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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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어서 저 큰 도시 니느웨로 가서 그들의 죄악이 하늘에 사무쳤다고 외쳐라." 이 말씀을 받고도 요나는 야훼의 눈앞을 벗어나 다르싯으로 도망가려고 길을 떠나 요빠로 내려갔다.
요나 1장 2~3절 (공동번역 성서)
하맛 어귀로부터 아라바 해에 이르는 이스라엘 영토를 되찾은 것은 그였다. 이스라엘의 하느님 야훼께서 당신의 종인 예언자 요나를 시켜 하신 말씀이 이렇게 이루어졌다. 요나는 갓헤벨 출신으로서 아미때라는 사람의 아들이었다.
열왕기 하권 14장 25절 (공동번역 성서)
성경의 39번째/32번째 권이자 해당 책의 저자.
아미때(아밋대/아미타이)의 아들로, 북이스라엘 예로보암 2세 때 활동하였다는 예언자. 또한 그 이름을 제목으로 한 구약성경 중의 한 권이다. 다만 이 예언자라는 사람이 야훼의 이야기를 전혀 듣지 않고 끝까지 객기를 부리는 것이 이 책의 키포인트. 요나는 쿠란에도 '유누스'라는 이름으로 나오며, 이슬람에서도 알라의 예언자로 인정하고 있다.
그의 에피소드인 요나서는 성경의 다른 부분과는 달리 굉장히 웃기다. 그래서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성경학교 교재의 단골 레퍼토리로 사용되기도 한다. 전체 4장밖에 되지 않는 짧은 길이와 높은 접근성도 인기에 한몫한다. 구약의 소예언서들이 분량은 적지만 시대상이 암울하고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경고의 내용으로 가득한데, 요나의 이야기는 주제도 이해하기 쉽고 분위기도 덜 무겁다 보니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입문자도 읽기 편하다.
2. 내용[편집]
개신교 용어로 적힌 요약에 대한 내용은 히브리 성경/요약 문서
2.1. 1장[편집]
북왕국의 예로보암 2세 때 활동하던 예언자 요나는, 어느 날 야훼로부터 니네베[5] 로 가서 야훼 말씀을 전하라는 명령[6] 을 받게 된다. 그런데 문제가 있으니, 니네베는 조국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아시리아의 수도[7] 라는 점.[8]
애국심이 강했던 요나는 그런 잔혹한 놈들 그냥 멸해 버리시지 뭐 하러 이런 걸 시키시냐는 생각으로 야훼의 명령에 불만을 품고 니네베와는 정반대 방향인 타르시스[9] 로 배를 타고 도망치려 한다.[10] 그리고는 그 배 안의 가장 구석진 곳에 숨고는 '여기 숨으면 신께서도 날 못 찾으시겠지' 하고 안심하고 있었다.
물론 기독교 세계관에서 야훼를 따돌리고 달아날 방법 따위는 세상에 없었으니 야훼는 폭풍을 일으켜 요나가 탄 배가 가라앉을 위기를 만들고, 이에 배에 탄 사람들은 각자의 신에게 기도하며 선실에서 자고 있던 요나에게도 어서 당신 신에게 기도하라고 갈군다. 그 후 누구 때문에 일이 이렇게 되었는지 따져보자면서 제비뽑기를 하는데[11] 결국 요나가 걸리고 만다. 자기 때문에 엉뚱한 사람들까지 물귀신으로 만들 수 없다는 생각에선지, 죽었으면 죽었지 적국 아시리아 사람들에게 야훼의 말씀을 전하고 구원의 기회를 줄 수 없다는 생각에선지 결국 요나는 "제가 야훼의 명령을 따르지 않아서 야훼가 재앙을 내린 것입니다. 저를 바다에 던지면 폭풍이 멈출 것입니다."라고 말한다.
사람들은 어떻게든 요나를 던지지 않고 폭풍에서 벗어나 보려고 안간힘을 써봤지만 소용이 없었다.[12] 결국 "무고한 사람을 죽인 피가 우리들에게 오지 말게 해 주십시오!!"라고 빌면서[13] 요나를 바다로 던진다. 이후 거짓말같이 폭풍우가 멎자 뱃사람들은 모두 공포에 질려 당장 선상 제사를 드리고 야훼를 믿게 된다.
2.2. 2장[편집]
2 요나가 그 물고기 뱃속에서 하느님 야훼께 기도를 올리니,
3 요나가 입을 열었다. "그 숨막히는 데서 부르짖었더니, 야훼께서 대답해 주셨습니다. 죽음의 뱃속에서 살려달라고 외쳤더니, 그 호소를 하느님께서 들어주셨습니다.
4 하느님께서 이 몸을 바닷속 깊이 던지셨습니다. 물결은 이 몸을 휩쌌습니다. 밀려오다 부서지는 하느님의 물결이 제 위에서 넘실거렸습니다.
