼트트랙 짬짜미 사태 관련하여 4월 18일에 성시백은 곽윤기의 말이 사실이 아니라는 이정수의 말에 반박하듯 선발전 당시, 곽윤기가 이정수를 도와주는 듯한 모습이 담긴 동영상을 올렸다. 이 사건으로 인해 곽윤기와 함께 인기를 상당히 잃었다. 다만 4월 20일, 조사위원회가 비디오 분석 결과 '선발전 때 이정수를 곽윤기가 도와줬다'는 곽윤기의 주장이 옳은 거 같다고 해서 논란이 되었다. 사실 둘이 친분이 있는 선수들임은 확실하다. 성시백이 선수생활을 접은 지금에도 곽윤기와는 연락을 계속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곽윤기가 성시백의 연세대학교 후배이기도 하고, 오랫동안 룸메이트 였으며 국가대표 초창기 시절에는 단거리에서 콤비로 활약했던 적이 있다.



  • MBTI는 INTP이다.

[1] 창녕 성씨 지사공파 28세손으로 추정된다. 아버지 성함도 "성명제"로 27세손 제(濟) 자 항렬이고 성시백은 28세손 시(始)자 항렬이다. 참고로 성시경과 같은 항렬이다.[2] 당연하지만 선수 시절이다. 170cm 초반대 선수들도 60kg대 체중이 나가는 점을 감안하면 상당히 마른 편이었다.[3] 現 스포츠응용산업학[4] 2006-07 시즌에는 선발에는 실패했으나 시즌 후반에 부상을 당한 이호석을 대신해서 세계선수권 계주 멤버로 출전했다.[5] 곽윤기가 그에 대해 한 말이 있는데, "체구가 작은 선수들처럼 가속하기 위해 아웃으로 크게 타며, 속도를 올릴 필요 없이 인코스를 최대한 유지하며 최단거리로 스케이트 하면서도 빠른 스피드를 유지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실제로 그의 경기 영상을 보면 타 선수들에 비해 스케이팅 동선이 인코스에 집중된 것을 알 수 있는데, 이럴 경우 코스를 크게 돌며 가속을 붙이는 뒷선수들에게 추월당할 가능성이 상당히 높아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에서 추월을 쉽게 허용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성시백의 가속 능력이 얼마나 뛰어났는지를 알 수 있다.[6] 그래서 보통의 흔한 인코스 추월보다는 더 역동적인 느낌을 준다. 동료 선수들 사이에서는 메뚜기라고 불렸다고 한다.[7] 코너 진입전에 인코스로 파고들어 추월하는 패턴[8] 사실 성시백은 500m를 송석우처럼 집중 훈련해온 선수는 아니었다. 그냥 타다 보니 좋은성적이 나와서 꾸준히 연습했더니 어느새 세계 정상급 스프린터로 성장해버린 것이다.[9] 남자선수로는 임효준황대헌이 나오기 전까지 유일했다고 볼 수 있다. 여자선수로는 박승희 정도가 성시백과 비견될만한 올라운더라고 할 수 있다. 최민정도 500m 성적이 워낙 좋기에 올라운더로 분류되기는 하지만 이쪽은 전통적인 올라운더 스타일인 성시백과 박승희와는 다른 방식으로, 2000년대 중반 안현수가 했던 것처럼 빈약한 스타트 때문에 초반이 약하지만 추월 기술과 스피드만으로 후반에 경기를 뒤집는 스타일이다. 대신 2010년대 이후 정립된 남자부 500m 경기는 스타트가 여자부보다 더 중요하게 먹고 들어가기 때문에 이런 방식으로는 최민정처럼 좋은 성적을 꾸준히 낸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10] 한국 국적 시절의 안현수이호석, 특히 곽윤기도 500m를 잘 타는 편이지만 정작 스타트가 반 이상 먹고 가는 종목에서 스타트가 약했기 때문에 올라운더라고는 볼 수 없다.[11] 앞에서 언급했듯이 쇼트트랙 선수치고 체구가 크고 다리가 상당히 긴 편이다. 쇼트트랙에선 키가 180cm가 넘어가는 거구가 아닌 이상 다리가 길었을때 보는 혜택이 상당이 크다. 물론 큰 체구 때문에 다른 대부분의 한국선수들처럼 좁은 공간을 활용하는 건 힘들었으니 단점이라면 단점이다.[12] 성시백은 1000m에서는 초반이나 중반부터 선두에서 끌고 가는 운영을 고수하는 편이었는데 주 라이벌 선수들을 상대로 실패한 적이 더 많고 오히려 중후반에 경기를 뒤집는 운영을 했을 때 더 좋은 결과가 나오던 편이었다. 물론 다른 두 종목에 비해 아쉽다는 의미지 그가 1000m에서 경쟁력이 떨어지는 선수는 결코 아니었다.[13] 은퇴 후 밝힌 내용이지만, 본인은 경기 직전 너무 긴장을 많이 해서 항상 심리적으로 초조한 상태였다고 한다. 다른 선수들도 경기를 앞두고는 비슷한 상태인 건 마찬가지지만, 본인은 멘탈적으로 너무 흔들리는 게 자주 왔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것이 결정적인 계기가 되어서 나중에 쇼트트랙 선수들의 멘탈적인 부분을 보완해주기 위하여 심리학을 전공하게 되었다고 한다.[14] 흥미롭게도 같은 올라운더인 여자부의 박승희는 월드컵에서는 활약은 아쉬웠으나 세계선수권이나 올림픽 같은 큰 대회에서는 제 실력을 보여주며 활약하는 편이었다.[15] 반면 월드컵에서의 성적은 상당히 좋은 편이다. 2007-08 시즌 때 월드컵 개인 종합 3위를 기록했고 2008-09 시즌에는 세계 랭킹 1위에 올랐다. 한 마디로 커리어로만 평가를 해서는 안 되는 선수. 성시백의 진가를 확인하고 싶다면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만 찾아보지 말고 2007-08 ~ 2009-10 시즌 월드컵 활약상들을 한번 찾아보길 바란다.[16] 최근에 국대에서 활약했던 대한민국 선수 중에는 김윤재오세종이 고글을 안 끼는 선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