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라델피아 플라이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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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HL 동부 컨퍼런스 메트로폴리탄 디비전 소속팀.
브로드 거리의 양아치들이라고 불리는 플라이어스의 무지막지하게 거친 하키는 70년대에 "우수한 스타 플레이어를 영입할 수 없다면 거친 선수들을 중심으로 팀을 짜서 상대팀을 박살내버리자''라는 신선한 역발상에서 시작되었다. 70년대의 필라델피아 플라이어스는 다른 팀들이 1명에서 2명의 인포서를 보유한데 반해서 무려 7명이 싸움에 능한 선수였는데 1대1 맞짱이 아니라 단체 패싸움도 주저하지 않는 거친 팀이었고 스탠리컵 우승을 2번 차지할 정도로 전성기를 맞이했었다.
플라이어스의 25년 역사를 소개하는 다큐멘터리 비디오 (1992)
오리지널 식스 시대를 벗어나 확장 프랜차이즈를 연 1967~68시즌[3] 부터 참가한다. 원래 필라델피아 이글스의 부사장이었던 에드 스나이더가 보스턴 셀틱스 농구를 보러 갔다가 보스턴 브루인스 티켓을 사러 온 팬들의 장사진을 보고 하키팀이 장사가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필라델피아에 유치하려는 계획을 세우면서 시작되었다.
플라이어스는 70년대부터 빠르게 강호로 도약했다. 프레드 셰로의 지도아래 69년 지명한 젊은 센터 바비 클락과 레프트윙 빌 바버, 골텐더 버니 페런트등의 선수를 중심으로 전력을 끌어올려 1973, 74년 보스턴 브루인스, 버펄로 세이버스를 꺾고 팀창단 최초의 스탠리컵 우승을 2년 연속으로 장식한다.[4] 스탠리컵 3연패에도 도전하지만 기 라플뢰르가 이끄는 레 카나디앵 드 몽레알에 패해 3연패에는 실패했다. 이때 플라이어스의 성공사례는 2010년 HBO에서 제작한 다큐멘터리 브로드 스트릿 불리스(Broad Street Bullies)로 영상화 되었다.
이때의 성공 이후에는 7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캐나다팀들의 절대강세에 눌려 3번이나 스탠리컵 파이널에서 패하는 등 콩라인 신세를 겪는다. 버니 페런트를 잇는 명예의 전당 골텐더 론 헥스탈이 맹활약했지만 기 라플뢰르의 레 카나디앵 드 몽레알, 웨인 그레츠키가 이끄는 에드먼턴 오일러스에 눌려서 80년대는 다소 부진했다.
플라이어스의 90년대를 시작한 인물은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에릭 린드로스. 아이스하키라면 환장하는 캐나다 온타리오주 런던에서 태어난 197cm 120kg의 당당한 체격에도 뛰어난 기술을 겸비한 초특급 유망주 에릭 린드로스는 1991년 전체 1순위로 퀘벡 노르딕스에 지명된다. 당연히 퀘벡의 팬들은 열광했지만, 에릭 린드로스는 이런 퀘벡팬들의 성원을 성대하게 배신하고 입단 거부로 드러누워버린다. 당시 퀘벡 노르딕스는 WHA에서 합류한 후발주자였기때문에 NHL내에서는 몬트리올 커네이디언스와는 경쟁이 되지 않는 팀이었고, 팀의 재정상태가 취약했기 때문에 린드로스에게 많은 계약금을 주기 어려운 환경이었다. 이런 이유로 노르딕스에선 절대 안뛴다라고 선언해버린다.
웨인 그레츠키,마리오 르뮤를 능가하는 가능성을 가진 유망주의 홀드아웃에 격분한 퀘벡팬들은 거품을 물고 린드로스를 비난했지만 린드로스는 끄떡하지도 않았고, 결국 퀘벡 노르딕스는 린드로스를 트레이드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했다. 이를 덥석 문 것은 필라델피아 플라이어스. 플라이어스는 팀의 80년대를 책임진 레전드 론 헥스탈에 신예 유망주 피터 포스베리, 스티브 듀신 등을 포함해 6명의 선수와 1라운드 지명권, 1,500만 달러의 현금 등 어마어마한 대가를 퍼주고 린드로스를 영입했다. 그리고 퀘벡팬들에게 린드로스와 플라이어스는 그야말로 공적이 된다.[5] 그리고 3년이 지난 1994~95년, 퀘벡 노르딕스는 GG를 치고 콜로라도주 덴버로 연고이전을 하고만다.
