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유 (r1판)

편집일시 :

1. 생몰 1651(효종 2)~1707(숙종 33).
2. 급제
- 22세 1673년(현종 14) 사마시에 합격 - 33세 1684년(숙종 10) 정시(庭試) 병과2(丙科2)
3. 암행어사 연보
- 36세 1687년(숙종 13) 어사 민진주·서문유·김준상을 함경도·강원도·경기에 보내 암행하게 하다
4. 관련 기록
≪숙종 018 13/10/30(을해). 어사 민진주·서문유·김준상을 함경도·강원도·경기에 보내 암행하게 하다≫ 어사(御史) 민진주(閔鎭周)·서문유(徐文裕)·김준상(金儁相)을 함경도(咸鏡道)·강원도(江原道)·경기(京畿)의 세 도에 나누어 보내, 암행(暗行)하여 수령(守令)들의 정적(政績) 및 민생들의 병폐를 염탐하여 살피도록 했다. 사헌부에서 경기 어사(京畿御史) 김준상이 제비뽑은 고을에 갔을 적에 양식과 노자를 받아내고서는 서계(書啓)하게 되자 칭찬하는 말을 한 것을 가지고 파직하기를 청하니, 임금이 먼저 파직한 다음 추고(推考)하도록 명하였다. 【원전】 39 집 114 면 【분류】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인사-임면(任免). *사법-탄핵(彈劾) ≪숙종 018 13/11/09(갑신). 비국에서 강릉 진부면을 도로 본부에 소속시키기를 청하다≫ 비국(備局)에서 강릉(江陵) 진부면(珍富面)을 도로 본부(本府)에 소속시키도록 청했으나, 임금이 윤허하지 아니하였다. 이에 앞서 암행 어사(暗行御史) 서문유(徐文裕)가 강릉에서 해마다 공상(貢上)하는 인삼(人蔘)은 본래 이 진부면에서 나온 것인데, 수진궁(壽進宮)·명례궁(明禮宮) 두 궁(宮)에서 갈라 받으면서는 백성들이 인삼을 캘 수 없게 되고, 모집(募集)해 들인 유민(流民)들이 점점 많이 바싹 가까이에 있게 되므로, 사고(史庫)가 화재에 연소(延燒)될 염려가 있어 또한 매우 우려스러움을 이유로 진계하고, 혁파하기를 청했었다. 그러므로 비국(備局)에서 복계(覆啓)한 것인데, 임금이 단지 사고(史庫)에서 1백 리 안은 세(稅)를 거두지 말게만 했었다. 이때 궁장(宮庄)의 폐해가 자못 온나라에 두루 퍼지게 되어, 서민들이 생업(生業)을 잃고 공세(公稅)가 날로 줄어들게 되었다. 【원전】 39 집 114 면 【분류】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인사-임면(任免). *사법-탄핵(彈劾). *재정-공물(貢物). *재정-상공(上供). *농업-특용작물(特用作物). *역사-편사(編史) (자료 : 조선왕조실록, 원문번역 민족문화추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