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호(프로게이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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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前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 스타우트&배스킨라빈스 KPGA 투어 4차 리그, 2002 Panasonic배 온게임넷 스타리그 준우승 이후부터. 그 뒤 최약체로 평가받았던 저그 군단 SOUL을 힘겹게 이끌며 계몽사 KPGA 팀리그에서 팀을 준우승으로 이끌었다.
MSL 최다 연속 진출 기록을 갖고 있다. 스타우트&배스킨라빈스배 KPGA 투어 4차 리그 ~ 프링글스 MSL 시즌2까지 10회 연속 진출.[6]
팀리그 초대 올킬러/초대 저그 올킬러/초대 스트레이트 올킬러의 트리플 올킬러 타이틀도 보유.
이 선수가 얼마나 롱런했는지를 보여주는 예로는 MSL을 10회 연속 진출하면서 '광탈 전적이 없었다'는 점이 있다. 가장 안 좋은 성적이 패자 2차 8강.[7] 조용호가 MSL에서 활약하던 당시에는 16강 중에 8명이 시드였고, 서바이버에서 고작 8명밖에 뽑지 않았을 정도로 MSL로 가기 힘들었다. 이른바 '좁은 문'이라고 불릴 정도. 온게임넷에서도 SKY 스타리그 2002에서 처음 이름을 올린 후에 NHN 한게임 스타리그에서 탈락할때까지 연속으로 이름을 올린 적이 있다. 최다 진출자인 마재윤도 광탈을 무려 세 번이나 했을 정도인데, 조용호의 이 성적은 그만큼 꾸준함이 빛나는 부분. 다만 온게임넷 스타리그에서는 16강 3패 광탈을 한 적이 있다.[8][9]
스타크래프트 개인 리그 10-10 클럽 달성 기록을 가지고 있다.[10] 온게임넷 스타리그 본선 - MSL 본선 모두 10회 이상 진출한 첫 저그 게이머이기도 하다.[11]
지금은 사라진 iTV 랭킹전의 대회 최다 연승 기록(15연승)을 가지고 있다.
같은 팀의 후배였던 이영호는 인터뷰에서 조용호를 '만화에 나오는 천재형 게이머'라고 평했다. 한두 게임만에 빌드를 짜고 실제로 그 빌드로 이긴다고. 이런 연습 스타일을 이영호는 그대로 따라했다가 성적이 내려가서 팀에서 퇴출될 뻔했다고 한다.링크 [12] 나중에 이 소식을 알게 된 조용호가 이영호에게 친히 "영호야, 너는 너만의 방법을 찾아서 가길 바래. 무조건 내 연습방식만 따라서 하려고 하지 말고. 넌 할 수 있어!"라고 응원해 준 덕분에 이영호는 최강의 프로게이머가 될 수 있었다. 당연히 이영호는 팀 선배 조용호의 이런 충고 덕분에 자신이 매우 크게 성공할 수 있게 되었다면서 지금까지도 매우 감사한다고 한다.
박정석, 김정민[13][14] 도 가장 천재형 게이머는 조용호라고 했다. 박정석, 김정민은 홍진호, 이윤열, 이영호 등 다른 천재형 게이머들과 같은 팀에서 지켜 봤는데 그 중에서도 천재 중의 천재로 조용호를 꼽았다. 홍진호나 이윤열 등과 비교해도 천재성이나 재능에 있어서 한 단계 위에 있다고...
2017년 10월 7일 방송에서 박정석과 같이 레스토랑에서 식사하고 박정석의 집에서 합방을 했는데 담낭염으로 수술을 했다고 하며 완쾌된 이후 모 대기업 생산직 직원으로 근무하고 있으며 개인방송을 하고 있는 타 동료 프로게이머들과 다르게 개인 방송은 없다.[15] 방송 영상
2. 프로게이머 활동[편집]
2000년부터 프로게이머로 활동했으며, 신인이던 시절 당시 IS를 나와 무소속이었던 임요환의 스파링 파트너[16][17] 로 유명했다. 당시 임요환은 당대 최강의 저그로 조용호를 꼽기도 했다. 원조 프로토스의 재앙으로 유명을 떨쳤다. 1년에 토스전에서 한 번 진다는 말이 있었는데, 2003년 프로토스전 승률이 14승 4패. 이 중에 2패가 섬맵(vs 전태규 in 채러티, vs 박정석 in 패러독스)이라는 걸 감안하면 결코 과장이 아니다.
