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영(기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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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기업인, 신동아그룹 2대 총수이다.
개신교 신자인 점이 한 몫했는지, K리그 원년 우승팀인 할렐루야 축구단의 구단주이기도 했다.
1939년, 황해도 봉산군에서 최성모 신동아그룹 창업주의 아들로 태어났다. 경기고등학교, 성균관대학교 상학과를 졸업했다.
성대 졸업 후 1963년에 마대자루 제조업체 '동명마방', 1966년에 '제일모방'을 각각 창업했으나 실패를 맛보았다. 1968년에 부친 최성모의 권유로 동아제분 상무로 신동아그룹에 합류하여 1969년 대한생명 인수를 도왔고, 1976년 부친 최성모 회장 사후 대한생명 사장직도 역임하여 가업을 잇기 시작했다. 1979년부터 1987년까지는 대한축구협회 회장, 1980년부터 1999년까지 극동방송 이사장도 겸임하였다. 1985년에 63빌딩을 지은 사람이다. 본인의 말에 따르면 63빌딩은 기도하는 손의 모양을 상징한다고 한다. [4] 그 외에 1979년에 아내와 같이 한국기독교선교회(현 기독교선교횃불재단)를 세워 대형교회인 온누리교회를 탄생시켰으며[5] ] 1984년 학교법인 영생학원을 인수하여 이름을 신동아학원으로 변경하고 교육사업도 시작하였다.
이렇게 잘 나간 시절이 있었으나, 1997년 외환 위기의 여파로 1999년 신동아그룹이 부도나고 해체되면서 징역형을 선고받고 복역하였다. 이 때 부인 이형자씨가 옷로비 사건과 관련되어서 국회 청문회에 출석해야 했다. 신동아그룹 계열사 중 대한생명과 신동아화재는 공기업화됐다가 한화그룹에 인수되어 각각 한화생명과 한화손해보험이 되었고, 동아제분도 운산그룹으로 넘어갔다. 한일약품도 사원주주제로 전환됐다가 CJ에 인수되었다.
그는 동년 10월에 보석으로 출소했으나 2005년 1월에 또 법정 구속되어 이듬해 7월 징역 5년 및 추징금 1,574억 원을 판결받아 복역했다가 9월에 건강악화로 병원에 입원했고, 2008년 광복절 특사로 형 집행 면제되었다. 대신 추징금 1,574억 원은 면제대상이 아니다. 그는 자신이 돈을 낼 여력이 없어 추징금을 못 낸다고 하지만, 후술할 <일요시사> 보도에 따르면 정작 최순영은 부인 소유 고급빌라에 살면서 해외여행을 하기도 했으며, 부인과 함께 온누리교회를 중심으로 활동중이다.
2021년 현재도 추징금 및 세금을 한 푼도 자발적으로 내지않아 논란이 되고 있는데, SBS 보도에 따르면 이 자금은 자신의 땅, 자신이 대표인 기독교 사단법인의 땅과 대한생명 회삿돈과 함께 온누리교회의 기반이 되는데 사용되었다고 한다.
2021년 3월 3일, 서울시가 체납된 금액을 압류하기 위해서 세금징수관들이 자택에 들이닥쳐 기습수색해 여러 고가물품과 미술품들을 압류했는데 최순영의 가족들은 "압류한 물건들은 우리 것"이라는 주장과 함께 최순영 회장에게 소유권 확인 소송을 걸었고 서울시는 피고의 '보조참가'라는 입장으로 참여했다. 소유권 확인 소송이 시작되자, 최순영 회장은 마치 가족들과 짜고 친 듯이 변호사조차 선임하지 않았고, 가족들 말이 다 맞다는 자백서를 제출했으며 서울시는 "최회장이 가족들과 소유권을 두고 법적다툼을 벌이지 않았기 때문에 만약 최회장과 가족의 의견이 같다면 굳이 확인해 줄 필요가 없다"는 의견을 밝혔다.
2022년 5월 13일, 해당 소송을 담당한 서울중앙지방검찰청 1심 재판부는 서울시의 의견을 받아들였고, 소송요건이 갖춰지지 않아 법원이 판단할 대상이 아니라 여겼는지, 해당 소유권 확인 소송을 각하했다.
* 아내인 이형자씨는 기독교선교횃불재단을 세워 이사장으로 재임했고, 현재는 은퇴하여 차남인 최지열씨에게 승계했다.
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기업인, 신동아그룹 2대 총수이다.
개신교 신자인 점이 한 몫했는지, K리그 원년 우승팀인 할렐루야 축구단의 구단주이기도 했다.
