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보기문서 편집수정 내역 텔아비브 (덤프버전으로 되돌리기) [[분류:텔아비브]] [include(틀:아시아의 수도)] [include(틀:이스라엘의 행정구역)] ||||<-4> [include(틀:국기, 국명=이스라엘, 출력= )] '''[[이스라엘|{{{#000,#fff 이스라엘}}}]]의 [[최대도시|{{{#000,#fff 최대도시}}}]]'''[br]{{{#!wiki style="margin: -5px 0; display: inline-table" || {{{#!wiki style="margin: -5px 0" [[파일:텔아비브.svg|height=50]]}}}||{{{#!wiki style="margin: -5px 0" '''{{{+1 텔아비브}}}'''[br]תֵּל־אָבִיב[br]{{{-1 Tel Aviv}}}}}} ||}}} || ||<-3> [[파일:텔아비브깃발.png|width=100%]] || [[파일:텔아비브문장.png|width=100%]] || ||<-3> '''시기(市旗)''' || '''시장(市章)''' || ||<-4> {{{#!wiki style="margin: -5px -10px -6px" [include(틀:지도, 장소=Tel Aviv, 너비=100%, 높이=100%)]}}} || ||<-2> '''지역''' ||<-2>[include(틀:국기, 국명=이스라엘)] [[이스라엘/행정구역|텔아비브 관구]] || ||<-2> '''건립''' ||<-2>[[1909년]] [[4월 11일]] || ||<-2> '''면적''' ||<-2>176km^^2^^(텔아비브 관구) || ||<-2> '''인구''' ||<-2>약 148만 명(텔아비브 관구) || ||<-2> '''시장''' ||<-2>론 훌다이 [include(틀:리쿠드)] || ||<-4> [[https://www.tel-aviv.gov.il/en/|[[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width=23]]]] | [[https://www.facebook.com/TelAvivCityIL|[[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width=23]]]] | [[https://www.instagram.com/telaviv/|[[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width=23]]]] | [include(틀:트위터 로고, 링크=TelAviv, 크기=23)] | [[https://www.tiktok.com/@visittelaviv?lang=he-IL|[[파일:틱톡 아이콘.svg|width=23]]]] | [[https://t.me/telavivmuni|[[파일:텔레그램 아이콘.svg|width=23]]]] || || {{{#!wiki style="margin: -5px -10px -6px" [[파일:야파 2.jpg|width=100%]]}}} || |||| '''옛 야파 항구와 시가지''' || [목차] [clearfix] == 개요 == [[지중해]] 바닷가에 위치한 [[이스라엘]]의 [[최대도시]].[* 동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일부로 포함시키면 예루살렘이 인구가 가장 많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텔아비브가 인구가 가장 많다.] 1948년부터 1977년까지 이스라엘의 [[임시수도]]였다. 