본격적으로 두각을 나타낸 무대는 리복배 KPGA투어 2차대회. 나경보, 장진수를 꺾고 4강에서 홍진호를 만나서 패배해 3, 4위전에 내려가 박신영에게 2:3으로 패배하며 4위로 첫 대회를 마무리했다.
이윤열의 그랜드 슬램 제물(...)로도 유명한데 준우승 두 번할 때 공교롭게도 일주일의 시차를 두고 결승전이 치러졌으며 두 번 모두 이윤열에게 졌다(스타우트&배스킨라빈스배 KPGA 투어 4차 리그에서 2:3, 파나소닉 스타리그에서 0:3).[18] 여기서 오리지날 목동저그도 완전히 무너졌다.[19]
그 뒤에도 우주닷컴 MSL에서는 박정석과의 치열한 혈전 끝에 말도 안되는 역전패를 당하면서[20] 3위를 하는 등 여전히 타이틀과 인연이 없어 보이는 듯했으나 바로 다음 시즌인 CYON MSL에서 마재윤을 두 번 만나 두 번 다 꺾고 데뷔 5년만에 눈물의 우승을 차지했다(동시에 콩라인 탈출). "저그만 줄창 만나고 우승했다!"며 보지도 않고 까는 사람들도 있지만 저그의 무덤 알 포인트에서 서지훈을 꺾은 건 생각도 안 하는 듯하다.[21]
'CYON MSL 결승전이 흥행 실패다'라는 주장이 있는데, 그 이유는 관중의 수가 적었고[22] 마주작 대 조용호라는 흥행 카드였지만[23] 결승전 자체가 저저전 결승이라는 것이기 때문에 최악의 평가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잘 나가던 마조작을 꺾고 우승한데다 몇 번의 준우승 뒤에 도전과 노력으로 감격적인 우승을 했기 때문에 충분히 인구에 회자될 만한 결승전이었다. 더불어 당시 조용호가 KTF로 이적한 이후였기 때문에, KTF 소속으로 개인리그의 정점에 선 첫 선수가 된 조용호는 만년 콩라인의 이미지가 강했던 KTF의 팬들에게 상당한 위안을 가져다 주었다.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시즌 1에서도 결승까지 진출하였지만 한동욱에게 지면서 준우승에 머무르고 말았다. 물론 MSL 우승과 온게임넷 스타리그 준우승을 통해 대략 4개월간 KeSPA 랭킹 1위를 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온게임넷 스타리그 준우승 이후로는 슬럼프에 빠졌고, 2007년 온게임넷과 MBC 게임 양대 리그 예선에서 모두 탈락한 이후, 결국 2008년 1월에 은퇴를 선언했다[24] . 본인에 의한 은퇴 선언이나 인터뷰도 없이 뜬금없이 은퇴 발표가 나서 팬들이 당혹해 했다. 일부 스덕들은 레전드에 대한 예우가 없는 이 판의 씁쓸함을 탓하기도 했다.
이게 당시 KTF 감독이었던 김철이 비판받는 대표적인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전기리그에서 5승 5패로 그리 좋은 성적은 아니었지만, 07 전기리그 자체가 워낙 저그의 무덤이었고,[25] 더군다나 당시 KTF(現 kt 롤스터) 내 저그 중에서는 그나마 가장 호성적이었다.
은퇴 선수들을 보면 물론 비쳐진 모습과는 별개로 프로 의식이 개차반이라 잘린 선수도 분명 있으며, 그렇게 은퇴 후 개인 방송에서 인격 문제를 드러내면서 여러 논란이 야기되는 경우가 있는데, 조용호의 경우는 경기를 마치고 승패와 관계없이 항상 먼저 다가가서 상대 선수에게 악수를 청할 만큼 마인드도 좋았고
3. 영향[편집]
3.1. 저테전[편집]
래더 시대의 막바지에 소수 테란이 최강자권에 자리매김하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여전히 상위권의 대부분은 저그가 차지하고 있었으며 이는 봉준구를 대표로 하는 컨트롤지향의 저그가 사라지고 앞마당 확장 이후의 자원력을 기본으로 한 확장지향성이 저그의 강력한 카드로 등장한 데서 비롯했다. 이후 저그를 상대하는 테란과 프로토스의 고민은 기본적으로는 단 하나로 귀결되었는데, 어떡해야 저그의 늘어나는 확장을 또는 이로 인한 대규모 병력을 막을 수 있을 것인가였다. 수많은 유저들은 이 문제에 다양한 답을 제시하고 있으며, 이 문제와 해답 사이의 갈등은 지금까지도 유효하다.
