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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중산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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劉稚
(? ~ 174)

1. 개요
2. 생애
3. 창작물에서


1. 개요[편집]


후한 말의 황족이자 유창의 아들.


2. 생애[편집]


174년 3월에 유창이 죽자 중산왕이 되었다가 15일 만에 죽었다. 시호는 절(節).

후한서 효영제기의 기록에는 유창이 죽자 아들이 없어 봉국을 폐지했다고 나왔으나, 왕선겸의 후한서집해교보에서 전대흔의 주석에 따르면 후한서 중산왕전에서 유창의 아들인 유치가 아들이 없어 폐지된 것으로 나와서 지적했는데, 제후왕을 지낸 지 얼마 못 가 죽었기에 후한서 효영제기에 그렇게 기록한 것으로 보인다.


3. 창작물에서[편집]


소설 삼국지 소쌍전에서는 황건적의 난이 시작되는 시점인 184년에도 살아있는 것으로 나와서 황건적의 난이 일어나자 노노현으로 행차해 방비가 어찌되고 있냐고 물어보았으며, 상산으로 가야 한다고 하자 나라에 위난이 닥쳤는데 전투를 앞두고 몸을 보신하라는 것이냐면서 있을 수 없다고 했다.

황건적이 오천이 넘는 군사를 이끌고 온다면서 대피해야 한다고 하자 피신하려 했으나, 이미 성이 포위되어 갈 수 없었으며, 수문장에게 적이 강성한 곳이 남문임을 듣고 병사들에게 그 곳을 방비하도록 시키면서 자신도 그 곳에 가기로 한다. 유비와 소쌍이 황건적을 공격해 위기에 벗어나자 연회를 베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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