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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구(대전 선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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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대부터 15대까지 동구는 갑/을로 선거구가 나뉘어졌다가 16대부터 단일 선거구가 되었다. 이 동네는 원도심 지역이라 신도심이고 젊은층 인구가 많은 유성구와 서구와 달리 주민들의 연령층이 전체적으로 높아 보수 성향이 강한 편에 속하고, 그래서 17대 총선과 21대 총선을 제외하면 보수정당 후보가 이겼다.
현역 의원은 더불어민주당의 장철민 의원이다.
종로구가 서울특별시의 총선결과를 먼저 공개하는 선거구로 '대한민국 정치 1번지'로 언급되듯이 이 선거구는 '대전 정치 1번지' 혹은 '충청도 정치 1번지'로 언급된다.
새누리당,민주통합당,자유선진당 3후보간의 3파전이 펼쳐졌고, 불과 1,711표 차이로 승패가 갈랐다. 참고로 3위와 2위 사이의 격차로 5천여표 차이로 역대급 접전을 이뤘다고 봐도 무방하다.
강래구 후보는 용운동,대동,용전동,홍도동에서 임영호 후보는 중앙동에서 이장우 후보는 부재자투표와 나머지 동 전체에서 이겼다.
이번에는 야권의 분열 속에 더 큰 격차로 이장우 후보가 강래구 후보를 꺾었다.
이장우 후보는 효동과 관외사전투표를 제외한 전 동에서 이겼으며, 강래구 후보는 효동에서만 이겼다.
여담으로 이 때 낙선한 강래구 후보는 이로부터 7년 뒤인 2023년, 더불어민주당 돈봉투 사건에 연루되게 된다.
출구조사에선 이장우 후보의 우세로 나왔다. 개표 과정은 격전지답게 치열하게 펼쳐졌으나 개표 후반부로 갈수록 장철민 후보가 앞서나갔다. 결국 최종 개표 결과 출구조사와 달리 장철민이 이장우를 득표율 3.45% 차이로 이겨 16년 만에 민주당계 정당이 동구를 탈환했다. 이로서 대전 최초 1980년대생 의원이 탄생하였다.
지역별로 보면, 장철민 후보는 효동, 판암1동, 가양2동, 용전동, 산내동, 홍도동, 신인동, 자양동에서 이겼다. 이장우 후보는 중앙동, 판암2동, 용운동, 대동, 가양1동, 삼성동, 대청동에서 이겼다. 그나마도 접전이었다. 성남동은 장철민, 이장우 모두 동일한 표를 얻었다.
동별 본 투표에서 장철민이 근소하게 앞설 때 사전투표함이 열렸고 거소 및 선상투표, 국외 부재자 투표, 관외 사전투표를 모두 장철민이 이기면서 당선된다.
아무래도 총선판을 뒤흔들었던 차명진 막말 파동의 영향이 컸던 듯 하다. 특히 동구 판암동, 자양동, 용전동 등은 젊은 세대가 꽤 많이 살다보니 표심이 많이 흔들린 모양. 실제로 선거기간 중 이장우 후보가 여론조사를 근소하게나마 꾸준히 앞섰다는 것을 생각하면 더더욱. 물론 이장우 후보 역시 김태흠, 김진태와 함께 19~20대 국회에서 친박 하드탱커(...)의 한 축이였던데다가[2] 옆 지역구의 정용기와 함께 20대 국회 기간에 종북몰이, 프로막말러의 상징으로 꼽혀온 사람이라 타격이 더 컸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장우 후보의 토론 태도 역시 도마에 올랐다. 상대 후보의 발언 하나하나에 젊은이가 되도 않는 소리를 한다는 식으로 비하하며 딴지를 거는 식의 토론태도를 선거기간 내내 유지했는데 이런 태도 역시 동구민들에게 비호감을 단단히 샀었다.[3]
여담으로 낙선한 이장우 후보는 2년 뒤 대전광역시장에 당선된다.
1. 개요[편집]
13대부터 15대까지 동구는 갑/을로 선거구가 나뉘어졌다가 16대부터 단일 선거구가 되었다. 이 동네는 원도심 지역이라 신도심이고 젊은층 인구가 많은 유성구와 서구와 달리 주민들의 연령층이 전체적으로 높아 보수 성향이 강한 편에 속하고, 그래서 17대 총선과 21대 총선을 제외하면 보수정당 후보가 이겼다.
현역 의원은 더불어민주당의 장철민 의원이다.
종로구가 서울특별시의 총선결과를 먼저 공개하는 선거구로 '대한민국 정치 1번지'로 언급되듯이 이 선거구는 '대전 정치 1번지' 혹은 '충청도 정치 1번지'로 언급된다.