또한 [[1968 텔아비브 패럴림픽|1968 텔아비브 장애인 올림픽]]이 개최된 도시이다. [[6일 전쟁]]에서 승리하여 예루살렘 전역을 점령한 이스라엘 정부는 [[예루살렘]]을 재건하는 [[도시계획]]에 착수하여 1968년부터 1992년까지 [[국회의사당]]과 [[정부종합청사]]와 [[대법원]] 및 [[https://www.gov.il/he/Departments/ministry_of_public_security|공안부]]와 [[https://www.gov.il/he/departments/israel_police|경찰청]]과[* [[https://www.gov.il/he/departments/firefighting_and_rescue_israel|소방청]]은 중부 [[구(행정구역)|관구]]의 [[https://en.wikipedia.org/wiki/Rishon_LeZion|리숀 레치욘]] [[시(행정구역)|시]]에 있고, [[https://www.gov.il/he/departments/prison_service|교도청]]은 중부 관구의 [[https://en.wikipedia.org/wiki/Ramla|람라]] 시에 있다.] [[국가행정조직|문화복지부처들]], [[IBA|이스라엘방송공단]]과 [[https://www.boi.org.il|이스라엘은행]]을 차례로 이전했으니, 1977년에 이르러 텔아비브와 예루살렘은 [[중국]]의 [[상하이]]와 [[베이징]] 또는 [[브라질]]의 [[상파울루]]와 [[브라질리아]], [[나이지리아]]의 [[라고스]]와 [[아부자]], [[이탈리아]]의 [[밀라노]]와 [[로마]], [[인도]]의 [[뭄바이]]와 [[뉴델리]], [[파키스탄]]의 [[카라치]]와 [[이슬라마바드]]처럼 경제중심과 정치중심으로 상호간의 역할을 분담하게 되었다. 그러나 국내외의 정세가 불안하기 때문에 가까운 미래의 [[총력전]]에 대비하여 방위기관(국방부와 참모본부, 육해공군청과 국군사령부들), 정보기관 본부(모사드, 신 베트, 아만), 경제산업부처들, 국유기업들과 증권거래소, 대사관과 공사관과 영사관을 비롯한 각종 정부기관들은 여전히 텔 아비브 관구에 있다. 이외 주요 수교국들의 [[외교공관]] 역시 텔아비브에 위치한 경우가 많은데, 이는 6일 전쟁 이후 이스라엘이 점령한 구 요르단령 동예루살렘은 국제적으로 여전히 이스라엘 영토로 인정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정확하게는 UN 총회 결의안상으로는 예루살렘 전역을 어느 국가의 영토로도 인정하지 않으며, 서예루살렘을 실질적인 이스라엘의 영토로 인정하는 국가들 중에서도 대부분은 이스라엘의 동예루살렘에 대한 영유권을 인정하지 않는다.] 국제 사회의 주권국가들 가운데 [[친미]], 친이스라엘 성향의 약 50여 개국을 제외한 나머지 대다수는 예루살렘이 이스라엘의 수도임을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이런 국가들 중 이스라엘의 수교국은 예루살렘 관구에 상주하는 대사급 외교공관들의 철수를 요구한 [[https://en.wikipedia.org/wiki/United_Nations_Security_Council_Resolution_478|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 478호]]에 근거하여 예루살렘이 아닌 텔아비브에 주 이스라엘 대사관을 두고 있다. 여기에는 [[대한민국]] 역시 포함되어 현재 [[주 이스라엘 대한민국 대사관]]도 텔아비브에 위치하고 있다.[* 정확히는 텔아비브의 위성도시인 헤르츨리야. 한국은 대표적 친미 및 친이스라엘 국가로 꼽히나 외교적, 경제적으로 [[UAE]], [[사우디아라비아]] 등의 아랍 국가와도 밀접하고, 이런 이유로 분쟁을 피하기 위해 일방적으로 이스라엘의 편을 들지 않고 있다. 반대로 [[팔레스타인]] UN 옵저버 회원국 승인 투표 당시에도 한국은 기권을 선택했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5px" [[파일:israel_telaviv_district.jpg|width=100%]]}}} || [[이스라엘/행정구역|텔아비브 관구의]] [[도시철도]] 기능을 대행하고 있는 [[https://en.wikipedia.org/wiki/Israel_Railways|이스라엘철도공사]](רכבת ישראל בע"מ)의 [[광역철도]]를 타거나 [[시외버스]]를 타고 [[벤 구리온 국제공항]]과 [[예루살렘]]에 갈 수가 있으며, [[https://en.wikipedia.org/wiki/Tel_Aviv_Light_Rail|텔아비브 경전철]]과 [[시내버스]]가 [[통근]]과 [[관광]]에 매우 큰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 예루살렘에 비해 인지도가 낮지만, [[벤 구리온 국제공항]]을 통해서 이스라엘에 입국한 관광객들과 사업가들과 종교인들이 1순위로 들르는 곳이다. 