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문서 보기문서 편집수정 내역 최창양 (덤프버전으로 되돌리기) || '''{{{#fff 최창양의 역대 등번호}}}''' ||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5> '''{{{#ffffff [[삼성 라이온즈|{{{#ffffff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70번}}}''' || || 김성표[br](1995) || {{{+1 →}}} || '''{{{#000000 최창양[br](1996~2000)}}}''' || {{{+1 →}}} || [[김응용]][br](2001~2004) || ||<-5> '''{{{#ffffff [[삼성 라이온즈|{{{#ffffff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69번}}}''' || || [[이계성]][br](2000) || {{{+1 →}}} || '''{{{#000000 최창양[br](2001)}}}''' || {{{+1 →}}} || 허연철[br](2003~2004) || }}} || ---- ||<-2> {{{#!wiki style="margin: -6px -10px" [[파일:5억짜리먹튀.jpg|width=100%]]}}} || || 이름 ||최창양(崔昌洋, Chang Yang Choi)[* [[마이너 리그 베이스볼|마이너 리그]] 등록명은 Chang Choi.] || || 출생 ||[[1973년]] [[6월 3일]] ([age(1973-06-03)]세) || || 국적 ||[include(틀:국기, 국명=대한민국)] || || 학력 ||[[마산고등학교 야구부|마산고등학교]] {{{-2 ([[졸업]])}}}[br][[중앙대학교 야구부|중앙대학교]] {{{-2 (중퇴)}}} || || 포지션 ||[[투수]] || || 투타 ||[[우투우타]] || || 프로입단 ||1995년 국제 아마추어 자유계약 ([[필라델피아 필리스|PHI]])[* [[KBO 리그]]에는 트레이드 형식으로 입단.] || || 소속팀 ||[[필라델피아 필리스]] 산하 마이너 (1995){{{#!folding [ 펼치기 · 접기 ] {{{-1 → [[필라델피아 필리스|바타비아 클리퍼스]] (1995) / A-}}}}}}[[삼성 라이온즈]] (1996~2001) || [목차] [clearfix] == 개요 == 전 [[삼성 라이온즈]] 소속의 전 야구선수. 구속은 빠르나 제구가 안되는 유형의 투수였으며, 이런 유형의 선수가 결코 성공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입증한 여러 사례 중 하나이다. 삼성의 편법 입단으로 큰 파동을 일으켜 데뷔하기도 전에 유명해졌지만 결국은 제구를 잡지 못하고 실패하고 말았다. 구속만 보고 뽑았던 삼성 스카우트와 또 그런 선수에게 역대 최고액을 안겨준 삼성 프런트의 무능함이 단적으로 드러난 사례다. 돈만 믿고 편법적으로 타 구단의 지명권을 가로채 선수를 영입하던 90년대 삼성 구단의 어두운 모습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 현역 커리어 == === 입단 파동 === [[마산고등학교 야구부|마산고등학교]] 재학 시절 팀내 에이스로 활약했으며 2학년이던 [[1990년]]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에서 팀을 준우승시키고 자신은 감투상을 수상하면서 처음으로 이름을 알리게 된다.[* [[심재학]]이 이끄는 [[충암고등학교 야구부|충암고]]에 패했으며 심재학이 최우수선수로 선정됐다.] 고교 졸업 이후 [[중앙대학교 야구부|중앙대학교]]에 입학해 에이스로 활약했다. 최창양은 특히 빠른 구속으로 큰 주목을 받았다. 최고구속이 152km에 달했다. 당시만 해도 150km을 넘는 투수는 손에 꼽을 만큼 많지 않았다. 중앙대학교 3학년 때인 [[1994년]] 12월 중앙대학교를 중퇴하고 [[MLB]] [[필라델피아 필리스]]에 입단한다. 최창양은 당시 대학 선수 중 가장 유망주로 꼽히긴 했지만 메이저리그에서 뛸 정도의 수준은 아니라는 평가를 받았다. 최창양이 필라델피아에 입단하면서 받은 돈은 [[계약금]] 4만 달러, 연봉 1만 달러[* 당시 한화 약 4천만원 가량]였는데, 최창양보다 1년 앞서 미국에 진출한 [[한양대학교 야구부|한양대학교]] 출신의 [[박찬호]]가 계약금 120만달러에 연봉 10만9000달러를 받고 LA 다저스에 진출한 것과는 엄청나게 대비되는 액수였다.