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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34-76/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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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각주]
1. 개요[편집]
T-34-76의 실전 일람 문서. 해당 전차는 독소전 당시, 소련의 주력 기갑전력 중 하나로, 다수의 실전 기록이 제2차 세계 대전에 포진해있다.
2. 대전기[편집]
2.1. 제2차 세계 대전[편집]
2.1.1. 독소전쟁[편집]
T-34의 주무대이자 전장이었으며, 수많은 차량이 투입되었는데 그 수는 약 35,000량에 달했다.
2.1.1.1. 바르바로사 작전[편집]
바르바로사 작전 시기 T-26과 더불어 소련군이 투입시켰는데 당시 훈련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고, 작전 교리도 개판 5분전인 소련군의 특성 상 독일군에게 경사장갑으로 큰 위압감을 주긴 하였으나 얼마 안가 독일군의 대전차포 전술에 의해 바르바로사 작전 중 약 2300대의 T-34를 손실하는 큰 피해를 입었다.
2.1.1.2. 레닌그라드 공방전[편집]
레닌그라드 공방전 당시에도 다량의 T-34가 투입되어 활약하였다.
2.1.1.3. 모스크바 공방전[편집]
T-34-76의 제대로 된 전투는 모스크바 공방전 시기이며, 이 때 당시 수도인 모스크바를 지키기 위하여 수많은 T-34들이 생산되는 즉시 전장에 투입되었다. 그만큼 피해도 막심했는데, 수많은 전차병들과 함께 포연과 잔해로 이루어진 산을 이뤄낼 정도였다. 엄청난 손실과 희생을 감당해 내는 끝에 결국 모스크바를 방어해 낼 수 있었다.
2.1.1.4. 르제프 전투[편집]
르제프 전투 당시에 소련 주력 전차로 사용되며 독일군을 무찌르는데 공을 세웠다.
2.1.1.5. 스탈린그라드 전투[편집]
사상 최악의 시가전이었던 스탈린그라드 전투 당시에도 수많은 수량이 투입되어 격파되거나, 노획되는 말로를 맞았지만, 그럼에도 독일군의 공세에 저항하여 최후의 승기를 잡는데 영향을 끼쳤다.
당시 T-34를 제작하던 스탈린그라드 트랙터 공장의 경우 언제 독일군에게 함락당할지 모르는 상황에서도 단 하나의 전차라도 더 만들기 위해 공장 근무자들조차 후퇴하지 않고 밤낮없이 희생하며 끝까지 버텨냈으며, 결국 공장이 폭격당해 더 이상 전차를 만들 수 없게되자 그제서야 후퇴했다고 한다.
2.1.1.6. 제3차 하르코프 공방전[편집]
제3차 하르코프 공방전 당시에 독 소 양측의 기갑차량으로 사용되었으며, 전투 이후 알려진 사실로, 점령 당시 독일군이 하리코프에 소재한 공장에서 T-34를 생산시켰다고 한다.
2.1.1.7. 쿠르스크 전투[편집]
쿠르스크 전투 당시에도 양측에서 수많은 물량을 동원해 사용했다.
여기서 수많은 에이스들이 피고 지기도 했는데, 대표적으로 소련 측의 에이스인 "알렉산드라 사무센코"는 단신으로 6호 전차 티거 총 3량을 격파한 기록을 달성했으며, 제6전차여단 소속의 "하조프 블라디미르 페트로비치"의 경우 전투기 1기 기관총으로 격추, 대전차포 일부 격파, 도합 27량의 전차를 격파하는 대활약을 하였다.
나치 독일 측에서도 에이스가 다수 탄생했는데, "T-34로 가장 많은 전차를 격파한 에이스"인 제2 SS 기갑연대 산하 8중대 소속의 에밀 자이볼트가 도합 65량의 전차를 격파하였고, 전차 에이스는 아니지만 요아힘 파이퍼가 당시 지뢰를 들고 돌격하여 T-34-76 한 량을 격파하여 훈장을 수여받기도 했다.