테란의 경우 대표적인 것이 임요환이 제시하였으며 지금까지도 극강의 피지컬을 가진 이재호와 같은 테란유저들에게 사용되는 드랍십의 활용으로 이른바 게릴라식 난전유도 + 멀티파괴의 공식을 따르고 있다. 이것이 처음 등장했을 때의 충격은 괜히 언급하는 것이 쓸모 없을 정도인데, 홍진호에 이르러서는 모든 저그가 할 수는 없었으나 분명히 막을 방법을 찾아내고 막아내기 시작했다. 최소한 네이트 스타리그부터 드랍십은 여전히 하나의 강한 카드였지만, 그것이 소수 사람들 사이에서만 전해지는 래더의 비전으로서 갖던 필살기의 성격은 사라져버렸다.
이에 따라 새로운 해답이 제시되기 시작하는데, 이른바 김정민류의 계승과 발전이라고 할 수 있는 한방 병력과 순회공연이다. 서지훈에게 퍼펙트 테란이라는 이름을 가져다준 이 방식은 앞마당 자원을 쥐어짜낸 강력한 '한방 병력'으로 아군의 병력 소모를 극소화하며 대규모 교전에서 승리한 이후, 저그의 병력이 다시 모이기 이전에 멀티를 '순회공연'하며 모두 파괴해버리는 형태였으며 이후 저그와 테란의 경기 양상은 진출한 테란의 한방 병력이 다 소모되기 전까지 저그의 멀티가 유지되는가 또는 파괴되는가의 문제로 흘러갔다. 도망자 저그의 등장을 의미하여 당시 맵의 밸런스 판단에 있어서 섬멀티가 있는가 없는가로 저그의 유불리를 봤으니 그 여파는 대단했다고 볼 수 있다.
주목할 부분은 이 한방 병력의 강력함, 특히 2팩토리의 시즈탱크로 뒷받침되는 화력은 저글링-러커-뮤탈리스크 중심의 저그유닛들이 가진 장갑으로서는 견딜 수 없는 것이었다는 데 있다. 당시의 KPGA 테란 트로이카였던 이윤열-서지훈-김현진의 주무기가 한방 병력의 순회공연이었으며 이는 2005년에 저그의 종언을 고했다는 "가까우면 벙커링, 멀면 더블"과도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의 압도적인 파괴력을 자랑했다.
결국 저그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돌파구를 찾아냈어야 했는데, 이 중 하나가 당시 저그신동으로 떠오르기 시작한 조용호의 목동 체제이다. 이미 1해처리의 달인이자 레어 마스터로서 테란을 상대하는데 한계를 느낀 조용호가 그 눈을 하이브로 돌리게 된 것이 우연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인데, 목동체제는 단순하게 이야기하면 다수 멀티의 자원력을 이용한 대량의 울트라리스크 운용체제이며 테란을 상대하는 저그의 무게중심을 레어에서 하이브로 옮겼다는 것에서 해당 전략이 스타크래프트 판도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쳤을지는 쉽게 상상할 수 있다.
풀업 울트라리스크의 장갑을 이용하면 상기에 서술한, 레어중심의 저그병력을 순식간에 녹여버리는 2팩토리에서의 시즈탱크와 3-3업 바이오닉에서 뿜어져 나오는 테란의 한방의 화력마저도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발상은 대등한 실력자들의 게임에서는 실현이 불가능한 공상정도로 치부되었지만, 이러한 부정적인 여론을 비웃기라도 하듯, 본인이 당시 테란 트로이카 중 한 명이었던 김현진을 4차 KPGA에서 침몰시키며 완전히 뒤집어버리고, 조용호식 목동 체제는 최상위권 수준의 테란을 상대로도 유효한 카드임을 저그유저들에게 각인시켰다.
지금의 테저전 목동 체제와 달리 초기의 체제는 바로 울트라리스크를 모으는, 그야말로 막대한 양의 가스소모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었는데,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저그가 무엇을 하든 신경쓸 필요 없이 오직 한방병력만 만들면 된다는 당시 테란이 가진 대 저그전 마인드에 힘입은 바가 컸다. 그러나 기존의 저그들을 압살시키던 한방병력이 완성되어 진출하는 순간에 테란이 조우하게 되는 것은 그야말로 떡장갑을 두른 한 부대 반의 울트라리스크와 다수의 해처리에서 쏟아져나오는 저글링이었으니, 결국 목동체제의 파훼를 위해서는 테란의 마인드 자체가 바뀔 필요가 있었으며, 이는 테란의 대 저그전에서 '테란'이 타이밍을 찾아내야 한다는, 저테전 패러다임의 새로운 도약으로 이어지게 된다.