거한 대가를 치르고 에릭 린드로스를 영입해 팀의 기둥으로 삼은 플라이어스는 린드로스를 중심으로 윙 마이클 랜버그, 존 레클레어, 센터 로드 브린다모어[6] , 수비수 에릭 데쟈댕 등 막강 스타들을 앞세워 1994년부터 승승장구했다. 비록 스탠리컵 우승에는 실패했지만 전성기였던 지난 70년대 이후 팀의 두번째 르네상스 시대를 여는데 성공을 했다. 다만, 이 린드로스를 영입하기 위해 내줬던 스웨덴 출신 센터 피터 포스베리는 콜로라도에서 포텐이 터지면서 NHL을 대표하는 스웨덴 스타로 콜로라도 애벌랜치의 황금기를 열어준 반면 린드로스는 1994시즌 MVP를 수상하는 등 초반 맹활약했지만 큰 체격과 거친 플레이스타일에 따르는 고질적인 뇌진탕과 잦은 부상으로 기대만큼 압도적인 커리어를 보내지 못한채 단장과의 불화로 8시즌만에 플라이어스를 떠나고 만 것.[7] 그리고 결국 NHL선수로써는 너무 이른 33세의 나이에 현역 은퇴했다.[8]
2004년 파업이후 플라이어스는 2000년대의 에이스였던 시몽 가녜, 마이크 크누블 등이 노쇠화를 겪으며 신예 클로드 지루와, 야쿱 보라첵, 웨인 시먼즈를 중심으로 전력을 재편했지만 2012~2013년에는 아쉽게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다. 그러나 2010년의 보스턴 브루인스와의 동부 컨퍼런스 준결승시리즈로 전설로 남았는데 첫 3경기를 내주는 바람에 싹쓸이패 탈락을 당할뻔 했으나, 마지막 4경기를 죄다 이겨버리는 무시무시한 괴력을 발휘해 동부 컨퍼런스 결승 시리즈를 거쳐 스탠리컵 파이널에 진출한다.[9]
2014-15시즌에는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고, 결국 감독인 크레이그 버브가 잘리면서 데이브 핵스톨이 새감독이 되었다. 그리고 팀의 플레이메이커인 야쿱 보라첵이 8년 6천만 달러의 계약을 받아들였다. 2015-16 시즌도 다를 건 없는 것 같지만 홈구장을 공유하는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에 비한다면 압도적으로 상황이 좋다![10] 저쪽은 아직 단 한 경기도 못 이겼기 때문.[11] 마이너에서 콜업된 수비수인Shayne Gostisbehere의 OT 클러치 본능이 괜찮은 상황이고, 현재 수비수 유망주가 많이 쌓여있어 4~5년 정도만 있으면 강팀이 될 수 있다는 의견이 많다. 그러나 차고 넘치는 수비수들이 쌓여있는데 비해, 공격수 유망주는 좋게 봐줄수가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2017 NHL 드래프트 로터리에서 1픽 확률 2.2%, 2픽 확률 2.4%, 13픽 확률 84.4%의 확률을 뚫어내고 2픽을 얻는데 성공하여 2007년 이후 처음으로 로터리에 들어가게 되었다. 다만 최근 2년에 비해 탑 유망주들의 평가는 그다지 좋지 않은 상황이다.
