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레이스타르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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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창작물에서


1. 개요[편집]


Pleistarchus

스파르타의 왕. 레오니다스 1세고르고 왕비의 아들.

기원전 480년에 레오니다스가 테르모필레 전투로 페르시아와의 싸움에서 전사하자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다. 당시 나이가 어려 숙부인 클레옴브로토스가 섭정을 했으나, 그는 1년만에 죽고 그의 아들이자 플레이스타르코스의 사촌 형[1]파우사니아스가 다음 섭정이 되었다.[2] 기원전 479년 그리스가 동맹을 결성해 페르시아와 싸우게 되었고 스파르타의 관습에 따르면 왕인 플레이스타르코스가 전투에 나서서 지휘해야 했지만, 그가 여전히 어린 나이였으므로 파우사니아스가 군사를 지휘하여 페르시아군과 싸웠다. 그러나 파우사니아스는 후일 페르시아와 결탁했다는 혐의를 받고 기원전 477년 죽었다.[3]

플레이스타르코스는 기원전 458년경 후사 없이 죽었다. 왕통은 그의 사촌 파우사니아스의 아들, 즉 그에게는 5촌 조카[4]가 되는 플레이스토아낙스에게 이어졌다.

2. 창작물에서[편집]


영화 300에서는 아버지 레오니다스와 씨름을 통해 단련하면서 공포는 늘 존재하니 이를 늘 받아들여야 강해진다는 말과 함께 스파르타의 힘은 옆에 서 있는 전사로 그를 존경하고 명예를 지키면 존중받는다고 가르침을 받았다. 고르고가 레오니다스가 테르모필레 전투에서 전사한 소식과 함께 그의 유품인 목걸이는 건네받는데, 고르고가 그 목걸이를 플레이스타르코스의 목에 걸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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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고르고 왕비가 레오니다스의 아내이자 조카이므로, 모계 기준으로는 플레이스타르코스의 오촌 아저씨가 된다.[2] 스파르타 국왕 중에도 파우사니아스가 있는데 동명이인으로서, 섭정 파우사니아스의 손자이다.[3] 장로들에게 체포될 위기에 처한 파우사니아스가 스파르타에 있는 아테나 칼키오이코스 신전으로 달아나 숨자, 그의 어머니 테아노가 신전 문 앞에 벽돌을 놓으며 "스파르타인이라 칭할 자격도 없는 놈, 너는 내 아들이 아니다!" 하고 지탄했다고 한다. 이에 다른 사람들도 달려들어 신전 문을 벽돌로 막아 버렸고 파우사니아스는 신전에 갇힌 채 굶어 죽었다. 후일 델포이의 무녀는 신의 도움을 찾아 신전으로 피신한 탄원자에게 이런 일을 행한 것을 질책하며, 아테나 여신이 문제의 탄원자를 되살릴 것을 명했다고 신탁을 내렸고, 당연히 죽은 사람을 되살릴 수는 없는 일이었으므로 스파르타인들은 파우사니아스의 동상을 만들어 신전에 세웠다.[4] 모계 기준으로는 6촌 형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