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정책으로 인하여 프로축구 전북 현대 모터스, 현대자동차 배구단을 모두 운영하던 현대자동차는 전북 현대 모터스만 운영하기로 하고 배구단은 현대자동차그룹 계열의 캐피탈 회사인 현대캐피탈로 이관되어 프로 출범 때 천안 현대캐피탈 스카이워커스가 되었다.
에 따라 기존의 기아 농구단은 현대자동차그룹 계열사인 자동차 부품 전문 회사 현대모비스로 모기업이 바뀌고 동시에 울산광역시로 연고지를 이전하면서 완전히 재창단되었다. 다만 울산으로 연고지 이전은 현대모비스 인수 전인 기아 시절에 이미 결정된 사항이었다. 1) 2001년 4월 11일 울산으로 연고지를 이전 → 2) 2001년 8월 31일 현대모비스로 모기업이 변경. 그래서 1)과 2) 사이의 얼마 안 되는 기간에 '울산 기아 엔터프라이즈'라는 구단명이 잠깐 사용되기도 했다. 울산기아엔터프라이즈 탄생의 의미[10]
물론 연고지 이전, 모기업 및 팀명 변경이 모두 비시즌에 이루어진 일들이라 정규 시즌에 '울산 기아 엔터프라이즈'라는 이름으로 참가한 적은 없다.
사실 주체만을 이관시킨 것이라 인수했다고 보긴 좀 애매하지만 형식상으로는 인수 대금을 지불했기 때문에 인수한 게 맞다.
프로농구 챔피언 결정전 최다 진출(10회) 및 최다 우승(7회), 한국프로농구 최초 3년 연속 우승의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2004년 전체 1순위로 KCC에 지명된 양동근은 R.F. 바셋 ↔ 무스타파 호프 트레이드 당시 모비스가 KCC의 1순위 지명권을 양도받게 됨에 따라 모비스에서 프로 데뷔를 하게 되었다. 이 선택은 모비스의 역사를 뒤바꿔 놓았는데, 그는 2년차인 2005-06 시즌에 팀을 정규리그 1위로 이끌었다. 아쉽게도 팀이 챔피언결정전에서 4전 전패 준우승을 당하면서 쓴 맛을 보기도 했지만 이때의 경험은 좋은 약이 되었고, 그 다음 해인 2006-07 시즌에는 전신 기아 엔터프라이즈의 원년 우승 이후 10년만의 통합 우승을 이끈다. 그후 상무에 입대하면서 팀은 하위권으로 추락했지만, 그가 복귀한 2009-10 시즌 2번째 우승을 달성, 2012-13 시즌부터 2014-15 시즌까지 5번째 우승을 일궈내면서 동시에 쓰리핏을 달성한다. 은퇴 바로 직전 시즌인 2018-19 시즌에 6번째 우승을 일궈내면서 기어코 다른 손에 우승반지를 끼게 되었다. 동시에 한국프로농구 최다 우승 선수로 등극하면서 프로농구 올타임 넘버원 레전드라는 걸 다시 한번 증명해낸다. 2019-20 시즌에는 주축 선수들을 트레이드로 떠나보내면서 팀을 이끌게 되었고 3시즌만에 두자릿수 평균 득점을 달성하였다. 덕분에 아직도 충분히 뛸 만하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시즌이 끝난 뒤 은퇴를 결정하면서 박수칠 때 아름답게 떠나게 된다. 2020년 10월 11일 은퇴식에서 영구결번식도 함께 치러졌다.
10. 우지원 (2002-2010)
농구대찬치 시절 연세대의 주축 멤버였던 우지원은 울산으로 연고지를 옮긴 후 혼란의 시기를 겪고 있던 모비스에서 활약하며 팀의 대표 선수로 거듭났다. 우지원은 암흑기였던 모비스 오토몬스 시절 유일하게 팀을 지탱했던 선수였던 만큼 팬들의 기억 속이나 구단에서의 대우도 김유택보다 훨씬 좋은 편.
14. 김유택 (1997-2000)
농구대찬치 시절의 스타 센터였던 김유택은 30대에 들어서 프로리그가 창설되자 기아자동차 농구단 선수로 활약했다. 2000년 은퇴와 동시에 김유택의 등번호 14번은 영구적으로 결번하기로 결정했는데 이는 한국프로농구 최초의 영구 결번이다. 다만 기아자동차 농구단의 운영 주체가 현대모비스로 바뀐 후 프런트가 기아 색채 지우기라고 해도 무방할 만한 행보를 보여주는 바람에 약간 빛이 바랬다.[17]
그래도 모비스는 기아 시절 우승 배너를 그대로 걸어 전신의 업적을 인정하고 있다. 전주체육관 천장에 현대 시절 우승 기념 배너도 KCC의 것으로 바꿔 단 KCC 이지스와는 대조적이다. 미국 LA 레이커스 같은 경우 한술 더 떠 초기 미니애폴리스 시절 우승 기록은 그대로 인정하면서 조지 마이칸 등 전설적인 선수들의 영구 결번마저 아예 없던 일로 해버렸다.