[* 이는 비슷한 시기 [[캘리포니아 에인절스]]에 입단한 [[최경환(야구)|최경환]]의 계약금 10만, 연봉 5만 달러와도 매우 비교될 정도였다.] 최창양의 미국 진출은 삼성이 롯데 연고지 출신의 최대 유망주였던 최창양을 편법적으로 입단시키기 위해서 배후에서 해외진출을 기획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http://weekly.donga.com/List/Series/3/990901/11/64529/1|#]] 주간야구 등 당시 매스컴에 이 사실이 대대적으로 보도되기도 했다. 그러나 삼성 구단은 끝까지 이를 부인했다. || {{{#!wiki style="margin: -6px -10px" [[파일:external/www.samsunglions.com/img_history21_7_7.jpg|width=100%]]}}} || || 1995년 12월 7일, 삼성 입단식 || 미국으로 간 최창양은 [[1995년]] [[마이너리그]] 싱글 A에서 방어율 4.96에 1승 3패의 저조한 성적을 거뒀다. 1995시즌이 끝나고 삼성은 현금 트레이드 방식으로 20만 달러(당시 약 1억 6천만원)에 [[필라델피아 필리스]]로부터 최창양을 영입했다. 이와 별개로 최창양 본인과는 계약금 5억에 연봉 4천만원, 도합 5억 4천만원에 계약, [[1995년]] [[12월 7일]] 입단식을 가졌다. 당시 계약금 5억 원은 역대 신인 최고액이었으며, 5년 후인 [[2001년]] 삼성 신인 투수 [[이정호(1982)|이정호]]가 이를 5억 3천만원으로 갱신하게 된다. 삼성은 최창양 영입과 계약에 최소 7억 원을 쓴 것이다.[* 이 7억 원이라는 신인 몸값은 [[1997년]] [[LG 트윈스]] [[임선동]]이 계약금으로만 7억을 받으며 갱신한다.] 삼성이 제도상의 헛점을 이용하여 이렇게 편법적인 방식으로 최창양을 영입하자 큰 파문이 일었다. 이같은 방식으로 드래프트를 회피하여 타 연고지 선수를 가로채 영입하더라도 KBO에서 아무런 제재를 가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 드러나게 된 것이었다. 최창양의 우선 지명권을 갖고 있던 연고구단인 [[롯데 자이언츠]] 측에서 법정 소송을 벌었으나[* 소송과는 별개로 롯데는 지역 최대어인 [[차명주]]가 있었기에 굳이 최창양을 1차 지명할 이유는 없었다.] 당시에는 이런 생각지도 못한 경우에 대한 규정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패소하고 말았다. 최창양 사건으로 롯데-삼성 양측 팬덤의 사이가 안 좋아지기도 했다. [[양준혁]] 입단 파문에 이어 최창양 입단 파문이 일자 야구팬들의 여론도 안좋았다. 최창양 파문 이후 타 리그에 진출한 타 지역 연고 선수를 지명 외 방식으로 입단시키는 것을 제한하는 규정이 새로 마련되었다. [[1996년]]부터는 해외진출 선수의 경우 연고구단에 트레이드 우선권을 주기로 하였으나, 1년 후 얼마 안 가 트레이드는 불가, 무조건 신인지명을 거쳐야 뛸 수 있도록 규칙이 개정되었다.[* 이 때문에 [[LG 트윈스]]가 [[최경환(야구)|최경환]]을 트레이드 방식으로 입단시키려 했으나 규칙 개정으로 트레이드 무산, 결국 2000년 신인지명으로 입단시켰다.] === 프로 선수 시절 === 어쨌든 최창양은 단연 [[1996년]] 최고의 신인으로 꼽혔고, 최소한 10승 이상을 거둘 것으로 예상되었다. 이는 150km/h의 매력적인 속구를 가졌기도 하지만, 어쨌든 미국 진출로 인해 네임밸류가 높아져서였기도 했다. 당시에는 [[마이너리그]]든 뭐든 미국 야구를 경험해본 선수가 희소했기 때문에 최창양의 주가는 오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최창양의 삼성 입단 즈음(95년 12월)에 마이너리그 경력을 가졌던 한국인 선수는 그를 포함해 5명에 불과했다.[* [[이원국]], [[박철순]], [[박찬호]], 최경환, 최창양.] 최창양은 [[4월 14일]] 중간투수로 첫 출장 이래 [[4월 21일]] 대구에서 열린 [[롯데 자이언츠]]를 상대로, 자신의 KBO 첫 선발 출장에서 [[완투]]승, 그 다음 26일에는 [[완봉]]승을 기록하며 기대치를 높여나갔다. 5월 초까지 선발로 3연승을 기록했지만 이후 6월까지 귀신같이 4연패를 기록, 이후 7월 말에 1승을 거두고 다음 1승은 그로부터 한 달 후에야 거둘 수 있었다. 10승 투수라는 기대감으로 시즌을 시작했으나 결국 10패 선수로 끝을 맺었다. 96년 최종 성적은 24경기 6승 10패 ERA 3.86. 