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희궁 양덕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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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경희궁의 동궁으로, 왕세자와 그 가족들이 머물던 처소였다.
위치는 경희궁 동궁의 정당(正堂)인 경현당의 북쪽이었다. 지금의 서울역사박물관과 박물관 주차장 사이로 추정된다.
'양덕(養德)'은 '덕(德)을 기른다(養)'는 뜻이다.
2. 역사[편집]
처음 건립된 시기는 알 수 없으나 1620년(광해군 12년)에 경희궁이 창건될 때 같이 지은 것으로 보인다.
동궁의 처소 중 하나였으나 경현당에서 행사가 있을 때 준비 공간으로 사용하기도 하고, 사도세자의 어머니인 영빈 이씨와 세자빈 혜경궁 홍씨가 머물기도 했다. 영빈 이씨는 1764년(영조 40년) 7월에 이 곳에서 세상을 떠났다.#
1818년(순조 18년)에는 왕대비 효의왕후가 거처하면서 덕화전(德和殿)으로 이름을 고쳤다. 1860년대 고종 시기 경복궁을 재건할 때, 경희궁 건물들을 헐어다 자재로 쓰면서 철거되었다.
서궐(경희궁) 내에는 숭정전, 회상전, 정심합(正心閤), 사현합(思賢閤), 흥정당만 남기고 그 나머지는 모두 헐었다. 목재를 가져오니 다수가 썩었다. 이 가운데 좋은 것을 골라서 (경복궁의) 나인간(內人間)과 각사의 건조에 사용했다.
《경복궁 중건일기》
3. 구조[편집]
정면 4칸, 측면 3칸의 총 12칸 건물로 남향을 하고 있다. 처마는 겹처마에 지붕은 팔작지붕이다. 용마루와 내림마루, 추녀마루는 양성바름을 한 뒤 그 위에 취두와 용두, 그리고 잡상을 얹었으며 기둥은 네모나게 깎아 세웠다. 양쪽 가장자리 칸은 온돌로, 그 사이 가운데 칸은 대청으로 꾸몄다. 대청이 있는 칸엔 툇마루를 밖으로 드러나게 했다.
- 동쪽에는 함춘헌(咸春軒)이, 그리고 서쪽으로는 안희헌(安喜軒)이 있었으며 양덕당 영역을 구분하는 행각의 역할도 했다. 안희헌의 북쪽에는 삼선문(三善門)이 있고, 남쪽에는 경현당과 연결되는 숭덕문(崇德門), 동북쪽엔 계명문(繼明門)이 있다.[2] 그리고 남쪽과 북쪽은 일반 담장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단, 북쪽 담장의 서쪽 끝은 행각과 이어지지 않고 문도 없이 완전히 열려있는 형태라 다른 문을 거치지 않고도 바로 뒤뜰을 통해서 양덕당 영역을 출입할 수 있었다.
[1] 출처 - 국립고궁박물관. 이 링크에서 다운로드가 가능하다.[2] 단, 계명문은 화계 안의 숲으로 들어가는 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