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문서 보기문서 편집수정 내역 홍콩섬 (덤프버전으로 되돌리기) [include(틀:홍콩의 행정구역)] [include(틀:홍콩의 구획)] [[파일:external/www.hkcrystal.com/hkisland.jpg]] ||[[파일:external/ak6.picdn.net/12.jpg|width=100%]]|| [목차] == 개요 == [[파일:Map_of_Hong_Kong.svg|width=700]] '''홍콩섬'''은 [[중국|중화인민공화국]] [[홍콩|홍콩 특별행정구]]의 섬이다. 위 지도 '''{{{#27b627 초록색 15~18번}}}'''에 해당되는데 면적이 [[울릉도]]나 [[백령도]] 크기 정도 되나 인구는 무려 125만명으로, 매우 인구 밀도가 높다. == 상세 == [[파일:홍콩 야경 2.jpg]] [[간판]]이 난립한 이미지(구룡반도), [[홍콩 디즈니랜드]] 등 일부 이미지를 제외하면 홍콩 하면 떠올리는 대표적인 이미지 대부분이 홍콩 섬 지역의 분위기다. '''[[홍콩]]이라는 현대 도시의 발상지'''이자 홍콩의 또 다른 중심지로 행정기관 같은 정치 시설 및 여러 쇼핑몰과 상업 건물이 몰려 있다. 홍콩 섬 북부부터 [[구룡반도]] 남쪽까지 이어진 지역이 홍콩의 중심지이다. 크기는 면적은 78.59 km²[* [[울릉도]]와 대략 비슷한 크기이다.]로 란타우 섬에 이어 두 번째로 크며, 홍콩 개항 이후 가장 먼저 발달한 지역이기도 하다. 가장 먼저 [[영국령 홍콩|식민지]]로 [[할양]]된 지역이다. [[1842년]] 천비가조약에 의해 영국으로 할양하기로 한 땅이 이곳 홍콩 섬이었는지라 자연히 [[청나라]]와 [[영국]]이 처음 교역했을 시점부터 발달했다. [[빅토리아 시대]] 이전부터 발달했다는 이야기다. 이후 침사추이-몽콕에 이르는 [[구룡반도]] 남단이 제2차 아편전쟁 이후 베이징 조약으로 추가 할양되어 둘이 연담화되었다. 초창기에 개발된 덕분에 좀 더 오래된 빅토리아 시대의 유산이 많이 남아있는 편이다. 아예 속어로 '빅토리아 시'라고 할 정도고 [[빅토리아 여왕]]의 이름에서 따온 항구인 빅토리아 항[* Victoria Harbour]도 있다. 현재의 센트럴 [[스타페리]] 부두와 [[마카오]]행 제트포일이 오가는 셩완 부두를 잇는 지역을 뜻하는 빅토리아 항은 지금 항구 기능을 상실한 지 오래되었으나 상징적 의미는 크다. 산악지형이 대부분이라 좁은 평지에 [[마천루]]가 있으며 홍콩을 대표하는 이미지 중 하나가 되었다. 참고로 [[빈부격차]]가 심한 홍콩에서는 부자들이 산에서 많이 산다. 홍콩의 기후가 기본적으로 후덥지근해서 과거부터 [[영국인]]이나 부자들은 시원한 고지대를 선호했고 고지대 특유의 불편한 교통도 과거엔 가마, 지금은 자동차가 있는 부자들에겐 별로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홍콩뿐 아니라 다른 옛 영국령 식민지 지역들도 마찬가지로 옛 지배자 백인들의 거주지는 고지대인 경우가 많다. [[티베트 망명정부]]가 자리잡은 맥그로드 간즈나 [[말레이시아]]의 [[페낭]] 힐 및 카메론 하이랜드 등이 그 예이다. [[싱가포르]]는 산이 거의 없고 낮은 언덕만 좀 있는 평지었음에도 [[적도]]에 붙어있는 곳이라 더위가 심해 영국인들은 어떻게든 구릉 쪽으로 가서 살고는 했다. 