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민/대권주자로서의 장단점 (r1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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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장점
2.2. 투철한 안보관
2.3. 논리력과 토론 실력
2.4. 잠재력 있는 확장력
2.5. 소신 있는 모습
2.6. 정책통
2.7. 어느 정도 기반을 갖춘 계파
2.8. 지역구 내 강한 입지
2.9. 도덕성
3. 복합적
3.1. 일관성
4. 단점
4.1. 친박 측의 배신자 프레임
4.2. 중도좌파~좌파 성향의 일부 정책
4.3. 리더십과 존재감의 부재
4.4. 부족한 본인 홍보
4.5. 상대적으로 느린 이슈 선점


1. 개요[편집]


정치인 유승민의 대권주자로서 갖는 장점과 단점에 대해 다룬 문서이다.

2. 장점[편집]



2.1. 경제정책 전문성[편집]


현재 대선주자 가운데 유일한 경제학자 출신이다.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국내 최고의 국책연구기관인 KDI에서 근무했던 경제학자답게, 재정, 산업, 복지, 노동 등 전반적인 경제정책에 대한 전문성을 지니고 있으며 특히 전공이었던 재벌 분야에 대해선 다른 주자들보다도 구체적이고 높은 식견을 가지고 있다고 평가된다. [1] 게다가 유승민 본인 역시 동구 을 지역구 관리, 기획재정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하면서 유승민 본인의 경제관인 경제적 자유주의, 재정 보수주의복지국가 이론이 조화된 따뜻한 보수라는 이미지를 확실히 하였다. [2]


2.2. 투철한 안보관[편집]


경제학자 출신임에도 안보 및 국방 분야에서도 전문성이 뛰어나며, 국회 국방위원회 위원장을 맡으면서 호평을 받았다.[3] 지지자들 사이에서 농담 삼아 안보관은 극우 수준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대북·대중 강경파이다. 또한 군인들의 보훈에도 여타 정치인보다도 많이 신경을 쓰고, 매년 천안함 피격 사건이나 서해 수호의 날 등의 기념식에 참석해 유족들을 만나기도 하였다. 천안함 피격 사건 생존자인 전준영 씨 또한 유승민에 대해 고마움을 표한 바 있다.##


2.3. 논리력과 토론 실력[편집]


제19대 대통령 선거 TV토론에서 5명의 후보들 중 가장 잘했다는 평을 받을 정도로 토론 실력이 매우 뛰어나다. 정책 전문성을 바탕으로 자기 고유의 견해를 명확히 드러냈다는 평. 전문가들의 평도 유승민이 가장 좋았고, 여론조사에서도 유승민이 가장 잘 했다고 평가받았다. 특히 마지막 대선토론 연설에서 좌우를 막론하고 정연하다는 평을 받았다.# # # 20대 대선 경선 토론에서도 그 뛰어난 토론 실력을 발휘하였다.


2.4. 잠재력 있는 확장력[편집]


당내 대표적인 자유보수주의자, 온건 공화주의자로써 어느정도의 지지율만 받혀주면 중도층 심지어는 중도좌파 일부까지로 확장할 잠재력이 존재한다는 평이 있다. 과거 친박 핵심일 시절에도 남원정이나 소장파와 같이 당내 개혁을 도모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비박으로 재분류되었을 때도 정병국, 하태경, 이준석 등과 같이 당내 중도화와 자유보수주의를 확립하는 데 힘을 썼고, 2030들의 정치 진출에 큰 힘을 보태주었다. 원내대표시절 노무현 정권의 정책 중 일부를 칭찬했고 이를 계승하겠다고 발언하여 당시 좌파 일부의 지지를 받기도 했다. 특히 따뜻한 보수라는 캐치프레이드는 좌우로 갈라치거나 자신의 지지층만을 위한 것이 아닌 모두를 위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2.5. 소신 있는 모습[편집]


친박과 강경 보수에게는 배신자라고 언급할 정도이지만, 유승민은 참여정부, 이명박 정부박근혜 정부 가리지 않고 긍정적인 것은 칭찬하고 부정적인 것을 비판하는 모습을 보였다. 박근혜 정부와 틀어진 이유도 본인이 박근혜 정부의 성공을 위해 쓴 소리를 했기 때문이다. 특히 "증세없는 복지는 허구"라는 명언을 남겼다가 친박의 찍어내기로 정치적 사망위기 까지 갔었다.[4]


2.6. 정책통[편집]


