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1오룡호 침몰사고

덤프버전 :

주의. 사건·사고 관련 내용을 설명합니다.
이 문서는 실제로 일어난 사건·사고의 자세한 내용과 설명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파일:external/newsquare.cafe24.com/sajo_web.jpg

501오룡호 침몰 지점

501오룡호 침몰사고
발생일2014년 12월 1일 13시 40분 경
발생 위치러시아 서배링 해 해상
유형선박침몰
원인기상악화
인명피해사망53명 (실종자 26명 포함 시)
실종26명
구조7명
선종트롤선(어선)
선명501오룡호
선사사조산업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선적(船籍)알 수 없음
건조알 수 없음, (스페인)
건조 연도1978년[1]

1. 개요
2. 진행 상황
2.1. 2014년 12월 1일
2.2. 2014년 12월 3일
2.3. 2014년 12월 4일
2.4. 2014년 12월 8일
2.5. 2014년 12월 26일
2.6. 2014년 12월 31일
2.7. 2015년 1월 5일
2.8. 2015년 1월 9일
2.9. 2015년 1월 30일
2.10. 2015년 2월 5일
2.11. 2015년 2월 13일
2.12. 2015년 3월 10일
2.13. 2015년 6월 3일
3. 원인
4. 기타
5. 관련 문서
6. 둘러보기



1. 개요[편집]


파일:external/img.yonhapnews.co.kr/PYH2014120112210001300_P2.jpg

침몰 사고 전 촬영한 사고선.

2014년 12월 1일에 베링해 해상에서 발생한 선박 침몰사고다.

한때 러시아 당국과 수색했으나 높은 파도와 강한 바람 때문에 접근이 어려웠다. 베링해 기상 상황은 이 곳을 통해 실시간으로 볼 수 있다. 12월 4일 날씨는 안개에 비....

선장은 마지막 교신에서 같은 해에 선장으로서의 책임을 내던진 자와 다르게 배와 끝까지 함께 가겠다고 했고 이후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2. 진행 상황[편집]



2.1. 2014년 12월 1일[편집]


사조산업의 1,753t급 명태잡이 트롤선[2]인 '501오룡호'가 1일 오후 1시 40분에 러시아 서베링 해에서 침몰했다. 승선자는 한국인 11명, 인도네시아인 35명, 필리핀인 13명, 해안경비대 소속 러시아인 감독관 1명으로 총 60명이 타고 있었으며 기상 상황이 여의치 않아 수색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였다. 침몰 원인에 대해서는 자세히 밝혀지지 않았다.


2.2. 2014년 12월 3일[편집]


11구의 시신이 추가로 수습되었다. 3명은 한국 선원으로, 냉동사와 2항사, 3항사인 것으로, 7명은 인도네시아 선원, 1명은 필리핀 선원인 것으로 확인되었다. 관련 기사


2.3. 2014년 12월 4일[편집]


3구의 시신이 추가 수습되었다고 알려졌으나 후속 기사에서는 8구의 시신을 찾아냈다고 보도했다.

구체적인 침몰 상황이 밝혀졌다. 오룡호는 1차 침수 후 배수작업으로 잠깐 안정을 찾았지만 곧 2차 침수가 발생하는 바람에 이런 사고가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교신 내용을 보면 고기를 붓다가 바닷물이 갑자기 들어왔으며 처음에는 선원들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으나 배수를 하던 중 어획물이 배수구를 막아 물을 제대로 빼지 못해서 배가 기울기 시작했고 조타실(steering room)에도 물이 들어와 통제할 수 없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후 물을 퍼내며 상황이 진화되는 듯 싶었으나 무슨 일인지 어획물 처리장에 물이 더 들어와 구조 요청을 했다.

당시 김 선장은 동생에게 "세월호 때처럼 침몰하고 있다"며 침착하게 선원들을 구조하고 빠져나오라는 동생의 말에 "선원들 저렇게 만들어놓고 내가 무슨 면목으로 살겠느냐"고 낙담한 듯 말했다. 이후 별일 아닐 거라며 나중에 술 한잔 하자는 이 선장의 설득에 알겠다고는 말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오후 5시 15분에 북위 61도 54분, 서경 177도 10분 위치에서 침몰했다.

