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헬미네 아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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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 요제프 1세의 황후.
폴란드의 왕비 마리아 요제파와 신성 로마 제국 카를 7세의 황후 마리아 아말리아의 어머니다. 영국의 조지 1세와 사촌지간이며[1] 프랑스의 루이 16세의 외증조할머니다.
2. 생애[편집]
1673년에 하노버에서 브라운슈바이크칼렌베르크 공작 요한 프리드리히의 4녀이자 막내딸로 태어났다. 6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가족들과 함께 프랑스의 수도원에 들어가서 교육을 받았다.
1693년에 하노버에 돌아온 빌헬미네는 신성 로마 제국의 황태자인 오스트리아의 요제프 대공의 신붓감 후보가 되었다. 빌헬미네는 요제프보다 5살이나 더 많았지만 황후 엘레오노레 마그달레네는 빌헬미네를 마음에 들어했다. 빌헬미네는 아름다웠으며 독실한 가톨릭교도였는데, 신앙심이 깊은 엘레오노레 마그달레네는 아름답고 경건한 빌헬미네라면 방탕한 아들을 바로잡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1699년에 26살의 빌헬미네는 21살의 요제프 대공과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생활은 처음에는 행복했지만 점차 불행해졌다. 요제프 대공은 어머니의 꾸짖음에도 끊임없이 애인을 만들었다. 남편의 외도에 괴로워하던 빌헬미네는 유일한 아들인 레오폴트 요제프가 요절하면서 큰 충격을 받았다.
1705년에 남편이 요제프 1세로 즉위하면서 빌헬미네는 황후가 되었다. 황후로써 마땅히 후계자를 낳아야 할 의무가 있었지만 빌헬미네는 더는 임신을 할 수 없었다. 1704년 경에 문란한 성생활을 하던 요제프 1세는 매독으로 추정되는 성병에 걸렸고, 이를 아내에게 옮겨 빌헬미네가 불임이 되었기 때문이다. 황후로써 입지가 약한 빌헬미네는 시어머니 엘레오노레 마그달레네에게 밀려 정치적 영향력을 갖지 못했다. 이는 요제프 1세가 사망한 1711년 이후로도 마찬가지였다.
요제프 1세 사후 그의 동생인 카를 6세가 황제가 되었다. 카를 6세 또한 후계자가 될 아들을 가지지 못하고 있었다. 카를 6세는 1713년 국사조칙을 발표해 황실의 여성 구성원도 계승권을 인정받을 수 있게 했다. 이때 카를 6세는 통치자의 적장자가 없으면 적장녀가 계승을 할 수 있다고 표현함으로써 요제프 1세의 딸들보다 자신의 딸들이 계승에 있어 우위를 점하게 만들었다. 빌헬미네는 항의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두 딸이 시집을 간 후 빌헬미네는 수도원에 들어갔다.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이 발발했을 때 잠시 자신의 사위인 카를 알브레히트를 지지했지만 얼마 안 가 다시 수도원으로 돌아갔다. 1742년에 숨을 거둔 빌헬미네는 수도원에 안장되었다.
3. 가족관계[편집]
3.1. 조상[편집]
3.2. 자녀[편집]
4. 여담[편집]
- 남편의 정부를 매우 증오했다. 남편 요제프 1세가 사망한 후 곧바로 남편의 정부에게 가 그녀가 요제프 1세에게 받은 보석을 모두 압수하고 다신 자신의 눈앞에 나타나지 못하게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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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빌헬미네의 아버지 요한 프리드리히가 조지 1세의 아버지인 하노버의 선제후 에른스트 아우구스투스의 형이다.[2] 작센 선제후 프리드리히 크리스티안, 프란츠 크사버 왕자 등[3] 바이에른 선제후 막시밀리안 3세 요제프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