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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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정치인. 상남초등학교(48회), 동명중학교(33회), 밀양고등학교(10회), 연세대학교 경영대학을 졸업하고 회계사로 근무하였다가 2006년 정계에 입문하였다.
2. 정치 활동[편집]
2006년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경상남도 밀양시에서 한나라당 후보를 249표 차로 꺾으며 열린우리당 당적으로 시장에 당선되었고 당시 최연소 지자체장 당선자였다. 참고로 이 선거에서 열린우리당 소속 기초단체장 당선자는 19명[8] 이었다. 노무현 당시 대통령은 밀양에서 열린우리당 시장이 배출되었다는 소식에 기뻐하여 2006년 9월 열린 시도지사·전국 기초단체장 간 정책 간담회에서 엄용수를 기초단체장 가운데서는 유일하게 메인 테이블에 앉히기도 했다.[9] 노무현 대통령 퇴임 첫 귀향행사는 물론 그 후에도 자주 자리를 같이 했는데, 노 전 대통령도 흡족하여 ""경남에 노무현의 종자들 가운데 딱 한 사람 엄 시장만 당선됐는데 이 종자도 괜찮은 종자니 여러분이 잘 키워주시라" "밀양을 제2의 고향으로 삼겠다"고 덕담하기도 했다. 그러니까, 놀랍게도 친노였고 그것도 노무현 대통령의 퇴임 직후를 지킨 유망주였다.
그러나 통합민주당으로 갔다가 2009년 1월 탈당[10] , 무소속을 거쳐 2010년 초 한나라당에 입당해 한나라당 당적으로 2010년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재선하였다. 2011년 3월말 동남권 신공항 문제로 잠시 시장직 사퇴를 선언했다가, 바로 며칠 뒤 번복하고 업무에 복귀하는 해프닝도 있었다. 2014년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는 불출마했다.
여담이지만 2010년 지방선거 당시 코미디언 엄용수(현재 이름 엄영수)가 이 엄용수를 지원유세한 적이 있다. 엄영수가 대체로 (구) 민주당 성향이란 걸 감안하면 그냥 개인적 친분과 동명이인인 점, 과거 경력 등이 감안된 듯.
2016년에는 뜬금없이 친박을 표방하며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경남 밀양시.의령군.함안군.창녕군 지역구에 출마하여 유승민계로 공천에서 탈락한 친여 무소속 조해진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같은 해 12월 19일 정우택 원내대표에 의해 원내부대표로 임명되었다.[11]
2017년 12월 정치자금법 위반죄로 불구속 기소되었다. 20대 총선을 앞둔 2016년 4월에 기업인이면서 함안선거사무소 책임자였던 안모(58)씨로부터 2억 원을 수수한 혐의. 2018년 11월 1일 당선무효형인 징역 1년 6월과 추징금 2억원을 선고받았다. 항소심과 상고심에서 1심 내용이 받아들여진다면 엄 의원은 의원직을 잃게 된다.# #2
홍준표 전 대표가 자신의 고향(창녕군)이 포함된 이 지역구에 자주 얼굴을 비추고 있어, 이 지역구를 노리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돌고 있다.[12]
2019년 8월 14일 항소가 기각되었다. #
2019년 11월 15일 대법원 판결로 징역 1년 6개월과 추징금 2억원이 확정되어 의원직을 상실했다. # 또한 잔여 임기가 1년 미만이었던 관계로 해당 지역구는 차기 총선까지 공석으로 남게 되었다. 결국 지역구는 탈당파 출신 조해진 의원에게 넘어갔다.
3. 논란[편집]
3.1. 폭언 및 상해 사건[편집]
2011년 밀양시장 재직 당시, 동남권 신공항 유치 반대 전단을 돌리던 밀양시민 윤모 씨에 폭행 및 상해를 입혀 700만 원의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당시 사건을 녹음한 기록에 의하면 "니 같은 시민 필요 없거든, 이 XX야" 등 폭언을 하였고, 윤 씨는 전치 4주의 상해를 입었다.관련기사
4. 소속 정당[편집]
5. 선거 이력[편집]
6. 둘러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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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밀양시·창녕군 선거구의 제19대 국회의원 이다.[2] 의령군·함안군·합천군 선거구의 제19대 국회의원 이다.[3] 선거법 위반으로 인한 의원직 상실. 잔여 임기 1년 미만으로 재보궐선거 미실시.[4] 선거법 위반으로 인한 의원직 상실. 잔여임기 1년미만으로 재보궐선거 미실시.[5] #[6] 피선거권 박탈로 인한 자유한국당 당적 상실[7] 의원직 상실[8] 수도권 기초단체장 선거에서는 박영순 구리시장 단 한 사람만 열린우리당 당적으로 당선되었을 정도로 우리당이 대폭망한 선거였다.[9] 노무현 대통령의 정치 신념이 지역감정 및 지역구도 탈피였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당시 엄 시장이 민주당계 정당 공천을 받아 경남에서 당선된 사실이 매우 기뻤을 수 밖에 없다. 참여정부 시기에는 100만 평방미터 규모의 하남일반산업단지 조성 등 여러 가지 역점 사업들을 손쉽게 따냈다.[10] 순서로 보면 노 전 대통령의 급작스러운 서거 전이다. 다만 시기가 TK지역 민주당 단체장들의 탈당과 맞물린 걸 보면 여당 차원의 회유와 압력이 있었을 수는 있다. 서거 다음날 비교적 무사히(?) 봉하마을 조문을 하기는 했다.[11] 이때부터는 특별활동비를 포함해 참여정부에 대한 비판적인 발언들을 꺼내기 시작하는 배은망덕함을 보이기도 했다. 굳이 따진다면야 조경태 같은 사례도 있지만, 조경태는 그래도 한때 친노 적자를 자임하기도 했고 노무현 대통령만큼은 욕되게 하지 않았다. 인터뷰에서는 "두 분의 공통점은 사명감이 투철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국민을 우선시 했고 박근혜 대통령은 국가 공동체를 우선시 했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문제."라는, 묘하게 그럴듯한 답변으로 눙치기도 했다.[12] 홍준표는 텃밭에 가까운 고향이 포함된 경남 밀양시·의령군·함안군·창녕군 지역구에 출마할거와 달리, 당의 의중으로 격전지인 경남 양산시 을 공천을 신청했으나, 나동연 전 양산시장에게 밀려 탈락하자, 대구 수성구 을 지역구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이 되었고, 이후 국민의힘 복당을 거쳐 2022년 현재 대구광역시장을 역임중이다.[13] 민주당과 신설 합당[14] 피선거권 박탈[15] 2009년 탈당, 한나라당 입당[16] 2019.11.15: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의원직 상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