그래도 모비스는 명목상 기아자동차 시절을 계승하고 있으므로 그의 영구 결번도 계속해서 유효한 것이기는 하다.
당시 구단명은 부산 기아 엔터프라이즈. 참고로 정규 리그도 1위를 기록하며 최초의 우승 구단이자 통합 우승 구단이기도 하다.
이자 역대 최다 우승 기록을 가진 명문 구단이다. KBL에서 연속 우승 + 1990년대, 2000년대, 2010년대에 모두 우승한 기록을 가지고 있는 구단은 현대모비스와 KCC 둘 뿐이다. 특히 2012년부터 2015년까지 최전성기에는 한국프로농구 사상 최초로 3연속 우승의 3-peat을 달성했다.
초록우산 어린이 재단과 함께 '사랑의 바스켓 Mobis Love'라는 이름으로 연고지인 울산 지역 장애 학생들을 후원하는 행사를 하고 있다. 어시스트, 3점슛, 블록슛을 성공할 때마다 재단에 기금이 쌓이며 홈경기마다 관중들에게 자발적으로 기부 후원 행사가 열리고 있다. 시즌 종료 시점이나 플레이오프 기간 중에 한 시즌 동안 쌓인 기부금이 전달되며, 기부를 해준 관중들 중에서 추첨을 통해 현대모비스 측에서 현대자동차 또는 기아자동차 중 한 대를 선물한다.
2013-14 시즌부터 5년간 울산사회복지협의회에 5,000만 원씩 기부하는 등 다양한 사회 공헌 활동을 펼쳐오고 있다.
2017년 포항 지진이 일어나자, 12월 1일 홈경기 입장료 수익 전액을 포항 시민들을 위해 기부했다. 그리고 같은 금액을 구단 측에서 추가 기부하였다.
NBA 구단들이 경기 시작 전 홈 구단 선수를 소개할 때 하는 암전 및 코트빔쇼를 한국프로농구에 도입한 최초의 구단이다. 그리고 가장 퀄리티가 좋은 구단으로 평가 받고 있다.
프로농구 구단 중 숙소가 두 곳이나 있는 유일한 구단이다. 각각 경기도 용인과 연고지인 울산에 한 개씩 있다. 비시즌 또는 중부 지역 구단과 원정 경기를 할 때는 용인에서 생활하고 홈경기 및 남부 지역 구단과 원정 경기를 할 때는 울산에서 생활한다.
구단의 모기업이 '현대모비스'인데 정작 구단명은 현대가 빠지고 그냥 모비스였다가 2017년에 현대모비스라는 전체 명칭으로 바꿨다. 2001년 '대전 현대 걸리버스'가 '전주 KCC 이지스'로 바뀐 이후 프로농구에는 '현대'라는 명칭이 들어가는 구단이 없었다가 16년 만에 부활한 셈이다. 다만 모비스라는 구단명이 무려 16년간 존속했던 탓에 사람들의 입에 붙은 것과 더불어 현대모비스라는 정식 명칭이 긴 탓에[19]
비슷한 예로 대구 한국가스공사 페가수스가 긴 명칭 탓에 '가스공사'라는 약칭으로 많이 불린다.
여전히 그냥 모비스라고 불릴 때가 훨씬 많다. 농구판 현대가 더비(농구)의 한 축이기도 하다.[20]
울산의 축구단과 마찬가지로 범현대가 그룹의 계열사가 모기업이다. 걸리버스의 후신과 같은 연고지의 축구단도 마찬가지이다. 다만 전북 현대와 울산 현대모비스는 현대자동차그룹 소속이고 부산 KCC는 KCC그룹 소속, 울산 현대는 HD현대 소속이다.