2020년 스탠리 컵 플레이오프에서 뉴욕 아일런더스에게 패배한 이후 팀은 몰락했고 2021-22시즌에는 리그 최하위권팀들에게 질 정도로 암울한 시즌을 보내는 동안[12] 프랜차이즈 스타이자 주장인 클로드 지루를 트레이드시킬 것이라는 루머가 돌았다. 그 대상은 동부 컨퍼런스 1위를 질주하고 있는 플로리다 팬서스. 결국, 2022년 3월 19일에 클로드 지루, 게르만 루브초프, 코너 버너먼 2024년 5라운드 픽을 주고 오웬 티펫, 2024년 1라운드 픽, 2023년 3라운드 픽을 받는 트레이드가 성사되며 지루의 15년 간의 플라이어스 시절은 막을 내렸다. 그리고 29일에 미네소타 와일드에게 패배하면서 플레이오프 경쟁에서 탈락했다.
2022년 6월 16일, 존 토토렐라를 새로운 감독으로 선임하였으며 드래프트에서는 1라운드 5번째 픽으로 커터 고티에를 지명했다. 10년 가까이 주장을 맡은 지루가 트레이드된 이후로 공식적인 주장은 공석이고, 션 쿠트리에 등이 부주장을 맡고 있다. 몇 년 동안 정체된 팀내 최고 유망주인 골리 카터 하트가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초반 성적은 예상보다 좋은 편이나, 다시 내려갈 가능성이 높은 편이다. 예상대로 2023년 2월에는 디비전 순위 7위를 유지 중이며 시카고 블랙호크스, 애너하임 덕스, 콜럼버스 블루재키츠와는 달리 전체 순위가 애매해서 상위픽을 얻기도 힘들 듯하다. 결국 2023년 3월 10일에 팬들에게 온갖 욕을 먹은 단장 척 플레처가 경질되었다. 최종 성적은 31승 38패 13 OT패로 전체순위는 26위이다. 시즌 종료 이후 키스 존스를 회장으로, 다니엘 브리에르를 단장으로 임명하였다.[13] 그리고 2023년 드래프트에서 전체 7픽으로 러시아 출신 드래프티 중 가장 평가가 좋은 HC 소치의 마트베이 미치코프를 지명했다. 필리건들은 같은 동네의 풋볼팀이 제일런 카터를 지명한 것과 동급의 스틸픽이라며 환호 중. 22픽으로는 올리베르 봉크를 지명했다.
||1. 개요[편집]
NHL 동부 컨퍼런스 메트로폴리탄 디비전 소속팀.
브로드 거리의 양아치들이라고 불리는 플라이어스의 무지막지하게 거친 하키는 70년대에 "우수한 스타 플레이어를 영입할 수 없다면 거친 선수들을 중심으로 팀을 짜서 상대팀을 박살내버리자''라는 신선한 역발상에서 시작되었다. 70년대의 필라델피아 플라이어스는 다른 팀들이 1명에서 2명의 인포서를 보유한데 반해서 무려 7명이 싸움에 능한 선수였는데 1대1 맞짱이 아니라 단체 패싸움도 주저하지 않는 거친 팀이었고 스탠리컵 우승을 2번 차지할 정도로 전성기를 맞이했었다.
2. 역사[편집]
플라이어스의 25년 역사를 소개하는 다큐멘터리 비디오 (1992)
오리지널 식스 시대를 벗어나 확장 프랜차이즈를 연 1967~68시즌[3] 부터 참가한다. 원래 필라델피아 이글스의 부사장이었던 에드 스나이더가 보스턴 셀틱스 농구를 보러 갔다가 보스턴 브루인스 티켓을 사러 온 팬들의 장사진을 보고 하키팀이 장사가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필라델피아에 유치하려는 계획을 세우면서 시작되었다.
플라이어스는 70년대부터 빠르게 강호로 도약했다. 프레드 셰로의 지도아래 69년 지명한 젊은 센터 바비 클락과 레프트윙 빌 바버, 골텐더 버니 페런트등의 선수를 중심으로 전력을 끌어올려 1973, 74년 보스턴 브루인스, 버펄로 세이버스를 꺾고 팀창단 최초의 스탠리컵 우승을 2년 연속으로 장식한다.[4] 스탠리컵 3연패에도 도전하지만 기 라플뢰르가 이끄는 레 카나디앵 드 몽레알에 패해 3연패에는 실패했다. 이때 플라이어스의 성공사례는 2010년 HBO에서 제작한 다큐멘터리 브로드 스트릿 불리스(Broad Street Bullies)로 영상화 되었다.