2.1.1.8. 바그라티온 작전[편집]
바그라티온 작전 당시에는 이미 후속인 T-34-85가 등장해 주력 전차의 지위에서는 물러났지만, 후방 부대의 보병 지원용은 물론 자주포들의 호위 등으로 다수가 사용되었다.
2.1.1.9. 베오그라드 공세[편집]
유고슬라비아 지역을 탈환하기 위해 벌어진 베오그라드 공세 당시에도 다수가 사용되었다.
2.1.1.10. 동프로이센 공세[편집]
동프로이센 공세 당시에도 다수가 투입되어 활약하였다.
2.1.1.11. 비스툴라-오데르 공세[편집]
비스툴라-오데르 공세 시기에도 다수가 폴란드 인민군과 소련군 소속으로 투입되었다.
2.1.1.12. 베를린 공방전[편집]
베를린 공방전에도 다수가 투입되었으며, 공교롭게도 독일군 측에서도 소수의 T-34를 발악으로 내보냈다고 한다.
하지만 전황에는 영향을 끼치지 못하였으며, 결국 베를린은 함락되며 기나긴 독소전쟁을 끝내게 되었다.
2.1.1.13. 프라하 봉기[편집]
프라하 봉기 당시, 러시아 해방군이 독일군을 상대로 소수를 사용하였다.
2.1.2. 계속전쟁[편집]
계속전쟁 당시 소련군의 주력 전차 중 하나로 사용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핀란드 방위군도 6량을 노획하여 운용했으며, 1944년에 독일로부터 3대를 추가로 구매해 계속전쟁 시기 전차가 부족한 상황에서 핀란드군에게 큰 도움이 되어주었다고 한다.
2.1.3. 서부전선[편집]
2.1.3.1. 오버로드 작전[편집]
오버로드 작전 당시 프랑스에 주둔하는 독일 국방군의 후방 부대가 노획한 차량들을 연합군에 대응하여 사용했으나 활약하지 못하고 패퇴하거나, 혹은 미군, 프랑스군, 영국군에 의해 노획당하였다.
2.1.3.2. 독일 본토 진격전[편집]
독일 본토 진격전 당시 소수의 차량을 독일군이 투입시킨 기록이 존재하며, 이 중 소수의 차량을 미 육군이 노획하여 프랑스 파리 근교의 O-644 창고에 보관하다가 종전 후 미국으로 가져갔다.
2.1.3.3. 이탈리아 전선[편집]
이탈리아 전선 당시에도 다수의 T-34가 독일군 소속으로 사용되었으나 미군과 연합군의 공세를 막아내지 못하고 차례대로 격파당하였다. 이탈리아 왕국군이 노획했던 T-34도 이 때 당시 소실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전해진다.
2.1.4. 소련-일본 전쟁[편집]
2.1.4.1. 만주 전략 공세 작전[편집]
만주 전략 공세 작전 당시에도 다수의 개체가 투입되어 일본군과 전투를 치뤘다.
2.2. 냉전기[편집]
2.2.1. 6.25 전쟁[편집]
소수의 T-34-76이 T-34-85, SU-76M과 함께 남침의 선봉장에 섰다.
2.2.1.1. 대전 전투[편집]
6.25 전쟁 당시 T-34-76의 실존 기록은 불분명하다. 다만 대전 전투에서 실전 투입이 확인되었다.
[1] 1944년 6월 20일에 촬영된 사진으로, 이 개체에는 재밌는 일화가 있는데, 독일군이 소련군으로부터 노획해 자체적으로 개조한 후, 전투에 내보냈다 소련군이 다시 탈환했다는 사연이 있다.[2] 뒷쪽에는 독일군이 노획한 프랑스제 D2 전차와 소련으로 렌드리스된 미국제 M3 스튜어트가 있다.[3] KBS에서 2010년 방영한 10부작 다큐멘터리 '한국전쟁' 에서 등장한 화면으로, 여기서 902번 T-34-76 전차의 모습이 확인되었다. 포방패나 포탑, 전차장용 전망탑 형태를 보아 43년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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