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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정구(선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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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대한민국국회선거구
파일:국회휘장.svg
금정구
금정구 일원
金井區
Geumjeong
||
파일:국회선거구 금정구.svg
선거인 수192,113명 (2024)
상위 행정구역부산광역시
관할 구역
[ 펼치기 · 접기 ]
금정구 전역
금성동, 남산동, 서1동, 서2동, 서3동, 선·두구동, 구서1동, 구서2동, 장전1동, 장전2동, 부곡1동, 부곡2동, 부곡3동, 부곡4동, 금사·회동동, 청룡·노포동
신설년도1996년
이전 선거구금정구 갑, 금정구 을
국회의원
파일:국민의힘 흰색 로고타입.svg

백종헌



1. 개요[편집]


1988년 1월, 본래 동래구에 속했던 서동, 금사동, 부곡동, 장전동, 구서동, 남산동, 청룡동, 노포동, 금성동, 선동, 두구동을 동래구에서 분리한 후 금정구를 신설하면서 같은 해에 치러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 때부터 이 선거구가 신설되었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인구 상한선 초과로 서동, 금사동, 부곡동, 오륜동, 선동, 두구동을 포함하는 금정구 갑 선거구와 장전동, 구서동, 남산동, 청룡동, 노포동, 금성동을 포함하는 금정구 을 선거구로 나뉘어졌다.

그러나 다시 인구 감소로 인해 다음 총선인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도로 단일 선거구로 병합되어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다. 21대 국회 기준으로는 국민의힘 백종헌이 이 곳 지역구 국회의원이다.


2. 특징[편집]


부산광역시 내에서도 가장 보수 성향이 강한 동네[1]인데다 한국에서 보기 드문 지역구 세습 지역이었다. 해당 선거구는 13대 총선 때 신설되어 현재까지 총 8번 총선을 치른 곳인데, 13대 ~ 16대까지 김진재가 내리 4선을 했다.[2] 또 18 ~ 20대까지 그의 아들 김세연이 내리 3선을 했다.

즉, 아버지가 4선+아들이 3선으로 김녕 김씨 부자가 도합 7선을 지낸 곳이란 뜻이다. 서울특별시마포구 갑[3]중구[4], 도봉구 갑[5]경기도수원시 병[6] 지역과 더불어서 국내에서 보기 드문 지역구 세습 지역이라 할 수 있다.

금정구는 김진재 - 김세연 부자의 지역 기반이 워낙 탄탄한 곳이기에 민주당계 정당과 진보정당 입장에서는 좀처럼 금정구에 변변한 대항마조차 보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다만 분구 이전 동래구 시절이던 1973 ~ 1981년에는 구서동태광산업과 연관이 있었던[7] 민주당 전 총재 이기택이 재선을 했던 적이 있었고[8] 이 시기에 태광산업[9]을 위시한 구서동 일대가 크게 발전하였고, 이기택도 여기서 정치적 기반을 크게 다졌었던 만큼 금정구 일대에 오래 살았던 사람들이라면 이기택 정도로 지역구에서 거물급이여야 그나마 호각을 이룰 정도로 김진재-김세연의 영향력이 매우 강한 편이다.

다만 여기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인해 치러진 19대 대선에서는 더불어민주당문재인자유한국당 홍준표를 상대로 막판 뒤집기 대역전극을 벌인 끝에 36.8%:33.3%로 3.5% 차이로 1위를 차지했고, 부산대학교가 있어 금정구에서 비교적 젊은 인구가 많은 장전2동에서 40%가 넘는 득표율을 올리며 홍준표를 압도한 바 있다.

게다가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선 더불어민주당 정미영 후보가 전 금정구청장 원정희 후보를 상대로 9% 격차로 이김으로써 금정구도 마냥 보수의 아성이라고 보긴 어려울 정도가 되었었다.

