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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종호(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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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hong jong ho2.png 파일:hong jong ho3.jpg
대한민국의 뮤직비디오 감독으로 대한민국 뮤직비디오계 1세대를 대표하는 감독 중 하나다. 90년대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홍종호 감독의 뮤직비디오를 한번이라도 안 본 사람이 없을 정도로 당시 인기 가수들의 뮤직비디오 대부분을 담당했다. 서정적인 영상미와 실험성이 돋보이는 작품을 시도하며 국내 뮤직비디오계의 왕가위라는 칭호로도 유명하다.
그는 1968년 부산 중앙동 한 병원에서 팔삭둥이로 태어난다. 어릴 때 부터 그림에 소질을 가지고 있어서 중학교 진학 후 미술 부 특별활동을 하였고, 고등학교는 예고에 진학하게 된다. 고등학교 때부터 (사진인쇄과) 3년을 사진을 배우며 나중에 뮤직비디오를 만들기 위한 토대가 된다. 그리고 고등학교 당시 보니엠의 해피송, 마이클잭슨의 문워커가 유행이었고 교내에서 브레이크댄스 그룹에서도 활동도 하게 된다.[1] 이당시 브레이크 좀 한다는 친구들 사이에 땀복이 유행했던 시절이다. [2] 또 교내 축제 무대에서 친구 두 명과 같이 3인조로 바다새의 바다새를 불러 은상을 수상하기도 한다. 유명한 사촌형님(고모 아들)으로 가수 '나훈아'가 있다.
그렇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 진학을 포기, 졸업 후 바로 영상 업계에 뛰어들어서 부산에서 결혼식 촬영을 주로 하던 중 A-ha의 Take On Me 뮤직비디오를 보고 매료된다. 이때 꿈을 꾸게 된다. 뮤직비디오 감독으로~ 그 후 부산에서 프로덕션 생활을 한곳에서 6년간 하다가 1993년 즈음 서울로 상경한다. 서울 상경 후 입소문을 타고 편집 잘하는 친구가 있다는 소문이 나면서 주변 스카웃 제의가 들어오고, 이직을 하여 결국 당시 26살의 나이에 사장대우 과장으로 현대음향에 입사하게 된다. 그렇게 1년여 동안 수많은 뮤직비디오들을 편집 감독을 하였는데, 당시 감독들의 능력에 회의를 느껴 퇴사 후 직접 감독의 길을 걷게된다. 이렇게 뮤직비디오 감독 데뷔 전까지 각종 촬영과 편집 등등 TV광고,16mm영화까지 두루 섭렵을 하였다. 1987년부터 지금까지 현장에서 능력을 다져온 37년차 경력을 가진 잔뼈가 굵은 감독이다.뮤직비디오의 시작은 1993년 도원경의 성냥갑 속 내 젊음 아 뮤직비디오를 촬영 및 편집을 시작으로 뮤직비디오를 시작하게 된다.실제 뮤직비디오 감독으로 데뷔는 1995년 혼성 신인 그룹 세인트루키의 혼자만의 사랑이 제대로 된 첫 감독 작품이다.[3] 그렇게 세인트 루키의 작품과 더불어 이전 1994년 서태지와 아이들의 '교실 이데아'의 콘서트 영상의 촬영과 편집으로 만난 것 또한 인연이 되어, 1995년 컴백홈 뮤직비디오를 감독하게된다.컴백홈 뮤직비디오로 인해서 그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1990년대 중 후반 김건모, 박진영, 박미경, 엄정화, 이정현, R.ef, 노이즈, 터보, 지누션, 디바, 원타임, 코요태 등 당대 최고의 댄스가수들을 비롯해 S.E.S., H.O.T., 신화 등 당대 아이돌 그룹의 뮤직비디오를 다수 감독했으며, 특히 김건모, 박미경, 노이즈, 클론, 홍경민, 이정,채연 등 작곡가 김창환이 이끌던 가수들의 뮤직비디오들을 전담에 가깝게 감독하는 경우가 두드러지게 많았다. 국내 뮤직비디오 감독들 중에 최초로 '홍픽쳐스(HONG PICTURES)'라는 독자 브랜드를 구축하여1998년 즈음부터 그가 감독한 뮤직비디오 우측하단에 로고 워터마크를 새겨 넣기 시작했다.[4]
