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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고리오 알레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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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르네상스 시대와 바로크 시대의 중간 시대에 위치하는 이탈리아 출신 작곡가이다.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의 일화로 더욱 유명해진 인물.
2. 생애[편집]
로마에서 태어나 평생을 로마에 있으면서 교황 우르바노 8세를 위해 일했다. 9살부터 로마에서 소년 합창단원에 있었고 14세부터 22세까지는 로마의 산 루이지 데이 프란체시 성당에서 테너로 활동했다. 그 후 30살이 될때까지 작곡가 조반니 나니니의 문하에서 공부했다.
1607년부터 21년까지는 페르모에서 가수 겸 작곡가로 일했고 티볼리로 일터를 옮겼다. 후에 46세가 되던 1628년에는 로마의 산토 스피르토 성당의 악장직에 오른다. 그후 2년 뒤에는 우르바노 8세의 합창단에 들어갔으며, 많은 합창곡을 작곡하였다.
3. 작품[편집]
3.1. <Miserere mei>[편집]
Miserere Mei, <미세레레>
시편 51편을 베이스로 한 성가로, 길이 15분에 이중 합창단을 사용한 장엄한 작품이다. 이 곡의 고음부 작곡법을 보면, 두 합창단의 역할이 마치 관현악단에서 서로 대결하는 악기군 같다. 이것은 협주곡의 탄생을 예고하는 듯하다. 또한 당시에는 파격적인 기법인 최고음을 높은 C까지 올려 더욱 경건하고 신적인 음악이 되었다.
탁월한 작품이고 또 인기도 좋아서 매년 시스티나 경당의 성주간[2] 미사에서 반드시 연주하는 곡이 되었다. 특히 이 악보는 보관에 경비까지 붙였고, 단 3부의 필사본만이 존재하였다는 전설이 붙어 있다. 심지어는 이 악보를 함부로 복사하는 것은 중죄이자, 일종의 신성모독이었으며, 오로지 시스티나 성당에서만 연주/청음할 수 있는 곡이라는 전설조차 존재한다.... 곡이 작곡된 지 100년 뒤 1770년 로마를 방문한 14살의 어느 한 천재 소년이 한 번 듣고 기억만으로 악보를 완벽히 필사해 내기 전까지는. 현재는 15개의 판본이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본 미제레레에 대해 유출이 금지되었다거나 하는 전설들은 실제로는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매우 높다. 오히려 이는 당대의 음악 소비의 관행에 대한 몰이해와, 이를 넘어선 본 곡의 인기가 결합되어 낭만주의 시대에 형성된 전설에 가깝다.
당시 기독교의 입장에서는 미술도 음악도 수단이었다. 즉 아름다운 성화도, 아름다운 성가도, 그 아름다움이 지나치면 신앙에 방해가 된다는 논리였다. 성모 마리아가 지나치게 예쁘다거나 예수 그리스도가 너무 잘생겼더나 하면 교회에 기도하러 가는 게 아니라 그거 보러 가게 되니 말이다. 제보다 젯밥에 관심이 가는 거야 본능이니까... 이로 인해 중세시대엔 예술의 미적 감각이 제한되었고, 르네상스 시대엔 아름다움은 그 자체로 가치가 있다, 아름다움이 주를 찬미할 수 있다 등의 사상이 나타난 뒤에야 예술이 꽃필 수 있었다. 아무리 멋진 그림과 노래를 뽑아도 물주가 뭐하는 짓이냐며 퇴짜를 놓으면 끝이니까.
3.1.1. 가사[편집]
4.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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