유승민은 경제학자임에도 불구하고 외교, 국방, 복지, 교육, 지역균형발전, 문화예술 등에 대한 지식이 풍부하고 여러 공약에 대해 본인이 스스로 입안을 한다는 점이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5] 유승민이 한국개발연구원 소속으로 근무하고 1997년 외환 위기에 대한 보고서 작성 및 입안 등을 통해 정계에 입문하였다는 점, 여의도연구원 내 정책 연구원 경력 역시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유승민이 국회의원을 하면서 한나라당 - 새누리당 - 바른정당 - 바른미래당 - 새로운보수당 - 미래통합당 내의 대표적인 정책통이었으며, 이는 유승민과 사이가 좋지 않은 최경환기획재정부장관 역시 인정한 바가 있다. 같은 친유계정병국 의원은 유승민 의원이 헌법 그 자체이며 컨텐츠가 좋다고 인정하기도 했다.

그리고 유승민 세대의 정치인 치고도 젠더 이슈에 대한 이해도가 상대적 높은 편이라 2030 청년 지지층들을 모으기 유리한 편이다. 실제로 본인도 바른미래당 시절부터 이준석, 하태경, 정병국과 같이 젠더 이슈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중도화를 위해 노력하였다.[6]


2.7. 어느 정도 기반을 갖춘 계파[편집]


과거의 친이, 친박이나 지금의 친윤에 비해서는 계파의 크기도 작고, 사실 김영우, 조해진, 이학재 심지어 이혜훈, 하태경까지 다른 후보 쪽으로 이탈하면서 친유의 세력이 제21대 총선 전에 비해 약해진 것은 맞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결속성이 강한 계파는 장점이라고 볼 수 있다.

유승민 본인은 물론이고 대부분의 정치인들은 친유라는 계파가 애매하다고 평가하기도 하고 친유 인사 중 상당수가 소장파, 친이 등 타 계파와 겹치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세력이 있는 것은 사실이고 타 계파와 유기적인 관계를 이루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더 나아가 대부분이 한나라당, 새누리당 시절부터 같이 가면서 결속력이 강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8. 지역구 내 강한 입지[편집]


유승민의 지지율이 대경권에서 상대적으로 낮다고는 하나 그래도 과거 지역구였던 동구 을에서 유승민의 입지는 막강한 편이다. 실제로 새로운보수당 시절 자유한국당 상대로도 접전을 이끌고 간발의 차이로 승리로 이끌 수 있는 후보로 언급되기도 했다. 유승민에게는 동구 을 내의 안정적인 기반은 큰 장점이 될 수 있다. 텃밭에서 압도적으로 승리한 경험도 있고, 유승민이 불출마를 선언하고도 김규환 전 의원, 김재수 전 장관, 김영희 전 육군중령, 도태우 변호사, 윤창중친유 정치인인 강대식에게 도전장을 내밀었지만 강대식이 압도적으로 경선과 본선에서 승리하였다. 그리고 동구 갑 역시 친박, 친황 인사인 이진숙을 꺾고 친이, 친유 인사인 류성걸이 당선되었다. 일각에서는 텃밭에서만 정치한 것을 약점으로 잡고있지만, 유승민의 첫 지역구 선거에서 이강철을 꺾었고, 동구 을에 외지인, 2030 및 3040 등 진보세가 강한 집단의 유입에도 불구하고 압도적인 득표율로 당선되었으며 그리고 유승민 후보 역시 국회의원 시절 대구 공군기지, 대구국제공항 문제 해결, 대구신서혁신도시, 이시아폴리스, 대구경북첨단의료복합단지 등 신도시 유치, 대구 도시철도 1호선 하양 연장, 대구외곽순환고속도로 등 인프라 건설에 성공해서 동구 내 입지가 강하다.[7]


2.9. 도덕성[편집]


제20대 대통령 선거 당시 도덕성 관련 여론조사에서 유승민 후보는 도덕성 논란이 적은 인물로 나오고 있다. 유승민 후보가 동구 을 초선 국회의원부터 시작해서 4선 국회의원 할 때까지 도덕적으로 논란이 되거나 부정부패에 연루된 적이 없었다. 그리고 새누리당 원내대표 시절 박근혜 정부로부터 비공식적인 내사와 사찰을 받았지만 어떠한 논란도 없었다.[8] 가족의 경우도 부정 입학, 부정 취업 등 비리 문제가 없고, 오히려 아들 유훈동이나 딸 유담 모두 정상적인 방식으로 입학했다. 재산 및 부정부패에서도 가족과 측근들이 연루된 적은 없었다. 오히려 모친인 강옥성 씨의 경우 지역 사회에 대한 봉사를 해 지역 내 평판이 좋은 편이다. 발언 문제에 대해서도 막말을 한 적도 없었고,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도 많은 인물이었다. 홍준표의 경우 막말 논란이나 말바꾸기 논란이 있고, 윤석열의 경우에도 정치적 논란망언 논란 등이 있지만 적어도 유승민은 그런 논란은 없었다.