강렬한 색감을 바탕으로 특수효과를 즐겨 썼기에 주로 댄스그룹에 특화된 뮤직비디오를 많이 제작했다고 알려졌지만, 당시 대중음악의 분포도가 댄스뮤직이 주로 이루던 시대이기 때문에 특별히 댄스음악을 많이 했다가 아니라 그냥 당시 분위기에 맞게 제작했을 뿐, 그렇게 특화됐다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타 감독들에 비해 CG에 대한 노하우도 좋았지만 그에 버금가는 혁신적인 촬영기법도 많이 활용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가 감독한 H.O.T.의 'We Are The Future' 뮤직비디오의 경우 "매트릭스 기법" 즉,"Flow-Mo기법"을 묘사하기 위해서 피아노줄을 사용했다고 하며, 이후에 이정의 '다신' 뮤직비디오를 제작할 때 대한민국 최초로 홍종호 감독이 직접 자체 개발하여 "Flow-Mo"시스템을 구축하고 100여대의 카메라를 사용 "Flow-Mo기법"을 제대로 구현해 낸다. 또한 홍경민의 '흔들린 우정' 뮤직비디오의 경우 노래의 템포에 맞추어 진동이 되는 영상을 담기 위해서 스피커 앞에 거울을 설치하여 반사되는 거울을 촬영하기도 하였다. 원형 형광등 조명을 활용해 소프트 효과를 극대화시켜 얼굴 윤곽이 뭉개질 정도로 뽀샤시하게 처리한 기법을 활용해 유행으로 이끌었는데,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1997년 발표된 S.E.S.의 데뷔 곡인 'I'm Your Girl'의 뮤직비디오로 얼마나 뽀샤시 한지 멤버들의 코가 보이지 않을 정도다(…)
2000년대 초반 그의 대표작인 '컴백홈' 뮤직비디오를 패러디한 이재수의 '컴배콤' 뮤직비디오를 감독했다가 서태지와 약간 소원해지며 그 이후로 결국 서태지와 결별을 하게 된다. 또한 그동안 뮤직비디오를 전담했던 YG엔터테인먼트와의 사이도 멀어지면서[5] 점차 활약의 폭이 줄어들기 시작했고,[6] 2007년 그가 감독한 아이비 2집 타이틀곡 '유혹의 소나타'의 뮤직비디오는 파이널 판타지 7을 표절[7] 하는 바람에 그동안 쌓아온 명성에 있어 큰 타격을 입고 뮤직비디오계를 잠시 떠나 2011년 케이블 방송 XTM이 진행한 탑기어 코리아의 메인감독으로 초빙되어 안착하게 된다.[8] 탑기어 코리아의 스튜디오 촬영을 제외한 로케이션에서 촬영 되는 자동차 촬영에 관한 모든 시스템을 구축 및 감독 하에 제작에 참여 한다.[9] 하지만 제작비 대비 무리한 일정으로 XTM의 관계자들과 의 트러블이 생겨 시즌1,2까지 참여하고 빠지기 된다.
이후 다시 뮤직비디오계로 복귀한다.
29년전인 1995년 초창기 제작비는 전체 뮤직비디오에서 90%정도가 150~300만원 수준, 가끔은 유명 탑 가수인 경우 1,000~1,500만원 수준, 이후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점점 제작비가 올라서 2003년도 이정의 '다신'뮤직비디오가 1억2천 정도로, 홍종호 감독이 감독한 뮤직비디오 중 최고 제작비를 갱신한다. 2003년도에는 기본 제작비가 평균 +/-3천만원 정도였다. 당시 뮤직비디오 업계에선 실제 제작비에 2~3배정도 과장해서 언론 플레이를 하는경우가 많았다. 요즘은 유명 탑 가수인경우 3억정도의 제작비를 쓰고 있다.
1987년 부터 1995년 까지(8년)[12]
아래 인물들은 '홍픽쳐스' 홍종호 감독의 스텝 출신임을 인증 합니다.[14]
그는 유일한 취미는 자동차다. 초반에는 실제 자동차 보다 RC를 좋아 했으며, 특히 조립에 꼼꼼함을 보였다. 한번은 '파파야' 뮤직비디오 촬영차 호주에 갔을때 현지 RC샵에서 X-RAY T1이라는 신제품 RC를 사서 숙소에서 밤새 조립한 적도 있다. 조립 뿐만 아니라 튜닝을 통해 출력업도 하곤 했다. 물론 주행도 좋아했었다. 그렇게 RC동호회 활동도 열심히 했었다. 그 이후 실제 자동차로 취미가 옮겨 간다.
첫 차가 그랜져XG였으며, 차를 주문을 했을 때만 해도 운전면허증이 없었다.주문과 동시에 운전면허증 시험을 치뤘으며 다행이 차가 나오기 전에 운전면허증을 따게 된다. 2000년 면허증이다. 어쩌면 실제 운전에 두려움이 있어 그동안 RC를 즐겼다고 볼 수 있다. 그렇게 첫차를 구입 후 바로 당시 스터디라는 튜닝샵에서 한국 최초 그랜져XG 바디킷을 장착하면서 그의 자동차 인생이 시작된다. 그렇게 그랜져XG와 많은 시간을 보내고 두번째 차를 맞이하게 된다.