홍콩 섬 내에선 거주지가 계층별, 인종별로 나눠져서 [[영국인]] 등 백인들은 해피밸리 및 미드레벨, 남쪽 사이버포트 일대에 주로 살고 [[중국인]] 서민들은 주로 노스포인트, 코즈웨이베이, 완차이에 거주하는 편이며 [[한국인]]들은 동부 홍콩 섬의 타이쿠싱이나 사이완호에 밀집되어 있는 편이다. 하지만 정작 사이완호가 가까운 노스포인트에선 한국인 보기가 힘들다 노스포인트는 옛부터 중국계 주민들의 거주지였다. [[인도인]] 및 [[파키스탄인]]들의 경우도 센트럴 쪽에 많이 살아 [[시크교]] 사원 및 [[모스크]]가 센트럴 쪽 내륙에 있다. 산악지형이라서 언덕이 많은 관계로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나 [[피크트램]] 등 산을 오르내리는 교통수단이 관광자원화되기도 했으며 언덕에 위치한 란콰이퐁[* 서울 이태원과 비슷한 곳이다. 지형이 똑같은 가파른 언덕이며 거기에 많은 호프집과 카페, 레스토랑 등이 밀집했다.]의 경우에는 지형 상 안전사고가 발생 시 큰일이 날 수 있다. 그래서 각종 행사나 할로윈, 크리스마스 등 각종 이벤트가 있을 시기에는 [[홍콩 경찰]]이 압사 사고를 막고자 인간 띠까지 만들어가며 인원통제를 빡세게 한다.[* [[1993년]] 1월 1일 란콰이퐁 압사 참사가 나서 대부분 젊은이들인 94명이 사망한 이후 [[홍콩 경찰]]이 인원통제를 실시 중이다. 크리스마스만 해도 관할 경찰서장이 브리핑까지 해가며 통제에 나서고 상인들도 자발적으로 협조한다.] == 역사 == [[홍콩 특별행정구]]는 홍콩 섬 외에도 [[중국 대륙]]과 연결된 [[구룡반도]], [[신계(홍콩)|신계]]가 있다. [[1842년]], [[제1차 아편전쟁]]으로 홍콩 섬이 먼저 [[영국]]령이 되었다. [[1860년]], [[제2차 아편전쟁]]에서 현재 [[구룡반도]]의 구 [[야우침몽]] 시가지와 스톤커터스 아일랜드(石環島, 석환도)일부[* 위의 지도 14번 지역]를 새롭게 [[할양]]하였다. 마지막으로 [[1898년]], 나머지 구룡반도와 신계 지구[* 10~13번과, 파란 1~9번 영역]를 지금의 홍콩 영역을 확정했다. [[영국]]은 센트럴을 중심으로 빅토리아 시(Victoria City) 건립과 함께 총독부를 신설하였고 한동안 '''홍콩이라고 하면 홍콩 섬만을 일컫는 말이었다'''. 이전의 홍콩 섬은 한적한 [[어촌]]에 불과했지만 [[영국]]의 동방 거점으로서 발전하게 된다. 흔히 알고 있는 99년간 조차 이후 중국에 돌려줘야 했던 땅은 1898년 제2차 베이징 조약으로 할양된 홍콩확장 세번째 신구룡과 신계 지역으로, 홍콩 섬은 원칙대로면 [[영국]]이 영구히 할양받은 땅으로서 돌려줘야만 하는 의무는 없었다. 그러나 [[20세기]] 중후반에는 이미 홍콩 시가지가 신계 북부 너머로 크게 확장되었기 때문에 그때 와서 신계 북부만 [[중국]]에 돌려주고 달랑 홍콩 섬과 구룡반도, 일부 신계[* 칭이, 췬완, 콰이충, 샤틴, 레이유문, 쿤통, 카이탁, 토카완, 마타우와이, 까우룽베이, 삼수이포 등 신계 남부지역들로 이 지역은 신구룡이라 부르며 사실상 구룡반도의 일부로 쳤다.]만 남기기는 무리였다. 비록 인구의 대부분은 이 쪽에 있을 수도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홍콩 섬과 구룡 반도와 일부 신계만 [[홍콩]]으로 잔류하면 당장 [[수도(시설)|수도 시설]] 등에 차질이 생긴다. 