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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조(낙랑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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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낙랑군 출신의 토착 호족[1] 이자 반란자. 신나라 - 후한 교체기에 자립을 꾀하였다.
2. 생애[편집]
경시제가 패망할 무렵인 25년 낙랑태수 유헌(劉憲)을 살해하고 대장군낙랑태수(大將軍樂浪太守)를 자칭했다. 당시 중국은 신나라가 막 멸망하고 후한이 들어서는 시기였기 때문에, 당시 광무제는 머나먼 낙랑군까지 신경을 쓸 틈이 없는 상황이었다.
30년, 광무제는 낙랑태수 왕준(王遵)을 파견했고 왕준은 요동에 이르게 된다. 이때 왕조에게 협력했던 군삼로 왕굉(낙랑군)과 군결조리 양읍(楊邑)이 왕조를 배신하고 그를 살해하면서 반란은 실패로 끝나게 되었다.
3. 기타[편집]
왕조가 낙랑군에 끼친 영향은 적지 않았다. 낙랑군의 동부도위가 폐지되면서 직접 지배가 아닌 옥저, 동예의 군장들이 다스리는 형식으로 바뀌게 되었다.
삼국사기에만 언급되는 최씨낙랑국과 최리가 이러한 낙랑군의 혼란[2] 과 연관된 것으로 보이나 확실히 밝혀진 바는 없다.
4. 관련 연구[편집]
권오중, 樂浪 王調政權 成立의 國際的 環境,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