5 하느님 눈앞에서 쫓겨난 몸, 하느님 계시는 성전 쪽으로는 두 번 다시 눈도 못 돌릴 줄 알았습니다.
6 물은 목까지 차 올랐고 깊은 바다는 이 몸을 휩쌌습니다. 머리는 갈대에 휘감겨
7 저 땅 밑 멧부리로 빠져 드는데, 땅은 빗장들을 영영 내려버렸습니다. 야훼, 나의 하느님, 하느님께서는 그 구렁에서 이 몸 살려내셨습니다.
8 정신이 가물가물하는데도 야훼님을 잊지 않고 빌었더니 그 기도가 하느님 계시는 거룩한 궁전에, 하느님 귀에 다다랐습니다.
9 헛된 우상을 섬기는 자들은 하느님을 저버리지만,
10 저만은 이 고마움을 아뢰며, 서원한 제물을 드리렵니다. 저를 구해 주실 이 야훼밖에 없습니다."[14]
11 야훼께서는 그 물고기에게 명령하여 요나를 뱉어내게 하셨다.
요나 2:2~11 (공동번역 성서)
한편 야훼가 미리 준비한 큰 물고기가 나타나 바다에 던져진 요나를 집어삼키게 된다. 요나는 3일 동안[15] 물고기 배 속에 있으면서 자신의 잘못을 뉘우친다. 그러고서 이 물고기가 야훼의 명령을 받아 요나를 뱉어낸다.
물고기의 정체에 대해 개신교 계열인 국민일보의 기사에서는 이 물고기가 백상아리라고 가정한 바 있다. 백상아리의 서식지가 요나의 지리적 배경과 비교적 일치하고, 백상아리가 사람을 삼킬 정도로 크며, 거북이와 같이 소화가 잘 안 되는 먹이를 삼켰을 때는 위에 그대로 저장하고 있다가 뱉어내는 습성이 있다는 이유이다.
반면 가톨릭에서는 바닷속 동물이 요나를 삼킬 수 있을 만큼 커야 했기에 '큰 물고기'라는 표현을 썼을 뿐 어떤 특정한 동물을 염두에 두고 쓴 것은 아니라고 본다.
이슬람에서는 물고기를 고래로 추측하는데 터키 등 이슬람 국가에서는 이와 같은 이유로 고래를 먹지 않는다. 실제로 지중해에는 대형 고래류도 서식한다.# 만약 요나서가 실화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면 이런 고래를 보고 모티브를 얻었을 수 있다. 물론 삼켜지는 동안 고래의 목구멍이 작살났겠지만.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2.3. 3장[편집]
이렇게 사람들이 못된 행실을 버리고 돌아서는 것을 보시고 하느님께서는 뜻을 돌이켜 그들에게 내리시려던 재앙을 거두시었다.
요나 3:10 (공동번역성서)
결국 요나는 야훼의 지시대로 니네베로 간다. 요나는 "죄를 뉘우치지 않으면 40일 뒤에 니네베가 잿더미 됨"이라고 선언하는데, 원래는 도시 전체를 도는 데만 3일이 소요될 정도로 큰 규모였다고 한다. 하지만 요나는 단 하루 만에 일정을 끝냈다고 하니 별 성의 없이 편한 길로만 대충 돌아다니면서 외친 셈이나 다름없다는 말이 된다. [16] 그런데 놀랍게도 모든 니네베 사람이 자신들의 죄를 뉘우치며 야훼에게[17][18][19] 눈물로 용서를 간청했고 왕은 한술 더 떠 온 국민은 물론 가축에게까지 굵은 베옷을 입히고 금식 기도를 하게 했다.[20][21] 그렇게 니네베는 재앙을 피하게 된다.
2.4. 4장[편집]
사실 요나가 보고 싶었던 건 니네베 사람들이 회개하는 게 아니라, 먼 옛날 소돔과 고모라처럼 니네베 전체가 불바다가 되는 스펙터클한 광경이었다. 도시 전체가 회개하는 모습을 본 야훼가 화를 거두면서 멸망을 피하게 되었고, 이에 실망 & 분노한 요나는 "아니 이러실 줄 알고 제가 타르시스로 튀려 한 건데 야훼가 관대해서 결국 재앙을 거두시네. 내가 이거 보려고 살았나 자괴감이 드니 그냥 죽여주시죠."이라면서 니네베가 불에 타나 어쩌나를 지켜보겠다는 구실로 성 밖에 움막을 짓고 1인 시위에 들어간다.
