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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력공사 야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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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한국실업야구에서 활약했던 야구단. 모기업은 한국전력공사였으며 당시 기사나 잡지 등에서는 한전 야구단이라고 불렀다. 현재는 사내 사회인 야구단만이 남아있다.
전신은 부산광역시에 본사를 둔 남선전기에서 만든 실업야구단인 남선전기 야구단[2] . 이때 경성전기 야구단과 전업 야구단도 함께 존재했다. 해방후 최초의 "한성실업야구연맹" 가입 8개 구단 중 3개 구단이 바로 남선전기 야구단, 경성전기 야구단, 전업 야구단이었을 정도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실업 야구단이다.
이후 남선전기 야구단이 4.19 혁명의 여파로 1961년 해체된 이후[3] 한국전력공사의 전신인 남선전기, 전업전기, 경성전기가 이전에 운영하던 전업 야구단, 경성전기 야구단[4] , 남선전기 야구단의 3개 팀을 합쳐서 운영하기 시작했다. 이듬해인 1962년, 본사가 한국전력으로 이름을 바꾸면서 한국전력 야구단으로 팀명이 변경되었다.
김명성, 박영길, 황성록, 강태정 등 당시 국가대표로도 참가했던 쟁쟁한 선수들이 버티고 있던 팀이었다.
1990년대에 들어서 실업야구에서 연고지가 도입되자 강원도를 광역연고로 삼고 활동했으며 실업야구의 맥이 끊기는 2002년 마지막 대회 종료 후 제일유리 야구단과 함께 단 두개팀만 남게되자 두 팀이 같이 실업리그 등록을 포기하여 2003년 2월부로 공식 해체하게 된다. 이후 사내 사회인 야구단으로 남아서 활동중에 있다.
“한전야구단 마지막 감독 권백행”사라지는 실업야구, 그 끝에 있는 백재우 플레잉 코치[5]
2. 역대 엠블럼[편집]
남선전기
한국전력공사 (1961~1986)
한국전력공사 (1986~ )
3. 유니폼[편집]
4. 출신 선수[편집]
- 강태정
- 김용운
- 어우홍
- 김동엽
- 박영길
- 김응용(1960 ~ 1961/남선전기 야구단 소속)
- 유백만
- 김명성
- 최동원(1982) - 아마추어들이 참가하는 세계선수권대회에 출전하기 위해서 이적하였다. 소속 팀 롯데 자이언트가 프로로 전환되었기 때문이다. 대회 끝나고 프로로 전향하면서 다시 롯데에 입단했다. 이는 장효조, 김재박 등도 마찬가지다.
- 임호균
- 유두열
- 이철성(1981)
- 인호봉
- 김용달
- 황태환
- 백재우 - 전주고-원광대 출신 타자로, 해태 타이거즈의 지명을 받았으나 입단하지 않고 한국전력에 입단해 상무 복무 기간을 제외하고 줄곧 팀에 몸담으면서 실업야구의 마지막 해인 2002년까지 뛰었다.
5. 둘러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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