3. 복합적[편집]



3.1. 일관성[편집]


제19대 대통령 선거 때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원 달성, 강정마을 구상권 철회 등의 공약을 내세웠으나, 이후 해당 공약을 철회하고 사과했다. 잘못을 인정하고 고치는 것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하는 쪽도 있으나 보통 이러한 경우엔 정책의 일관성이 떨어진다는 평을 받기 마련이다. 특히 이 중 최저임금 10,000원 공약은 유승민 본인이 인터뷰를 할 때마다 거의 무조건 사과를 하고 들어갈 정도였다.

그러나 공약 하나의 번복과 사과만으로 유승민의 모든 정치적 경력과 정책적 방향성들을 일관성 없다고 하기는 힘들다. 오히려 유승민은 대한민국에서 일관된 경제와 안보 정책을 꾸준히 한결같은 동일한 내용으로 20년 이상 주장해오고 있는 몇 안되는 정치인 중 한 명이다. 유승민은 연구원 시절부터 지금까지 똑같은 경제개혁을 정치권에 주문해오고, 또 정치인이 된 이후로는 직간접적으로 실현하려고 노력해왔다. IMF 때 재벌개혁-금융개혁-정부 구조조정을 골자로 하는, 다시말해 우리나라 경제의 체질을 완전히 바꾸자는 이야기를 꾸준히 해왔으며, 이는 정치인이 된 이후로도 유승민이 일관되게 주장해오고 있는 사실이다.

이는 단순히 주장을 하는 차원을 넘어선 것인데, 왜냐하면 국책기관 연구원 신분으로 당시 정부, 여당, 그리고 대통령의 정책과 각을 세우는 행위이며 실제로 이러한 언행들로 유승민은 노골적인 압박과 심한 처우를 받았다. 이후 유승민은 야당 신분으로서 참여정부를 날카롭고 일관된 기준에 근거하여 감사해왔다. 심지어는 한나라당이 여당이 된 이후에도 똑같은 기준으로 같은 당에서 배출한 이명박 정부를 혼내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정계입문 후 이회창, 박근혜와 같이 활동하면서도 직언하기를 주저하지 않았고, 특히 박근혜의 경우 이것이 심화되어 한때 친박계였던 유승민이 본인의 정치생명을 걸게 된 행보를 하기에 이른다. 이렇듯이 유승민이 지나온 정치 행보의 궤적만 보아도 일관성이 없다는 것은 매우 온당하지 못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안보 정책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인데 유승민은 국방위원장을 역임한 것을 비롯해 안보전문가로서 늘 일관된 안보정책관을 보여왔다. 심지어는 사드 도입을 위하여 TK정치인 신분으로서 TK에 사드 배치를 찬성하는 등 솔선수범하는 모습도 보였다. 특히 매년 서해수호의 날 행사, 천안함 피격사건 추모식, 연평도 포격전 추모식, 마린온 추락사고 순직자 추모행사 등 보훈 관련 행사에도 언제나 참석하는 유일한 인물이다.

4. 단점[편집]



4.1. 친박 측의 배신자 프레임[편집]


한 때는 친박계에 속했지만, 새누리당 원내대표였을 때 박근혜 정부의 '증세 없는 복지'를 비판했으며, 박근혜 정부가 원하는 공무원 연금 개정안을 해결해 준 대신 야당이 요구했던 국회법 개정안[9]을 통과시켰고, 박근혜 대통령은 이를 "배신의 정치"라고 규정했다.#[10] 이후에 유승민은 김무성과 함께 새누리당 내에서 박근혜 탄핵소추안 통과를 주도했고, 새누리당을 탈당해 바른정당을 창당했다. 이로 인해 친박극우, 강경 보수층으로부터 배신자, 내부총질이라는 비난을 줄곧 받아왔고,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4.2. 중도좌파~좌파 성향의 일부 정책[편집]


사실상 유승민의 가장 큰 단점인데 제19대 대통령 선거 공약들 중,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원 달성[11], 탈원전 정책[12], 공수처 설치[13] 등 일부 공약의 경우 보수층들에게 어필하기는 힘든 상황이다. 그리고 개혁보수라고 내세운 일부 공약 역시 우파보다는 중도좌파와 가깝다는 점과 사회일자리 100만 개와 같이 민간 부분의 영역까지도 정부가 개입하는 것이 아닌가 싶은 공약도 존재한다. 더 나아가 일부는 문재인의 공약과 가깝지 않냐는 의혹 역시 존재한다.[14] 이는 중도와 좌파까지 포섭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기도 하지만 강경 보수층들 입장에서는 이런 공약을 보고 "좌파면서 우파 표 받아가려 하지 말라"고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일부 공약의 경우 우파라고 하기는 먼 편도 있다.