그차는 실버 색상의 아우디 S8(D2) 수동모델로 한국에 한대 밖에 없는 차다. 수동에 익숙하지 않던 그를 수동의 세계로 인도했다. 이차 역시 독일 아우디 튜너 mtm에서 풀 튜닝된 상태로 360마력에서 375마력대 업그레이드 됐다. V8 4.2리터NA 엔진이라서 순정 대비 큰 출력업은 없다. 그렇게 첫 수입차 S8(D2)로 자동차 동호회 활동도 시작 하게 된다. 그당시로써는 자동차 동호회 부흥기 였다. 많은 동호회 중 폭스바겐 골프 GTI 동호회로 명성이 자자한 '포켓로켓' 회원이 된다. 이때 부터 그 거대한 S8(D2)로 펀드라이빙 세계로 들어서게 된다. 각종 자동차 정보 교류와 드라이빙 벙개등 짬짬이 많은 활동을 하게 된다. 새벽 신공항 최고속 드라이빙, 유명한 중미산 와인딩코스 드라이빙, 각종 드라이빙 스쿨 경험도 하고, 용인과 태백 트랙에서 실제로 달려 보기도 하고, 스릴 넘치는 차동차 생활을 하게된다. 하지만 중미산 와인딩 코스에서 숏코너 와인딩 중 오버스티어에서 4륜 핸들링 미숙으로 리버스를 당해 옹벽에 정면으로 추돌 패차하고 만다. 크게 다치진 않았지만 애지중지하던 차가 박살이 나버려 마음을크게 다치게 된다. 그렇게 슬픔에 빠진 그는 고민에 빠진다. 다음차를 뭘로 살까? 하며 아우디 RS4(B5) VS 폭스바겐 골프R32 둘 중에서 고민하게 된다. 이때 조언자는 카페 '테스트드라이브' 운영자 권OO의 조언으로 결정하게 되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본인이 타보고 싶은 차였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그의 조언으로 아우디 RS4(B5)를 구입하게 된다. 이차가 한국에 들어오게 되면? 또, 한국 최초 아우디 RS4(B5)가 한국 땅을 밟는것이다. 그렇게 3번째 차가 비행기를 타고 한국에 오게된다. 주문 후 한달여 만에 한국에 온 블랙 RS4(B5). 이차 역시 S8(D2) 튜닝보다 더 높은 순정 380마력에서 다시 mtm 490마력 튜닝이 되어있는 차다. V6 2.7리터 트윈터보 엔진을 가지고 있다. RS4(B5)에 mtm휠은 항상 문제였다. 워낙 편평비가 높아서 험한 도로에 한번 찍히면 바로 휠 밸런스가 틀어지는 상태가 된다. 그래서 일본 유명 장인이 제조하는 20인치 슈퍼버프폴리슁 단조휠로 바꾸기도 했다. RS4(B5)와도 많은 추억을 쌓았다. 안산에 있는 탑기어 트랙 초창기때 레이싱감독 최OO과 같이 카페 차원 레이싱 스쿨도 하고 타임전에서 1등을 하는 차였다. 물론 카페내에서 출력이 제일 높은 차량이다. 탑기어 트랙이 숏코너 위주의 트랙에서 그래도 선전한 결과다. 독일 mtm 본사도 직접 방문하여 직원들과 인사도 하고 튜닝 개발중인 차들 견학과 시승도 함께 했다. 더불어 ABT도 방문했으나 여기는 거의 쇼핑몰 분위기였다. 아우디,BMW,메르세데스 박물관도 방문하였다. RS4(B5) 역시 신공항 최고속에서 300km/h를 넘나드는 속도를 내며 한번은 수프라와 최고속 배틀로 결국 수프라가 막판에 엔진 블로우가 나는 아찔한 상황도 있었다. 아우디 S4(B5) VS 아우디 RS4(B5) VS BMW M3(E46) 배틀도 하면 업치락 뒤치락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이후 RS4(B5)는 영화배우 김민준에게 입양보내게 된다. 그리고 여러가지 깨달은 바가 있었다.