반면, 이윤열은 이러한 '타이밍'을 귀신같이 찾아내는 능력이 있었으며, 이는 이윤열이 테란 트로이카에서 명실상부한 1인자로 뛰어오를 수 있게 해주었다. 하지만 이 타이밍을 극복하지 못한 목동 체제는 등장과 함께 가져왔던 그 어마어마한 파괴력이 무색하게도, 단 한 명의 천재에 의해 어이없이 짧은 전성기를 남기고 폐기되어버리고 만다. 목동 체제의 사장 이후 저그의 대 테란전에서는 '테란의 타이밍에 맞춰나가는 운영'이라는 현대 저테전의 틀이 본격적으로 정립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대로 잊혀지는 듯 했던 목동 체제는 포기하지 않았던 수 많은 저그들의 연구를 거쳐 결국 마재윤에 이르러 앞마당 3해처리, 레어, 그리고 4가스 이상을 확보하는 목동 조합 하이브 전략으로 전장에 등장하는데, 디파일러에 이은 그야말로 대 테란전 최종 병기로 그 무시무시한 파괴력을 증명한다.
3.2. 저프전[편집]
테란을 어떻게 상대할 것인가에 대한 물음에 수많은 저그유저들이 답을 내려 애썼던 것과 달리 프로토스에 대해서는 특별한 노력이 없었는데, 이는 애초에 저그가 프로토스에게 불리했던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프로토스들의 열정이 불타오른 것이 대 저그전이었는데, 컨트롤 위주의 저그가 래더와 함께 완벽하게 사라지고 확장위주의 저그가 자리매김한 이후로 프로토스의 저그에 대한 투쟁이 시작되었다.
저그의 타이밍을 빼앗버린다는 점에서는 오히려 프로토스 쪽이 테란에 비해 훨씬 개척적으로 움직였다. 프로토스의 2게이트 하드코어 질럿은 앞마당 확장으로 시작되는 저그의 경기양상에 카운터로 작렬함으로써 순식간에 저그 대 프로토스를 5:5로 만들어버렸다. 그러나 이 필살기 역시 장진남으로 대표되는 수많은 저그유저들에 의해 봉쇄당한 이후 프로토스 역시 돌파구를 마련할 필요가 있었는데, 임성춘이라고 하는 프로토스 유저에 의해 제시되고 정립된 한방러시가 당시의 가장 대표적인 해답이었다.
이 공식은 테란의 한방 병력 이후 순회공연과 똑같은 수순으로 진행되었지만, 등장시기는 이쪽이 몇 년은 빨랐다. 템플러나 옵저버 확보 이후 앞마당의 넥서스 워프, 게이트를 폭발적으로 늘리며 하이테크 유닛을 동반한 대규모의 한방병력을 만든 이후 진출하는 한방러시는 비수류가 등장한 이후에는 더욱 가다듬어져 가장 확실한 피니셔로 자리잡았다. 물론 테란에 비해 한방러시가 자리잡은 이후에도 저그에 대한 고전은 계속 되었는데, 더블넥서스의 확보, 병력폭발 타이밍까지의 방어, 이후 한방병력의 운용, 저그의 카운터 대비와 같은 여러 수순이 테란에 비해 몇 배는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로토스의 한방러시는 강력했으며, 최소한 강민의 수비형이 등장하기 이전의 프로토스가 승리한다면 십중팔구는 한방러시였다.[27]
어느 종족을 상대하든 저그의 입장에서 가장 약한 시기는 바로 레어 체제이다. 레어체제의 대규모 병력이 큰 힘을 발휘하는 것은 사실이나, 다수 병력을 상대하는데 효과적인 하이템플러의 사이오닉 스톰이나 리버의 스캐럽, 다수 시즈탱크의 스플래시화력 앞에서는 무력화되어버리는 것으로, 이쪽 역시 같은 해법이 등장하는데 그 개척자는 조용호였다. 그가 제시한 것은 이른바 소울류 저그, 한 번 당하면 프로토스 유저의 혼과 육체과 분리되기 때문에 소울류라는 식의 악명을 떨친 울트라리스크 중심의 하이브 체제이다.
