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쇼2에서 넘어왔습니다.
마리아 안눈치아타
덤프버전 : (♥ 1)
1. 개요[편집]
양시칠리아 왕국 페르디난도 2세와 오스트리아의 마리아 테레지아 여대공의 넷째이자 장녀. 프란체스코 2세의 이복동생이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초대 황제 프란츠 요제프 1세의 동생 카를 루트비히 대공과 결혼했다. 사라예보 사건으로 유명한 프란츠 페르디난트의 어머니고, 마지막 황제였던 카를 1세의 할머니다.
2. 생애[편집]
1843년 3월 24일에 양시칠리아 왕국 카세르타 궁전에서 페르디난도 2세의 장녀로 태어났다. 애칭은 촐라(Ciolla). 어머니와 비슷한 성격이었던 마리아 안눈치아타는 조용하고 내성적이었다.
1859년 5월 22일, 아버지 페르디난도 2세가 사망하고 이복오빠 프란체스코 2세가 즉위했다. 그 무렵 이탈리아 반도에는 사르데냐-피에몬테 왕국을 중심으로 통일의 조짐이 보이고 있었다. 주세페 가리발디의 침략과 샤르데냐 국왕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의 남하로 인해 1861년에 양시칠리아 왕국은 사르데냐-피에몬테 왕국으로 편입되었다. 마리아 안눈치아타의 가족들은 교황령으로 망명했다. 일가는 교황 비오 9세의 비호 아래 퀴리날레 궁에서 머물렀다.
그로부터 1년 뒤인 1862년 10월 21일, 베네치아에서 프란츠 요제프 1세의 동생 오스트리아의 카를 루트비히 대공과 결혼했다. 결혼식 이튿날 미사 도중에 마리아 안눈치아타는 시댁 식구들이 모두 있는 자리에서 간질 발작을 일으켰다. 몸이 약한 마리아 안눈치아타는 결핵을 앓고 있었다. 카를 루트비히의 어머니 바이에른의 조피는 며느리의 몸 상태가 많이 안 좋다는 걸 눈치채고 온화한 기후의 고리치아-그라디스카 후백국에서 지낼 것을 권했다. 부부는 그 말에 따랐다.
아이들을 낳으면서 마리아 안눈치아타의 건강은 점점 안 좋아졌다. 첫아이 프란츠 페르디난트를 낳은 뒤에는 조울증 증세를 보이기도 했다. 병을 옮길까 염려된 마리아 안눈치아타는 아이들을 멀리했다.
1870년에 네 번째 아이를 낳은 뒤 병세가 위독해졌다. 그리고 1871년 5월 4일, 고통에 시달리던 마리아 안눈치아타는 28세의 나이에 결핵으로 숨을 거두었다.
3. 가족관계[편집]
3.1. 조상[편집]
3.2. 자녀[편집]
4. 여담[편집]
- 시어머니 바이에른의 조피는 맏며느리 엘리자베트 황후를 괴롭힌 악독한 시어머니로 유명하지만 셋째 며느리인 마리아 안눈치아타와는 잘 지냈다고 한다.
- 마리아 안눈치아타가 죽고 2년 뒤 카를 루트비히 대공은 포르투갈의 공주 마리아 테레사와 재혼했다. 그리고 마리아 테레사와의 사이에서 낳은 첫아이인 딸의 이름을 마리아 안눈치아타라고 지었다.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1-26 19:14:15에 나무위키 마리아 안눈치아타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