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충(남진)
덤프버전 : (♥ 0)
1. 개요[편집]
남북조시대 남량과 남진의 대신이다. 자는 장심(長深).
2. 생애[편집]
왕충의 본적은 낭야군(琅邪郡) 임기현(臨沂縣)으로, 동진의 명재상 왕도의 후손이다. 왕충의 조부 왕승연(王僧衍)은 남제에서 시중(侍中)을 지냈다. 부친인 왕무장(王茂璋)은 양나라에서 급사황문시랑(給事黃門侍郞)을 지냈다. 왕충의 모친은 양무제의 누이 신안목공주(新安穆公主)였다.
무제는 왕충이 일찍 모친을 잃었기에 왕충을 매우 총애하였다. 508년, 비서랑(秘書郞)으로 기용되었고 뒤이어 영가태수가 되었다. 입조하여 태자사인(太子舍人)이 되었다가 부친상으로 물러났고 상을 치른 뒤 태위 임천왕 소굉의 외병참군, 동궁영직(東宮領直)이 되었다. 태자세마(太子洗馬), 중사인(中舍人)까지 승진하였다
무릉왕 소기가 거병하여 협구(峽口)로 당도하고, 왕림(王琳)의 부하 육납(陸納) 등이 상주(湘州)를 거병하여 호응할 때 왕충은 육납에게 구류되었다. 육납이 항복한 뒤 왕충은 시중, 중권장군(中權將軍)으로 제수되고 좌사를 2명 두었으며, 단양윤은 예전과 같이 받았다.
554년, 강릉이 서위에 함락되고 소방지가 태재(太宰)로 임명된 뒤 왕충은 좌장사로 임명되었다. 소방지가 제위에 오른 뒤 소태 연간에 왕충은 좌광록대부, 상서우복야까지 옮겼으며, 뒤에 좌복야, 개부의동삼사로 옮기고 시중과 장군은 예전과 같이 받았다. 뒤에 다시 단양윤, 남서주대중정을 겸임했다.
557년, 진패선이 양나라의 마지막 황제 경제로부터 선양을 받아 제위에 올랐다. 왕충은 이때 단양윤에서 해임되고 좌광록대부를 겸하였다가 임명되기 직전에 태자소부를 겸하였다.
559년, 진문찬이 즉위하니 이가 제2대 황제인 문제였다. 왕충은 태자소부에서 해임되고 특진, 좌광록대부가 더해졌으며, 뒤에 다시 단양윤을 겸임하고 율령의 제정에 참여했다. 566년 진문찬의 태자 진백종이 즉위한 뒤 친신 10명이 더해졌다.
왕충은 567년에 사망하여 시중, 사공(司空)으로 추증되고 원간(元簡)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1-27 19:49:27에 나무위키 왕충(남진)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