2. 생애[편집]
1939년, 황해도 봉산군에서 최성모 신동아그룹 창업주의 아들로 태어났다. 경기고등학교, 성균관대학교 상학과를 졸업했다.
성대 졸업 후 1963년에 마대자루 제조업체 '동명마방', 1966년에 '제일모방'을 각각 창업했으나 실패를 맛보았다. 1968년에 부친 최성모의 권유로 동아제분 상무로 신동아그룹에 합류하여 1969년 대한생명 인수를 도왔고, 1976년 부친 최성모 회장 사후 대한생명 사장직도 역임하여 가업을 잇기 시작했다. 1979년부터 1987년까지는 대한축구협회 회장, 1980년부터 1999년까지 극동방송 이사장도 겸임하였다. 1985년에 63빌딩을 지은 사람이다. 본인의 말에 따르면 63빌딩은 기도하는 손의 모양을 상징한다고 한다. [4] 그 외에 1979년에 아내와 같이 한국기독교선교회(현 기독교선교횃불재단)를 세워 대형교회인 온누리교회를 탄생시켰으며[5] ] 1984년 학교법인 영생학원을 인수하여 이름을 신동아학원으로 변경하고 교육사업도 시작하였다.
2.1. 몰락[편집]
이렇게 잘 나간 시절이 있었으나, 1997년 외환 위기의 여파로 1999년 신동아그룹이 부도나고 해체되면서 징역형을 선고받고 복역하였다. 이 때 부인 이형자씨가 옷로비 사건과 관련되어서 국회 청문회에 출석해야 했다. 신동아그룹 계열사 중 대한생명과 신동아화재는 공기업화됐다가 한화그룹에 인수되어 각각 한화생명과 한화손해보험이 되었고, 동아제분도 운산그룹으로 넘어갔다. 한일약품도 사원주주제로 전환됐다가 CJ에 인수되었다.
3. 탈세[편집]
그는 동년 10월에 보석으로 출소했으나 2005년 1월에 또 법정 구속되어 이듬해 7월 징역 5년 및 추징금 1,574억 원을 판결받아 복역했다가 9월에 건강악화로 병원에 입원했고, 2008년 광복절 특사로 형 집행 면제되었다. 대신 추징금 1,574억 원은 면제대상이 아니다. 그는 자신이 돈을 낼 여력이 없어 추징금을 못 낸다고 하지만, 후술할 <일요시사> 보도에 따르면 정작 최순영은 부인 소유 고급빌라에 살면서 해외여행을 하기도 했으며, 부인과 함께 온누리교회를 중심으로 활동중이다.
2021년 현재도 추징금 및 세금을 한 푼도 자발적으로 내지않아 논란이 되고 있는데, SBS 보도에 따르면 이 자금은 자신의 땅, 자신이 대표인 기독교 사단법인의 땅과 대한생명 회삿돈과 함께 온누리교회의 기반이 되는데 사용되었다고 한다.
2021년 3월 3일, 서울시가 체납된 금액을 압류하기 위해서 세금징수관들이 자택에 들이닥쳐 기습수색해 여러 고가물품과 미술품들을 압류했는데 최순영의 가족들은 "압류한 물건들은 우리 것"이라는 주장과 함께 최순영 회장에게 소유권 확인 소송을 걸었고 서울시는 피고의 '보조참가'라는 입장으로 참여했다. 소유권 확인 소송이 시작되자, 최순영 회장은 마치 가족들과 짜고 친 듯이 변호사조차 선임하지 않았고, 가족들 말이 다 맞다는 자백서를 제출했으며 서울시는 "최회장이 가족들과 소유권을 두고 법적다툼을 벌이지 않았기 때문에 만약 최회장과 가족의 의견이 같다면 굳이 확인해 줄 필요가 없다"는 의견을 밝혔다.
2022년 5월 13일, 해당 소송을 담당한 서울중앙지방검찰청 1심 재판부는 서울시의 의견을 받아들였고, 소송요건이 갖춰지지 않아 법원이 판단할 대상이 아니라 여겼는지, 해당 소유권 확인 소송을 각하했다.
4. 근황[편집]
* 아내인 이형자씨는 기독교선교횃불재단을 세워 이사장으로 재임했고, 현재는 은퇴하여 차남인 최지열씨에게 승계했다.
5. 관련 자료[편집]
- 일요시사 <망해도 잘사는 부자들> 2회: 최순영의 신동아그룹
- 수천억 체납하고…두 아들까지 고급빌라 거주 / SBS
- "노숙자 심리 알겠다…하나님 뜻으로 기사 두고 다녀" / SBS
- 땅 사고 회삿돈 넘겨 밑천 마련…"십일조" / SBS
6.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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