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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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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前 야구선수. 삼성 라이온즈의 창단 멤버. 이외에 빙그레 이글스, 태평양 돌핀스에서 활동했다.
2. 선수 경력[편집]
1970년대 대구 야구의 전성기 시절에 경북고의 독주를 마무리한 대구상고 야구단의 전성기를 이끈 선수다. 이 때 함께 대구상고 야구부를 이끈 인물이 바로 장효조. 1973년 3차례의 우승과 1974년 봉황대기 우승의 주역이었다.
1982년 프로야구가 출범하며 연고 팀인 삼성 라이온즈에 원년 멤버로 입단했다. 당시 3루수로는 이렇다 할 선수가 없어 천보성과 3루를 나눠 맡았으나, 사실상 김한근이 주전으로 기용되었다. 그러나 이듬해 김근석에게 3루수 자리를 뺏기며 백업으로 밀려났다. 이후 김근석이 부상으로 하락세를 걸었지만 김용국이 그 공백을 메우며 삼성에서 자리를 잃었고, 1985년 8월 송상진과 현금트레이드로 빙그레 이글스로 이적했다.[1]
이듬해 빙그레가 1군으로 올라오며 빙그레의 원년 3루수로 활약했다. 이후 1988년까지 빙그레에서 활동했는데 그 해에는 오른손 지명타자로 짬짬한 활약을 했다. 하지만 1988년 부임한 김영덕 감독이 천안북일고 출신 내야수 전대영에게 많은 오른손 지명타자 기회를 부여하기 위해 현금 트레이드를 통하여 그 해 시즌 뒤 태평양 돌핀스에 이적한 후 1990년을 끝으로 은퇴했다.
3. 지도자 경력[편집]
은퇴 후 OB 베어스 2군에서 6년간 타격코치를 했고 이후 2000년 모교인 대구상고 감독을 맡았다. 2001년에는 삼성 2군 타격코치로 친정에 오랜만에 복귀하여 2005년까지 5년간 코치를 맡았다. 2005년 한국시리즈 우승 후 재계약 포기 통보를 받았다.
한양대학교 야구부 코치를 맡던 중 입시비리로 대학선배 천보성이 감독에서 물러나자, 천보성의 후임 감독으로 승격하여 2014년에 한양대학교 야구부를 대통령기 전국대학야구대회 우승으로 이끌었다.[2] 최근 고교 선수들의 프로행 러시에 대해 의견을 표명하였다. 관련기사 2016년을 끝으로 김기덕 코치에게 감독직을 넘기고 정년 퇴임했다.
4. 기타[편집]
오대석이 한국프로야구 사상 최초로 사이클링 히트를 기록한지 불과 8일 후인 6월 20일, 삼미 슈퍼스타즈와의 더블헤더 2차전 때 김한근이 사상 두 번째 사이클링 히트를 기록할 수도 있었다. 홈런, 3루타, 2루타를 치고 단타 하나만을 남겨둔 상황이었는데 7회말 진행 중 비가 오는 바람에 강우콜드로 그대로 경기가 끝나며 무산되었다.
대구상고 47회 졸업생이다. 장효조, 최병국과 고교 동기며 선수생활을 같이 했다.
5. 연도별 성적[편집]
6. 관련 문서[편집]
[1] 참고로 이 트레이드를 마지막으로 8월에 합의된 트레이드는 없었지만 코로나 19의 창궐로 인해 개막시점이 어린이날로 늦어져 마감시한도 광복절로 늦어진 2020년에 NC 장현식, 김태진<->KIA 문경찬, 박정수의 2:2 트레이드가 성사되며 35년 만에 마지막 칭호가 빠지게 되었고, 마지막 8월의 트레이드는 SK 이홍구 <-> KT 오태곤으로 남게 되었다.[2] 당시 에이스는 황인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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