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레시오 타키나르디
덤프버전 : (♥ 1)
분류
1. 개요[편집]
이탈리아의 은퇴한 축구선수로, 현역 시절엔 주로 중앙 미드필더나 수비형 미드필더에서 활약했다. 유벤투스의 중원에서 공격과 수비를 가리지 않고 맹활약했으며, 뛰어난 테크닉과 시야 및 전술 이해도를 바탕으로 딥-라잉 플레이메이커로서도 활약했다.
2. 클럽 경력[편집]
2.1. 아탈란타 BC[편집]
1992-93 시즌 아탈란타 BC에서 프로 선수 생활을 시작했으며, 1993년 1월 24일 안코나 FC를 상대로 세리에 A에 데뷔했다. 1993-94 시즌에도 서브로 뛰다가 1월 30일 밀란 경기를 기점으로 2월 한달간 주전 미드필더로 도약해 활약하지만 2월 27일 유벤투스 FC와의 경기를 마지막으로 잔여 경기에 뛰지 못하고 팀 역시 17위를 기록해 다이렉트 강등을 당한다.
2.2. 유벤투스 FC[편집]
하지만 유벤투스와의 경기에서 인상적인 활약을 했는지 당시 유벤투스의 단장
타키나르디가 본격적으로 비안코네리의 주전 미드필더로써 맹활약한건 1999-2000 시즌으로, 이후 약 5년간 2번의 스쿠데토와 2번의 슈퍼컵을 들어올리고 챔피언스리그에서도 결승전에 진출하는등 잠깐의 황금기를 맞이하게 된다.
2004-05 시즌 파비오 카펠로가 유벤투스의 감독으로 부임한 이후에는 교체 멤버로 입지가 떨어졌고, 타키나르디는 11년간 정들었던 유벤투스를 떠나 비야레알로 1년간 임대 이적하게 된다.
2.3. 비야레알 CF[편집]
2005-06 시즌 새로운 무대로 발을 들이게 된 타키나르디는 마르코스 세나와 함께 리켈메를 보좌하며 팀의 챔피언스리그 준결승을 이끄는 등 맹활약을 펼쳤다. 이후 임대가 만료되어 유벤투스 FC로 복귀했지만 칼치오폴리 사태로 유벤투스가 세리에 B로 강등당함에 따라 다시 1년을 연장하여 비야레알에서 더 뛰다가 다시 임대 복귀를 했으나 클럽과 계약이 틀어졌는지 2007년 8월 세리에 B의 브레시아 칼치오로 이적하게 된다.
2.4. 브레시아 칼치오[편집]
또 다시 새로운 무대에서 둥지를 튼 타키나르디는 주전으로 맹활약하면서 9골을 기록해 본인의 커리어하이를 만들었고 팀 역시 플레이오프에 진출하게 되지만 플레이오프 준결승전에서 UC 알비노레페를 상대로 탈락해 팀의 승격은 무산되었고, 타키나르디 역시 계약을 갱신하지 않고 그대로 현역 은퇴를 선언한다.
3. 국가대표 경력[편집]
타키나르디는 1995년 9월 6일 유로 1996 예선에서 슬로베니아를 상대로 국가대표 무대에 데뷔했다. 이후에는 친선경기나 메이저 대회 예선 무대에서 간간히 모습을 드러냈으나 메이저 대회에선 단 한번도 발탁되지 못했고, 이후 2003년 9월 10일 세르비아-몬테네그로와의 경기를 마지막으로 국가대표 유니폼을 벗었다.
4. 플레이 스타일[편집]
주로 중앙 미드필더나 수비형 미드필더로 출전하던 유벤투스의 레전드로, 강력한 킥력을 가져 중거리 슈팅은 물론 정확한 패스 능력을 갖췄던 선수였다. 187cm의 큰 키와 뛰어난 위치선정 능력으로 윙백 역할도 잘 수행했다.축구 지능이 뛰어나 태클이나 커팅에도 소질이 있었으며, 좋은 멘탈리티와 넓은 시야를 가져 딥라잉 플레이메이커의 역할을 소화할 수 있었다.
5. 은퇴 이후[편집]
은퇴 이후에는 U.S. 페르골레테세 1932나 브레시아 칼치오의 유스 감독을 맡았고, 2013년과 2015-16 시즌에는 U.S. 페르골레테세 1932의 감독으로도 활약했다.
6. 기타[편집]
유벤투스에서 11년동안 404경기를 뛰었고 유벤투스의 전성기에 일조한 미드필더답게 지금도 유벤투스의 레전드로 추앙받는다. 이후 2012년 유벤투스 스타디움 개장 이후 만들어진 명예의 거리 50인에 헌정되었다.
[1] 중앙 미드필더, 수비형 미드필더 , 윙어 , 윙백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2-08 01:44:08에 나무위키 알레시오 타키나르디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