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6년 산리쿠 해역 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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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1896년 6월 15일 오후 7시 32분 30초에 일본 이와테현 가미헤이군 가마이시정(현 가마이시시) 동쪽 200km 산리쿠 해역에서 Mw 8.2-8.5로 추정되는 거대지진이 발생했다. 지진 직후 일어난 쓰나미로 이와테현오후나토시에 최대 38.2m의 쓰나미가 들이닥쳤으며 이는 동일본 대지진 전까지 최대로 덮쳤던 쓰나미 높이였다.
산리쿠 연안이라는 말이 본격적으로 쓰이게 된 지진이다. 또한 1888년 반다이산 분화, 1891년 미노-오와리 지진 이후 일본 내 신문에 본격적으로 재난 보도가 집중적으로 등장하며 의연금 모집 문화가 생겨나기 시작한 지진이다.
2. 매커니즘[편집]
메이지 산리쿠 해역 지진은 진도가 작음에도 불구하고 거대한 규모의 쓰나미가 일어났는데, 이는 지진이 모멘트 규모 Mw8.2-8.5에 달하는 거대한 힘으로 천천히 움직이는 지진이었기 때문이다. 1989년 이뤄진 연구에서는 메이지 산리쿠 해역 지진 당시 북아메리카판과 태평양판의 폭 50km, 길이 210km 크기의 판 영역이 12-13m 정도 이동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태평양판 경계면에서는 부드러운 퇴적물이 잔뜩 쌓여 있는데, 지진으로 이 퇴적물들이 천천히 움직인 것으로 추정된다. 퇴적물의 독특한 움직임이 지진파가 직접적으로 준 것보다 훨씬 크게 바다에게 영향을 주어 큰 에너지를 전달한 것이다. 이 외에도 지진동의 주기 자체가 굉장히 길고 지진동의 크기에 비해 인간이 그다기 감지하기 어려운 수 초 주기의 장주기 지진동이 강했다. 이 때문에 인간이 실질적으로 체감하는 진도가 2-3 사이로 작아 별로 느끼지 못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1년 일어난 도호쿠 지방 태평양 해역 지진의 지진파 분석 결과 지진 당시 판 경계의 대륙판 쪽 깊은 심층부에서 고주파 진동이 만들어졌으며, 단층이 미끄러지고 해구 축선 얉은 부분에서 동적 오버슈트 현상이라 부르는 저주파 지진이 만들어져 판에 쌓인 응력을 훨씬 넘는 판 미끄러짐이 교대로 일어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여기서 거대한 쓰나미를 만든 지진은 축 얉은 곳에서 일어난 미끄러짐으로 메이지 산리쿠 해역 지진도 고주파 진동 없이 이 저주파 지진만 일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3. 해일[편집]
쓰나미 첫 파도는 지진이 일어난 지 약 30분 후인 오전 8시 7분에 온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남쪽으로는 미야기현부터 북쪽으로는 홋카이도까지 쓰나미의 영향을 받았다.
또한, 미국 하와이[6] , 캘리포니아[7] 에서도 해일의 영향을 받았다.
4. 피해[편집]
일본 내에선 인명 피해가 극심하여 사망자 21,915명, 실종자 44명, 부상자 4,398명이 발생하였다. 이 중 홋카이도에서 6명이, 아오모리현에서 343명이, 이와테현에서 18,158명이, 미야기현에서 3,452명이 사망하였으며 대부분의 피해는 이와테현에 집중되었다.
한편 사상자수 중에서 실종자수가 매우 적은데, 처음에 미야기현 일부 및 아오모리현은 부검을 실시하여 사망자수와 실종자수를 별도로 집계하고 있었으나 "생존자가 적은 상황에서 복잡한 검시를 하기 힘들다"며 "부검을 꼭 하지 않는다"라는 사회 분위기가 만들어져 "실종자" 개념이 사라졌다. 또한 사망자로 간주되는 사람은 "익사" 또는 "사망"으로 간단하게 구분하였다.
그 외 물적피해로는 가옥 유실 9,878채, 주택 붕괴 1,844채, 선박 유실 6,930척의 피해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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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UTC+9 기준[2] 1896년 당시 지진 관측은 일본 중앙기상대(현 일본 기상청) 기상관측소 외에 군, 관공서 위탁관측소에서 관측하고 있었다. 당시 일본 기상청 진도 계급은 '열진'(진도 6 정도), '강진'(진도 4-5), '약진'(진도 2-3), '미진'(진도 2 미만)으로 나눠져 있었다. 1896년 산리쿠 해역 지진은 대부분 지역에서 약진-미진을 관측하였으나 일부 지역에선 강진을 관측하였다.[3] 수정 메르칼리 진도 계급 (I부터 XII까지 로마숫자로 12단계)[4] 아파트 12~13층 높이의 해일이며, 동일본 대지진 발생 전까지 일본에서 관측된 최대 높이의 해일이었다.[5] 최대 28.7m의 해일 발생[6] 최대 9m[7] 최대 2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