그리하여 좀 가벼운 차를 타보고 싶어서 2007년 1.6리터 트윈스크롤차져를 가진 미니 쿠퍼 S(R56) 신차를 구입하게 되고, 구입하자마자 챌린지 컵카와 똑같이 만들기 위해 리어윙과 리어디퓨져 등등을 직접 만들었다. 기술자를 고용해서 몇개월 동안 제작하기에 이른다. 만들고 나니 판매를 하면 어떨까 해서 미국 포틀랜드에 있는 'ALTA'튜닝회사를 직접 방문하여 판매계약을 하려 했으나 워낙 제조 숫자가 작아서 단가를 못 맞추고 불발된다. 결국 국내에 있는 미니 오너들 몇명을 위해 몇개만 제작해서 판매했다. 새로나온 차종이라서 칩튜닝 데이터가 없어서 칩튜닝 개발을 위해서 영국 현지 튜닝회사와 함께 테스트차량으로 많은 테스트를 거쳐 미니 칩튜닝 데이터를 만들게 된다. 햔제까지 많은 사랑을 받고있는 영국에 있는 튜닝화사 'REVO'를 직접 방문하기도 했다. 이후에 폭스바겐 아우디 전문인 'REVO에서 분가해서 미니, BMW, 밴츠 등을 튜닝하는 MANIC이라는 별도의 회사를 영국에서 만들게 되고, 미니 튜닝에 대한 데이터를 공유하고 개발에 도움을 준다. 한국에서 미니 챌린지 카페를 직접 개설하고, 본격적으로 자동차 레이스를 하기 시작한다. 영암, 태백 트랙에서 많은 경험을 쌓게 되고 현역 레이서들 감독들에서 많은 조언을 들으며 아마추어 래이싱 생활을 하게된다. 영암에서 열리는 첫 미니 타임전에서 단일차종 1등, 전체 2등을 하기도 한다. 레이스를 하면서 엔진커버도 녹아내리기도 하고, 터빈과 촉매부분 나사가 깨지기도 하고 많은 사건 사고가 있었다. 미니로 전향 후 파란미니는 밤중에 갓길 불법주차로 인한 추돌사고로 패차하고, 다시 블랙미니로 복귀 했으나 무리한 출력 업으로 인해 엔진 블로우 다시 세번째 미니를 입양하고 등등 미니 만 3대를 타본 경험을 하게 된다. 그리하여 2012년 미니로 마지막 경기 후 약 5년여간의 레이싱 생활을 접게 된다. 이후 미니 쿠퍼 S(R56)으로 탑기어 코리아 촬영을 위해 슈팅카 차량으로도 사용하게 된다.
2007년에 아이비의 유혹의 소나타 뮤직비디오 제작에서 스퀘어에닉스의 파이널 판타지7 AC의 장면을 그대로 가져다 썼다.#
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뮤직비디오 감독으로 대한민국 뮤직비디오계 1세대를 대표하는 감독 중 하나다. 90년대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홍종호 감독의 뮤직비디오를 한번이라도 안 본 사람이 없을 정도로 당시 인기 가수들의 뮤직비디오 대부분을 담당했다. 서정적인 영상미와 실험성이 돋보이는 작품을 시도하며 국내 뮤직비디오계의 왕가위라는 칭호로도 유명하다.
2. 생애[편집]
그는 1968년 부산 중앙동 한 병원에서 팔삭둥이로 태어난다. 어릴 때 부터 그림에 소질을 가지고 있어서 중학교 진학 후 미술 부 특별활동을 하였고, 고등학교는 예고에 진학하게 된다. 고등학교 때부터 (사진인쇄과) 3년을 사진을 배우며 나중에 뮤직비디오를 만들기 위한 토대가 된다. 그리고 고등학교 당시 보니엠의 해피송, 마이클잭슨의 문워커가 유행이었고 교내에서 브레이크댄스 그룹에서도 활동도 하게 된다.[1] 이당시 브레이크 좀 한다는 친구들 사이에 땀복이 유행했던 시절이다. [2] 또 교내 축제 무대에서 친구 두 명과 같이 3인조로 바다새의 바다새를 불러 은상을 수상하기도 한다. 유명한 사촌형님(고모 아들)으로 가수 '나훈아'가 있다.