4.3. 리더십과 존재감의 부재[편집]


제19대 대통령 선거 이후부터는 존재감이 서서히 없어지기 시작했다. 그가 몸담고 있었던 바른정당의원들의 잇따른 탈당으로 인해 서서히 무너져가기 시작했다. 이후 안철수가 이끌던 국민의당합당하며 바른미래당이 출범했지만, 제7회 지선에서 참패했고 안철수, 손학규 등 국민의당 출신들과 갈등이 지속되었다. 이로 인해 유승민은 친유계 정치인들을 이끌고 바른미래당을 탈당해 새로운보수당을 만들었다. 물론 바른정당, 바른미래당의 분열을 모두 유승민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지만, 제20대 국회에서 그의 개혁보수 정치는 실패한 셈이다. 또한 새로운보수당자유한국당이 합당하면서 제21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는데, 이는 낙선으로 인한 정치적 타격을 회피하는 듯한 인상을 줄 여지가 있었다.[15]


4.4. 부족한 본인 홍보[편집]


가장 심각한 부분으로 대선주자 가운데 유독 정치력과 대중성이 떨어지는 후보라는 평을 받는다. 특히 유승민은 평소 활발한 공개활동을 하지 않고 칩거하거나 잠행을 자주 한다는 비판을 많이 받는다. 대선 후보라면 공개적인 활동을 해서 인지도를 높이거나 자신의 정치적 신념을 담은 책을 출간하거나 유튜브, 방송 출연 등을 적극적 활용하며 비전을 알려야 하는데, 다른 주자들에 비해 이러한 공개활동량이 현저히 적고 오로지 페이스북만을 사용하고 있다.

이 부족한 본인 홍보가 본인의 '배신자' 프레임을 벗어내지 못하는 원인들 중 하나이다. 당장 유승민과 가까운 이준석이 대구에 가서 탄핵은 정당했다고 하면서도 당대표가 된 것을 생각해보면 답이 나온다.


물론 현재는 원외 평당원 신분이고 당직을 맡지 않고 있어 원내에 있을 때보다 제약적일 수밖에 없고, 본인도 정책 연구에 힘을 쓰고 있다고 하지만 정책 연구만큼 중요한 것이 자기 홍보인데 그런 면에서 많이 부족한 모습을 보인다. 이준석, 오세훈과 같이 2030들이나 중도층들이 가까이하고 본인의 지지율을 올릴 수 있는 모습을 보여야 하는데 그것이 상당히 부족하다는 평가이며 이 부분을 해결하지 않을 경우 유승민의 지지율이 오르기는 힘들다. 그나마 최근에는 유튜브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긴급 기자회견이나 여성가족부 폐지 등 주요 공약을 발표하고 이재명, 윤석열을 공격하면서 서서히 홍보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주요 대권주자에 비해서 주목을 받지 못한 모습 역시 보이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2030의 지지세가 홍준표에게 쏠리고 있어 전면적인 전략에서 개선이 필요한 상황이다.


4.5. 상대적으로 느린 이슈 선점[편집]


홍준표 의원이 윤석열과 이준석의 갈등 당시 미리 이준석을 지지하고 여명숙 교수와 문성호 당당위 대표를 영입하고 캠프를 꾸릴 동안 늦게서야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일각에서는 정책으로 승부보겠다고 하지만 홍준표에 비해 이슈 선점이 느리고 임팩트가 상대적으로 약하다고 하고 있다. 즉 홍준표가 2030 남성 지지층이 많은 이준석을 공개적으로 지지하고 여명숙, 문성호를 영입하고 나서 뒤늦게 홍준연 시의원을 영입한다던가 하는 등 느린 모습을 보여 윤석열의 2030 지지율 중 일부만 흡수했다.[16]