다만 문재인 정부의 실책과 오거돈 당시 현역 시장의 낮은 지지율로 부산 민심이 꽤 돌아선 가운데 치러진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선 김세연 후보가 불출마 선언을 해서 가문 정치를 종결지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정부에 대한 반감은 심해서 미래통합당 백종헌 전 백산금속 대표이사가 당선되었다. 비록 박무성국제신문 대표이사가 40% 넘게 득표해 선전하긴 했지만.

2022년 제20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가 60.70%를 득표하여 민주당 이재명 후보에 대해 25%p 이상의 격차로 압승했다. 덕분에 완전히 보수 텃밭으로 돌아온 것으로 확인된다.

특히 윤석열 후보는 부산대학교가 위치하여 젊은 인구가 많고, 중산층 이상 위주의 아파트 단지들이 많은 장전2동에서 61.18%를 득표했는데, 이는 해운대구,수영구와 같이 종부세의 여파를 보여주고 이와 동시에 20대 남성의 이탈을 보여주는 결정적인 증표가 되었다.


3. 역대 국회의원 목록 및 선거 결과[편집]


대수당선인당적임기선거구
제13대김진재
파일:민주정의당 글자.svg

1988년 5월 30일 ~ 1992년 5월 29일금정구
제14대
ta-hash-start=w-d5061cc3316b981d8e351fbd4fd04665[[파일:민주자유당 글자.svg
1992년 5월 30일 ~ 1996년 5월 29일
제15대
ta-hash-start=w-a080c3b21aced9b1f9832871cdf4a381[[파일:신한국당 흰색 로고타입.svg
1996년 5월 30일 ~2000년 5월 29일금정구 갑[10]
김도언금정구 을[11]
제16대김진재
파일:한나라당 흰색 로고타입(1997~2004).svg

2000년 5월 30일 ~ 2004년 5월 29일금정구
제17대박승환
파일:한나라당 흰색 로고타입.svg

2004년 5월 30일 ~ 2008년 5월 29일
제18대김세연
무소속

2008년 5월 30일 ~ 2012년 5월 29일
제19대
ta-hash-start=w-55b631a083678b1748313493a183a42b[[파일:새누리당 흰색 로고타입.svg
2012년 5월 30일 ~ 2016년 5월 29일
제20대2016년 5월 30일 ~ 2020년 5월 29일
제21대백종헌
ta-hash-start=w-6e7d2da6d3953058db75714ac400b584[[파일:미래통합당 흰색 로고타입.svg
2020년 5월 30일 ~ 2024년 5월 29일
제22대
파일:국민의힘 흰색 로고타입.svg

2024년 5월 30일 ~ (예정)


3.1. 제13대 국회의원 선거[편집]


금정구
금정구 일원[a]
기호이름득표수순위
정당득표율비고
1김진재(金鎭載)68,7511위

파일:민주정의당 글자.svg

47.86%당선
2이대우(李大雨)[12]66,9852위

ta-hash-start=w-5233192aecbebcc1a0c5a5b47748c31c[[파일:통일민주당 흰색 로고타입.svg
46.63%낙선
3문용한(文龍漢)4,9203위

ta-hash-start=w-a717f9302ae9e40784b4ca0bda630169[[파일:신민주공화당 글자.svg
3.42%낙선
4전한도(全漢道)2,9804위

ta-hash-start=w-948a3f42b4f8773354b2ff4ba6cc290d[[파일:한겨레민주당 글자.svg
2.07%낙선
선거인 수183,035투표율
78.99%
투표 수144,588
무효표 수952
부산의 다른 지역을 통일민주당이 싹쓸이 할 때 부산광역시에서 유일하게 민주정의당 후보가 당선된 곳이다. 비록 격차는 1,866표 차이로 근소했지만 김진재의 영향력이 꽤 강하다는 걸 반증한 셈이다.