그나마 있는 저수지, [[위성도시]] 등이 신계에 있기 때문에 [[홍콩]]이 마비될 수 있다. 즉 [[싱가포르]]가 [[조호르바루]] 없이 버텼던 것과 비슷하다. 그리고 중국 정부는 [[1949년]] 건국과 함께 기존 국민정부, 북양정부, [[청나라]]가 체결했던 모든 외국과의 조약 중에서 오로지 중국의 입장에 유리한 조약만 승계하고 나머지는 폐기하겠다는 방침을 천명한 상태라서 홍콩 섬에 대한 영국의 주권을 부정하고 여차하면 무력으로 회수하겠다고 위협했다.[* 1949년 당시에도 승리한다는 보장이 없었다. 이미 1949년 중국측이 중국 내 영국인 소개를 위해 파견된 영국 해군 함선에 고의적으로 선제 포격을 가해 영국 해군 장병을 사살했음에도 영국은 실질적인 군사 위협에 들어가지 못했다. 중국과 대결을 회피한 데는 [[중국 대륙]]의 새로운 주인이 된 [[중국공산당|중국 공산당]]과 원만하게 지내자는 외교적 계산도 있었지만 중국과 전쟁에 들어가 승전한다고 보장할 수 없었던 것도 주된 이유 중 하나였다. 미국은 냉전이 한창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중국 본토 관련 전쟁에 있어서는 심지어 '''우방국'''이 중국과 전쟁을 벌인다고 해도 '''참전하지 않는다'''는 입장이었는데 이 입장은 [[6.25 전쟁]]을 겪고 나서야 부분적으로 달라졌다.] 우방국 미국은 심지어 냉전기에도 홍콩이 점령되면 같이 참전하여 [[영국]]을 도와준다는 보장을 해주지 않았다. 중국이 홍콩을 점령하지 않은 이유는 외교 및 경제 상의 이유로 홍콩 점령이 득보다 실이 컸기 때문이다. [[영국]]은 [[중국]]이 위협을 실제 행동으로 옮길 의중이 없었음을 알았기에 중국 측 요구를 거부해왔지만 [[1975년]] 중국과 미국 간 핑퐁외교를 계기로 [[1976년]] 미-중 간 관계가 정상화되고 [[1978년]] 중국이 개혁개방 정책에 들어가자 더 이상 시간을 끌지 못하고 협상에 임하게 된다. 영국은 협상 처음에 홍콩에 대한 중국의 주권을 인정하는 대신에 행정권을 영국에 위임한 형태로 통치 연장의 의사를 타진했으나 중국은 완강히 거부했고 대신 중국 측이 [[중화민국]] 시절 내놓은 식민지 반환 원칙인 [[특별행정구]] 관리 원칙에 더하여 [[중국|중화인민공화국]]의 대만 통일원칙인 1국2체제를 결합한 일국양제 반환원칙을 먼저 들고나와 결국 영국은 [[중국]]과의 친선을 위해서 홍콩 섬을 신계 북부와 같이 돌려주게 된다. 바운더리 스트리트 이북의 땅은 [[홍콩 카이탁 국제공항]]의 건설로 99년 조차 조항이 사실상 사문화되었고, 중국 반환 대상의 신계는 초록 택시가 들어가는 진짜 외곽의 클리어워터 베이나 사이쿵 반도, 툰문, 윈롱 등의 황무지들로 제한되었지만 이 지역들도 배후지 겸 완충지로 가치가 있었다. 아무튼 원래대로 홍콩 섬과 [[구룡반도]]만 영국이 차지했다면 지금도 홍콩 섬과 구룡반도[* 신구룡 및 신계 남부 포함] 등의 시내는 영국령이었다. 물론 땅이 좁아서 본토 쪽 [[신계(홍콩)|신계]] 북부지역들에 크게 의지해야 했을 것이고, 홍콩과 중국의 국경지대는 대혼란이 펼쳐졌을 게 뻔하다. 그래도 홍콩은 [[싱가포르]]섬과 센토사 등만 갖고 있어서 이 둘만 뚝 떨어져 독립한 [[싱가포르]]보다는 훨씬 나았다. 