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문서 보기문서 편집수정 내역 에마뉘엘 조제프 시에예스 (덤프버전으로 되돌리기) [[분류:혁명 프랑스의 정치인]][[분류:프랑스의 가톨릭 주교]][[분류:1748년 출생]][[분류:1836년 사망]][[분류:바르 출신 인물]][[분류:파리 대학교 출신]] [include(틀:역대 프랑스 제1공화국 국가원수)] ---- ||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220px-Emmanuel_Joseph_Siey%C3%A8s_-_crop.jpg]] || Emmanuel Joseph Sieyès (1748 ~ 1836) [목차] == 개요 == 프랑스의 정치가로서 [[프랑스 혁명]]의 중심인물이었으며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와 손잡고 총재정부를 무너뜨린 인물이다. [[유럽]] 최초의 인권 선언인 [[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의 초안을 쓰는데 참여했다. == 생애 == 시에예스는 프랑스 남부 프레쥐에서 우편배달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소르본 대학교]]에서 [[가톨릭]] 사제가 되기 위한 교육을 받은 뒤 주교가 되었다. [[루이 16세]]가 [[삼부회]]를 소집하려하자 시에예스는 "제3신분이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저술해 배포하였는데 책 말머리의 적힌 문구가 인상적이다. > "제3신분이란 무엇인가? 모든 것이다. 지금까지 그들은 무엇이었는가?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들이 무엇을 바라는가? 무언가 되기를 원한다." 결국 이는 [[프랑스 혁명]] 당시 [[국회]] 탄생의 촉진제가 되었다. 삼부회에서 시에예스는 제 1신분(주교)이였지만 제 3신분을 옹호하는 입장으로 활동하였고, [[라파예트]]와 함께 [[프랑스 인권 선언]]의 초안을 작성하였다. [[로베스피에르]]의 공포정치 시기에는 책잡혀서 목 안 달아나려고 죽은 듯 숨만 쉬고 있었는데, 그래서 후일 "댁은 공포정치 시기 때 (그것들 안 막고) 뭣 하고 있었소?"라는 힐난조의 질문에 웃으며 "살아있었죠"라고 대답해서 상황을 넘겼다는 일화가 있다. 어떻게 보면 [[스탈린]] 격하 연설중이던 [[니키타 흐루쇼프]]가 비슷한 야유에 "방금 어떤 새끼야! [[굴라크]]로 가고 싶어!"라고 외친 다음 좌중이 조용해지자 웃으며 "이제 왜 그랬는지 아시겠지요?"라고 말했다는 [[공산주의 유머/소련/정치와 행정|공산주의 유머]]의 원조격이다. 시에예스는 총재정부 수립 당시 5인의 총재 중 한 사람이 되었는데 총재정부가 막장으로 돌아가자[* 당시 총재정부가 얼마나 막장이었냐면 입법부와 행정부가 상호간의 고위층을 향한 암살을 매일 벌일 정도였다. 당장 전국민적인 지지를 받던 나폴레옹이 폭탄으로 암살미수를 경험했으니 말 다한것이다.] 쿠데타를 계획하고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와 손을 잡는다. 그리고 그는 [[브뤼메르 18일의 쿠데타]]로 총재정부를 무너뜨린다. 본래 그는 임시 집정정부 제1집정 자리를 노렸지만 나폴레옹에게 밀려 제2집정이 되었고, 결국 실권을 잡는데 실패한다. [[루이 18세]]에 의해 왕정이 복고된 뒤 추방되었다가 [[7월 혁명]] 때 프랑스로 되돌아온 뒤 1836년 사망한다. 여담으로 [[사회학]]이라는 용어를 탄생시킨 인물이다.캡챠되돌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