그 이전에는 부산 기아 엔터프라이즈, 대우증권 제우스, 원주 나래 블루버드와 대전 현대 다이냇 등이 짧게나마 단수형 구단명을 유지했다. 얼마 안 가서 걸리버스로 변경했지만. 참고로 Dynat은 당시 인터넷 보급이 태동기였던 시기를 반영한 것인지 동적인 네트워크 어드레스 변환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이와는 별개로 Dynasty를 영어권에서 당시에 줄여 쓰던 말이기도 했는데 이것을 그대로 구단 명칭으로 차용한 것이라고 한다. 당시 분할 이전의 현대자동차에서 생산하던 현대 다이너스티를 홍보하기 위한 이름이었을 가능성도 있는 것이, 실제로 걸리버스라는 구단명도 당시 모기업에서 생산하던 휴대전화 현대 걸리버를 홍보하기 위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EGIS의 경우 아이기스에서 따 왔으며 이를 EGIS로 줄인 것이다. 대구 가스공사 페가수스는 날아다니는 말로 (PEGASUS) 영어에 가스가 들어간다. 사실 KBL은 각 구단의 역사를 찾아보면 고유명사나 단수 형태의 구단명을 썼던 흔적을 꽤 많이 찾아볼 수 있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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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별도의 독립 법인화 없이 실업 구단으로 모기업 법인에서 직접 운영했다.[2] 법인명 변경[3] 별도의 독립 법인화 없이 모기업 법인에서 직접 운영하고 있다. 한국프로스포츠협회에서는 그러한 형태의 구단을 '부서형 구단'으로 분류한다.[4] 현대모비스 대표이사 사장[5] 시즌 중에는 일정에 따라 울산에 머무를 때는 훈련은 홈구장인 동천체육관에서 하며 숙박은 울산 북구 양정동에 위치한 전용 숙소에서 한다.[6] 2020년 10월 이후로는 사용하지 않고 있다.[7] 아시아 각국의 최상위 농구 클럽 대항전으로 축구로 비유하면 AFC 챔피언스 리그격 대회이다.[8]농구대잔치 시절 '기아 왕조'라 불리던 강팀이었다. 1997년 한국프로농구 출범 시즌 우승 기록은 기아 시절의 것이다.[9] 이 정책으로 인하여 프로축구 전북 현대 모터스, 현대자동차 배구단을 모두 운영하던 현대자동차는 전북 현대 모터스만 운영하기로 하고 배구단은 현대자동차그룹 계열의 캐피탈 회사인 현대캐피탈로 이관되어 프로 출범 때 천안 현대캐피탈 스카이워커스가 되었다.[10] 물론 연고지 이전, 모기업 및 팀명 변경이 모두 비시즌에 이루어진 일들이라 정규 시즌에 '울산 기아 엔터프라이즈'라는 이름으로 참가한 적은 없다.[11] 2019-2020 시즌은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로 인한 정규리그 조기 종료로 우승 구단 없음.[12] KBL 역대 단일 팀 최장수 감독이기도 하다.[13] KBL 역대 최다 우승 감독이기도 하다.[14] 시즌 개막 기준.[15] 성적 부진으로 시즌 도중 자진 사임. 잔여 시즌은 장일 코치가 감독대행을 맡아 팀을 이끌었다.[16] 현대모비스 구단 역대 한 시즌 최다승 기록.[17] 그래도 모비스는 기아 시절 우승 배너를 그대로 걸어 전신의 업적을 인정하고 있다. 전주체육관 천장에 현대 시절 우승 기념 배너도 KCC의 것으로 바꿔 단 KCC 이지스와는 대조적이다. 미국 LA 레이커스 같은 경우 한술 더 떠 초기 미니애폴리스 시절 우승 기록은 그대로 인정하면서 조지 마이칸 등 전설적인 선수들의 영구 결번마저 아예 없던 일로 해버렸다.[18] 당시 구단명은 부산 기아 엔터프라이즈. 참고로 정규 리그도 1위를 기록하며 최초의 우승 구단이자 통합 우승 구단이기도 하다.[19] 비슷한 예로 대구 한국가스공사 페가수스가 긴 명칭 탓에 '가스공사'라는 약칭으로 많이 불린다.[20] 울산의 축구단과 마찬가지로 범현대가 그룹의 계열사가 모기업이다. 걸리버스의 후신과 같은 연고지의 축구단도 마찬가지이다. 다만 전북 현대와 울산 현대모비스는 현대자동차그룹 소속이고 부산 KCC는 KCC그룹 소속, 울산 현대는 HD현대 소속이다.[21] 그 이전에는 부산 기아 엔터프라이즈, 대우증권 제우스, 원주 나래 블루버드와 대전 현대 다이냇 등이 짧게나마 단수형 구단명을 유지했다. 얼마 안 가서 걸리버스로 변경했지만. 참고로 Dynat은 당시 인터넷 보급이 태동기였던 시기를 반영한 것인지 동적인 네트워크 어드레스 변환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이와는 별개로 Dynasty를 영어권에서 당시에 줄여 쓰던 말이기도 했는데 이것을 그대로 구단 명칭으로 차용한 것이라고 한다. 당시 분할 이전의 현대자동차에서 생산하던 현대 다이너스티를 홍보하기 위한 이름이었을 가능성도 있는 것이, 실제로 걸리버스라는 구단명도 당시 모기업에서 생산하던 휴대전화 현대 걸리버를 홍보하기 위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EGIS의 경우 아이기스에서 따 왔으며 이를 EGIS로 줄인 것이다. 대구 가스공사 페가수스는 날아다니는 말로 (PEGASUS) 영어에 가스가 들어간다. 사실 KBL은 각 구단의 역사를 찾아보면 고유명사나 단수 형태의 구단명을 썼던 흔적을 꽤 많이 찾아볼 수 있는 편이다.[22]원주 DB 프로미와 안양 KGC인삼공사도 단수형이기는 한데 모기업 캐릭터를 따라해서 세 구단과는 좀 다르다.[23] 공교롭게 한국가스공사 역대 감독 또한 모두 연세대학교 출신으로 양 구단은 감독이 서로 바뀌는 관계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