차라리 아래쪽 [[인도네시아]] [[리아우 제도]]라도 가져갔으면 훨씬 사정이 나았을 건데 그러지 못했다. == 구획 == 인구의 절대다수는 [[구룡반도]]와 항만시설이 가까운 북부에 밀집해 있으며 남부는 개발이 제한되어 한적한 해변과 시골 마을들이 있다. 안그래도 비좁은 섬에 125만명에 달하는 인구가 그것도 대부분이 북부연안에 오밀조밀 모여있어서 체감밀도는 아주 높다.[* 바다 건너 구룡반도 및 신계에는 [[신도시]]가 대규모로 있어서 홍콩섬의 숨통을 트여 준다. 대륙에 접한 구룡반도가 없었으면 홍콩 인구는 지형의 한계 때문에 100만명 대에서 멈췄을 것으로 보인다.] 만일 홍콩섬만 [[영국]]이 차지하여 현재까지 중국에 반환하지 않았다면 공항은 이 쪽에 만들어졌거나 바다 건너 라마 섬을 간척해 만들었을 것이다. 홍콩 섬 인구는 130만 명 선인데 1976년 홍콩섬과 구룡반도를 잇는 크로스하버 해저터널과 [[MTR|홍콩 지하철]]이 만들어지기 전의 홍콩섬 인구는 '''190만 명'''이었다. 그러니까 지금 홍콩섬 인구는 [[도심 공동화]] 때문에 엄청나게 많이 줄어든 숫자이다. 섬이라는 점만 빼면 대한민국의 [[부산광역시|부산]]과 지형이 비슷하다. 가운데에 큰 산이 버티고 있어 거주지는 연안의 쬐금 있는 평야들이다. 홍콩 섬은 육지가 아니라 섬이고 섬 북쪽이 본시가지의 일부라는 점에서 부산 안에서도 [[영도구]]와도 비슷하다.[* 다만 영도구가 [[부산광역시|부산]]의 중심가라기보다는 베드타운 기능인 것과 달리 홍콩 섬 북부는 여전히 홍콩의 [[센트럴]]인 것이 차이점이다. [[부산광역시|부산]]으로 치면 만약 [[영도구|영도 섬]] 북쪽에 [[부산역]]이나 [[남포동(부산)|남포동]] 기능이 있었다면 도시 내에서 비슷한 위상이었을 것이다.] 남부는 주거지역으로 흔히 중심가는 센트럴이라고 하고 셩완(上環, Sheung Wan)과 애드미럴티(金鐘, Admiralty)까지 한 축을 형성한다. 그 왼쪽으로 완차이(灣仔 Wan Chai)와 코즈웨이베이(銅羅灣, Causeway Bay), 오른쪽으로 노스포인트(北角, North Point)와 쿼리베이(Quarry Bay) 그리고 차이완(柴灣, Chai Wan)이 있다. 북부 시가지의 중심부로 2층 [[노면전차]]가 지나기 때문에 전차를 처음 타보는 사람이라면 상당히 이국적인 체험을 할 수 있다. 실상 타보면 별 거 없지만 오션 파크와 리펄스 베이[* 홍콩섬에서 스탠리와 함께 제대로 된 몇 안 되는 해변으로 모래는 전부 [[하와이]]에서 수입해 온 인공 모래다. 지형이 비슷한 [[부산광역시|부산]]은 [[광안리]], [[해운대]], [[송도]], [[다대포]] 등에 해변이 있다.]도 남부에 위치해 있다. 지명들의 경우 [[표준중국어|보통화]] 발음으로 말하면 잘 못 알아듣는다. [[광동어]]나 [[영어]]로 말하는 게 낫다. 애초에 홍콩 섬 지역은 [[영미권|영어권]] 국가들과 같은 수준의 영어 구사 능력을 갖고 있는 지역이다.[* 홍콩 섬 거주민들은 다른 지역들에 비해 [[영국령 홍콩|영국령 시절]]부터 대대로 거주해온 사람들의 비중이 높은 편이다. 반환 이전에 영국은 [[표준중국어|보통화]]를 공용어로 지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영국 치하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세대의 경우 표준중국어를 잘 못하는 사람이 은근 있다.][* 다만 2023년 기준으로는 동양인을 보면 처음에는 광동어 구사부터 하고 보는 사람도 꽤 많다. 