3.2. 제14대 국회의원 선거[편집]


금정구
금정구 일원[a]
기호이름득표수순위
정당득표율비고
1김진재(金鎭載)86,2841위

ta-hash-start=w-d0a17b281c3e4eaef6718d891e38cb42[[파일:민주자유당 글자.svg
60.29%당선
2김재규(金在圭)25,9702위


17.98%낙선
3박창종(朴昌鍾)17,0493위

ta-hash-start=w-2aae04774b083d5f1deb2b9e71f0367a[[파일:통일국민당 글자.svg
11.91%낙선
4문용한(文龍漢)1,7047위
1.19%낙선
5김용규(金龍奎)4,0905위
2.85%낙선
6노창동(盧昌東)6,0704위
4.24%낙선
7채선수(蔡先洙)2,1626위
1.51%낙선
선거인 수209,782투표율
68.98%
투표 수144,705
무효표 수1,605


3.3. 제15대 국회의원 선거 (甲/乙)[편집]


금정구 갑
서1동, 서2동, 서3동, 서4동, 금사동, 오륜동,
부곡1동, 부곡2동, 부곡3동, 부곡4동, 선동, 두구동
기호이름득표수순위
정당득표율비고
1김진재(金鎭載)41,9631위
65.04%당선
2문용한(文龍漢)5,5983위
8.67%낙선
3이황규(李黃奎)9,9832위
15.47%당선
4채선수(蔡先洙)2,7785위
4.30%낙선
5이병태(李秉泰)4,1934위
6.49%낙선
선거인 수108,701투표율
60.74%
투표 수66,022
무효표 수1,507

금정구 을
장전1동, 장전2동, 장전3동, 노포동,
청룡동, 남산동, 구서1동, 구서2동, 금성동
기호이름득표수순위
정당득표율비고
1김도언(金道彦)34,9391위
57.21%당선
2김종필(金鐘弼)2,5214위
4.12%낙선
3김재규(金在圭)14,4952위
23.73%당선
4최국주(崔國株)2,4825위
4.06%낙선
5성태진(成泰眞)4,2083위
6.89%낙선
6박정웅(朴政雄)2,4186위
3.95%낙선
선거인 수102,840투표율
60.50%
투표 수62,222
무효표 수1,159


3.4. 제16대 국회의원 선거[편집]


금정구
금정구 일원[금정]
기호이름득표수순위
정당득표율비고
1김진재(金鎭載)79,5521위
72.26%당선
2성태진(成泰眞)10,3983위
9.44%낙선
3문용한(文龍漢)2,0265위
1.84%낙선
4김영백(金榮百)4,8634위
4.41%낙선
5노창동(盧昌東)13,2492위
12.03%낙선
선거인 수210,855투표율
52.80%
투표 수111,327
무효표 수1,239


3.5. 제17대 국회의원 선거[편집]


금정구
금정구 일원[금정]
기호이름득표수순위
정당득표율비고
1박승환(朴勝煥)66,8521위
52.41%당선
3박원훈(朴元勳)40,4912위
31.74%낙선
4채선수(蔡先洙)5425위
0.42%낙선
5김석준(金錫俊)12,2153위
9.57%낙선
6노창동(盧昌東)7,4524위
5.84%낙선
선거인 수208,803투표율
61.76%
투표 수128,951
무효표 수1,399


3.6. 제18대 국회의원 선거[편집]


금정구
금정구 일원[금정]
기호이름득표수순위
정당득표율비고
2박승환(朴勝煥)26,7782위
27.18%낙선
4이의엽(李義燁)6,8433위
6.94%낙선
6홍인배(洪仁培)5194위
1.10%낙선
7김세연(金世淵)63,8061위
64.76%당선
선거인 수206,393투표율
48.24%
투표 수99,559
무효표 수1,043
한나라당에서 현역 박승환 의원을 공천했음에도 불구하고 무소속으로 출마한 김진재 전 의원의 아들 김세연 후보가 압도적인 표차로 당선되면서 금정구 지역의 김진재 일가의 영향력을 실감하게 했다.