구조요청을 받고 되돌아온 카롤리나 호는 사고 현장 주변에서 러시아 감독관과 외국인 선원 등 5명을 구조했으나 이장순 조기장은 구조 후에 결국 저체온증으로 숨졌다. 관련 기사


2.4. 2014년 12월 8일[편집]


501오룡호의 선장, 1등 항해사 등의 자격이 미달로 밝혀졌다. 필요한 통신사는 없는 채로 그냥 출항했다고(...). 기사에 따르면 선장은 언론에 알려진 사람과 다른 사람이라고 되어 있다.관련 기사


2.5. 2014년 12월 26일[편집]


501오룡호의 생존선원 6명과 시신 21구를 태운 러시아 어획물 운반선 오딘호가 오전 10시 30분쯤 부산 감천항에 도착했다. 이에 따라 사고 원인에 대한 본격적인 조사가 시작됐다.

생존 선원 6명은 도착 후 인근 병원에서 곧장 건강검진을 받았고 시신들은 부산진구 시민장례식장에 안치됐다. 선원들은 27일부터 이틀 동안 참고인 신분으로 부산해양경비안전서에서 침몰 상황과 탈출 경위 등 사고 전반에 대해 조사를 받게 되었다.기사


2.6. 2014년 12월 31일[편집]


임채옥 사조산업 이사는 "지난 30일부터 사고해역에 4∼5m의 높은 파도가 일고 초속 15m의 강풍이 불면서 북극해의 유빙이 떠내려와 수색선이 위험하다고 판단, 인근으로 피항시킨 상태"라고 밝혔다. 사실상 철수한 것이다.#


2.7. 2015년 1월 5일[편집]


오룡호 사망·실종선원 비상대책위원회(위원장 고장운) 소속 선원 가족 30여명은 오전 9시 전세버스편으로 상경했다. 이들은 이날 오후 서울 충정로 사조산업 본사 앞에서 피해 선원들에 대한 위로금 지급 협상이 난항을 겪은 데다 조기 수색 종료 등 선사인 사조산업의 사고 처리 과정에 대한 불만을 나타내며 시위할 계획이었다.#


2.8. 2015년 1월 9일[편집]


부산해양경비안전서는 이날 "수색작업에 참여했던 동해해양경비안전서 소속 경비함 5001함이 96오양호에 있던 한국인 선원 시신 6구를 넘겨받아 5일 새벽 3시 10분께 베링해에서 출항한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고장운 실종자·유가족 비상대책위원장은 “한국인 5명 등 실종 선원 26명을 모두 찾을 때까지 주검 인수를 거부한다는 방침이지만, 주검 인수 여부를 놓고 선택의 기로에 서 있는 게 가족들의 솔직한 심정”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다른 선원 가족들과 좀 더 의논한 다음 주검 인수 여부를 결정할 생각이다. 정부와 사조산업 누구도 실종자 수색 작업 재개 여부에 대한 답을 해주지 않아 갑갑하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사조산업은 “러시아와의 어업협정이 종료돼 수색작업이 불가능하다. 또 현재 서베링해에는 떠다니는 얼음 덩어리가 많아 일반 선박들은 항해하기 힘들다. 수색을 하려면 쇄빙선을 투입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2.9. 2015년 1월 30일[편집]


오룡호 가족 측에 따르면 사조 측은 가족들이 서울 서대문구에 위치한 본사 앞에서 집회를 하려고 자리를 비운 사이 본사 건물의 주출입구 쪽을 직원들로 막았다. 당초 본사 건물에서 생활을 이어가던 오룡호 가족들은 통보도 없이 출입을 제지당했다. 가족들은 스티로폼과 비닐 등만 소지한 채 오후 3시쯤부터 본사 외벽과 닿아있는 길가에서 농성을 진행했다.#


2.10. 2015년 2월 5일[편집]


이날 오후 서울 서대문구 사조산업 앞에서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 관계자들이 오룡호 침몰사고 책임자 처벌을 촉구하는 연대 기자회견을 하였다. 전명선 4.16세월호가족협의회 위원장은 "더는 아픔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철저한 진상 규명이 이뤄져야 한다"며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오룡호 선원 가족들과 함께 할 것"이라고 밝혔다.#