이때 야훼가 요나를 위해서 움막 옆에 큰 박넝쿨을 자라게 해 움막을 덮어 뜨거운 햇살을 가려주나 했지만 밤새 벌레를 보내 박넝쿨을 모두 갉아먹게 해 버렸고, 뜨거운 열풍까지 요나 쪽으로 불게 했다. 이에 약이 오른 요나는 "왜 이 무더위에 개고생하게 만드는 겁니까? 차라리 죽여주세요." 라고 짜증을 낸다. 그리고 여기에 야훼가 이렇게 말하며 이야기가 끝난다.
"너는 이 아주까리가 자라는 데 아무 한 일도 없으면서 그것이 하루 사이에 자랐다가 밤 사이에 죽었다고 해서 그토록 아까워하느냐? 이 니네베에는 앞뒤를 가리지 못하는 어린이만 해도 12만이나 되고 가축도 많이 있다. 내가 어찌 이 큰 도시를 아끼지 않겠느냐?"[22]
요나 4장 10~11절공동번역성서
요나서의 특징인 열린 결말로 요나의 반응[23] 이나 이후 행적에 대한 언급이 없이 마무리한 이유에 대해선, 기록자인 요나가 성경을 읽는 후손들에게도 이 질문을 던지고 싶어서가 아니냐는 신학자들의 해석이 있다.
3. 해석[편집]
요나는 잔뜩 화가 나서 퉁명스럽게 야훼께 기도했다. "야훼님, 제가 집을 떠나기 전에 이렇게 되리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저는 다르싯으로 도망치려 했던 것입니다. 저는 다 알고 있었습니다. 야훼께서 애처롭고 불쌍한 것을 그냥 보아 넘기지 못하시고 좀처럼 화를 내지 않으시며 사랑이 한없으시어, 악을 보고 벌하려 하시다가도 금방 뉘우치시는 분인 줄 어찌 몰랐겠습니까? 그러니 야훼님, 당장 이 목숨을 거두어주십시오.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것이 낫겠습니다."
요나 4장 1~3절(공동번역성서)
이 책의 특이한 점은, 주인공인 요나가 순수 유대인 혈통의 예언자면서도 야훼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는 것이다. 여기서 주의할 점이 말을 안 들은 것뿐이지, 야훼를 믿었다는 점. 그래서 더더욱 니네베에 가고 싶어 하지 않았던 것이다. 요나의 심정은 '나는 니네베가 불바다가 되는 것을 보고 싶지만, 야훼는 그럴 분이 아니시고 그들을 회개시키실 것을 믿기 때문에, 차라리 도망가 버리겠다!'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실제로 이 일이 벌어지자 '이제 야훼의 자비로움을 알았으니 차라리 날 죽여주십시오'라고 한 걸 보면, 하느님의 능력과 성품을 오히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태도를 보인 거라는 걸 알 수 있다. 이토록 주와 소통하며 그 성품을 아는 면과 바다가 흉해진 것이 자신의 잘못에 대한 징계인 야훼의 능력인 것을 인지하고 희생하는 부분은 선지자스러운 모습을 보이면서도 동시에 아무리 그래도 조국과 민족을 괴롭힌 원수 국가가 회개하고 용서받는 꼴은 못 보겠다, 이놈들 심판받는 걸 봐야겠다 하는 인간적인 한계를 보여주는 재미있는 인물이다. 게다가 자신이 불순종해봐야 좋은 꼴은 못 볼 거라는 점이나 야훼의 권능을 이해하면서도 땡깡을 부리거나 도리어 제가 열이 받아서 죽어도 정당합니다 하고 화를 내고 따지는 등, 한편으론 그래도 자비로운 야훼신데 날 어떻게야 하겠어? 같은 심리도 은근히 보인다.
성경에 따르면 예로보암 2세는 예후왕의 증손자로 북이스라엘의 숙적 아람을 크게 쳐부숴 국가를 중흥시켰으나,[24] 호세아 선지자가 이 시기에 활동하며 경고한 것처럼 지배층도 백성들도 타락의 정점을 찍고 있던 시기이다. 어쩌면 요나는 자기 나라와 민족은 타락의 정점을 찍고 있는데 적대 세력인 아시리아가 회개한 게 아니꼬웠을지도 모른다.[25]
그리고 그와 대조적으로 요나와 함께 타르시스행 배를 탔던 외국인들이나 니네베 사람들이 더 야훼를 숭배하는 모습들과 비교해 보면 그야말로 아이러니. 특히 그 외국인들이 요나에게 "너는 왜 네가 믿는 신한테 기도하지 않느냐?"라고 던진 질문은, 비단 유대교뿐만 아니라 그리스도교를 믿는 모든 사람이 믿지 않는 사람들과 함께하면서 한 번 이상 꼭 겪는 패러독스 중의 하나다.
열린 결말 역시 이 책의 특징. 맨 마지막의 저 한마디만 던져 놓고 아무런 마무리도 없이 그냥 모든 이야기가 끝나 버리는 결말인데, 이런 결말은 성경 전체에서 서사 구조를 지닌 책 중에서는 이 책이 유일하다.[26] 즉, 책의 주인공에게 뭔가 명예 회복을 시켜 주거나 하는 게 전혀 없다는 점이다.
