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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태(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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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배우. 1954년 연극 배우로 첫 데뷔를 하였다. 여러 대표적인 작품들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지고 손꼽히는 배역은 단연코 태조 왕건의 아지태다. 메소드 연기라 평가받을 정도로 광기에 어린 모습을 보인 그의 연기력은 현재까지도 많은 대중들에게 크게 각인되어 좋은 평가[4] 를 받고 있다. 제2공화국에서는 상산 김도연으로도 훌륭한 연기를 선보였다.
2. 주요 출연작[편집]
2.1. 드라마[편집]
- 다녀왔읍니다
- 토지 : 조준구
- 여자의 시간
- 미늘
- 크리스마스에 눈이 올까요? : 노교수
- 스타일 : 손승호
- 불한당
- 왕꽃 선녀님 : 윤재학의 부
- 아일랜드 : 성만
- 무인시대 : 윤인첨
- 명성황후 : 신응조
- 소설 목민심서 : 목만중
- 발리에서 생긴 일 : 정범진 회장(정재민의 부친)
- 모래성 : 주인공(김혜자)의 형부
- 태조 왕건 : 아지태
- 왕과 비 : 효령대군
- 삼김시대 : 유진오
- 코리아게이트 : 민관식
- 제2공화국 : 상산 김도연
- 제4공화국 : 이 회장
- 백범일지 - 이승만
- 등신불(김동리 원작) : 원혜대사
- TV로 보는 원작동화 (버드내 아이들)
- 붉은왕조 : 양형섭
2.2. 영화[편집]
3. 여담[편집]
- 술은 못했지만 애연가였다고 한다. 하루에 담배 4갑씩 피웠다고 한다. 특히 탤런트 협회장을 했을 때와 빚으로 생활이 어려울 때 스트레스로 담배를 더 태웠다고 한다.
- 1982년부터 1986년까지 탤런트 협회장을 하면서 탤런트들의 권익을 위해 열심히 싸웠는데, 그 때문에 높으신 분들에게 밉보여서 한동안 일이 없었다고 한다. 배우자이자 배우로 활동한 백수련도 한동안 일이 없었다고 한다. 그 때문에 백수련은 한동안 사업을 하면서 생계를 꾸려나가야 했다고 한다.
- TV조선의 프로그램 마이웨이에 부인 백수련과 절친한 후배인 탤런트 이경표가 나와서 얘기한 것에 따르면, 백수련이 거절을 못하는 스타일이라 사업과 보증, 사기 등으로 100억에 가까운 거액의 빚을 졌을 때 보통 사람이라면 이혼하자고 했을텐데 김인태는 절대 그런 소리를 안했다고 한다.# [5] 이후 생활이 어려워졌지만 두 사람이 힘을 합쳐 빚을 갚았으며 나중에 김인태가 전립선암과 파킨슨병 등으로 오랜 병마에 시달렸을 때도 백수련이 지극정성으로 병간호를 했다고 한다. 성품이 굉장히 호인이었던 모양으로, 백수련이 7년째 병수발을 들게 되자 자기도 모르게 짜증을 냈는데 해맑은 얼굴로 "잘못했어요." 했다고 한다. 백수련은 그 말과 표정과 눈빛을 죽을때까지 잊지 못할꺼라고 했다.[6]
4. 수상 경력[편집]
- KBS 연기대상 공로상 (2001)
[1] 흔히 1930년생으로 알려져 있으나, 이 기사를 보면 1936년생인 원로 배우 오현경과 동갑으로 나와 있다.[2] 기사[3] 배우 집안이다. 5살 아래의 부인 백수련은(본명: 황화순) 영화 아저씨의 개미굴 노파와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의 동호 할매 역할로 나온 원로 여배우이다. 아들 김수현은 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에서 이보영을 짝사랑하는 친일파 일본 군인 악역을 맡았으며, 우리가 흔히 아는 남배우 김수현과는 동명이인이다.[4] 사료 속에서는 청주 출신의 간신 정도로 짧게 묘사되고 있으나 작중에서는 간신으로서의 면모를 여실히 보여주며 역대급 연기를 선보였다. 태조왕건 초중반부의 씬스틸러 역할을 수행했다.[5] 이일로 결국 백수련은 1993년에 구치소까지 갔다 왔다. 풀려난 후에도 한동안 그 후유증에 시달려 집 바닥도 구치소 바닥처럼 보였을 정도였다 한다.[6] 위의 일화를 보면 최동원처럼 호인이지만 불의에 맞싸워야 할 때는 싸우는 강단있는 성품이었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