이때의 성공 이후에는 7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캐나다팀들의 절대강세에 눌려 3번이나 스탠리컵 파이널에서 패하는 등 콩라인 신세를 겪는다. 버니 페런트를 잇는 명예의 전당 골텐더 론 헥스탈이 맹활약했지만 기 라플뢰르의 레 카나디앵 드 몽레알, 웨인 그레츠키가 이끄는 에드먼턴 오일러스에 눌려서 80년대는 다소 부진했다.
플라이어스의 90년대를 시작한 인물은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에릭 린드로스. 아이스하키라면 환장하는 캐나다 온타리오주 런던에서 태어난 197cm 120kg의 당당한 체격에도 뛰어난 기술을 겸비한 초특급 유망주 에릭 린드로스는 1991년 전체 1순위로 퀘벡 노르딕스에 지명된다. 당연히 퀘벡의 팬들은 열광했지만, 에릭 린드로스는 이런 퀘벡팬들의 성원을 성대하게 배신하고 입단 거부로 드러누워버린다. 당시 퀘벡 노르딕스는 WHA에서 합류한 후발주자였기때문에 NHL내에서는 몬트리올 커네이디언스와는 경쟁이 되지 않는 팀이었고, 팀의 재정상태가 취약했기 때문에 린드로스에게 많은 계약금을 주기 어려운 환경이었다. 이런 이유로 노르딕스에선 절대 안뛴다라고 선언해버린다.
웨인 그레츠키,마리오 르뮤를 능가하는 가능성을 가진 유망주의 홀드아웃에 격분한 퀘벡팬들은 거품을 물고 린드로스를 비난했지만 린드로스는 끄떡하지도 않았고, 결국 퀘벡 노르딕스는 린드로스를 트레이드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했다. 이를 덥석 문 것은 필라델피아 플라이어스. 플라이어스는 팀의 80년대를 책임진 레전드 론 헥스탈에 신예 유망주 피터 포스베리, 스티브 듀신 등을 포함해 6명의 선수와 1라운드 지명권, 1,500만 달러의 현금 등 어마어마한 대가를 퍼주고 린드로스를 영입했다. 그리고 퀘벡팬들에게 린드로스와 플라이어스는 그야말로 공적이 된다.[5] 그리고 3년이 지난 1994~95년, 퀘벡 노르딕스는 GG를 치고 콜로라도주 덴버로 연고이전을 하고만다.
거한 대가를 치르고 에릭 린드로스를 영입해 팀의 기둥으로 삼은 플라이어스는 린드로스를 중심으로 윙 마이클 랜버그, 존 레클레어, 센터 로드 브린다모어[6] , 수비수 에릭 데쟈댕 등 막강 스타들을 앞세워 1994년부터 승승장구했다. 비록 스탠리컵 우승에는 실패했지만 전성기였던 지난 70년대 이후 팀의 두번째 르네상스 시대를 여는데 성공을 했다. 다만, 이 린드로스를 영입하기 위해 내줬던 스웨덴 출신 센터 피터 포스베리는 콜로라도에서 포텐이 터지면서 NHL을 대표하는 스웨덴 스타로 콜로라도 애벌랜치의 황금기를 열어준 반면 린드로스는 1994시즌 MVP를 수상하는 등 초반 맹활약했지만 큰 체격과 거친 플레이스타일에 따르는 고질적인 뇌진탕과 잦은 부상으로 기대만큼 압도적인 커리어를 보내지 못한채 단장과의 불화로 8시즌만에 플라이어스를 떠나고 만 것.[7] 그리고 결국 NHL선수로써는 너무 이른 33세의 나이에 현역 은퇴했다.[8]
2004년 파업이후 플라이어스는 2000년대의 에이스였던 시몽 가녜, 마이크 크누블 등이 노쇠화를 겪으며 신예 클로드 지루와, 야쿱 보라첵, 웨인 시먼즈를 중심으로 전력을 재편했지만 2012~2013년에는 아쉽게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다. 그러나 2010년의 보스턴 브루인스와의 동부 컨퍼런스 준결승시리즈로 전설로 남았는데 첫 3경기를 내주는 바람에 싹쓸이패 탈락을 당할뻔 했으나, 마지막 4경기를 죄다 이겨버리는 무시무시한 괴력을 발휘해 동부 컨퍼런스 결승 시리즈를 거쳐 스탠리컵 파이널에 진출한다.[9]