게다가 예루살렘은 [[물류]] [[네트워크]]에 불리하기 때문에 이스라엘 [[법인]]들의 본사와 외국 [[법인]]들의 지사들은 대부분 텔아비브에 자리잡고 있다. [[https://www.cbs.gov.il|이스라엘 중앙통계국]]의 2022년도 이스라엘 통계초록(Statistical Abstract of Israel 2022)에 따르면, 텔아비브 [[구(행정구역)|관구]]의 인구는 약 148만 명이다. == 역사 == [include(틀:이스라엘의 세계유산)] ||<-3> '''[[유네스코|{{{#fff 유네스코}}}]] [[세계유산|{{{#fff 세계유산}}}]]''' || ||<-3> [[파일:유네스코 세계유산 로고(흰 배경).svg|width=160]] || ||<|4> 이름 || [[한국어]] || 텔-아비브 화이트시티[* - 모더니즘 운동] || || [[영어]] || White City of Tel-Aviv[* – the Modern Movement] || || [[아랍어]] || مدينة تل أبيب البيضاء[* – الحركة العصرية] || || [[프랑스어]] || Ville blanche de Tel-Aviv[* – le mouvement moderne] || |||| 국가·위치 || [[이스라엘]] 텔아비브 관구 || ||<-3> {{{#!wiki style="margin: -5px -10px -7px" [include(틀:지도,장소=Kikar Dizengoff, 너비=100%, 높이=100%)]}}} || |||| 등재유형 || [[세계유산#s-3.1|문화유산]] || |||| 등재연도 || [[2004년]] || |||| 등재기준 || (ii)[* 오랜 세월에 걸쳐 또는 세계의 일정 문화권 내에서 건축이나 기술 발전, 기념물 제작, 도시 계획이나 조경 디자인에 있어 인간 가치의 중요한 교환을 반영], (iv)[* 인류 역사에 있어 중요 단계를 예증하는 건물, 건축이나 기술의 총체, 경관 유형의 대표적 사례일 것] || |||| 지정번호 || [[http://whc.unesco.org/en/list/1096|1096]]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야파 오스만 술레이만.jpg|width=100%]]}}} || || '''19세기 팔레스타인의 호족 [[술레이만 파샤]]가 세운 사빌 (음수대)''' || || {{{#!wiki style="margin: -6px -10px -6px" [[파일:자파 사라이 오스만.jpg|width=100%]]}}} || || '''오스만 시기 건설된 [[사라이|{{{#000 사라이}}}]](관아)'''[* 이스라엘 건국 후 파괴되어 현재는 그 터를 알리는 기둥 열주만이 남아 있다.] || 원래는 이 근처에 있는 야파(Jaffa)[* [[가톨릭]] [[성경]]에서는 야포로, [[개신교]] 성경에서는 '욥바'라고 부른다. [[구약성서]] [[여호수아]], [[십자군]] 시대, [[대항해시대]] 등에 나오는 야파가 이 도시이다.]라는 [[고대]] 이래의 [[항구도시]]에서 벗어나기 위해 [[유대인]]들이 1906년부터 시작한 가정(Ahuzat Bayit) 운동이 기반이 되어, 1909년에 유대인 66가구가 [[조개]] 껍데기를 가지고 자그마한 마을을 건설한 것이 텔아비브의 시작이다. 1910년까지 도로망과 [[상하수도]], 유대인 [[학교]], 집 66가구 등을 지으며 '텔아비브'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후 각지에서 유대인 인구가 몰려들면서, [[제1차 세계 대전]] 중에는 텔아비브와 야파 일대의 유대인들에게 [[오스만 제국]] 정부의 추방령이 내려지기도 했으나, 오스만 제국의 패망-[[세브르 조약|멸망]]으로 곧 철회되었고 [[팔레스타인]] 지역이 [[영국]] 지배에 놓이게 되었다. 