3.7. 제19대 국회의원 선거[편집]


금정구
금정구 일원[금정]
기호이름득표수순위
정당득표율비고
1김세연(金世淵)74,1031위
66.25%당선
2장향숙(張香淑)37,7432위
33.74%낙선
선거인 수210,332투표율
53.71%
투표 수112,975
무효표 수1,129
새누리당에선 현역 의원 김세연이 재선에 나섰고 민주통합당에선 장향숙이 출마해 김세연과 1 : 1 맞대결을 펼쳤다. 하지만 김진재-김세연 부자가 도합 5선을 지낸 곳인만큼 그 관록과 아성을 넘을 수는 없었고 결국 이 진검승부는 66.2% : 33.7%로 더블 스코어 차로 싱겁게 끝나버렸다. 장향숙은 19대 총선 이후 공천청탁 금품수수 혐의로 기소되어 징역 1년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3.8. 제20대 국회의원 선거[편집]


금정구
금정구 일원[금정]
기호이름득표수순위
정당득표율비고
1김세연(金世淵)65,0381위
56.58%당선
2박종훈(朴鍾勳)37,6842위
32.78%낙선
4노창동(盧昌東)12,2073위
10.62%낙선
선거인 수209,696투표율
55.76%
투표 수116,936
무효표 수2,007
새누리당에선 3선에 도전하는 김세연이 출마했고 더불어민주당에선 박종훈이, 정의당에선 노창동이 출마해 김세연 부자의 7선을 저지하기 위해 나섰다. 그러나 야권 후보 단일화 실패, 김세연 부자의 탄탄한 지역 기반이라는 아성을 넘을 수는 없었다. 결국, 김세연이 56.6%로 넉넉한 득표율로 당선되었다. 대항마 박종훈은 32.8%의 득표율로 선전했지만 그 정도로 만족해야 했다. 야권 후보인 박종훈과 노창동의 득표율을 합쳐도 43.4%에 불과해 김세연의 아성을 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역시 김 씨 부자의 관록은 어딜 가지 않았다.


3.9. 제21대 국회의원 선거[편집]


금정구
금정구 일원[금정]
기호이름득표수순위
정당득표율비고
1박무성(朴畝成)57,4592위
40.41%낙선
2백종헌(白宗憲)77,0481위
54.19%당선
3노창동(盧昌東)3,5443위
2.49%낙선
6신수영(辛洙暎)3,0784위
2.16%낙선
7이재화(李在華)1,0465위
0.73%낙선
선거인 수210,078투표율
68.55%
투표 수144,002
무효표 수1,827

21대 총선 부산 금정구 개표 결과
정당더불어민주당미래통합당격차
(1위/2위)
투표율
(선거인/표수)
후보박무성백종헌
득표수
(득표율)
57,459
(40.41%)
77,048
(54.19%)
-19,589
(▼13.78)
68.55%
서1동33.81%61.33%▼27.5258.53
서2동35.40%59.95%▼24.5561.50
서3동34.69%60.56%▼25.8760.49
부곡1동36.85%58.66%▼21.8165.83
부곡2동41.19%53.28%▼12.0968.52
부곡3동42.17%52.85%▼10.6869.34
부곡4동37.62%57.27%▼19.6565.75
장전1동44.38%47.75%▼3.3766.39
장전2동[13]42.96%52.01%▼9.0566.86
선두구동29.70%67.26%▼37.5671.30
청룡노포동36.27%59.17%▼22.9068.92
남산동37.96%56.17%▼18.2163.95
구서1동40.90%53.75%▼12.8570.31
구서2동39.66%55.33%▼15.6771.34
금성동38.33%57.12%▼18.7974.64
금사회동동33.11%62.93%▼29.8262.51
후보박무성백종헌격차
거소·선상투표44.06%43.82%△0.24
관외사전투표52.92%40.40%△12.52
국외부재자투표70.87%22.82%△48.05
이 지역 현역인 미래통합당 김세연 의원은 불출마를 선언했다. 여담으로, 이 덕분에 이 지역구에서 32년간 이어진 김진재 - 김세연 부자의 지역구 세습이 마무리되었다.

