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마뉘엘 조제프 시에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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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공회 의장 (1792~17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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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manuel Joseph Sieyès (1748 ~ 1836)

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프랑스의 정치가로서 프랑스 혁명의 중심인물이었으며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와 손잡고 총재정부를 무너뜨린 인물이다.

유럽 최초의 인권 선언인 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의 초안을 쓰는데 참여했다.


2. 생애[편집]


시에예스는 프랑스 남부 프레쥐에서 우편배달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소르본 대학교에서 가톨릭 사제가 되기 위한 교육을 받은 뒤 주교가 되었다.

루이 16세삼부회를 소집하려하자 시에예스는 "제3신분이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저술해 배포하였는데 책 말머리의 적힌 문구가 인상적이다.

"제3신분이란 무엇인가? 모든 것이다. 지금까지 그들은 무엇이었는가?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들이 무엇을 바라는가? 무언가 되기를 원한다."


결국 이는 프랑스 혁명 당시 국회 탄생의 촉진제가 되었다.

삼부회에서 시에예스는 제 1신분(주교)이였지만 제 3신분을 옹호하는 입장으로 활동하였고, 라파예트와 함께 프랑스 인권 선언의 초안을 작성하였다.

로베스피에르의 공포정치 시기에는 책잡혀서 목 안 달아나려고 죽은 듯 숨만 쉬고 있었는데, 그래서 후일 "댁은 공포정치 시기 때 (그것들 안 막고) 뭣 하고 있었소?"라는 힐난조의 질문에 웃으며 "살아있었죠"라고 대답해서 상황을 넘겼다는 일화가 있다. 어떻게 보면 스탈린 격하 연설중이던 니키타 흐루쇼프가 비슷한 야유에 "방금 어떤 새끼야! 굴라크로 가고 싶어!"라고 외친 다음 좌중이 조용해지자 웃으며 "이제 왜 그랬는지 아시겠지요?"라고 말했다는 공산주의 유머의 원조격이다.

시에예스는 총재정부 수립 당시 5인의 총재 중 한 사람이 되었는데 총재정부가 막장으로 돌아가자[1] 쿠데타를 계획하고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와 손을 잡는다. 그리고 그는 브뤼메르 18일의 쿠데타로 총재정부를 무너뜨린다. 본래 그는 임시 집정정부 제1집정 자리를 노렸지만 나폴레옹에게 밀려 제2집정이 되었고, 결국 실권을 잡는데 실패한다.

루이 18세에 의해 왕정이 복고된 뒤 추방되었다가 7월 혁명 때 프랑스로 되돌아온 뒤 1836년 사망한다.

여담으로 사회학이라는 용어를 탄생시킨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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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당시 총재정부가 얼마나 막장이었냐면 입법부와 행정부가 상호간의 고위층을 향한 암살을 매일 벌일 정도였다. 당장 전국민적인 지지를 받던 나폴레옹이 폭탄으로 암살미수를 경험했으니 말 다한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