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상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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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삼성 라이온즈, 한화 이글스, 두산 베어스에서 활동한 야구선수. 현재는 NC 다이노스의 코치.
2. 선수 경력[편집]
2.1. 삼성 라이온즈[편집]
경상북도 군위군 출신으로 대구상고를 졸업했으나 프로 지명을 받지 못했고, 대학 진학 대신 1991년 연고 팀 삼성 라이온즈에 연습생 신분으로 입단했다. 데뷔 2년차였던 1992년 1군에 데뷔했지만, 1992년과 1993년 각각 9경기와 7경기 출장에 그쳤고, 1994년에는 1군에 한 번도 올라오지 못했다. 이후에도 마찬가지여서 1995년 18경기, 1996년 28경기 출장에 그친데다 어깨 인대 부상까지 겹치면서 삼성에서는 전혀 자리잡지 못했고, 1996년 시즌 종료 후 선수단 개편 과정에서 방출되었다.[3]
2.2. 한화 이글스[편집]
삼성에서 방출된 뒤 1997년 시즌을 앞두고 한화 이글스에 입단한다. 한화 입단 첫 해인 1997년부터 1군에서 자리를 잡아 116경기에 출장하면서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렸고, 비록 2할 3푼대로 타격이 약한 편이었지만 수비와 주루툴로 21도루를 기록하며 1군에서 준주전으로 살아남는데 성공했다. 그러다가 1999년 시즌 중 김경원을 상대로 홍원기와 함께 두산 베어스로 트레이드되었다.
2.3. 두산 베어스[편집]
두산 베어스로 트레이드된 뒤부터 본격적으로 1군 멤버로 자리잡아 빛을 보기 시작했다. 특히 2003~2004년에는 기존 외야 자원이었던 정수근, 심재학 등의 이적 공백을 메우기 위해 1군 주전 외야수로 자주 나왔다. 커리어 하이는 2004년으로, 128경기에 출장해 타율 0.274, 5홈런, 133안타, 15도루를 기록하면서 주전 우익수 겸 1번타자로 활약했다. 이후 기량이 쇠락해 백업으로 밀려났음에도 묵묵히 대주자, 대수비로 꾸준히 1군에서 얼굴을 보였고, 2006년에는 두산과 2년 4억에 FA 계약도 성공했다. 또한 포스트시즌에서도 강한 모습을 보였는데, 2005년 플레이오프 MVP를 수상하기도 했다.
2006년을 기점으로 노쇠화가 찾아오면서 성적이 계속해서 떨어지기 시작했고, 1할대 타율을 3년 연속으로 기록했다. 하지만 정규시즌과 달리 포스트시즌에서는 그럭저럭 성적을 올려서, 2008년 플레이오프에서도 예상치 못하게 맹활약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것이 전상렬에게는 회광반조가 되었다. 2009년에는 1군에 아예 올라오지 못하고 시즌 후 방출 통보를 받았다. 그러자 곧바로 은퇴를 선언하고 일본으로 코치 연수를 떠났다. 은퇴 당시의 인터뷰
3. 지도자 경력[편집]
은퇴 후 1년간 일본 연수를 거쳐 2011년 두산 베어스의 전력분석원으로 선임된 뒤 2012년부터 두산 베어스의 주루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2017년까지 두산에서 1군 주루 및 작전코치, 2군 타격코치 등 다양한 보직을 맡았다.
2017년 시즌 종료 후 두산을 떠나 한화 이글스의 코치로 옮기면서 지난 1999년 이후 무려 18년 만에 한화로 되돌아왔다. 보직은 2군 작전 및 주루코치.
2020년에는 육성군 총괄 코치로 보직을 변경했다가, 6월 8일부로 2군 감독인 최원호가 1군 감독 대행으로 승격되면서 남은 시즌 동안 2군 감독 대행으로 활동하였다. 첫 지휘 게임인 LG 2군과의 3연전은 9일 4대 5 승리, 10일 7대 7 무승부로 순항 중. 그러나 11일은 12 대 3으로 패배. 두번째 3연전인 두산과의 3연전은 12일 6대 3으로 2연패.
시즌 후 카를로스 수베로 감독이 선임되고 최원호가 다시 2군 감독으로 돌아옴에 따라 2021년부터 1군 작전 및 주루 코치를 맡았다. 이후 2022년에 1군 외야수비 및 1루 코치로 보직을 변경했다.
2024년부터는 NC 다이노스의 코치로 자리를 옮겼다.[4] 보직은 1군 외야수비 및 1루 주루코치로 확정되었다.
4. 연도별 성적[편집]
5. 여담[편집]
- 야구계의 대표적인 노안으로, 보기보다 조숙한 얼굴로 할매라는 별명이 있다. 심지어 심판들까지도 할매라고 불렀다고 하는데… 김인식 감독이 지은 별명이라고 한다. 단순 노안이 아니라 노년 여성 느낌이 나서 그렇게 공개적으로 선수 많은데서 몇번 불렀더니, 다른 코치와 선수들 사이에서 유행하여 심판들에게도 퍼져버렸다고 한다. 두산 감독이던 시절 전상렬을 대타로 기용할 때마다 "대타 할매"라고 심판진에게 이야기해도 다 알아들었을 정도였다고 한다. 다만 은퇴 후 50대가 된 현재는 현역 시절 노안이라 불리던 외모와 별 차이가 없을 정도로 꾸준히 유지해 온 편이다.
- 아들인 전형근도 야구선수로, 휘문고등학교에서 선수 생활을 했다. 포지션은 투수. 아버지와 똑 닮은 외모로 할배 캐릭을 물려받아 이명수 감독에게도 그렇게 불렸다. 이종범의 아들 이정후, 안경현의 아들 안준, 최태원의 아들 최준서 등 휘문고에서 뛰는 야구인 2세들의 인터뷰에서 확인 가능하다.덕아웃 인터뷰 그리고 2019년 신인 지명에서 아버지가 뛰었던 두산 베어스의 2차 9순위 지명을 받게 됐다.
- 역대 한국 프로야구 선수 중에서도 좀처럼 보기 드문 군위군 출생이다.
6. 관련 문서[편집]
[1] ~6월 7일[2] 6월 8일~[3] 1996년 삼성은 정규리그 6위를 기록하며 1982년 팀 창단 이래 가장 낮은 순위를 기록했는데, 이 여파로 인해 대대적인 선수단 정리에 들어가면서 김성래, 강기웅, 이종두 등 노장 선수들이 죄다 방출되거나 트레이드로 유니폼을 벗은 바 있다.[4] 동갑내기인 강인권 감독과는 한화와 두산 시절 같이 선수로 뛴 바 있고, 코치 시절에도 두산과 한화에서 한솥밥을 먹은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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