그런데 테란에 비해 프로토스의 한방러시는 확실히 빨랐으며, 마린메딕과 구별되는 질럿의 특성상 한방병력의 확보 없이도 곧잘 진출하여 저그의 하이브와 그를 위한 확장을 저지하고는 했다. 결국 한방러시의 무력화를 위한 울트라리스크의 확보를 위해서는 어떻게든 한방병력의 진출이나 활약을 저지할 필요가 있었다. 여기에서 등장하는 것이 바로 소울류 방어선이라고 통칭되는 성큰-스포어-러커 라인과 연탄 조이기라고 불리는 다수 러커 저지선이었다.[28]
저그에게 필요한 것은 시간이며, 부담스러운 것은 시간을 벌기 전에 폭발하는 프로토스의 한방러시이다. 한방병력의 강력함은 상대적으로 약한 저그의 장갑에서 나오는 것이며, 따라서 효과적 수비를 위해 약한 레어유닛보다는 다수 성큰 콜로니의 방어력을 이용하며 공격의 핵인 질럿을 러커-스커지를 통해 막는다. 더 나아가 아예 좁은 진출로를 다수 러커를 이용하여 봉쇄하고, 옵저버만을 테러하며 시간을 버는 형식으로 하이브를 확보한다. 이는 어느 쪽이든 전투를 회피하는 형태인데, 탱크와 스캔이 없는 프로토스로서는 속절없이 당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이는 전투를 원하는 프로토스의 한방병력을 묶어버리는 극악의 체제로 지금까지도 저그의 대 프로토스전에서 승리를 위한 하나의 포석으로 활용되고 있다.
나아가 소울류는 대 프로토스전에서 당시 저그가 갖고 있던 고정관념을 어느 정도 깨버리는데 성공하는데, 저그는 무조건 프로토스보다 자원을 하나 더 먹어야 한다는 생각이 그것이다. 일단 고효율의 울트라리스크와 아드레날린 글렌즈 저글링을 확보된 이후의 전투에서는 프로토스와 같은 자원을 확보하고도 결코 전투에서 밀리지 않고 추가멀티를 확보할 수 있음을 증명했으며, 이는 프로토스의 3가스 확보에 대한 저그의 공포를 상당부분 해소했다.
소울류는 이후 GO저그들의 레어 삼지창와 결합하여 그 악명을 더욱 떨쳤으며 강민의 수비형 프로토스로 파해가 이루어진 이후에도 프로토스를 대하는 저그의 자세로, 이제는 딱히 소울류라고 칭할 필요가 없는 저그의 자연스러운 모습이 되었다.
돌이켜보면 테란과 프로토스의 한방병력의 파괴력을 상대하는 저그의 해법으로 등장했던 것은 둘 다 울트라리스크였다. 이는 중공군의 인해전술을 모티브로 하여 대규모병력을 운용할 수 있으나 개개 유닛은 약하다는 당시의 저그에 대한 생각을 뒤집어버린 것이며, 드디어 저그에게 강철의 벽이 등장한 것으로 실로 획기적인 전환이었다 평가할 수 있다. 물론 목동체제나 소울류 이후에도 저그의 주력은 레어 유닛이었으며 당대 최강의 저그는 레어마스터였다. 마재윤에 이르러서야 레어마스터가 모두 당대최강은 될 수 없으며 그 끝을 결정짓는 것은 하이브마스터가 될 수 있으나 없느냐의 차이로 드러났다. 그러나 오로지 레어유닛의 효율성과 그 운용에 파고들었던 당시에 하이브 유닛의 강력함을 미리 발견하여 적극적으로 이를 활용하고 나아가 저그의 교과서로 상용화시킨 저그유저가 있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며, 모든 저그유저는 그에게 큰 빚을 지고 있다고 말하는 데 아무 망설임이 없을 것이다. 물론 이 두 가지가 한 사람에게서 나왔다고 하면 그가 저그의 역사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또 어떤 대접을 받아야할지 굳이 상상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3.3. 저저전[편집]
뮤탈리스크의 활용성이 입증된 이후부터는 저저전은 뮤탈리스크+스커지 싸움 일변도로 빠졌으며, 그나마 이에 대응하는 몇가지 카운터가 존재하기는 하였으나 기본적으로 선수의 개성이 드러나기 힘든 전형적인 양산형 종족전이 되었다. 저저전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빌드에서 지지 않는 것이며, 그 다음에는 상대방보다 좋은 유닛컨트롤과 부대운용을 하는 것이었다.
