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성왕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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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현종 원문대왕의 제3비. 현종 元문왕과 元 자 돌림이다.
2. 시호[편집]
대표시호는 원성태후(元成太后), 원성왕태후(元成王太后)인데 고려사 후비 열전에는 원城태후라고도 기록되어 있다.[1]
현종 19년 7월에 사망하자 시호를 원성왕후(元成王后)라 한뒤 명릉에 장사 지냈다. 이후 맏아들 덕종이 보위에 오르면서 어머니를 원성왕태후(元成王太后)로 추존하였다. 또한 후에 용의(容懿), 공혜(恭惠)의 시호를 추가하였다.
이후 사위인 문종이 영목(英穆), 양덕(良德), 신절(信節), 순성(順聖)의 시호를 추가했고, 인종 18년(1140년) 4월에 자성(慈聖)을, 고종 40년(* 1253년) 10월엔 광선(廣宣)이란 시호를 추가했다.
3. 생애[편집]
조부는 안산현 개국후(安山縣 開國侯) 김긍필,[2] 조모는 안산군대부인(安山郡大夫人)이다.
외조부는 소성현 개국후(邵城縣 開國侯) 이허겸이다. 인천 이씨(경원 이씨)의 시조로, 원성왕후가 현종과 결혼한 후 인천 이씨의 세력을 크게 확장한다. 문종 때 이자연이 중용되면서 외척으로 성장했고 인종 때 이자겸이 등장한다. 이자겸은 원성왕후의 외조부가 받았던 소성(邵城) 지방의 작위가 봉해졌다.
아버지는 안산군 개국후(安山郡 開國侯) 김은부, 어머니는 안산군대부인(安山郡大夫人) 이씨[3] 이고 자매로 문종의 제4비 원혜왕후와 제7비 원평왕후가 있다.
현종이 거란을 피해 현 충청남도 공주시까지 내려갔을 때 공주절도사(公州節度使) 김은부가 현종에게 큰 도움이 되어주어 김은부의 딸들을 원주(院主)로 맞이한다. 그 중 한 명인 원성왕후는 현종에게 직접 옷을 지어 바쳤다고 한다.
조부모와 부모들은 사후에 안산을 봉지(封)로 받았다. 이는 현종이 오등작을 내릴 때 일종의 세습처럼 작위를 봉해주었기 때문이다.[4]
슬하에 아들 덕종과 정종, 딸 문종의 제1비인 인평왕후(仁平王后)와 경숙공주(景肅公主)를 두었다.
4. 연경궁[편집]
원성왕후는 연경원을 하사 받았는데 덕종과 정종을 낳고 거처가 연경궁으로 올라간다. 이후 이 궁궐은 활발하게 사용되어 인종 대엔 왕후의 궁궐만이 아닌 임금의 정궁으로 쓰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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