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윌리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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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프로필[편집]
2. 소개[편집]
전일본 프로레슬링에서 활약한 일본 프로레슬링 사상 최강의 용병 중의 한 명.
3. 일대기[편집]
3.1. 입문 이전[편집]
고등 학생 시절부터 만능 스포츠인으로 여러 스포츠 분양에서 두각을 나타내던 윌리엄스는 스포츠 명문 대학인 오클라호마 대학교에 입학해 아마추어 레슬링을 통해 2회의 올 아메리칸에 뽑히는 대활약을 한다. NCAA에도 참가하지만 이미 프로레슬링에 관심을 두고 있어서 우승은 차지하지 못했다고 한다.
3.2. 미국 시절[편집]
1982년 미드 사우스 레슬링에 데뷔한 윌리엄스는 태그팀 선수로 활약했고, UWF에서 헤비급 챔피언에 오르는 등 준수한 활약을 보인다. 이후 테리 고디와 마이크 로툰다[2] 를 파트너로 삼아 NWA와 WCW에서 활약하며 여러 차례의 태그팀에 등극하는데 성공한다.
3.3. 전일본 프로레슬링[편집]
NWA와 WCW에서 활약을 하면서 전일본 프로레슬링에 출장 가서 용병으로 활약을 하는데 아마추어 레슬링으로 다져진 훌륭한 테크닉을 바탕으로 90년대 최고의 경기력을 자랑하던 전일본 프로레슬링에서 그 실력을 마음껏 뽐내며 독보적인 외국인 용병의 지위를 누리게 된다.
![파일:attachment/1129431254_back.gif](https://lh3.googleusercontent.com/-sTHz8Fuzpdg/WvBSLDeSDhI/AAAAAAACcGo/0itZxjjEJSUEQE5Wf3sjbs6XZpdA4S7kQCHMYCw/s0/ffa51e86ca315842416502725380c91b4d75f1c7.gif)
용병 생활 기간 중에 미사와 미츠하루를 이기며 삼관 헤비급 챔피언에도 오르며 인생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는데 이때 잠시 ECW에 나와 레이븐과 ECW 월드 챔피언전을 치르기도 했다.
3.4. WWE[편집]
1998년 WWF와 계약하면서 활동하게 되지만 당시 열린 실제 권투 시합인 브롤 포 올에 나갔다가 부상당해 제대로 된 활약을 하지 못한 채 방출당하게 되고, 1년 뒤인 1999년 WCW에 출연하기 시작했지만 역시 큰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다가 2002년 전일본으로 복귀한다.
3.5. 은퇴와 사망[편집]
2004년 인후암이 발견되면서 결국 프로레슬러로서 잠정 은퇴를 선언한다. 인후암은 그 다음 해 치료에 성공했고, 이후 WWE와 트레이너 계약을 맺은 뒤 OVW에 배치받아 후진을 양성에 힘을 쓴다. 이 때 동문 후배인 제이크 해거를 여러모로 도와주었으며 동시에 인디 단체 흥행에도 간간이 참가한다. 2009년 오랜 동료였던 미사와 미츠하루가 경기 중 사망하게 되면서 완전은퇴를 결심하고, 그해 10월 도쿄에서 마지막 흥행을 통해 선수에서 완전히 은퇴한다. 하지만 인후암의 재발로 건강은 나날이 악화되었고, 2009년 12월 12일 열린 K&S 레슬페스트 레슬링 컨벤션에 출연을 마지막으로 12월 29일 해를 넘기지 못한 채 향년 4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4. 업적[편집]
레슬링 옵저버 뉴스레터
5성 경기 3회(vs 코바시 켄타, 1993), (&쟈니 에이스 vs 미사와 미츠하루&코바시 켄타, 1995), (&쟈니 에이스 vs 미사와 미츠하루&아키야마 준, 1996)
1996년 올해의 경기
1985년 가장 성장한 레슬러
1982년 올해의 루키
레슬링 옵저버 뉴스레터 명예의 전당 헌액(2011년)
1992년 올해의 태그팀(&테리 고디)
PWI
1985년 가장 성장한 레슬러
1992년 올해의 태그팀(&테리 고디)
5. 여담[편집]
- WCW 활동 시절 한 후배와 이름이 동일했는데 결국 그 후배는 이름을 개명했다. 그리고 그 후배는 다름 아닌 스톤 콜드 스티브 오스틴. 정작 인지도에선 후배가 이 인물보다 훨씬 높다.
- 2004년 K-1에서 알렉시 이그나쇼프와 대결했으나 패배한 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