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재윤(독립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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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심재윤.jpg
출생1904년 5월 10일
경상북도 달성군 옥포면 간경리[1]
사망1943년 12월 29일
경상북도 달성군
상훈건국훈장 애족장

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한국의 독립운동가. 201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편집]


심재윤은 1904년 5월 10일 경상북도 달성군 옥포면 간경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25년 3월 일본 도쿄로 건너가 노동을 하면서 세이소쿠 영어학교 야간부에 잠시 다녔다. 이후 귀국한 그는 1927년 3월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 노동을 수행하면서 와세다대학 전문부 경제과에 입학했다.

1927년 6월 동경조선노동조합 서부지부에 가입하고, 1928년 3월 '재일본조선노동총동맹 동경노동조합' 집행위원에 선임되어 노동운동에 종사하였다. 동년 4월 재동경고려공산청년회 일본부 다카다 야체이카 책임자 박득룡의 권유로 고려공산청년회 일본부에 가입하여 다카다 야체이카에 배속되어 동경조선노동조합 서남부지부 프랙션 책임자로 활동하였다.

1928년 6월경 신간회 동경회관에서 동경구 위원회가 열렸을 때, 고려공청 일본부 동경구 센다가야 야체이카책으로 임명되었다. 동년 8월 조선공산당 일본총국이 주도한 국치일 기념투쟁에 참가했다가 1929년 1월 요코스카 경찰서에 체포되었다. 1930년 11월 25일부터 1931년 3월 31일까지 동경지방재판소에서 수차례의 공판이 진행되어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 6월(미결구류 200일)을 받았다.

1931년 4월 8일 동 지방재판소에 공소를 제기하였으나 1932년 1월 동경공소원에서 기각되어 지바[千葉] 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다가 1933년 3월 출옥하였다. 이후 국내로 돌아와 만주, 천진, 연안 등 중국과 국내를 오가며 군자금 모금과 독립군 모집 등을 전개하였다. 1943년 12월 29일 달성군에서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0년 심재윤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