이중 컨트롤의 측면에서 중기 저저전이라 할 수 있는 2000년대 초반, 뮤탈리스크 컨트롤에 가히 혁명의 시초라고 평가할 수 있는 파문이 일어났는데 바로 건맨뮤탈이라 이름 붙은 뮤탈리스크 부대의 원샷원킬이었다. 후대에 서경종식 뮤탈 뭉치기와 결합하여 소위 뮤짤이라는 형태로 거듭난 뮤탈리스크 부대의 원샷원킬은 당대에 저그왕국이라고 불렸던 SOUL에서 본격적으로 정립이 되었으며, 이 팀의 중심에 있었던 조용호는 수준급의 건맨뮤탈을 보여주며 저저전의 강자로 떠올랐다. 예전부터 스커지에 대항하기 위한 뮤탈리스크 뭉치기는 존재하였으나 이것에 기동성까지 부여한 건맨뮤탈은, 지금으로 봐서는 조악한 수준이기는 하나 당시로서는 놀라운 것이었다. 이후 건맨뮤탈은 프로토스전에서 하이템플러의 요격에 활용되고 [29] 또 박성준에 의해 가다듬어진 이후에는 테란전에서도 적극활용될 수 있음이 증명되었다. 이 계보의 마지막인 뮤짤까지 와서는, 테란을 상대하는 저그의 삼신기(felix 인용) "3해처리-뮤짤-하이브" 중 하나의 신기로서 자리를 굳히게 되었다.
컨트롤이 같다면 저저전은 빌드싸움이라는 것이 대세였으나 저저전이 발전하면서부터는 이들 공식들도 상당부분 무너지기 시작했다. 홍진호에게서 시작을 발견할 수 있는 이 반전은 최소한 2005년 후반부의 마재윤에 와서는 빌드에서 지더라도 라바관리를 이용한 최적화를 통해 좁혀버리거나 뒤집어버린다는 운영이 상당부분 유효할 수 있음이 증명되며 발견되었고, 이는 조금씩이지만 본격적인 현대적 저저전의 문이 열리고 있음을 의미했다.
이 시대의 개막자로 등장한 마레기는 구시대의 저그들을 밀어 붙였고 더 이상은 빌드가 저저전의 결정적 요소가 아님을 보였는데, 조용호로 인해 마레기의 저저전 혁명은 미뤄질 수밖에 없었다. 마레기는 세간의 주목을 받으며 비상한 CYON MSL에서 조용호와 두번의 5전제를 가졌으나 두 번 모두 패배했다. 중기 저저전의 계승자이자 집대성이었던 조용호는 봉준구 이후 사장되다시피한 1해처리레어 빌드를 거의 5년만에 다시 꺼내들었고, 이에 마재윤은 두 번 모두 격파당하며 저저전에서 빌드의 힘이 얼마나 강력한지가 다시 한 번 증명되었다. 이후 마재윤은 1해처리레어까지도 극복했는데, 조용호 없이 바로 마조작의 시대로 넘어갔다면 현대 저저전은 하나를 빼고 가야 했을 것이며, 언제든 중기 저저전으로 되돌아갈 여지를 남겼을 것이다.
최첨단이라고 불리는 것들도 하늘에서 갑자기 떨어지지 않는다. 어떤 것의 계승을 위해서도 극복을 위해서도 그 눈을 과거로 돌려야 함은 당연하다. 지금 뮤짤의 원류가 된 건맨뮤탈은 조용호가 속한 SOUL의 작품이었으며, 조용호와 마재윤의 대립은 저저전의 발전에서 새로운 시대의 개막을 의미했으나 동시에 1해처리 레어의 극복을 위해 마재윤은 다시 한 번 잊혀진 오래 전의 유산에 주목해야 했다. 뮤짤의 정립과 1해처리 레어의 극복은 발전이 결코 과거와 단절되어서는 이루어질 수 없다는 당연한 격언을 새삼 확인하게 해주는 좋은 사례가 되었다. 특히 저저전에 있어서 조용호는 저그의 모든 유산을 짊어지고 있었기에 저그의 새로운 계승자가 되려는 마재윤과 호각을 이룰 수 있었다.
4. 주요 경력[편집]
4.1. 개인 리그[편집]
개인 리그 우승, 준우승 총합 상금 : 6,000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