그렇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 진학을 포기, 졸업 후 바로 영상 업계에 뛰어들어서 부산에서 결혼식 촬영을 주로 하던 중 A-ha의 Take On Me 뮤직비디오를 보고 매료된다. 이때 꿈을 꾸게 된다. 뮤직비디오 감독으로~ 그 후 부산에서 프로덕션 생활을 한곳에서 6년간 하다가 1993년 즈음 서울로 상경한다. 서울 상경 후 입소문을 타고 편집 잘하는 친구가 있다는 소문이 나면서 주변 스카웃 제의가 들어오고, 이직을 하여 결국 당시 26살의 나이에 사장대우 과장으로 현대음향에 입사하게 된다. 그렇게 1년여 동안 수많은 뮤직비디오들을 편집 감독을 하였는데, 당시 감독들의 능력에 회의를 느껴 퇴사 후 직접 감독의 길을 걷게된다. 이렇게 뮤직비디오 감독 데뷔 전까지 각종 촬영과 편집 등등 TV광고,16mm영화까지 두루 섭렵을 하였다. 1987년부터 지금까지 현장에서 능력을 다져온 37년차 경력을 가진 잔뼈가 굵은 감독이다.뮤직비디오의 시작은 1993년 도원경의 성냥갑 속 내 젊음 아 뮤직비디오를 촬영 및 편집을 시작으로 뮤직비디오를 시작하게 된다.실제 뮤직비디오 감독으로 데뷔는 1995년 혼성 신인 그룹 세인트루키의 혼자만의 사랑이 제대로 된 첫 감독 작품이다.[3] 그렇게 세인트 루키의 작품과 더불어 이전 1994년 서태지와 아이들의 '교실 이데아'의 콘서트 영상의 촬영과 편집으로 만난 것 또한 인연이 되어, 1995년 컴백홈 뮤직비디오를 감독하게된다.컴백홈 뮤직비디오로 인해서 그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1990년대 중 후반 김건모, 박진영, 박미경, 엄정화, 이정현, R.ef, 노이즈, 터보, 지누션, 디바, 원타임, 코요태 등 당대 최고의 댄스가수들을 비롯해 S.E.S., H.O.T., 신화 등 당대 아이돌 그룹의 뮤직비디오를 다수 감독했으며, 특히 김건모, 박미경, 노이즈, 클론, 홍경민, 이정,채연 등 작곡가 김창환이 이끌던 가수들의 뮤직비디오들을 전담에 가깝게 감독하는 경우가 두드러지게 많았다. 국내 뮤직비디오 감독들 중에 최초로 '홍픽쳐스(HONG PICTURES)'라는 독자 브랜드를 구축하여1998년 즈음부터 그가 감독한 뮤직비디오 우측하단에 로고 워터마크를 새겨 넣기 시작했다.[4]
강렬한 색감을 바탕으로 특수효과를 즐겨 썼기에 주로 댄스그룹에 특화된 뮤직비디오를 많이 제작했다고 알려졌지만, 당시 대중음악의 분포도가 댄스뮤직이 주로 이루던 시대이기 때문에 특별히 댄스음악을 많이 했다가 아니라 그냥 당시 분위기에 맞게 제작했을 뿐, 그렇게 특화됐다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타 감독들에 비해 CG에 대한 노하우도 좋았지만 그에 버금가는 혁신적인 촬영기법도 많이 활용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가 감독한 H.O.T.의 'We Are The Future' 뮤직비디오의 경우 "매트릭스 기법" 즉,"Flow-Mo기법"을 묘사하기 위해서 피아노줄을 사용했다고 하며, 이후에 이정의 '다신' 뮤직비디오를 제작할 때 대한민국 최초로 홍종호 감독이 직접 자체 개발하여 "Flow-Mo"시스템을 구축하고 100여대의 카메라를 사용 "Flow-Mo기법"을 제대로 구현해 낸다. 또한 홍경민의 '흔들린 우정' 뮤직비디오의 경우 노래의 템포에 맞추어 진동이 되는 영상을 담기 위해서 스피커 앞에 거울을 설치하여 반사되는 거울을 촬영하기도 하였다. 원형 형광등 조명을 활용해 소프트 효과를 극대화시켜 얼굴 윤곽이 뭉개질 정도로 뽀샤시하게 처리한 기법을 활용해 유행으로 이끌었는데,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1997년 발표된 S.E.S.의 데뷔 곡인 'I'm Your Girl'의 뮤직비디오로 얼마나 뽀샤시 한지 멤버들의 코가 보이지 않을 정도다(…)
2000년대 초반 그의 대표작인 '컴백홈' 뮤직비디오를 패러디한 이재수의 '컴배콤' 뮤직비디오를 감독했다가 서태지와 약간 소원해지며 그 이후로 결국 서태지와 결별을 하게 된다. 또한 그동안 뮤직비디오를 전담했던 YG엔터테인먼트와의 사이도 멀어지면서[5] 점차 활약의 폭이 줄어들기 시작했고,[6] 2007년 그가 감독한 아이비 2집 타이틀곡 '유혹의 소나타'의 뮤직비디오는 파이널 판타지 7을 표절[7] 하는 바람에 그동안 쌓아온 명성에 있어 큰 타격을 입고 뮤직비디오계를 잠시 떠나 2011년 케이블 방송 XTM이 진행한 탑기어 코리아의 메인감독으로 초빙되어 안착하게 된다.[8] 탑기어 코리아의 스튜디오 촬영을 제외한 로케이션에서 촬영 되는 자동차 촬영에 관한 모든 시스템을 구축 및 감독 하에 제작에 참여 한다.[9] 하지만 제작비 대비 무리한 일정으로 XTM의 관계자들과 의 트러블이 생겨 시즌1,2까지 참여하고 빠지기 된다.