이때 팔레스타인 지역에 유대인 인구가 급증하면서 [[아랍인]]과 갈등이 고조되었으며, 1921년 1차 야파 사태가 일어나자 유대 인구의 상당수가 텔아비브로 모여들면서, 2천여 명(1920)의 마을이 단 5년 만에 3만 4천 명(1925)의 도시로 바뀌었다. 본래 근처 도시인 야파의 항구를 통해 경제적 활동을 하던 이 도시는 [[1936년 팔레스타인 대반란]] 이후 유대인들과 아랍인들의 사이가 극악에 치닫으면서 유대인들은 자체적인 항구를 건설하기 시작했다. 1948년 봄에 [[https://en.wikipedia.org/wiki/Provisional_government_of_Israel|이스라엘 임시정부]]가 텔아비브 시내에서 정식으로 출범했다. 텔아비브와 야포의 경계 분쟁이 계속되자 아예 1950년에는 텔아비브에 야포를 합쳐 텔아비브라 불렀다. 이후 야포의 역사성을 살리기 위해 텔아비브-야포로 개칭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어찌 되었든, [[제1차 세계 대전]], [[제2차 세계 대전]], [[중동전쟁]] 등을 통해 이스라엘 전역이 불안정한 와중에도 텔아비브만큼은 공격을 잘 받지 않았고,[* 100% 안전하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수도 예루살렘에 비해서 텔아비브는 그나마 안전했다.'''] 덕분에 [[초고층 빌딩]]을 연속으로 건설했으니, 이스라엘 국민들도 대부분이 경제 활동을 위해 모이는 등 번성하는 곳이 되었다. 하지만 2016년 1월에 [[이스라엘 아랍인]]의 [[총기 난사]]로 3명이 사망하고 7명이 다치는 사태가 터졌다. 6월에도 [[팔레스타인인]]의 총기 난사가 또 벌어져 4명이 사망하고 6명이 부상했으니, 텔아비브 시내도 분위기가 좋지 못한 형편이다. 게다가 [[하마스]]가 걸핏하면 쏘아대는 [[까삼 로켓]]이 틈만 나면 떨어지다 보니 대피령도 자주 내리는 판국이다. == 관광 == || {{{#!wiki style="margin: -5px -10px -6px" [[파일:야파 1.webp|width=100%]]}}} || || '''야파 항구 전경''' || 야파가 역사가 유구한 항구임에도 불구하고 볼 만한 역사 유적은 생각보다 별로 없다. 십자군 시대의 [[기독교]] 유적이나 [[이슬람]] 시대 건물들이 유대인 입장에선 절대 즐거운 기억이 아니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방치하거나 밀어버리고 그 위에 새 건물을 지은 게 많아서 그렇다. *[[https://www.arwtravels.com/blog/jaffa-arab-port-city-southern-tel-aviv|야파 역사지구 탐방]] == 사진 == || {{{#!wiki style="margin: -5px -10px -6px"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Tel_Aviv_Skyline_(night)_-_2.jpg|width=100%]]}}} || || {{{#!wiki style="margin: -5px -10px -6px" [[파일:external/2015.icimeeting.com/Beach-1.jpg|width=100%]]}}} || || {{{#!wiki style="margin: -5px -10px -6px" [[파일:external/asset-tilburg.nl/TELAVIV.jpg|width=100%]]}}} || || {{{#!wiki style="margin: -5px -10px -6px" [[파일:external/www.armapartners.com/banner-telaviv-sm.jpg|width=100%]]}}} || || {{{#!wiki style="margin: -5px -10px -6px"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Flickr_-_Israel_Defense_Forces_-_IAF_Flight_for_Israel's_63rd_Independence_Day.jpg|width=100%]]}}} || || {{{#!wiki