사실 이 책에 등장하는 내용은 역사적, 과학적 사실이라기보다는 문학적인 스토리에 가깝다는 게 대체적인 견해다. 학자들은 외국인이나 다른 민족들에게 배타적으로 향하던 후기 유대교의 흐름에 대해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교훈 설화'의 형태로 요나를 썼을 것으로 보고 있다. 대체로 당시 에즈라서로 대표되는 흐름에 정면으로 반발하는 또 다른 흐름을 보여주는 책이라고 보는 것이 학자들의 견해다. 애초에 유대교에서 그리스도교가 갈라져 나온 이유 중의 하나로 다른 민족에 대한 배타성에 반발한 것도 있었다[27] .
성서학계의 중론은 이 이야기를 픽션으로 보고 있다. 어휘나 문체나 신학적 특징으로 보아 요나 당대의 기록은 절대 아니며, 요나의 생애는 물론 아시리아에서 일어난 사건도 다른 문헌과 교차 검증되는 부분도 없기 때문. 저자는 교훈을 전달하기 위해 일부러 요나서가 쓰여질 당시에는 한참 전에 멸망한 아시리아를 무대로 삼아 우화를 썼다는 것이다.
역사적 사실성이 아닌 신학적으로 볼 때에, 요나는 매우 중요한 작품이다. 유대 민족의 신이었던 하느님이 다른 민족의 신이 될 수 있다는 암시를 던지기 때문이다.[28] 다른 신을 믿던 뱃사람들이[29] 폭풍우가 그치는 것을 보고 두려워하여 개종하는 것, 아시리아인들이 회개하여 용서를 받은 장면은 다른 민족 역시 야훼의 백성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4. 신약 성경에서의 취급[편집]
예수가 요나를 직접 언급한다. 대략 자신을 적대하는 세력인 서기관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기적 좀 보여주세요!!!" 하고 말하자 "요나의 기적밖에는 보여줄 기적이 없다"고 적절하게 무시한 것.[30] 그리고 십자가에서 죽어 무덤에 묻혔다가 3일 만에 부활하여 정말로 요나의 기적을 보여 준다. 그래서 요나서는 예수의 부활을 미리 맛보기로 보여 주는 책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주류이다.
또 요한의 아들인 베드로에게 예수가 '시몬 바르요나야[31] '라는 언급을 한 구절[32] 이 있는데 이 '바르요나'라는 것은 '요나의 아들'이란 의미이다(앞서 언급했듯이 베드로의 부친은 '요한'이다). 혹자는 이것을 두고 요나가 이후 회개했고 그 마음을 베드로가 갖고 있었기 때문에, 이를 알아챈 예수가 '시몬 바르요나야'라고 부른 것이라고 한다.
5. 기타[편집]
- 후속작으로 구약 성경의 나훔서가 있다. 나훔서의 이야기는 요나의 이야기와 완전히 반대되는데, 앗시리아의 멸망 과정을 다루고 있다. 니네베가 회개한 지 100여년 후 나훔 시대에 이르러 다시 앗시리아인 (니네베 성 사람들)이 흉악해지고 교만해지자, 결국 야훼가 나훔을 통해 니네베 심판을 선언한다.
-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 국가(IS)가 2014년에 요나의 무덤으로 전해지는 곳을 폭파했다. 하긴, 메카의 카바 신전을 파괴하겠다고 하는 놈들인데 그깟 선지자 따위가 대수랴. 그리고 이들은 2015년 니네베성도 폭파했다.
그리고 그 대가로 전세계에 뒤지게 얻어터져서 산산조각났다. - 한국에는 충청남도 보령시 대천해수욕장에 요나 성당이 있다. 천주교 대전교구 관할 성당이다.
- 인간의 모태 귀소 본능에 심리학자 칼 구스타프 융이 '요나 컴플렉스'라는 이름을 붙였다.
- 고래, 혹은 어떤 생물에게 '잡아먹혔다가' 살아서 돌아온 사람들에게는 '현대판 요나'라는 별명이 붙기도 한다. 아예 묘비명으로 남겨진 사례도 있을 정도. #
- 모비 딕의 초반 항구 마을에서 매플 목사의 열정적인 설교의 주제로 이런저런 살이 붙어서 해설되는데 이후 소설의 전개와 같이 생각해 보면 흥미로운 부분이다.
- 범선 시대에는 배가 폭풍을 만나면 선원들 사이에서 "이 배에 요나가 타서 폭풍을 만난 거야!!"라고 하며 평소 밉상이거나 왕따를 당하던 선원에게 더욱 더 집단 괴롭힘을 가했던 악습이 있다. 영화 마스터 앤 커맨더에 잘 묘사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