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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니노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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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1. 개요[편집]
후시미노미야 구니이에 친왕의 4남 구니노미야 아사히코 친왕이 개창한 궁가로, 구 미야케 11곳 중 하나이다. 현 나루히토 덴노의 할머니인 고준 황후의 친정이기도 하다.
2. 상세[편집]
가문이 매우 번창한 관계로 신적강하 당시 3대 당주 아사아키라 왕(朝融王) 본인[1] 과, 어머니 치카코(俔子), 숙모 시즈코(静子)[2] , 3명의 아들들, 5명의 딸들 중 장녀 마사코(正子)를 제외한 딸들[3] 이 함께 강등했다.
3. 역대 당주[편집]
4. 1947년 신적강하와 그 이후[편집]
후시미노미야 구니이에 친왕의 4남 아사히코(朝彦)가 개창한 궁가로, 현 나루히토 덴노의 할머니인 고준 황후의 친정이기도 하다. 적장자가 있다. 현 4대 당주는 구니아키(邦昭, 1929-, 95세)
[1] 왕비 도모코(知子)는 신적강하 4개월 전에 40세의 나이로 운명했다. 그녀는 후시미노미야 히로야스 왕의 제3왕녀였다.[2] 구니요시 왕의 이복동생인 다카(多嘉)왕의 부인, 다카 왕과 사이에서 3남 3녀를 두었으나, 무사히 성인까지 자란 사람은 2남 1녀였다. 차남과 삼남의 이름이 이에히코(家彦), 노리히코(徳彦)인데 각각 1942년, 1943년에 신적강하를 신청하여 우지(宇治), 타츠타(龍田) 백작가를 창시하여 구니노미야에서 이탈했다. 물론 아들들도 황족들이 신적강하 당할 때 평민으로 강등을 당했다. 노리히코는 후에 1966년 나시모토노미야에 양자로 들어가 2007년에 죽을 때 까지 나시모토노미야 당주를 지냈다.[3] 마사코는 1945년에 5촌 당숙인 타츠타 노리히코와 결혼하여 가문을 이탈하여 이미 타츠타 백작가로 출가한 상태였다. 물론 이 당시 화족제도도 폐지되면서 마사코도 평민으로 강등당했다. 다만 마사코는 남편과 이혼한 이후부터는 본성이었던 구니로 돌아왔다.[4] 작은아들은 독신이고, 큰아들은 결혼했지만, 자녀가 없다.[5] 아사아키라의 3남이자, 구니아키의 작은 남동생인 아사히로(朝宏, 1944-, 79세) 왕에게도 남자 자손이 없지만, 2018년에 인터뷰에서 한 증언에 의하면 해당년도 기준으로 부계로 가문을 이어줄 구니아키 형제의 손자세대의 남자는 유치원에 들어가기 전의 남자아이 1명뿐(2015년생, 현재 9세)이라고 밝혔다. 그 아이가 아사아키라의 차남이자, 구니아키의 큰 남동생인 아사다케(朝建, 1940-, 84세) 왕의 아들인 아사토시(朝俊, 1971-, 53세)의 아들이다. 하지만 그 존재가 자세히 언급되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