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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를로트 아글라에 도를레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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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루이 14세의 조카이자 루이 15세의 섭정인 오를레앙 공작 필리프 2세와 루이 14세의 서녀 프랑수아즈 마리의 딸.
모데나 레조 공국의 공작 프란체스코 3세와 결혼해 에르콜레 3세를 낳았다.
2. 생애[편집]
1700년 10월 22일 오를레앙 공작저 팔레 루아얄에서 태어났다. 샤를로트 아글라에는 프랑스 궁중에서 마드모아젤 드 발루아로 불렸다. 그녀는 예쁘다고는 할 수 없는 외모였으나, 개성적인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결혼 적령기가 되자 샤를로트 아글라에의 혼사는 온 가족의 관심사가 되었다. 어머니 프랑수아즈 마리는 그녀가 친척인 동브 공 루이 오귀스트 드 부르봉과 결혼하길 바랐으나 샤를로트 아글라에는 혼담을 거절했다. 그도 그럴 게 이미 리슐리외 공작 루이 프랑수아 아르망 드 비뉴르 뒤 플레시스와 연인 사이였기 때문이다. 샤를로트 아글라에는 리슐리외 공작과 결혼을 생각했으나, 호색한인 리슐리외 공작은 그녀 외에도 애인을 여럿 두고 있었다.
한편 아버지인 오를레앙 공작 필리프 2세는 샤를로트 아글라에를 모데나 레조 공국의 공작과 정략 결혼시키기로 결정했다. 모데나 공작 프란체스코 3세는 그녀의 초상화를 보고 푹 빠져 바로 혼담을 추진시켰다. 샤를로테 아글라에는 프랑스를 떠나고 싶지 않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1720년 2월 11일 튈르리 궁에서 대리 결혼이 진행되었고 샤를로트 아글라에는 180만 리브르라는 막대한 지참금을 받고 모데나 레조 공국에 도착했다. 부부는 슬하에 10명의 자식을 두었다.
샤를로트 아글라에는 갑갑한 모데나에서 매우 지루해했다. 그러던 1727년 어느날, 행상인으로 위장한 리슐리외 공작이 그녀를 방문했다. 둘은 불륜을 저질렀고 얼마 안 가 발각되었다. 샤를로트 아글라에는 남편의 명으로 프랑스로 돌아갔다. 친정 식구들은 불명예스럽게 돌아온 그녀를 냉담하게 대했다. 루이 15세는 그녀를 궁정의 변두리에서 살도록 했고, 어머니는 딸을 냉대했다. 결국 샤를로트 아글라에는 모데나로 돌아갔지만 종종 프랑스를 다시 방문하기도 했다. 이후 남편이 다른 여자를 만난다는 걸 알게 된 뒤로는 유럽을 여행하는 등, 자유롭게 지냈다. 그리고 1761년 1월 19일 고향 프랑스에서 숨을 거두었다.
3. 가족관계[편집]
3.1. 조상[편집]
3.2. 자녀[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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