중국어 못 한다고 하면 원어민급의 유창한 영어를 선보이면서도 초면에는 동양인이다 싶으면 광동어를 시전하는 사람이 꽤 많은 편.(초면부터 표준중국어를 구사하는 경우는 애초에 중국 본토에서 온 사람일 가능성이 높아서 이쪽은 영어로 해 줘도 홍콩 토박이들처럼 유창하게 하진 못한다. 물론 이 사람들도 동양인을 보면 대뜸 표준중국어부터 박는다.)] 홍콩 섬의 경우 기독교 신자가 본토 부분인 [[구룡반도]]나 신계보다 많다. 종교시설은 오래된 교회가 굉장히 많다. 북쪽의 신계에는 만불사 등 각종 사찰이나 선원 등이 있는 것과 대조된다. [[영국]]의 [[성공회]]가 홍콩 섬에 주로 정착했다. 이는 홍콩 섬 북쪽은 오랫동안 영국이 점유해온 초창기 중심지이기 때문에 영국화 농도가 타지보다 짙어서이다. 사실 베이징 조약으로 중국 전통이 만연한 육지 부분이 대거 홍콩으로 포섭되어 인구가 적은 섬 쪽 사람들보다 육지 쪽 옛 신안현 사람들이 더 많아진 탓이 크다. === [[중서구]](中西區, Central and Western District) === === [[동구(홍콩)|동구]](東區, Eastern District) === === [[남구(홍콩)|남구]](南區, Southern District) === === [[완차이구]](灣仔區, Wan Chai District) === == 교통 == [[부산광역시|부산]]처럼 좁은 지역에 시가지가 길게 이어져있기 때문에 [[MTR]] [[홍콩섬선]]과 [[홍콩 트램]]이 거의 병행하며 홍콩 섬 북부를 횡단하며 교통을 책임진다. 그 외 버스들이 각지를 운행하고 있다. 섬이지만 본토와는 [[해저터널]]로 연결되어 있으며, [[스타페리]]라 불리는 배도 저렴한 가격으로 활발히 운행하고 있다. 2016년 12월 홍콩섬 남부까지 가는 [[MTR 남부섬선]]이 새롭게 개통했다. 그리고 2022년 5월 [[MTR 동철선]] 크로스하버 노선이 개통되어 이제는 여기서 [[중국|중국 대륙]] 경계인 [[로우역]]을 바로 갈 수 있게 되었다. == 대중매체에서의 등장 == 중국이 무대가 되는 대부분의 할리우드 영화에는 거진 홍콩이 등장한다. 중국 정부가 중국본토가 박살나는 꼴을 못 봐서 대부분 중국 파트는 홍콩이 맡기 때문이라고 한다. * [[다크 나이트(영화)|다크나이트]]에서 등장한다. * [[슬리핑 독스]]에서 배경으로 쓰인 홍콩은 실제 홍콩섬 지역을 구현해서 지명만 빌려옴+마이너 체인지 해서 옮겨놓은 것에 가깝다. 구룡반도 부분은 구현되지 않았다. * [[아랑전설 2]]에서도 애버딘(香港仔) 지역이 [[친 신잔]] 스테이지로 등장하며, 배경에 해당 지역 명물인 점보 팰리스 킹덤(珍寶皇宮)이 재현되어 있다.[* 해상 레스토랑. 문제가 될 수 있어서인지 작중에서는 'JUMB'''U''''로 수정해서 표기. 대유행 이후 중국 관광객 송출이 끊기자 결국 영업을 중단하고 사라졌다. 이후 하필 선체를 이동시키는 중 침몰해 버렸다.] == 둘러보기 == [include(틀:중국 관련 문서)] [[분류:홍콩]][[분류:중국의 섬]]캡챠되돌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