[1] 그래서 이재명이 국민의 힘의 대선 주자들 가운데 유승민을 까다로운 상대라고 평하기도 하였다. 19대 대선에서도 민주당이 유승민을 가장 까다로운 상대들 중 하나라고 평하기도 했다.[2] 특히 경제정책에 대한 전문성은 경제학적으로 다소 맞지 않는 주장을 많이 하는 이재명 후보가 본선에 진출할 경우, 유승민처럼 경제 분야에서 학문적 기반이 탄탄한 정치인들이 이재명의 정책 검증을 주도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 최근에도 이재명 지사와 논쟁하면서 한국개발연구원 시절부터 쌓아온 경제적 식견을 거침없이 드러내고 있으며, 이재명지사의 기본소득에 대해서도 윤희숙과 함께 비판을 했다.[3] 2015년 국방위원회 국정감사 평가에서 중간, 최종 평가 모두 1등 최우수였다.[4] 다만 이 점은 양날의 칼이 되기도 하는데 소신이 너무 강하다보니 구성원들과 의견 충돌이 일어날 때 이를 제대로 봉합하지 못한다는 평을 받기도 한다. 유승민 전 의원과 정치적 행보를 한 친유계 중진인 정병국 의원은 미래통합당 창당 당시 유승민을 향해 "정치는 혼자 하는 것이 아니다.", "배재가 아니라 같이 할 때는 같이 해야 된다."라고 했다. 결국 유승민은 21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고 새로운보수당자유한국당과 합당하게 된다.[5] 그래서 홍준표 본인 스스로도 대선 경선 토론에서 유승민이 정책 준비는 자신보다 훨씬 잘 됐다며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유승민의 정책을 참고 하겠다고 말할 정도다. 윤석열이 후보로 선출이 되고 대통령이 돼서 없던 일이 되었지만.[6] 사실 지난 19대 대선에서도 유승민은 2030 청년들이 문재인 다음으로 많이 뽑았다. 즉 유승민은 당시부터 청년들에게 호감을 샀던 셈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홍준표에게 잠식당하고 있는 편이다.[7] 홍준표 조차도 제21대 총선 당시 유승민의 불출마 이후에 비어있는 동구 갑, 동구 을 출마를 포기했다.[8] 물론 안종범 대통령비서실 경제수석비서관에게 청탁했다는 의혹이 있었지만 무죄로 판명이 났다. 애초에 이건 수시 교장추천과 같이 자격요건이 되는 자를 추천하는 것이고, 김어준을 비롯한 극성 좌파들이 뿌린 가짜뉴스다.[9] 국회법 개정안은 상위법을 침해하는 시행령 제정을 규제하는 내용으로, 유승민 원내대표 시절에 여야 합의로 통과되었는데 박근혜 대통령은 해당 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했다.[10] 하지만 박근혜 본인이 유승민을 떠나게 했고, 2010년대 들어 친박으로 분류됐던 인사들이 최순실이 정치 개입에 시작하기 시작한 시점부터 박근혜 곁을 떠났다. 게다가 유승민은 최순실, 정윤회 일가를 멀리 하라고 쓴소리를 남겼지만 박근혜는 여기에 불쾌감을 드러냈을 정도. 유승민/비판 및 논란 5번 항목을 참조할 것. 오죽하면 전여옥도 이 부분에 동감을 했을 정도였다.[11] 범보수로 분류되는 홍준표와 안철수는 2022년까지 1만원으로 올리겠다고 한 데 비해, 유승민은 문재인과 심상정처럼 2020년까지 1만원으로 올리겠다고 공약했다. 단 최저임금의 경우 본인이 사과하고 다시 플랜을 구성하기로 했다.[12] 이 부분은 한 지지자와의 문자에서 정책을 재검토하고 원전과 친환경 에너지가 공존하는 형태로 방향을 틀었다고 답변했다.[13] 유승민이 주장하는 것은 수사청으로 문재인 정부에서 설치된 공수처와는 디테일이 다르다. #[14] 물론 20대 대선 공약의 경우 좌파 성향의 공약이 수정되기는 했다.[15] 다만 이 부분에 있어선 당시 보수통합 당시 친박측이 요구한 조건이 유승민의 불출마였기에 불가피했다는 평가도 있다. 실제로 유승민의 불출마 선언 이후 유승민을 그렇게 혐오하던 친박계 김진태 등의 주자들도 "이게 보수 우파가 바라던 모습이다"라며 고평가했다.[16] 윤석열논란으로 인해 유승민 역시 지지율을 챙겨갔지만 상대적으로 효과가 적은 편이었어서 윤석열에게 제대로 대적해볼 만한 인물은 홍준표가 독보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