최고의 신인으로 기대되던 만큼 첫 시즌 당연히 10승을 해줄 것이라 믿었던 최창양이 10패를 했지만, 팀 순위가 당시 역대 최악인 6위였고, 표면상 성적이 '3점대 ERA 투수'였던지라 삼성 팬들은 최창양이 첫 해의 불운(?)을 딛고 차세대 에이스로 활약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당시에는 6위 했다고 흑역사로 치부될 만큼 참 좋은 시절이었다-- 하지만 [[1997년]], 최창양은 그보다 더 못한 성적을 썼고 5승 3패 ERA 4.75를 기록했다. 구속은 좋았으나 그뿐이었다. 영점을 잡지 못했고, [[폭투]]도 많이 나왔다. [[1997년]] [[8월 8일]] 13구 연속 볼이라는 기록을 세울 정도로 제구력은 나아지지 않았다. 경기 외적으로도 좋지 않아 자기관리에 소홀하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결국 [[1998년]] 어깨 부상을 당해 전력 이탈, 재활 후 [[1999년]] 말미에서야 선을 보였지만 영 좋지 못했다. [[2000년]]까지 최창양은 계속해서 [[선발 투수]]로 뛰었지만 계속해 좋지 않은 성적을 기록하게 되고 결국 시즌 중간 2군으로 모습을 감춘 뒤 다시는 콜업되지 못했다. 2000년 최창양의 성적은 23경기 5승 2패 ERA 6.27. 결국 [[2001년]] 한 해를 2군에서 그대로 보내다 방출, 그대로 은퇴하였다. 은퇴 후에는 [[서울]]에서 야구 레슨을 하고 있다. 입단 초 최창양의 훈련 모습을 지켜보던 [[백인천]] 감독은 잘해야 5~6승이라고 장담했는데, 그 말이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실제로 일어났다.]] 그만큼 최창양이 성실하지 못했다는 뜻. == 여담 == [[임창용]]이 최연소 150세이브포인트를 기록했던 경기[* [[2000년]] [[5월 25일]] 한화전]의 선발투수였다. 이날 최창양은 승리투수가 되었다. [[1973년]]생에 92학번으로 의외로 황금세대의 일원이다.[* [[임선동]], [[조성민]], [[박찬호]], [[박재홍(야구)|박재홍]], [[송지만]], [[손혁]], [[홍원기]], [[김종국(야구)|김종국]], [[차명주]] 등 열거만 해도 탄성이 나올 정도로 많은 프로야구 선수들을 배출한 학번이다]. 하지만 최창양은 대학 시절 크게 주목받은 편은 아니었다. 임선동-조성민-손경수 트로이카가 한창 관심을 독차지하던 때인 데다, 강점이던 구속 쪽에서는 한 해 먼저 미국 땅을 밟은 '''박찬호'''가 있었기 때문에... 삼성에 입단하던 1996년 당시에도 [[전병호]], [[최재호(1973)|최재호]] 등 92학번 동기생들과 함께 입단했다. [[진필중]]의 중앙대 1년 후배이다. 동시기 삼성에 있던 해외파 투수인 [[최용희(야구)|최용희]]와 함께 최씨 해외파 듀오로 묶이곤 하는데, 사실 최용희는 아예 재미교포로 미국 대학리그에서 활동하던 선수였다. 이 듀오는 당시 삼성의 삽질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예시로, 두 선수를 영입하는데 쓴 돈이 도합 약 11억... 최용희가 4억, 최창양이 7억이다. 선수 시절 등번호 70번을 5년 동안 썼다.[* 보통 70번은 코칭스태프, 그 중에서도 감독이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 통산 성적 == === [[마이너 리그 베이스볼|MiLB]] === ||<-17> {{{#ffffff 역대 기록(투수)}}} || ||<:> {{{#ffffff 연도}}} || {{{#ffffff 소속팀}}} || {{{#ffffff 경기수}}} || {{{#ffffff 이닝}}} ||{{{#ffffff 승}}} || {{{#ffffff 패}}} || {{{#ffffff 세}}} || {{{#ffffff 홀}}} || {{{#ffffff 승률}}} || {{{#ffffff ERA}}} || {{{#ffffff 피안타}}} || {{{#ffffff 피홈런}}} || {{{#ffffff 4사구}}} || {{{#ffffff 탈삼진}}} || {{{#ffffff 실점}}} || {{{#ffffff 자책점}}} || {{{#ffffff WHIP}}} || || 1995 || [[필라델피아 필리스|바타비아 클리퍼스(A-)]] || 127 || 362⅔ || 67 || 32 || 0 || 0 || .250 || 4.96 || 365 || 1 || 16 || 32 || 20 || 18 || 1.50 || ||<-2> '''[[마이너 리그 베이스볼|MiLB]] 통산''' [br] (1시즌) || 7 || 32⅔ || 1 || 3 || 0 || 0 || .250 || 4.96 || 35 || 1 || 16 || 32 || 20 || 18 || 1.50 || ---- ||<-16> {{{#ffffff 역대 기록(타자)}}} || || {{{#ffffff 연도}}} || {{{#ffffff 소속팀}}} || {{{#ffffff 경기수}}} || {{{#ffffff 타수}}} || {{{#ffffff 타율}}} || {{{#ffffff 안타}}} || {{{#ffffff 2루타}}} || {{{#ffffff 3루타}}} || {{{#ffffff 홈런}}} || {{{#ffffff 타점}}} || {{{#ffffff 득점}}} || {{{#ffffff 도루}}} || {{{#ffffff 볼넷}}} || {{{#ffffff 출루율}}} || {{{#ffffff 장타율}}} || {{{#ffffff OPS}}} || || 1995 || [[필라델피아 필리스|바타비아 클리퍼스(A-)]] || 7 || 0 || .000 || 0 || 0 || 0 || 0 || 0 || 0 || 0 || 0 || .000 || .000 || .000 || ||<-2> '''[[마이너 리그 베이스볼|MiLB]] 통산''' [br] (1시즌) || 7 || 0 || .000 || 0 || 0 || 0 || 0 || 0 || 0 || 0 || 0 || .000 || .000 || .000 || === [[KBO 리그|KBO]] === ||<-17> {{{#ffffff 역대 기록}}} || ||<:> {{{#ffffff 연도}}} || {{{#ffffff 소속팀}}} || {{{#ffffff 경기수}}} || {{{#ffffff 이닝}}} ||{{{#ffffff 승}}} || {{{#ffffff 패}}} || {{{#ffffff 세}}} || {{{#ffffff 홀}}} || {{{#ffffff 승률}}} || {{{#ffffff ERA}}} || {{{#ffffff 피안타}}} || {{{#ffffff 피홈런}}} || {{{#ffffff 4사구}}} || {{{#ffffff 탈삼진}}} || {{{#ffffff 실점}}} || {{{#ffffff 자책점}}} || {{{#ffffff WHIP}}} || || 1996 ||<|6> [[삼성 라이온즈]] || 24 || 126 || 6 || '''10'''[br](6위) || 0 || - || .375 || 3.86 || 104 || 4 || 81 || 82 || 63 || 54 || 1.41 || || 1997 || 19 || 83⅓ || 5 || 3 || 0 || - || .625 || 4.75 || 88 || 5 || 54 || 45 || 46 || 44 || 1.03 || || 1998 || 6 || 27⅔ || 1 || 0 || 0 || - || 1.000 || 3.25 || 25 || 1 || 16 || 19 || 10 || 10 || 0.65 || || 1999 || 3 || 3⅓ || 0 || 0 || 0 || - || - || 2.70 || 3 || 0 || 1 || 4 || 1 || 1 || 0.13 || || 2000 || 23 || 74⅔ || 5 || 2 || 0 || 0 || .714 || 6.27 || 95 || 7 || 45 || 50 || 61 || 52 || 0.44 || || 2001 ||<-15> 1군 기록 없음 || ||<-2> '''[[KBO 리그|KBO]] 통산''' [br] (6시즌) || 75 || 315 || 17 || 15 || 0 || 0 || .531 || 4.60 || 315 || 17 || 197 || 200 || 181 || 161 || 1.58 || ||<-3> {{{#ffffff 완투, 완봉 기록}}} || || 연도 || 완투 || 완봉 || || 1996년 || '''5완투'''[br](4위) || 1완봉 || || 1997년 || 2완투 || 0완봉 || || '''[[KBO 리그|KBO]] 통산''' || 7완투 || 1완봉 || == 관련 문서 == * [[먹튀]] [[분류:1973년 출생]][[분류:우투우타]][[분류:우완 투수]][[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삼성 라이온즈/은퇴, 이적]][[분류:마산고등학교 출신]]캡챠되돌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