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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봉원(18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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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1879년 2월 17일
충청북도 청주군 미원면 화원리
(현재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미원면
사망1923년 8월 31일 (44세)
충청북도 청원군
직업독립운동가
상훈대통령표창

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한국의 독립운동가. 2009년 대통령표창을 추서받았다.

2. 생애[편집]


최봉원은 1879년 2월 17일 충청북도 청주군 미원면 화원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3월 30일 충북 청주군 미원면 미원리 시장 사거리에서 천여 명의 군중과 함께 태극기를 흔들며 조선독립만세를 외쳤다. 다급해진 일본 경찰은 해산을 강요하다가 결국 주도자 신경구를 체포하였다.

이에 흥분한 군중들은 주재소로 몰려가 ‘구금자를 석방하라’, ‘주재소를 때려 부숴라’고 절규하며 주재소를 향하여 돌을 던져 유리창을 파괴하였다. 일부 군중은 주재소 정문 기둥을 쓰러뜨리고 담장을 뚫으며 주재소로 돌진하는 등 격렬하게 저항하였다. 급보에 의해 파견된 청주경찰서의 응원 병력은 시위 군중을 향하여 실탄사격을 가하여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이에 최봉원은 ‘조선 사람이 조선의 독립만세를 외치는 것이 무엇이 잘못이냐? 너희는 어째서 우리 동포를 죽였는가? 주재소를 전멸시키겠다’고 호통을 치며 항쟁하다가 체포되었다. 1919년 5월 5일 공주지방법원 청주지청에서 이른바 소요 및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고문의 후유증에 시달리다 1923년 8월 31일 청원군에서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9년 최봉원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다. 그리고 2018년 국립서울현충원 무후선열에 그를 기리는 위패를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