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문서 보기문서 편집수정 내역 열반 (덤프버전으로 되돌리기) [include(틀:다른 뜻1, other1=학교 용어로 열등한 반을 뜻하는 열반(劣班), rd1=열반(학교))] [목차] == 개요 == 열반([[涅]][[槃]])은 산스크리트어 [[니르바나]]의 한자 독음으로, [[불교]]에서 가르치는 더 이상의 어떠한 [[고통]], [[욕망]], [[자의식]]이 없는 [[초월]]의 경지에 다다른 상태를 말한다. 어떤 깨달음에 의해 [[업보]] 및 [[윤회]]에서 해방된 상태이기도 하다. == 명칭 == || [[산스크리트어]] ||निर्वाण || || [[팔리어]] ||निब्बान || || [[네팔어]] ||निर्वाण || || [[티베트어]] ||བདེ་བར་གཤེགས་པའི་གནས།[* [[국제음성기호]]로는 bɑde̞ːbɑʁɑːɡɑʃe̞ɡɑsɑːpɑʔiːˈɡɑnɑs 이다.] || || [[한자]] ||涅槃[* [[표준중국어]] 발음으로는 nièpán, [[광둥어]]로는 nihppùhn이라고 발음된다.] || || [[베트남어]] ||Niết-bàn || || [[태국어]] ||นิพพาน || || [[영어]] ||Nirvana[* 락그룹 [[너바나]]의 이름은 여기서 유래했다.] || 지금의 인도 대륙에서 가르침을 설하던 고대 사상가들은 평안·안은·안락·행복·피안 등과 같은 이상을 목적으로 하여 이에 도달하는 것을 모크샤(Moksha)라 칭하였다.[* 현재도 [[시크교]]는 열반을 모크샤라 한다.] 이를 [[산스크리트어]]로 निर्वाण(니르바나)라 한다. 어원에는 많은 설이 있다. '([[불]]을) 불어서 끄다, 또는 그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라는 설과, '소멸한다'라는 뜻의 니르바 nirva 또는 '뚜껑을 없앤다'라는 뜻의 니르브리 nirvr라는 설 등이 유력하다. [[한자]]로 [[음차]]를 해서 열반나(涅槃那), 열반(涅槃), 니원(泥洹) 이라고도 쓴다. 원래 涅는 '녈'이라고 읽고, [[두음법칙]]으로 단어의 앞에 올 때는 '열'이 된다. 산스크리트어 "니르바나"였던 것이 → 중국에서 한자어 "녈반"으로 음차되고 → 한국에서 두음법칙으로 "열반"이 된 것이다. 산스크리트식 "니르바나"와 한자를 거친 "열반" 모두 옳은 표기이다. 사실 열반나(涅槃那)는 중고한어로 net-ban-na 혹은 niet-buan-na 로 읽히는 음차 표기이다.[* 석가모니를 뜻하는 释迦牟尼 도 산스크리트 shakyamuni 를 중고한어로 sjek-kia-muw-ni 로 옮긴 음차표기이다.] [[의역]]할 때는 '적멸'이라 한다. [[부처]]의 진신[[사리(불교)|사리]]를 모신 곳을 '[[적멸보궁]]'이라 하는데, 여기서 '적멸'이 열반을 뜻한다. 모든 번뇌를 태워 버리고, 기쁨도 슬픔도 없는 마음이 지극히 고요한 상태. 멸도 등으로 쓰기도 하는 참으로 불교의 궁극적인 실천 목적이다. [[해탈]](解脫) 역시 열반의 의역이다. == 목표 == 열반이 불교 수행의 최고 경지이기는 하지만 불교의 최종 목표는 열반이 아니라 무상정등정각, 즉 최상의 깨달음을 이룩하는 것이다. 열반은 무상정등정각을 얻기 위한 세 가지 방편인 삼승 중 하나에 속한다.[* 고익진, 불교의 체계적 이해, 광륵사, 2015, p. 116] ''열반에 도달하는 방법은 크게 2가지가 있다. [[부처]]처럼 육체가 살아있는 상태에서 열반에 든 경우(유여의열반)가 있고 육체가 소멸한 상태로 열반에 드는 경우(무여의열반) 두 가지가 있다. 쉽게 이야기해서 현생에서 해탈을 통해 열반에 도달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죽음을 통해서 열반에 이를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통한 열반의 과정을 잘 모르고 있는데 스님과 같은 사람들은 죽음을 통한 열반(무여의열반)을 거쳐왔다. 이처럼 열반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고 현생에서의 열반, 죽음을 통해서도 열반에 도달할 수 있게 된다.”(시공불교사전, 원불교 대사전, 한국고전용어사전)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가장 처음 담아낸 책인 디가 니까야의 첫 번째 경인 범망경에서 이에 대해 아주 짧게 나온다. 디가 니까야는 [[팔리어]]로 쓰였으며 [[제1차 결집]] 때 [[아난다]] 존자를 중심으로 석가모니의 직계 제자 약 500여 명이 만장일치를 통해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하고 써낸 책이다. 범망경이란 '견해의 그물'이라고도 하며, 이런 견해에 집착 또는 머물면 열반에 들 수 없다 하고 '잘못된 견해'에 대해 설명 한다. 예시 중, '지금 이 자리에서 열반을 실현했다고 주장하는 자'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는 오온의 기쁨, 선정을 통한 기쁨을 열반이라 주장하는 이들에 대한 반박이다. [[http://file.ssenhosting.com/data1/rrojia2/61JDNY1.mp3|이를 다룬 팟캐스트도 있다]] 쉽게 말해 부귀, 자식의 성공 등 생전의 삶의 모습에 더 이상 미련을 갖지 않고(털어내고) 이렇다 할 마음의 작용 없이 육체의 죽음을 맞이하는 상태와 '''유사한 이치'''라 할 수 있다. 상좌부 불교의 교학관에 따르면, 색계 선정을 어느 정도 배양한 수행자는 일반적으로 보이지 않는 현상들을 마음의 눈으로 관찰할 수 있게 된다고 여긴다. 이때 도과(道果, magga-phala)의 지혜 역시 배양된 상태라면, 열반을 대상으로 삼아서 관찰할 경우 밝은 [[빛]]으로 보인다고 한다. == [[입적]]과의 차이 == 스님의 부고를 불교계에서는 "[[입적]]하셨다"라는 말을 쓰는데, 이는 열반과는 약간 의미가 다르다. 입적이라는 말은 '완전한'이라는 의미의 접두사인 파리(pari)를 붙여 니르브리티(parinirvana, 귀환)이라고 한다. 한역으로는 반열반(般涅槃)으로 음사한다. 그런데 94년도 첫 수능에서 열반의 의미를 묻는 문제가 출제되었는데, "열반에 들다"와 "입적하다"를 같은 의미로 판단하였다. 중등교육에서 여기까지 파고들지 않는가 보다. [[분류:불교]][[분류:유형별 죽음]]캡챠되돌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