style="margin: -5px -10px -6px" [[파일:external/cmxhub.com/Tel-aviv-Gibor-Sport-005.jpg|width=100%]]}}} || || {{{#!wiki style="margin: -5px -10px -6px" [[파일:external/wikitravel.org/Tel_Aviv_banner.jpg|width=100%]]}}} || || {{{#!wiki style="margin: -5px -10px -5px" [[파일:external/d3n8a8pro7vhmx.cloudfront.net/tel_aviv_16x9.jpg|width=100%]]}}} || == 여담 == *지명의 유래는 [[에제키엘]] 3:15에 나오는 '텔아비브'(델아빕)이다. 그러나 이름만 같고 위치는 서로 전혀 다르다. 델아빕은 [[이라크]]나 [[시리아]]쯤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곳을 연고지로 하는 [[축구팀]]으로 [[하포엘 텔아비브 FC]]와 [[마카비 텔아비브 FC]]가 있으며, 두 팀은 각각 이스라엘 사회의 [[진보주의|진보층]]과 [[보수주의|보수층]]의 응원을 받으며 치열한 라이벌리를 형성하고 있다. 두 팀의 [[더비 매치]]는 텔아비브 [[더비 매치|더비]]라 불리며 이스라엘에서 가장 치열한 스포츠 라이벌전으로 여겨진다. 경기마다 서로에게 [[나치]], [[히틀러]], 가스, [[하마스]] 등 비난이 쏟아진다. *[[폴아웃 시리즈/연대표|폴아웃 시리즈]]에서는 2053년경 [[유럽 연방(폴아웃 시리즈)|유럽 연방]]에 의해 [[핵무기|핵]] 공격을 받는 도시로 나온다. *[[2000년]]부터 [[인천광역시]]와 [[자매결연]]을 맺고 있다. *특이하게도 [[지중해성 기후]] 지역답지 않게 가장 더운 달이 7월이 아닌 '''8월'''이며,[* 일반적으로 [[동아시아]]를 제외하면 [[태양]]의 [[남중 고도]] 특성상 [[북반구]]에서 가장 덥거나 따뜻한 달은 7월이다.] 바닷가에 바짝 붙어 있다는 특성상 [[강수량]]이 적은 7, 8월에도 습도가 꽤 되는 편이다. 또 6월보다 9월이 더 더운 편이다. *이스라엘이 [[물가]]가 비싼 나라인 만큼 텔아비브도 세계에서 물가가 비싼 도시에 속한다. 다만 숙박비는 생각만큼 비싸지 않다. 여행 경비를 절약하고 싶으면 텔아비브 해변의 숙소 위주로 돌아다니고[* 시설이 엉망진창인 대신에 가격이 저렴하고 밤거리도 안전하다.] 식사나 쇼핑은 [[러시아]]계 유대인 거주 구역에서 해결하는 것을 권한다. 물가가 비교적 싸면서도 안전하고 깨끗하다. 영어가 잘 안 통해서 답답하긴 한데 밥 사고 쇼핑하는 정도는 가능하다. [[한국인]] 관광객에게 대체로 친절한 편이다. [[하레디]]들이나 휴가 나와서 술에 취한 [[이스라엘군]] [[말년병장]](...) 정도만 조심하면 된다. *현재 [[동성애]]에 대해 극단적으로 폐쇄적인 [[중동]] 지방에서 [[성소수자]]에 대해서 가장 개방적인 도시이다. 이스라엘 내 다른 도시인 [[예루살렘]]이나 [[하이파]]보다 훨씬 더 개방적인 문화를 가진 도시이기도 하다. 2012년 조사에서는 [[게이]] 문화로 유명한 [[암스테르담]]과 [[샌프란시스코]]를 제치고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03&aid=0004544505|게이 필수 여행지 1위]]로 뽑히기도 했으며, 매년 중동 및 이스라엘 최대의 게이 [[프라이드 퍼레이드]]가 열리고 있다. 다만 이에 대해 LGBT 운동 중 일부 및 서구 좌파 진영에서는 이스라엘 정부가 이슬람 사회의 성소수자 혐오를 부각시켜 팔레스타인 강제점령을 정당화하는 효과를 얻고자 성소수자 운동을 이용하는 것이라는 비판이 있다. 이에 대해서는 [[핑크워싱]] 문서 참조. == 둘러보기 == [include(틀:아시아의 최대도시)]캡챠되돌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