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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민국 역대 총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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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직무를 충실히 수행하며, 인민의 복리를 증진하고, 국가를 보위하고, 국민의 신임에 부응할 것이며, 이를 어긴다면 국가 앞에 마땅히 벌을 받을 것임을 전국의 인민 앞에 엄숙히 진실로 선서합니다.(余謹以至誠,向全國人民宣誓,余必遵守憲法,盡忠職務,增進人民福利,保衛國家,無負國民付託。如違誓言,願受國家嚴厲之制裁。謹誓。)" - 중화민국 총통의 취임 선서[1]
1. 역대 총통[편집]
1.1. 중화민국 임시정부[편집]
이 시기의 직함은 임시대총통.
1.2. 북양정부(수도 : 베이징)[편집]
당시 중화민국 국가원수의 직함은 중화민국 대총통이다. 펑위샹의 정변 이후 정식으로 대총통 직함을 쓴 사람은 없다. 차오쿤(曹錕) 밑에 기록된 사람들은 모두 정식 대총통은 아니고 국가원수 대행인데 편의상 기록한 것. 그만큼 혼란한 시기였다는 의미도 있고
1.3. 국민정부(수도 : 난징)[편집]
이 시기 중화민국은 국민당 일당독재 체제인 훈정(訓政)기간으로, 당시 중화민국 국가원수의 직함은 국민정부 주석이었다.
여기서 잠깐 보충설명을 하자면, 1925년 3월 20일 쑨원 사후, 1925년 7월 1일 국민정부 출범까지 후한민이 대원수 대리 자격으로 국가원수를 대행했으며 7월 1일부터는 왕징웨이가 국민정부 주석을 맡았지만 1926년 중산함 사건으로 사퇴하고 외유를 떠났다. 이후에는 장제스가 상무위원회 주석, 군사위원회 주석, 국민혁명군 총사령관 자리를 겸임하며 실질적으로 1인자였으며 1927년 4월 18일 난징 국민정부 수립 직후부터 1928년까지는 후한민이 정치회의 주석을 맡으면서 국가원수 직에 있었다.
1.4. 중화민국 헌법 제정 이후[편집]
일반적으로 헌정이 시작된 이 시점부터 중화민국 총통의 대수를 센다. 리덩후이와 천수이볜, 차이잉원을 제외한 나머지의 출신지는 전부 현재는 중화인민공화국 영토.
민주화 이후 당선된 민선 총통인 리덩후이, 천수이볜, 마잉주, 차이잉원은 전부 다 국립대만대학 출신이며 그 중 리덩후이(농업경제학과)를 뺀 셋은 대만대학 법학과 선후배 출신으로 20년 동안 정권을 독식
2. 역대 총통의 양안정책[편집]
- 장제스, 옌자간 - 漢賊不兩立 (한적불양립: 정통중국과 비적은 양립할 수 없다.), 「反共大陸, 光復國土, 救出大陸同胞」(대륙에서 공산주의를 몰아내 국토를 되찾고 대륙 동포를 구해내자.)
- 장징궈 - 不接觸, 不談判, 不妥協(불접촉, 불담판, 불타협 - 3不정책), 『三民主義統一中國』 (삼민주의로 중국을 통일하자) 무력을 통한 양안통일 실질적 포기.
- 리덩후이 - 임기 초반에는 전임과 동일, 후반에는 『兩國論』 (양국론: 양안은 정통-반란정부, 하나의 중국, 또는 중앙-지방정부 간의 관계가 아니라 특수한 국가 대 국가의 관계라는 것.)
- 천수이볜 - 임기 초반에는 四不一沒有 (사불일몰유: 독립선언, 국호 변경, (독립을 위한) 헌법개정과 국민투표를 하지 않고, 국가통일강령과 국가통일위원회 폐지는 없을 것.), 중반에는 一邊一國 (일변일국: 대륙에도 대만에도 별개의 나라가 각각 있음), 후반에는 臺灣化 (대만화, Taiwanization: 정부기관과 준정부기관에서 '중국'이라는 명칭을 삭제, Taiwan 국명으로 UN 가입 시도, 중화민국 헌법 개헌 시도 등)
- 마잉주 - 『不統不獨不武』 (통일도, 독립도, 무력 사용도 않음. 新삼불정책), 『一個中國是中華民國』 (하나의 중국은 중화민국), 중국과의 경제교류 활성화, 교과과정 개편을 통한 「중화민국」 정체성 강화
- 차이잉원 - 有溝通、不挑釁、沒意外 (유구통, 불도흔, 몰의외: 대륙정부와 계속 소통하고, 도발하지 않으며, 양안관계에 있어서 의외는 없을 것. 일치성·예측가능성·지속 가능한 양안 관계를 유지), "주권에 대한 억압은 양안관계의 안정을 파괴할 것"
[1] 중화민국 헌법 제48조에 따라 모든 총통 당선자는 취임식 때 해당 선서를 해야 한다.[2] 현재의 성급 행정구역 기준[3] 일본육군사관학교 21기 입학 예정이었으나 신해혁명에 참여하기로 결심해 입학을 포기하고 귀국했다.[4] 2018년 2월 기준 약 21개월째[5] 그리고 그 3명 모두 객가어를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