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펜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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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 11대 국왕
디펜드라
दीपेन्द्र वीर विक्रम शाह
파일:external/murderpedia.org/dipendra-001.jpg
출생1971년 6월 27일
네팔 왕국 카트만두
사망2001년 6월 4일 (향년 29세)
네팔 왕국 카트만두
재위기간제11대 국왕
2001년 6월 1일 ~ 2001년 6월 4일 (3일)
칭호디펜드라 비르 비크람 샤허 데브
부모아버지 비렌드라 국왕
어머니 아이쉬와르야 락쉬미 왕비
종교힌두교

1. 개요
2. 생애
3. 학살, 그리고 최후
4.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네팔왕세자이자 명목상 네팔의 11대 왕이었던 인물.[1] 자기 부모와 숙부, 고모, 동생들을 총으로 쏴 죽여 자기 손으로 가문을 파멸시킨 패륜아로 알려졌다.

2. 생애[편집]


1971년 6월 27일, 당시 네팔의 왕세자였던 비렌드라 국왕과 아이쉬와르야 왕비의 장남으로 출생했다. 1972년 1월 31일, 할아버지 마헨드라가 죽고 아버지 비렌드라가 즉위하자 왕세자가 되었다. 그는 영국이튼 칼리지에서 유학 생활을 보냈는데 상당히 모범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아버지 비렌드라 국왕이 전제군주제를 포기해 국민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듯이, 디펜드라도 국민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3. 학살, 그리고 최후[편집]




2001년 6월 1일 현지 시간 9시, 네팔 왕실에서 개최한 만찬에서 디펜드라는 부왕 비렌드라와 모후 아이쉬와르야, 여동생 슈르티 공주, 남동생 나라잔 왕자, 숙부 디렌드라 왕자 등 일가 왕족들을 총으로 쏘고 자신도 권총 자살을 기도해 중태에 빠졌다. 결국 사흘이 지나 2001년 6월 4일 혼수 상태에 있던 디펜드라가 사망했다. 2001년 6월 1일부터 같은 달 4일까지 약 56시간은 서류상 디펜드라가 임금으로 재위한 기간으로 간주한다.

그 이유를 자세히 설명하자면 이렇다. 우선 디펜드라는 데비아니 라나라는 여자를 사랑했고, 아버지 비렌드라에게 데비아니 라나와 결혼하겠으니 허락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비렌드라는 화를 내며 크게 반대했고, 어머니 아이쉬와르야 왕비는 디펜드라가 35살 이전에 결혼하면 네팔의 왕이 죽을 것이라고 믿어서 아들의 결혼을 반대했다고 한다. 다만 라나의 가문은 과거 백여년간 네팔 왕을 허수아비로 세워놓고 실권을 장악했었던 전력이 있는 가문이라 왕족가문과 사이가 좋을 수가 없었다. 때문에 점 결과는 그저 그럴듯한 명분에 불과하고 실제 결혼 반대사유는 가문과의 마찰이란 의견이 우세하다.

결국 라나와 결혼하기는 수포로 돌아갔고 그걸 못 참은 디펜드라는 이런 일을 벌이고 동귀어진을 일으켰던 것. 그러나 일가족을 총으로 몰살하는 것은 개인으로서도, 왕세자로서도 해서는 안 되는 일이기 때문에 평가는 당연히 좋을 리가 없다.[2] 특히나 디펜드라는 사건을 터뜨리기 전에 마약 중독자였고 연회장에서 만취해서 숙소로 돌아와 마약을 하여 단단히 미쳤다는 것도 드러났다.[3]

이 때문에 디펜드라가 네팔 왕실 참극을 일으키고 자살기도를 벌여 혼수상태로 다 죽어갈 때 네팔 국민들은 분노하여 치료하지 말고 안락사로 처분해 죽이라며 시위까지 벌였다. 특히 사망한 이후에는 왕실 가문 족보에서도 그의 이름이 삭제되어 네팔 구 왕가에서는 디펜드라를 왕가의 일원으로 인정하지 않으며[4] 현재 네팔 샤 왕가에서는 비렌드라의 다음 보위를 큰아들 디펜드라가 아닌 남동생 갸넨드라가 승계한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거기다 네팔 국민들과 현지의 역사학자들조차도 디펜드라를 인간 말종, 부모와 형제를 살해한 패륜아라고 비난하거나 악평을 내리고 있으며, 네팔의 왕정복고를 주장하는 네팔 내 왕당파조차도 디펜드라를 왕정을 망하게 만든 장본인이라며 싫어하고, 왕정 폐지 후 집권한 현 네팔 정부에서도 다른 네팔의 역대 전 국왕과 구 왕족들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공식적으로 예우하는 것과 달리[5], 디펜드라에겐 아무 예우도 하지 않는 등 네팔 현지에서도 자국 역사상 최악의 인물로 두고두고 비판받고 있다.

그 이후 숙부 갸넨드라가 즉위했으나 2008년 국민 투표로 왕실이 폐지되면서 퇴위했다.

4.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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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하지만 군주제 폐지 이후 구 네팔 왕가에서는 네팔의 11대 왕을 디펜드라가 아닌 갸넨드라로 규정하고 있다.[2] 차라리 디펜드라가 에드워드 8세처럼 왕위 계승권을 포기하고 남동생 나라잔 왕자에게 왕세자의 지위를 넘기고 라나와 결혼했거나, 혹은 부왕 비렌드라와 모후 아이쉬와르야가 승하한 뒤에 합법적으로 왕위에 올라 데비아니 라나와의 결혼을 추진했거나 평화적으로 설득하여 결혼을 허락 받았다면 네팔은 현재까지도 왕국으로 남아있었을 것이다. 다만 부왕 비렌드라는 48세에 죽은 증조부 트리부반과 51세에 죽은 마헨드라보다 훨씬 강건하여 이들보다 더 오래 살았고 별다른 지병도 없었기에 기다리기엔 시간이 훨씬 걸렸기에 그랬을 수도 있다. [3] 다만 네팔 왕실도 책임이 없지 않다. 왕세자가 마약 중독에 빠질 정도면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는 뜻이다. 게다가 그는 몰래 무기를 소지했는데, 사건현장에서 디펜드라가 범행에 사용한 총이 4정이나 되었다. 이 정도면 그를 폐위하고 정신과 치료를 받게 하거나 유폐하는 등의 조처를 취했어야 했는데 왕실에선 아무런 손도 대지 않았다.[4] 참극이 일어난 직후에는 왕실과 정부 모두 불안정한 초비상사태였기에 일단 그를 국왕으로 임시 인정한 것이고 그의 재위기간도 임시적으로 인정한 것이지만 갸넨드라 치세 들어 왕실이 안정화된 뒤에는 그를 국왕으로도 인정하지 않고 그의 재위기간도 인정하지 않는 것으로 바꼈다. [5] 심지어 전제군주제로 폭정을 벌였다가 폐위당한 뒤에도 왕정복고와 구 왕가 재산 반환을 요구하는 디펜드라의 숙부인 갸넨드라에 대해서도 네팔 정부에서 전 군주로서 예우를 할 정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