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보기문서 편집수정 내역 스테파노 1세 (덤프버전으로 되돌리기) [include(틀:역대 가톨릭 교황)] ||<-5><#806600> [[교황|[[파일:교황 문장.svg|height=40]] '''{{{#FFF 가톨릭 교회의 교황}}}''']] || ||<-5> [[파일:23_s_stefano_I.png|height=125]] || || 제22대 [[루치오 1세|성 루치오 1세]] || → ||<#806600> '''{{{#FFF 제23대 성 스테파노 1세}}}''' || → || 제24대 [[식스토 2세|성 식스토 2세]] || * [[라틴어]]: Stephanus I * [[이탈리아어]]: Stefano I * [[영어]]: Pope Stephen I * 생몰년: ? ~ 257년 8월 2일 * 재위기간: 254년 5월 12일 ~ 257년 8월 2일 [[데키우스]] 황제의 박해 때 배교한 신자들의 처리 문제가 스테파노 1세 재위기간 동안 논란이 되었다. 스테파노 1세는 전임 교황들과 마찬가지로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배교한 신자들을 교회에 다시 받아들이는데 우호적이었으나 이를 거부하는 성직자들이 있었다. 결국 스테파노 1세는 회개한 배교자들을 거부하는 노바시아노주의자들을 이단으로 단죄했다. 하지만 여기서 다시 문제가 된 것은 노바시아노주의자들에게 세례받은 교인들의 처리 문제였다. 스테파노 1세는 재세례를 받지 않아도 된다고 했으나 다른 속주들의 주교들은 이들이 재세례를 받아야 [[미사|성찬례]]에 참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를 두고 논쟁이 벌어졌고, 알렉산드리아의 디오니시오스 주교가 스테파노 1세에게 편지를 보내어 양자를 조절하였다. 결국 스테파노 1세의 주장이 받아들여져서 배교자들은 고해성사를 통해 죄 사함을 받고 미사에 참례해 영성체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전승에 따르면 그는 [[발레리아누스]]의 치세에 기독교 박해가 다시 시작되어 [[미사]] 집전 중 체포되어 처형당해 순교했다고 전해진다.[* 354년 작성된 '주교 사망록'(Depositio episcoporum)에는 스테파노 1세를 순교자로 기록하고 있지 않으며 가톨릭 교회에서도 그를 공식적으로 순교자로 인정하지 않는다.] 사후 시성되었으며, 축일은 8월 2일이다. [[분류:3세기 교황]][[분류:교황(로마 제국)]][[분류:시성된 교황]][[분류:가톨릭 성인]][[분류:257년 사망]][[분류:로마 출신 인물]]캡챠되돌리기