2.11. 2015년 2월 13일[편집]


사망한 선원 7명의 장례식이 75일만에 행해졌다.기사


2.12. 2015년 3월 10일[편집]


MBN 보도에 따르면 사조산업 측이 유가족에게 수시로 막말을 했다고 한다. 사고 수습과 협의도 안 해 줬고 따로 만난 자리에서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를 언급하며 "분위기 때문에 막…. 세월호가 안 났으면 이슈가 안 됐다고. 끝났었다고. 세월호 때문에….", "살아남은 승무원들은 철창에 가야 하는 거야. 승무원이 똑바로 배를 지켜야 하는 거야. 여객선하고 다르다."며 합의를 종용했다. MBN이 취재에 들어가자 막말 논란을 했던 임원을 파면하고 유가족 측과 합의했다.기사


2.13. 2015년 6월 3일[편집]


부산해양경비안전서는 이번 사고의 책임을 물어 선사인 사조산업 대표이사 김모(63)씨 등 7명과 법인을 업무상 과실선박매몰 혐의 등으로 입건하고 사건을 검찰에 넘겼다고 밝혔다. 사실상 해경 수사가 6개월 만에 마무리됐다.기사


3. 원인[편집]


기상 악화 속 무리한 조업 강행 + 침수 상황 대응 미숙 + 선원 승무기준을 위반한 항행 + 적절한 퇴선 실패로 추정된다.

그 외에도 선박이 노후화된 점도 침몰에 한 몫 한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실제로도 1753t급인 501 오룡호는 1978년 스페인에서 건조됐으며 2003년에 내외장 개장 공사를 했던 대형 어선이었는데 2010년 사조산업이 스페인 업체로부터 구입했다.[3]


4. 기타[편집]


EBS 다큐프라임에서 한국인이 사랑하는 다섯 마리 생선(멸치, 고등어, 홍어, 조기, 명태)을 다룬 5부작 다큐멘터리인 '백성의 물고기' 시리즈를 2015년 7월 6일부터 7월 14일까지 방송했는데 마지막 5화인 '명태, 그 뜨거운 안녕'편에서 침몰 전의 오룡호의 모습을 촬영한 모습이 방송되었다. 이제는 고인이 된 김계환 오룡호 선장, 실종된 마대성 처리장과 선원들의 일하는 모습이 담겨 있는데 보는 사람의 가슴을 찡하게 만든다.

2020년 2월 14일에야 부산지법은 사건 당시 임직원들에게 유죄 선고를 내렸다.

5. 관련 문서[편집]




6. 둘러보기[편집]



역대 대한민국의 대형 사고 및 참사
[ 2020년대 ]

발생일사망사건명
2022년 10월 29일
159이태원 압사 사고
2020년 4월 29일
38

[ 2010년대 ]

발생일사망사건명
2019년 5월 29일
27헝가리 유람선 침몰 사고
2018년 1월 26일
47밀양 세종병원 화재 사고
2017년 12월 21일
29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사고
2014년 12월 1일
27501오룡호 침몰사고
2014년 5월 28일
21장성 효사랑요양병원 화재 사고
2014년 4월 16일
299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
2010년 3월 26일
46천안함 피격 사건

[ 2000년대 ]

발생일사망사건명
2008년 1월 7일
40이천 냉동창고 화재 사고
2003년 2월 18일
192대구 지하철 참사
2002년 4월 15일
130중국국제항공 129편 추락 사고
2001년 9월 25일
25제7호 태창호 사건
2001년 7월 24일
20진주 관광버스 추락사고
2000년 10월 27일
22장수 88올림픽고속도로 추돌 참사


[ 1990년대 ]
[ 1980년대 ]