또 여담으로 이 지역은 여야 모두 호떡 공천으로 몸살을 앓았던 곳이다. 여당 더불어민주당은 김경지 변호사가 처음에는 단수공천을 받았다가 이후 경선으로 전환되어 박무성국제신문 대표 이사와의 경선에서 김경지 변호사가 승리를 거두고 공천을 받았다. 그러나 공천을 받았던 김경지 변호사가 일신상의 이유로 후보직에서 물러나면서 결국 박무성 예비후보로 후보를 교체했다.

지역구를 지키려는 제1야당 미래통합당은 백종헌 백산금속 사장과 김종천 전 규림요양병원장이 출사표를 던졌다. 여기에 원정희 전 금정구청장도 출마를 했는데, 경선이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김종천 예비후보가 공천을 받았는데, 당 지도부에서 이를 무효화시키고 최종적으로 백종헌 사장과 원정희 전 구청장 간의 경선을 통해 백종헌 후보를 공천했다.

정의당에서는 신수영 지역위원장이 출마했다.

결과는 미래통합당 백종헌 후보가 54.19%를 얻어서 당선됐다. 상대당 후보인 더불어민주당 박무성 후보는 40.41%를 득표했다. 민주당 후보의 득표율이 금정구에서 40%를 넘은 것은 3당 합당 이후의 총선에서 최초이다. 동별로 보면 모든 동에서 통합당 백종헌 후보가 이겼고, 부산대학교가 있는 장전 1동에서도 317표 차 신승 했다.


3.10. 제22대 국회의원 선거[편집]


금정구
금정구 일원[금정]
기호이름득표수순위
정당득표율비고
1박인영(朴仁映)56,1002위
43.37%낙선
2백종헌(白宗憲)73,2371위
56.62%당선
선거인 수192,113투표율
68.35%
투표 수131,316
무효표 수1,979

22대 총선 부산 금정구 개표 결과
정당더불어민주당국민의힘격차
(1위/2위)
투표율
(선거인/표수)
후보박인영백종헌
득표수
(득표율)
56,100
(43.37%)
73,237
(56.62%)
-17,137
(▼13.25)
68.35%
서1동36.70%63.29%▼26.5961.12
서2동38.01%61.98%▼23.9762.52
서3동37.20%62.79%▼25.5961.46
부곡1동36.83%63.16%▼26.3366.93
부곡2동45.40%54.59%▼9.1967.70
부곡3동45.51%54.48%▼8.9770.52
부곡4동39.46%60.53%▼21.0766.31
장전1동49.16%50.83%▼1.6762.71
장전2동[14]45.33%54.66%▼9.3365.38
선두구동34.56%65.43%▼30.8773.86
청룡노포동37.12%62.87%▼25.7568.85
남산동39.95%60.04%▼20.0962.37
구서1동45.00%54.99%▼9.9968.28
구서2동42.36%57.63%▼15.2770.20
금성동39.78%60.21%▼20.4375.00
금사회동동35.11%64.88%▼29.7763.27
후보박인영백종헌격차
거소·선상투표43.63%56.36%▼12.73
관외사전투표54.92%45.07%△9.85
국외부재자투표74.86%25.13%△49.73
2018년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부산광역시의회 시의원을 역임하고 여성 최초로 부산광역시의회 의장을 역임한 박인영 후보와 재선에 도전한 백종헌 후보와의 대결이었다.

비록 백종헌 의원이 이겼긴 하나, 박인영 전 시의회 의장도 43%를 받아서 3당 합당 이후 금정구에서 민주당계 정당이 얻은 최고의 득표율을 거두며 선전하였다.