2014-15시즌에는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고, 결국 감독인 크레이그 버브가 잘리면서 데이브 핵스톨이 새감독이 되었다. 그리고 팀의 플레이메이커인 야쿱 보라첵이 8년 6천만 달러의 계약을 받아들였다. 2015-16 시즌도 다를 건 없는 것 같지만 홈구장을 공유하는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에 비한다면 압도적으로 상황이 좋다![10] 저쪽은 아직 단 한 경기도 못 이겼기 때문.[11] 마이너에서 콜업된 수비수인Shayne Gostisbehere의 OT 클러치 본능이 괜찮은 상황이고, 현재 수비수 유망주가 많이 쌓여있어 4~5년 정도만 있으면 강팀이 될 수 있다는 의견이 많다. 그러나 차고 넘치는 수비수들이 쌓여있는데 비해, 공격수 유망주는 좋게 봐줄수가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2017 NHL 드래프트 로터리에서 1픽 확률 2.2%, 2픽 확률 2.4%, 13픽 확률 84.4%의 확률을 뚫어내고 2픽을 얻는데 성공하여 2007년 이후 처음으로 로터리에 들어가게 되었다. 다만 최근 2년에 비해 탑 유망주들의 평가는 그다지 좋지 않은 상황이다.
2020년 스탠리 컵 플레이오프에서 뉴욕 아일런더스에게 패배한 이후 팀은 몰락했고 2021-22시즌에는 리그 최하위권팀들에게 질 정도로 암울한 시즌을 보내는 동안[12] 프랜차이즈 스타이자 주장인 클로드 지루를 트레이드시킬 것이라는 루머가 돌았다. 그 대상은 동부 컨퍼런스 1위를 질주하고 있는 플로리다 팬서스. 결국, 2022년 3월 19일에 클로드 지루, 게르만 루브초프, 코너 버너먼 2024년 5라운드 픽을 주고 오웬 티펫, 2024년 1라운드 픽, 2023년 3라운드 픽을 받는 트레이드가 성사되며 지루의 15년 간의 플라이어스 시절은 막을 내렸다. 그리고 29일에 미네소타 와일드에게 패배하면서 플레이오프 경쟁에서 탈락했다.
2022년 6월 16일, 존 토토렐라를 새로운 감독으로 선임하였으며 드래프트에서는 1라운드 5번째 픽으로 커터 고티에를 지명했다. 10년 가까이 주장을 맡은 지루가 트레이드된 이후로 공식적인 주장은 공석이고, 션 쿠트리에 등이 부주장을 맡고 있다. 몇 년 동안 정체된 팀내 최고 유망주인 골리 카터 하트가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초반 성적은 예상보다 좋은 편이나, 다시 내려갈 가능성이 높은 편이다. 예상대로 2023년 2월에는 디비전 순위 7위를 유지 중이며 시카고 블랙호크스, 애너하임 덕스, 콜럼버스 블루재키츠와는 달리 전체 순위가 애매해서 상위픽을 얻기도 힘들 듯하다. 결국 2023년 3월 10일에 팬들에게 온갖 욕을 먹은 단장 척 플레처가 경질되었다. 최종 성적은 31승 38패 13 OT패로 전체순위는 26위이다. 시즌 종료 이후 키스 존스를 회장으로, 다니엘 브리에르를 단장으로 임명하였다.[13] 그리고 2023년 드래프트에서 전체 7픽으로 러시아 출신 드래프티 중 가장 평가가 좋은 HC 소치의 마트베이 미치코프를 지명했다. 필리건들은 같은 동네의 풋볼팀이 제일런 카터를 지명한 것과 동급의 스틸픽이라며 환호 중. 22픽으로는 올리베르 봉크를 지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