이후 다시 뮤직비디오계로 복귀한다.
3. 대표작[편집]
[1] 실제로 2000년도 SES의 4집'A Letter From Green Land'의 'Be Nature'뮤직비디오에서 웨이브를 추는 장면이 나온다.[2] 춤에 조예가 깊던 그는 1997년 지누션의 '말해줘' 포인트 안무, 1999년 엄정화의 '몰라' 포인트 안무도 만들었다.[3] 1994년 수많은 뮤직비디오를 편집만 해주던 시절 이승환 제리제리 고고라는 작품을 감독 한적도 있다.[4] 1997년에 그가 연출한 작품에는 'The.M'이라는 문구를 하단에 넣었고, 이 후 1998년부터 소문자인 'hong'을 넣었고, 1999년부터 대문자로 'HONG PICTURES'라는 로고를 넣었다가 2003년 즈음부터 방송사의 방송규정에 의해서 사라졌다.[5] 이 또한 위의 컴배콤 뮤직비디오를 기점으로 벌어졌으며, 당시 양현석이 홈페이지를 통해 유감 의사를 표명하기도 했다. 페리의 솔로 앨범을 기점으로 서현승, 차은택, 조수현 감독, 지누(지누션) 등이 YG의 뮤직비디오를 주로 작업하게 됐다. 그래도 이후 원타임의 '어머니', 거미의 '어른아이' 등을 홍종호 감독이 맡는 등 아예 교류가 없는 건 아니었다.[6] 아이비의 '유혹의 소나타' 뮤직비디오 표절 논란이 터지기 전만 해도 꾸준히 많은 가수들과 뮤직비디오 작업을 했으나, 예전처럼 YG, SM, JYP 등 메이저 기획사와 작업하는 폭은 눈에 띄게 줄었다.[7] "감독이 요구하는데로 최선을 다해 연기해 준 아이비에게 미안한 마음 뿐입니다".표절 판결’을 받은 가수 아이비의 2집 타이틀곡‘유혹의 소나타' 뮤직비디오를 만든 홍종호 감독이 어렵게 입을 열었다.홍 감독은 “평소 ‘파이널 판타지 7 어드벤트 칠드런’의 애니메이션이 너무 좋아 실사로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면서 “만약 도용할 마음이었다면 이처럼 똑같이 만들지 않았다. 타케시 감독의 오마주 정도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까지 일이 크게 벌어질 줄은 몰랐다”며 안타까워 했다.(스포츠동아),[8] 2005년부터 자동차에 관심을 가진 그는 자동차 동호회 활동으로 실제 트랙 경기장과 레이싱 감독의 코치로 자동차 지식을 쌓았고, 2007년부터 본격적으로 아마추어 레이싱을 시작하게 된다. 그리하여 2012년 코리아 인터내셔널 서킷에서 열린 타임트라이얼 전에 미니 쿠퍼 S로 출전, 종합 2위를 하고 단일차종 중 1위를 했다. 자동차 튜닝과 레이싱에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는 사람이다.[9] 방송에 공개되지 않았지만, 탑기어 코리아 연예인 랩타임 기록에서 1분 55초 5로 1위도 하였지만 한민관 1분 55초 3에 의해서 2위로 밀려났다,[10] 해당 뮤직비디오는 배우 김지수를 메인으로 한 여성 버전과 신인 남성 배우를 메인으로 한 남성 버전이 있는데, 두 가지 버전 모두 몇 년 뒤 진주의 전 소속사 JYP 소속의 가수 임정희의 '흔적' 뮤직비디오로 그대로 재탕되었다. 소속사 측에서 그냥 음원을 덧씌워 재탕한 것으로 보인다.
4. 가수별 작품목록[편집]
5. 아시아 작품[편집]
6. 년도별 작품목록[편집]
[11] ST. ROOKIE 세인트루키에서 이름을 바꿨다.
7. 출연 배우들[편집]
8. 그 외 작품[편집]
9. 한국 뮤직비디오 최초[편집]
10. 제작비[편집]
29년전인 1995년 초창기 제작비는 전체 뮤직비디오에서 90%정도가 150~300만원 수준, 가끔은 유명 탑 가수인 경우 1,000~1,500만원 수준, 이후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점점 제작비가 올라서 2003년도 이정의 '다신'뮤직비디오가 1억2천 정도로, 홍종호 감독이 감독한 뮤직비디오 중 최고 제작비를 갱신한다. 2003년도에는 기본 제작비가 평균 +/-3천만원 정도였다. 당시 뮤직비디오 업계에선 실제 제작비에 2~3배정도 과장해서 언론 플레이를 하는경우가 많았다. 요즘은 유명 탑 가수인경우 3억정도의 제작비를 쓰고 있다.
