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보기문서 편집수정 내역 윤선 (덤프버전으로 되돌리기) [include(틀:고려사)] ---- [include(틀:후삼국시대 호족들)] ---- '''尹瑄''' '''생몰년도 미상''' [목차] == 개요 == [[후삼국시대]]의 [[호족]]. [[태봉]] ~ [[고려]] 초기 [[삭주]] 삭정군(朔庭郡)[* 현 [[북한]] [[강원도(북한)]] [[안변군]].] 골암성(鶻巖城)에서 독자적인 세력을 이뤘던 [[군웅]]이다. == 생애 == 염주(塩州)[* 현 [[북한]] [[황해남도]] [[연안군]] 일대로 비정. [[통일신라]]의 [[한주]] 해고군(海皐郡)이였으며, [[고려]] 시대에는 염주로 불렸다.] 출신으로 후삼국시대 초기에는 [[태평]]과 함께 [[유긍순]]의 휘하에 있었다. 사람됨이 침착하고 용맹했으며 [[병법]]에도 밝았다. [[궁예]]가 [[누가 기침 소리를 내었어|사람 죽이는데 만족하지 못하자]] 화가 자기에 미칠까 우려한 윤선은 자신의 무리를 이끌고 북쪽 변방으로 달아났다. 윤선은 2,000여명의 무리를 모아 골암성에 주둔하면서 [[흑수말갈]]의 무리를 불러모았으며, 또 변방 [[군현제|군현]]들을 노략질하기도 했다.[* 이 사건을 보면, 실제 흑수말갈이 발해 남부까지 남하한 것인지, 고려와 접경했던 [[야인여진]]을 흑수말갈로 기록한 것인지는 적혀있지 않아 알 수 없다. 다만 역사적으로는 이미 [[발해]]의 남부인 [[함경도]] 지역에 대한 통제력은 9세기 후반부터 무너지고 있었다.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의하면 886년 신라 [[헌강왕]] 재위기간에 신라 동북방의 [[말갈|말갈인]]들이 [[흑수국]], [[보로국]]이란 나라를 자칭하고, 발해를 거치지 않고 신라와 독자적으로 외교를 시도하기 시작했다. 921년 2월에는 말갈의 일파인 [[달고]]가 고려 북쪽 변경에 쳐들어와 [[삭주]]에 주둔 중이던 왕건의 휘하 장수 [[견권]]이 이들을 물리치기도 했다. 윤선이 흑수말갈을 끌어들인 것을 거쳐 이후 923년자 기록에 골암진에 계속 북번이 위협을 해온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발해 관련 기록이 부족해 확실히 알 수는 없지만 이미 발해 [[멸망]] 수십 년 전 시점부터 신라 말기와 비슷하게 쇠퇴하고 있었고 특히 변방의 말갈족 세력들의 이탈이 가속화되고 있었던 것으로 추측해볼 수 있다.] 918년 6월 [[정변]]으로 [[궁예]] 정권이 [[왕건]]에게 붕괴된 직후인 동년 8월 무리를 이끌고 고려에 항복했다고 한다. 920년 골암성 지역에 [[유금필]]이 파견되어 축성한 기사를 미뤄보면 윤선은 고려 경내로 완전히 귀부했거나 세력이 해체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다만 3년 후인 923년자 기록에 골암진에 다시 말갈 세력이 [[약탈|노략질]]을 벌여 유금필이 왕건의 명을 받아 그들 세력을 모조리 제압했다는 내용이 적혀 있어 윤선 본인만 혹은 그를 포함한 지도층만이 고려로 투항하고 남은 말갈족들은 그대로 남아 독자적으로 세력을 이었을 개연성도 무시할 순 없다. == 기타 == * 동시대 염주에서 활동했던 인물로는 [[유긍순]], 유긍순의 기실(記室)이었다가 고려 건국에 참여한 [[태평]]이 있다. == 매체에서의 등장 == 후삼국시대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 [[태조 왕건]]에서도 다뤄지기는 한다. 야인시대 [[황병관(야인시대)|황병관]] 역의 [[함석훈]]이 윤선 역으로 나온다. 다만 자세한 사건 전말이 장면으로 그려지지는 않고, 견권이 달고를 격파했다는 내용과 함께 [[왕유#s-1.2.1]]가 [[왕건(태조 왕건)|왕건]]에게 보고하는 내용에서 언급된다. 윤선이 왕건에게 귀부하는 장면으로 나온다. [[분류: 후삼국시대/인물]][[분류:몰년 미상]]캡챠되돌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