[1] 특히 구서동 일대는 1969년에 부산 최대 섬유공장인 태광산업이 들어서면서 인구들이 대거 유입되었는데, 이 때문에 정치적으로 보수 성향이 강한 지역인 대경권 쪽에서 일자리를 찾으러 부산으로 내려온 사람들이 대거 구서동으로 유입되었던 것도 그 영향에 한 몫 했다. 태광산업의 창립자인 이임용 전 회장과 이선애 전 상무부터가 둘 다 경상북도 포항시 출신이다 보니 대경 출신 사람들을 많이 채용하기도 했었다고 하지만 태광산업 공장이 사실상 구서동을 떠난지 오래된 지금은 예전에 비하면 보수세가 많이 약해졌다.[2] 단, 15대는 금정구가 금정구 갑과 금정구 을로 나뉘었는데, 김진재는 금정구 갑 국회의원이었다.[3] 노승환 - 노웅래 부자가 도합 9선을 지냈으며, 노승환 전 의원은 국회부의장을 지낸 후 마포구에서 구청장을 두 번 지냈다.[4] 정일형 - 정대철에 이어 손자 정호준까지 3대가 도합 14선을 했다.[5] 김근태 - 인재근 부부가 도합 6선을 지냈다. 유일하게 부부 세습 지역구다.[6] 이 곳은 남평우 - 남경필 부자가 도합 7선을 지낸 곳이다.[7] 자형 이임용이 태광산업 창업자였다.[8] 1971년 동래구 을 시절까지 포함하면 동래구 지역에서는 총 3선이지만, 동래구 을은 지금의 금정구 구역에 해당하는 곳이 아니기 때문에 금정구 입장에서는 실질적으로 이기택은 재선이었다.[9] 전성기 시절 태광산업의 영향력은 지금의 구서동 일대에서 정말로 막강했었는데, 태광산업이 구서동으로 이전하면서 변방 지역이던 구서동에 일자리를 찾으러 인구가 많이 유입되었고, 태광산업도 구서동에서 크게 성장했었으며, 그 덕분에 구서동은 금정구의 대표적인 주거지역이 되었다. 1975년까지 태광산업 본사가 구서동에 있었으나 태광산업 본사가 서울로 이전한 이후에 구서동을 위시한 지금의 금정구 일대에서 영향력이 약해지기 시작했었다. 그래도 동일고무벨트 김진재 일가도 손대지 못한 금정구의 사립학교도 태광산업은 구서동 금싸라기 땅에 태광여자상업고등학교(애석하게도 설립자가 사망한 이후에 운영하기 싫다고 폐교.) 설립으로 손을 댔었다는 걸 생각하면 어떤 면에서는 금정구에서 동일고무벨트보다 대단했던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지금은 생산 설비를 폐쇄하고, 사실상 방치된 태광산업 구서동 공장을 금정구 발전을 저해하는 흉물이라고 조롱하거나, 금정구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태광여자상업고등학교를 일방적으로 폐교하면서 금정구민들을 제대로 엿먹였다고 비판하는 경우도 있다.[10] 서1동, 서2동, 서3동, 서4동, 금사동, 오륜동, 부곡1동, 부곡2동, 부곡3동, 부곡4동, 선동, 두구동[11] 장전1동, 장전2동, 장전3동, 노포동, 청룡동, 남산동, 구서1동, 구서2동, 금성동[a] A B 서1동, 서2동, 서3동, 서4동, 금사동, 오륜동, 부곡1동, 부곡2동, 부곡3동, 부곡4동, 선동, 두구동, 장전1동, 장전2동, 장전3동, 노포동, 청룡동, 남산동, 구서1동, 구서2동, 금성동[12] 1960년 2.28 학생민주의거를 주도한 당시 경북고 학생부 위원장.[금정] A B C D E F G 금성동, 남산동, 서1동, 서2동, 서3동, 선·두구동, 구서1동, 구서2동, 장전1동, 장전2동, 부곡1동, 부곡2동, 부곡3동, 부곡4동, 금사·회동동, 청룡·노포동[13] 부산대학교 위치.[14] 부산대학교 위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