11. 이전 경력[편집]
1987년 부터 1995년 까지(8년)[12]
12. '홍픽쳐스' 홍종호 감독 스텝 인증[편집]
아래 인물들은 '홍픽쳐스' 홍종호 감독의 스텝 출신임을 인증 합니다.[14]
[14] '홍픽쳐스' 출신이라고 속이는 스텝들이 많음! 아예 관계 없거나, 대부분 며칠 아르바이트 수준.
13. 루머[편집]
14. 최근활동[편집]
○ 현재 유튜브 채널을 운영중인며 본인이 제작한 뮤직비디오를 4K 업스케일링 리마스터해서 업로드하거나 가끔 유튜브 라이브를 하기도 한다.
15. 취미[편집]
그는 유일한 취미는 자동차다. 초반에는 실제 자동차 보다 RC를 좋아 했으며, 특히 조립에 꼼꼼함을 보였다. 한번은 '파파야' 뮤직비디오 촬영차 호주에 갔을때 현지 RC샵에서 X-RAY T1이라는 신제품 RC를 사서 숙소에서 밤새 조립한 적도 있다. 조립 뿐만 아니라 튜닝을 통해 출력업도 하곤 했다. 물론 주행도 좋아했었다. 그렇게 RC동호회 활동도 열심히 했었다. 그 이후 실제 자동차로 취미가 옮겨 간다.
첫 차가 그랜져XG였으며, 차를 주문을 했을 때만 해도 운전면허증이 없었다.주문과 동시에 운전면허증 시험을 치뤘으며 다행이 차가 나오기 전에 운전면허증을 따게 된다. 2000년 면허증이다. 어쩌면 실제 운전에 두려움이 있어 그동안 RC를 즐겼다고 볼 수 있다. 그렇게 첫차를 구입 후 바로 당시 스터디라는 튜닝샵에서 한국 최초 그랜져XG 바디킷을 장착하면서 그의 자동차 인생이 시작된다. 그렇게 그랜져XG와 많은 시간을 보내고 두번째 차를 맞이하게 된다.
그차는 실버 색상의 아우디 S8(D2) 수동모델로 한국에 한대 밖에 없는 차다. 수동에 익숙하지 않던 그를 수동의 세계로 인도했다. 이차 역시 독일 아우디 튜너 mtm에서 풀 튜닝된 상태로 360마력에서 375마력대 업그레이드 됐다. V8 4.2리터NA 엔진이라서 순정 대비 큰 출력업은 없다. 그렇게 첫 수입차 S8(D2)로 자동차 동호회 활동도 시작 하게 된다. 그당시로써는 자동차 동호회 부흥기 였다. 많은 동호회 중 폭스바겐 골프 GTI 동호회로 명성이 자자한 '포켓로켓' 회원이 된다. 이때 부터 그 거대한 S8(D2)로 펀드라이빙 세계로 들어서게 된다. 각종 자동차 정보 교류와 드라이빙 벙개등 짬짬이 많은 활동을 하게 된다. 새벽 신공항 최고속 드라이빙, 유명한 중미산 와인딩코스 드라이빙, 각종 드라이빙 스쿨 경험도 하고, 용인과 태백 트랙에서 실제로 달려 보기도 하고, 스릴 넘치는 차동차 생활을 하게된다. 하지만 중미산 와인딩 코스에서 숏코너 와인딩 중 오버스티어에서 4륜 핸들링 미숙으로 리버스를 당해 옹벽에 정면으로 추돌 패차하고 만다. 크게 다치진 않았지만 애지중지하던 차가 박살이 나버려 마음을크게 다치게 된다. 그렇게 슬픔에 빠진 그는 고민에 빠진다. 다음차를 뭘로 살까? 하며 아우디 RS4(B5) VS 폭스바겐 골프R32 둘 중에서 고민하게 된다. 이때 조언자는 카페 '테스트드라이브' 운영자 권OO의 조언으로 결정하게 되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본인이 타보고 싶은 차였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그의 조언으로 아우디 RS4(B5)를 구입하게 된다. 이차가 한국에 들어오게 되면? 또, 한국 최초 아우디 RS4(B5)가 한국 땅을 밟는것이다. 그렇게 3번째 차가 비행기를 타고 한국에 오게된다. 주문 후 한달여 만에 한국에 온 블랙 RS4(B5). 이차 역시 S8(D2) 튜닝보다 더 높은 순정 380마력에서 다시 mtm 490마력 튜닝이 되어있는 차다. V6 2.7리터 트윈터보 엔진을 가지고 있다. RS4(B5)에 mtm휠은 항상 문제였다. 