발생일사망사건명
1989년 9월 17일
24전북 모래재 버스 추락 사고
1989년 7월 27일
79대한항공 803편 추락 사고
1987년 11월 29일
115대한항공 858편 폭파 사건
1987년 8월 29일
32오대양 집단자살 사건
1987년 6월 16일
29극동호 유람선 화재 사건
1986년 7월 30일
21고창 거룻배 전복 사고
1985년 1월 11일
38양강교 버스 추락사고
1984년 1월 14일
38부산 대아호텔 화재 사건
1983년 10월 9일
25아웅 산 묘소 폭탄 테러 사건
1983년 9월 1일
269대한항공 007편 격추 사건
1983년 4월 18일
25대구 초원의집 화재
1982년 6월 1일53청계산 C-123 추락사고
1982년 4월 26일
62우순경 사건
1982년 2월 5일53제주 C-123 추락사고
1981년 11월 22일
33부산 금정산 버스 추락사고
1981년 5월 14일
55경산 열차 추돌사고

[ 1970년대 ]

발생일사망사건명
1979년 10월 27일
26은성탄광 화재
1979년 4월 14일
44함백 탄광 폭발사고
1978년 7월 23일
33한강대교 버스 추락 사고
1977년 11월 11일
59이리역 폭발사고
1976년 10월 28일
34동해 어선 조난 사고
1976년 5월 18일
23답곡리 버스 추락사고
1976년 2월 28일
32화천 버스 추락사고
1974년 11월 3일
88대왕코너 화재사고
1974년 2월 22일
159YTL30호 침몰 사건
1973년 8월 12일
32영동역 유조열차 폭발 사고
1973년 5월 16일
22영일 건널목 열차 추돌사고
1972년 12월 2일
53서울시민회관 화재 사고
1972년 8월 1일
26의암호 버스 추락 사고
1971년 12월 25일
166대연각호텔 화재
1971년 10월 13일
20남원역 열차 추돌사고
1971년 5월 10일
80청평호 버스 추락 사고
1971년 5월 10일
31질자호 침몰 사고
1970년 12월 15일
326남영호 침몰사고
1970년 11월 5일
31의암호 선박 전복 사고
1970년 10월 14일
46모산 수학여행 참사
1970년 8월 21일
25추풍령 고속버스 추락 참사
1970년 4월 8일
33와우 시민아파트 붕괴사고


[ 1960년대 ]

발생일사망사건명
1969년 9월 17일
76창녕 남지읍 나룻배 전복사고
1969년 9월 17일
37창녕 기관선 - 남지교 충돌 사고
1969년 1월 31일
41천안 열차 추돌사고
1968년 1월 8일
41함양 버스 추락사고
1967년 10월 16일
42금릉 버스 추락 사고
1967년 9월 15일
29삼양수산 원양어선 침몰 사고
1967년 4월 8일
80서울 청구동 C-46 추락사고
1967년 1월 14일
93한일호-충남함 충돌 사고
1967년 1월 1일
41서문시장 화재
1964년 7월 29일
95+서해 어선단 실종 사고
1963년 10월 23일
49여주 조포 나룻배 침몰 사고
1963년 6월 25일
70거제 장승포 산사태
1963년 1월 18일
140연호 침몰 사건
1962년 9월 7일
36한남동 나룻배 침몰 사고
1960년 3월 2일
62부산 국제고무공장 화재
1960년 1월 26일
31서울역 압사 사고

[ 1950년대 ]

발생일사망사건명
1959년 7월 17일
67부산 공설운동장 압사 사고
1956년 1월 12일
66태신호 화재
1955년 3월 2일
42부산역 열차 화재
1953년 11월 27일
29부산역전 대화재
1953년 1월 31일
56오산 건널목 추돌 사고
1953년 1월 25일
66행운환 침몰사고
1953년 1월 9일
330창경호 침몰 사고
1951년 7월 11일
94제5편리호 침몰 사고
1951년 7월 11일
30+제13호 침몰 사고

[ 1940년대 ]

발생일사망사건명
1949년 10월 5일
71평해호 침몰 사고
1949년 8월 18일
51대강 터널 질식 사고
1947년 8월 19일
23태양환호 침몰 사고
1946년 11월 13일
42영등포역 열차 충돌 사고
1945년 8월 24일
549​~� 이상
우키시마호 사건







파일:CC-white.sv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0-19 04:16:56에 나무위키 501오룡호 침몰사고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1] 2003년 내외장 공사, 2008년 리모델링[2] Trawler. 저인망 어선. 자루처럼 생긴 그물을 바다 밑이나 바다 속에 띄워 놓고 그물을 끌고 다니면서 어류를 어획하는 어선을 말한다.[3]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