2. 역대 국회의원 목록과 역대 선거 결과[편집]
2.1. 동구 甲/乙 (13~15대)[편집]
2.1.1. 제13대 국회의원 선거[편집]
2.1.2. 제14대 국회의원 선거[편집]
2.1.3. 제15대 국회의원 선거[편집]
2.2. 동구 (16대~)[편집]
2.2.1. 제16대 국회의원 선거[편집]
급속한 인구 감소로 인해 13대부터 15대까지 동구 갑/을로 나뉘어졌던 선거구가 단일 선거구로 환원되었다. 15대 동구 갑/을 국회의원은 모두 자민련 소속이었는데, 을 지역구의 이양희 의원이 자민련 공천을 받게 되자 갑 지역구의 김칠환 의원이 반발하여 한나라당에 입당했고, 새천년민주당에서는 12, 14대 의원을 지낸 송천영 전 의원이 출마했다. 3당 후보 간의 치열한 접전이 예상되었지만 결과는 자민련 이양희 후보의 낙승으로 끝났다.
2.2.2. 제17대 국회의원 선거[편집]
2.2.3. 제18대 국회의원 선거[편집]
2.2.4. 제19대 국회의원 선거[편집]
새누리당,민주통합당,자유선진당 3후보간의 3파전이 펼쳐졌고, 불과 1,711표 차이로 승패가 갈랐다. 참고로 3위와 2위 사이의 격차로 5천여표 차이로 역대급 접전을 이뤘다고 봐도 무방하다.
강래구 후보는 용운동,대동,용전동,홍도동에서 임영호 후보는 중앙동에서 이장우 후보는 부재자투표와 나머지 동 전체에서 이겼다.
2.2.5. 제20대 국회의원 선거[편집]
이번에는 야권의 분열 속에 더 큰 격차로 이장우 후보가 강래구 후보를 꺾었다.
이장우 후보는 효동과 관외사전투표를 제외한 전 동에서 이겼으며, 강래구 후보는 효동에서만 이겼다.
여담으로 이 때 낙선한 강래구 후보는 이로부터 7년 뒤인 2023년, 더불어민주당 돈봉투 사건에 연루되게 된다.
2.2.6. 제21대 국회의원 선거[편집]
미래통합당에선 현역인 이장우가 출마했고 더불어민주당에선 홍영표 의원 보좌관 출신의 장철민 후보가 출마했다. 이로서 국회의원 보좌관 출신의 야당 중진 의원 vs 여당 정치 신인의 맞대결이 되었다. 대전 원도심이라는 이 지역구의 특성상 대전에서 중구와 대덕구와 함께 보수적인 곳이라서 이장우가 이길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다. 하지만 지난 총선 때 이장우가 야권 분열로 당선되었다는 점과 대선, 지선에서 동대전 지역도 더불어민주당이 승리했다는 점은 불안 요소였다.
출구조사에선 이장우 후보의 우세로 나왔다. 개표 과정은 격전지답게 치열하게 펼쳐졌으나 개표 후반부로 갈수록 장철민 후보가 앞서나갔다. 결국 최종 개표 결과 출구조사와 달리 장철민이 이장우를 득표율 3.45% 차이로 이겨 16년 만에 민주당계 정당이 동구를 탈환했다. 이로서 대전 최초 1980년대생 의원이 탄생하였다.
지역별로 보면, 장철민 후보는 효동, 판암1동, 가양2동, 용전동, 산내동, 홍도동, 신인동, 자양동에서 이겼다. 이장우 후보는 중앙동, 판암2동, 용운동, 대동, 가양1동, 삼성동, 대청동에서 이겼다. 그나마도 접전이었다. 성남동은 장철민, 이장우 모두 동일한 표를 얻었다.
동별 본 투표에서 장철민이 근소하게 앞설 때 사전투표함이 열렸고 거소 및 선상투표, 국외 부재자 투표, 관외 사전투표를 모두 장철민이 이기면서 당선된다.
아무래도 총선판을 뒤흔들었던 차명진 막말 파동의 영향이 컸던 듯 하다. 특히 동구 판암동, 자양동, 용전동 등은 젊은 세대가 꽤 많이 살다보니 표심이 많이 흔들린 모양. 실제로 선거기간 중 이장우 후보가 여론조사를 근소하게나마 꾸준히 앞섰다는 것을 생각하면 더더욱. 물론 이장우 후보 역시 김태흠, 김진태와 함께 19~20대 국회에서 친박 하드탱커(...)의 한 축이였던데다가[2] 옆 지역구의 정용기와 함께 20대 국회 기간에 종북몰이, 프로막말러의 상징으로 꼽혀온 사람이라 타격이 더 컸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장우 후보의 토론 태도 역시 도마에 올랐다. 상대 후보의 발언 하나하나에 젊은이가 되도 않는 소리를 한다는 식으로 비하하며 딴지를 거는 식의 토론태도를 선거기간 내내 유지했는데 이런 태도 역시 동구민들에게 비호감을 단단히 샀었다.[3]
여담으로 낙선한 이장우 후보는 2년 뒤 대전광역시장에 당선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