워낙 편평비가 높아서 험한 도로에 한번 찍히면 바로 휠 밸런스가 틀어지는 상태가 된다. 그래서 일본 유명 장인이 제조하는 20인치 슈퍼버프폴리슁 단조휠로 바꾸기도 했다. RS4(B5)와도 많은 추억을 쌓았다. 안산에 있는 탑기어 트랙 초창기때 레이싱감독 최OO과 같이 카페 차원 레이싱 스쿨도 하고 타임전에서 1등을 하는 차였다. 물론 카페내에서 출력이 제일 높은 차량이다. 탑기어 트랙이 숏코너 위주의 트랙에서 그래도 선전한 결과다. 독일 mtm 본사도 직접 방문하여 직원들과 인사도 하고 튜닝 개발중인 차들 견학과 시승도 함께 했다. 더불어 ABT도 방문했으나 여기는 거의 쇼핑몰 분위기였다. 아우디,BMW,메르세데스 박물관도 방문하였다. RS4(B5) 역시 신공항 최고속에서 300km/h를 넘나드는 속도를 내며 한번은 수프라와 최고속 배틀로 결국 수프라가 막판에 엔진 블로우가 나는 아찔한 상황도 있었다. 아우디 S4(B5) VS 아우디 RS4(B5) VS BMW M3(E46) 배틀도 하면 업치락 뒤치락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이후 RS4(B5)는 영화배우 김민준에게 입양보내게 된다. 그리고 여러가지 깨달은 바가 있었다.
그리하여 좀 가벼운 차를 타보고 싶어서 2007년 1.6리터 트윈스크롤차져를 가진 미니 쿠퍼 S(R56) 신차를 구입하게 되고, 구입하자마자 챌린지 컵카와 똑같이 만들기 위해 리어윙과 리어디퓨져 등등을 직접 만들었다. 기술자를 고용해서 몇개월 동안 제작하기에 이른다. 만들고 나니 판매를 하면 어떨까 해서 미국 포틀랜드에 있는 'ALTA'튜닝회사를 직접 방문하여 판매계약을 하려 했으나 워낙 제조 숫자가 작아서 단가를 못 맞추고 불발된다. 결국 국내에 있는 미니 오너들 몇명을 위해 몇개만 제작해서 판매했다. 새로나온 차종이라서 칩튜닝 데이터가 없어서 칩튜닝 개발을 위해서 영국 현지 튜닝회사와 함께 테스트차량으로 많은 테스트를 거쳐 미니 칩튜닝 데이터를 만들게 된다. 햔제까지 많은 사랑을 받고있는 영국에 있는 튜닝화사 'REVO'를 직접 방문하기도 했다. 이후에 폭스바겐 아우디 전문인 'REVO에서 분가해서 미니, BMW, 밴츠 등을 튜닝하는 MANIC이라는 별도의 회사를 영국에서 만들게 되고, 미니 튜닝에 대한 데이터를 공유하고 개발에 도움을 준다. 한국에서 미니 챌린지 카페를 직접 개설하고, 본격적으로 자동차 레이스를 하기 시작한다. 영암, 태백 트랙에서 많은 경험을 쌓게 되고 현역 레이서들 감독들에서 많은 조언을 들으며 아마추어 래이싱 생활을 하게된다. 영암에서 열리는 첫 미니 타임전에서 단일차종 1등, 전체 2등을 하기도 한다. 레이스를 하면서 엔진커버도 녹아내리기도 하고, 터빈과 촉매부분 나사가 깨지기도 하고 많은 사건 사고가 있었다. 미니로 전향 후 파란미니는 밤중에 갓길 불법주차로 인한 추돌사고로 패차하고, 다시 블랙미니로 복귀 했으나 무리한 출력 업으로 인해 엔진 블로우 다시 세번째 미니를 입양하고 등등 미니 만 3대를 타본 경험을 하게 된다. 그리하여 2012년 미니로 마지막 경기 후 약 5년여간의 레이싱 생활을 접게 된다. 이후 미니 쿠퍼 S(R56)으로 탑기어 코리아 촬영을 위해 슈팅카 차량으로도 사용하게 된다.
16. 사건 사고[편집]
16.1. 파이널 판타지 7 어드벤트 칠드런 도용[편집]
2007년에 아이비의 유혹의 소나타 뮤직비디오 제작에서 스퀘어에닉스의 파이널 판타지7 AC의 장면을 그대로 가져다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